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67화 (67/149)

67화. 평양 만수대(2)

김일성 집무실에서 내려와 만수대 정문으로 향했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려는 도둑놈들을 맞이해야 하니까.

“잘 지냈는가?”

말 위에서 도둑놈1이 가장 먼저 도도하게 말을 건넸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재회하는 자리에서나 할법한 흔해 빠진 멘트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명이 긴지 무탈합니다. 사단장님께선 잘 지내셨습니까? 평양에서 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의정부에서 자네가 참 많은 도움을 줬지. 함께 평양에 입성하니 감회가 새롭군.”

현재 7사단장은 김석원 장군에게 군단장 자리에서 밀려난 유재흥 소장이었다.

지금은 도둑놈1 밖에 안 보이지만.

그나저나 함께?

분명 함께라고 했겠다?

내 귀를 의심했다.

가만히 따듯한 방바닥 아랫목에 앉아 밥상 나오기만을 기다린 양반이 밥상이 나오니까 함께 차렸단다.

“서부전선에 평양이 위치했을 뿐, 중부 전선이나 동부 전선에 있는 국군과 연합군이 합심해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주 넓게 본다면, 평양 탈환의 공이 100% 특공연대에 있다고 할 순 없다.

각기 다른 전선을 맡아 북진하고 있는 다른 부대들의 피와 땀이 깔려있기에 가능한 일.

이런 의미에서의 함께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글쎄.

숟가락 살인마를 불러 정신 차릴 때까지 이마빡을 숟가락으로 후려 패거나, 밥상을 엎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평양 일부 지역은 8연대가 최일선에서 적을 소탕하고 점령했습니다. 연대장님이 사단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입성을 너무 크게 바라보시는 듯하여 말씀드립니다.”

오호.

이 새끼는 말을 재수 없게 하는 훌륭한 재주가 있네.

8연대장 김용주 중령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리 똥간 들어가고 나올 때가 다르다지만 얼마 전 죄송하다며 고개 숙인 기억은 그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다.

“연대장님. 이건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이건 아셔야 할 것 같아서···”

김상옥 중령이 곁에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였다.

“8연대 부대원 일부가 평양 시내 곳곳에 평양 선봉 8연대라는 낙서를 적고 다닌다 합니다. 저희 1 대대원 일부가 낙서를 발견하고 지우고는 있지만···”

“알겠네. 곧 해결할 테니 그동안 불필요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병력을 잘 통제하게.”

양심만 없는 줄 알았더니, 도덕성까지 엿이라도 바꿔먹은 모양이다.

더 지체했다가는 양 부대원 간 시비가 크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 조속히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사단장님. 지금 이 상황을 군단장님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어떤 통보도 없이 작전 구역에 들어와 아군 간 오인사격이 발생할 뻔했고, 지금 시내에선 특공연대와 8연대 병력 간 시비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지휘관으로서 현 상황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는 마지막 기회다.

숟가락 얹겠다는 심보가 쪽팔린 줄 알고 얌전히 돌아가 반성하는 것.

“지금 그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인가? 이강산 대령, 자네는 허위 사실로 지금 상관을 모욕하고 있어! 상관 모욕이 얼마나 중한 죄 인지 모르는 건가?”

조용히 유재흥 사단장의 말을 듣고 있던 김상옥 중령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얼마나 분을 참고 있는지, 눈동자에 있는 실핏줄이 하나둘씩 터지고 있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단, 실수했을 때 창피한 줄 알고 반성해야 실수할 자격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공적은 스스로 치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인정과 격려가 있는 공적만이 진실 된 공적일 것입니다.”

“이···이런. 내 반드시 자네에게 상관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할걸세.”

계급과 지위를 이용해 나를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본데, 아주 큰 오산이다.

나는 가진 게 계급과 지위뿐인 인간에게 눈뜨고 코 베일 만큼 무른 사람이 아니니까.

“말씀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같이 고생하는 국군끼리 콩 한 쪽을 나누진 못할망정···”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김용주 중령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봐··· 자네··· 여기 있는 나는 입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 줄 알아? 제발. 제발 부탁하는데, 그 입을 더 열지 마. 끼어들지 말란 말이야.”

김상옥 중령이 김용주 중령에게 내뱉은 말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언성을 높이거나 흥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의사를 전달했을 뿐.

실핏줄이 터져 충혈된 빨간 눈과 꽉 깨문 어금니가 얼마나 참고 인내하는 중인지를 보여줬다.

그런 그를 본 김용주 중령은 입을 더 열 수 없었다.

“사단장님. 심판 없는 싸움에서 승리를 주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부하들 보기 창피하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그들에게, 더 해줄 조언이 없었다.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이를 갈고 있는 유재흥 사단장 어깨너머로, 만수대 정문으로 들어오는 차량 행렬이 보였다.

심판이 조금 늦게 도착한 모양이다.

***

줄지어 들어오는 차량 행렬은 나와 유재흥 사단장 앞에서 멈춰섰다.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건, 워커 중장이었다.

