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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68화 (68/149)

68화. 평양 형무소

국군이 수복한 평양은 전쟁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건물 곳곳에 총탄 자국이 듬성듬성 보이긴 했지만, 포격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거나 건물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진 않았으니까.

포격에 특별히 신경을 써달라 부탁한 덕에, 북한군이 전의를 상실하고 빠르게 평양을 버리고 후퇴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대장님. 형무소에 일이 좀 생겨서··· 한번 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특공연대 2대대가 맡은 평양 형무소는 꽤 규모가 큰 편에 속했다.

문기준 중령이 말한 일이라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가지.”

올라탄 차량 뒤로 기자 행렬이 따랐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종군기자들은 평양 곳곳을 누비며 보도에 열을 올렸다.

통제구역이 아닌 곳에선, 오로지 내 뒤만을 졸졸 따라다녔다.

미 정부가 수여한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나를 향한 기자들의 관심은 화장실을 들어가는 순간에도 꺼지지 않을 기세였다.

“형무소는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니다 보니···”

“아니, 괜찮네.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저들의 역할 아니겠나. 막지 말고 지켜야 할 사항들만 미리 기자들에게 전달해.”

“알겠습니다.”

문기준 중령이 기자들이 탄 차를 통제하고 있던 병력에 길을 터주라며 손짓하자, 기자들 얼굴에 화색이 돋아났다.

차에 올라타 20분쯤 달렸을까?

200m 앞, 형무소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제기랄. 만만치 않겠군.’

코를 찌르는 익숙한 악취가 느껴진 지는 꽤 됐지만, 악취의 근원지와 가까워질수록 코가 마비되는 듯했다.

“정말 기자들을 들여도 되겠습니까? 저 역시 지금까지 많은 광경을 봐왔지만 아주 처참합니다.”

비위가 강한 문기준 중령의 우려와 이 정도의 악취라면, 형무소 내부는 지금껏 봐왔던 어떤 광경보다 처참할 것이 분명했다.

“미리 단단히 경고만 해둬. 들어가지.”

“예. 알겠습니다.”

문기준 중령이 통역장교와 함께 뒤로 가 기자들에게 몇 마디 경고를 전달했다.

경고가 끝난 뒤, 내 뒤를 따라 기자들이 우르르 정문으로 들어섰다.

-우웩.

-욱. 우욱··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기자 2명이 구토를 하며 목을 부여잡았다.

그들도 이미 몇 차례 경고에 정신을 단단히 무장했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형무소의 광경은, 그런 정신 무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자들이 왔던 길을 그대로 돌려보냈다.

“생존자들에 대한 신원확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만, 워낙에 수가 많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지옥도.

현세에 지옥이 있다면 이런 광경일 것이다.

지옥도 한가운데 족히 천 명은 넘어 보이는 생존자가 손과 발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묶인 상태 그대로 국군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억울하게 북한군에게 잡혀 온 민간인과 반공포로가 대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형무소에 수감 되어 있던 범죄자와 불순세력 또한 섞여 있었기에 정확한 신원확인이 끝날 때까진 통제가 불가피했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하도록 해.”

북한군이 평양에서 퇴각하기 전 벌인 짓은 지옥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만큼 잔인하고 참혹했다.

구덩이와 우물마다 시신이 넘쳐 흘렀다.

뒤로 꺾인 손이 철사에 묶인 채 처형당한 시신, 목이 칼에 베인 시신도 흔히 보였다.

그중엔 손을 묶을 시간도 없었는지, 총상뿐 아니라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은 시신까지.

명백한 학살의 흔적이자, 비극이었다.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학살당한 사람이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참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거기에 군인들은 이 악취와 참혹한 광경을 참아내며 사람들을 통제해야 한다니··· 아, 취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걸어온 사람은 UP 통신의 잭 제임스 기자였다.

그 역시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참고 있는지,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기자님께서 이 땅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지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공산 세력이 어떤 짓을 벌이고 있고 벌였는지, 사람들이 쉽게 잊지 않도록 말입니다.”

“저 역시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진실 된 보도를 하겠습니다.”

잭 제임스 기자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기자들을 통제하지 않은 건 전쟁의 잔혹함을 알리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저는 이만 제게 주어진 일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잭 제임스 기자님.”

이것 또한 하나의 작전이자, 전투였으니까.

***

특공연대 지휘소.

평양을 점령했음에도 군화를 벗고 편히 쉴 순 없었다.

평양과 원산을 연결하고, 청천강 방어선이 굳건해진 뒤에도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었으니까.

“2대대장. 내가 왜 기자들을 통제하지 않았는지 궁금한가?”

사람을 궁금하게 해놓고 답을 알려주지 않는 것, 말을 하다 마는 건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 중 으뜸이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으니, 답을 알려줄 차례였다.

“빨갱이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잔인한지 세상에 알리려 하신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다소 1차원적인 생각만 하던 문기준 중령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연대가 여단으로 바뀌게 되면, 1대대장과 2대대장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지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 넓은 시야와 사고가 필요하다.