“이 좋은 날에 표정들이 왜 그런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워커 중장의 뒤를 이어 열댓 명이 넘는 외신 종군기자가 차에서 내렸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신나게 흔들며 윙크를 해왔다.

UP 통신의 잭 제임스 기자였다.

“자! 우선 훈장 수여식부터 빠르게 해보자고. 그에 앞서 7사단장.”

“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재흥 사단장이 손을 번쩍 들며 워커 중장 앞으로 다가섰다.

자연스럽게 타고 있던 말 고삐를 이끌어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보였다.

기자 몇몇이 그런 그를 찍기 위해 천천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어, 나올 필요는 없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예?”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할 말이 있다면 시간 관계상 수여식을 마친 뒤에 하도록 하게.”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옆에 있는 말보다 주둥이가 길어진 유재흥 사단장이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재밌는 장면이라는 듯, 일부 기자들이 돌아선 그의 처진 어깨를 찍어댔다.

“이강산 대령. 앞으로 나오게.”

묵묵히 걸어가 워커 중장과 마주 서자, 모든 카메라에서 셔터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주인공이 나라는 걸 알려주듯.

“쉽게 받을 수 있는 훈장이 아닌지라 수여 장소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네만, 여기도 그리 나쁜 것 같진 않군.”

만수대 한복판.

찢겨 떨어진 인공기 위로 태극기가 펄럭거렸다.

연대원들의 환호성과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음이 어우러져 그 무엇보다 훌륭한 배경음이 만들어졌다.

“이강산 대령은 용맹 무쌍한 용기와 뛰어난 작전계획 수립을 바탕으로 서울 탈환, 평양 탈환 작전의 핵심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냈기에 미 정부를 대신해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한다. 맥아더 사령관께서 직접 수여를 원하셨네만, 일정 관계상 부득이 내가 오게 되었네. 나 역시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네.”

워커 중장과 악수를 끝낸 뒤, 그가 직접 훈장을 달아줬다.

“아, 청천강 방어선에 도착하면 특공연대를 여단급으로 편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걸세. 자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들어주라는 지시를 받았어. 나도 꽤 오래 군복을 입었지만, 자네처럼 양국에 무한한 신임받는 군인은 처음 보는군.”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연대를 여단으로 규모를 키우라는 명령은 매우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청천강 이북지역에서의 작전은 국군이 전담하게 될 텐데, 연대 규모로는 중공군을 상대하기에 화력 면이나 병력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지금도 최정예 소리를 듣는 특공연대지만, 앞으로 더 강력하고 단단해질 여지는 충분했다.

“수여식은 끝났으니 기자들에게 간단한 인터뷰라도 해주게. 다들 자네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예. 알겠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파묻히기 전, 해야 할 있다.

이 기쁘고 즐거운 자리에 혼자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유재흥 사단장에게 다가갔다.

“자기 숟가락은 자기 밥그릇에만 올려야 하는 법입니다. 그깟 낙서 몇 개와 꼼수로 빼앗아질 밥그릇이라면, 그건 빼앗을 가치조차 없는 쉰 밥이라는 걸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답을 하기도 전에 뒤를 돌아섰다.

저급한 농단에 장단 맞춰줄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으니까.

“UP 통신의 잭 제임스 기자입니다. 한국군 최초로 미 정부가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하셨는데, 기자단을 대표해서 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잭 제임스 기자의 행동은 남들은 구면이라고 생각조차 못 할 만큼 천연덕스러웠다.

남들이 깔아준 멍석은 언제나 쑥스럽고, 부끄럽기 마련이겠지?

조심스럽게 첫마디를 떼어냈다.

“먼저, 국군을 대표해 훈장을 수여 받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흔해 빠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평양에서 이 훈장을 받는 것은 제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모든 군인이 훈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나, 그들을 대표하여 수훈하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들판엔 아무것도 남을 것 같지 않지만, 곧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 잡고 이내 꽃이 핍니다. 우리는 반드시 지금 겪고 있는 태풍을 견뎌내고, 새로운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다된 밥상에 숟가락을 들이미는 건, 어쩌면 유재흥 사단장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각 분야에서 지위고하를 이용해 숟가락을 얹어 밥을 뺏어 먹었던 개새끼들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어렵게 피워낸 꽃이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선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한 뿌리와, 단단한 줄기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강한 뿌리와 단단한 줄기를 가지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음해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생각 같아선 유재흥이 두 번 다시 고개를 못 쳐들게 밟아주고 싶었으나, 외신 기자 앞에서 말하기엔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천강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내부의 적은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자라나는 암세포와 같다.

중공군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내부의 적이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고 이미 생겼다면 가차 없이 도려내야 한다.

무엇하나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 어떤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카메라 셔터음만이 울리고 있었다.

“AP 통신 맥 매니 기자입니다. 한국은 이미 38선 이남의 영토를 모두 회복했는데, 앞으로 전쟁이 적당한 선에서 끝날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가끔 한없이 엉뚱하다.

38선?

“38선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략한 그 순간부터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북위 38도선, 그깟 게 뭐라고.

대답을 마친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수대에 게양된 태극기가 쉼 없이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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