함께 호흡을 맞춰온 두 대대장과는 가능한 오랫동안 함께할 생각이니까.

“맞아. 그간 시야가 넓어졌군.”

평양과 원산을 중심으로 청천강 방어선에서 충분히 전열을 다듬고 북진하겠다는 계획엔 몇 가지 걸림돌이 존재한다.

걸림돌을 제거하려면, 우선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쟁에 대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보낸 이유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빠른 지원을 끌어낸 것은 아니다.

미국 내 뜨거웠던 여론의 관심.

초장부터 미국이 발을 깊게 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극도로 자극적이고 잔인한 전쟁도 언젠간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전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진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잊어선 안 돼.”

전선이 고착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면, 대한민국은 사람들 관심 밖으로 점차 사라질지 모른다.

공산주의를 박멸하자는 미국 내 여론이 누그러들면 그 틈을 타 전쟁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여론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미국과 참전국들은 어떻게든 이 전쟁에서 발을 빼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아직 우리의 힘만으로는 중공군을 수월하게 격파해낼 수 없으니까.

치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세운 계획이 차곡차곡 진행될 때까지는 발을 빼게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미군이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하시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 겁니까?”

순간 귀를 의심했다.

1대대장과 2대대장을 번갈아 훑었다.

정녕, 이 대답이 문기준 중령 입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마치 옹알이하던 아이가 엉성한 발음이나마 처음으로 엄마나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는 감동적인 순간을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맞네. 아직 순전히 우리 힘만으로 전쟁을 지속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지. 부족한 점에 대한 도움을 받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연대장님.”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김상옥 중령이 입을 열었다.

“국군과 연합군이 전열을 가다듬으며 청천강 방어선을 견고히 한다는 건, 반대로 놈들에게도 정비할 시간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김상옥 중령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군이 방어선을 견고히 하는 만큼, 북한군 잔당과 중공군에게도 부대를 정비할 틈을 주게 된다.

시간이란 건 그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니까.

“물론 자네 말도 맞아. 그런데 말이야.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분명 다른 게 있지.”

똑같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서 같은 결과를 얻어내는 건 아니다.

누가 그 시간을 쓰느냐,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다른 점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문기준 중령이 낙담하는 표정을 지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또 정답을 말해 칭찬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쪽엔 자네들과 내가 없지 않은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가락 끝이 살짝 오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 완벽한 시간을 통해 나온 작전계획을 완벽히 수행할 믿음직스러운 지휘관들이 있고, 혹여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믿고 기다려줄 든든한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돼지우리에서 탈출한 돼지?

더럽게 안 씻는 중공의 마오쩌둥?

소련의 콧수염 난 아저씨?

전혀 두렵지 않았다.

덤비면 뒤지는 거다.

그 누구든 간에.

“연대장님··· 연대장님 곁에서 뼈를 묻겠습니다.”

자식들, 감동하긴.

문기준 중령이 뼈를 묻겠다는 다짐을 해왔다.

병력을 지휘할 때 매사에 단호하고 냉철함이 주는 강한 이미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강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부드러움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가끔은.

“그리고 우리 특공연대는 내일 오전 07시. 남진하는 미 10군단과 연결하기 위해 선두에서 순천으로 진격한다. 병력에 충분한 휴식을 부여하고, 담배나 통조림을 넉넉히 보급하도록. 단, 절대 술은 금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아, 한 가지 더.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막간을 이용해 기생집에 발 들이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평양은 팔도를 통틀어 기생이 가장 유명한 곳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그새를 못 참고 미군과 타 부대 국군 지휘관 몇몇이 근처 기생집에 들어갔다는 보고를 이미 받은 뒤였다.

“기···기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적잖게 당황하면서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정곡을 찔린 모양인데.

“혹여 유혹에 못 이겨 가게 되더라도 절대 내 귀에 들리는 일은 없도록 하게. 물론, 나는 자네들을 믿지만. 나가봐.”

마치 부모가 자식을 믿는다고 말하듯, 인자하고 자상하게 속삭여줬다.

“걱정하시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가보겠습니다.”

안가겠다는 건지, 안 걸리겠다는 건지 모를 대답을 남긴 채 두 대대장이 지휘소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나도 좀 쉬어볼까?

아주 오랜만에 한쪽 군화 끈을 풀었다.

오른쪽 군화를 벗으려는 찰나.

“연대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제기랄.

통신장교의 목소리가 산통을 깼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꽤 다급해 보였다.

“들어와.”

“쉬시는 와중에 방해해 죄송합니다. 급한 사안인지라··· 도쿄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에서 급히 연락을 해왔습니다.”

통신장교가 가져온 문서를 건네받아 읽었다.

맥아더 사령관이 나에 대한 그리움을 참을 수 없어, 팬레터라도 보내온 걸까?

“음··· 대대장들을 다시 막사로 호출하게.”

팬레터를 읽어보니,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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