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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70화 (70/149)

70화. 강건

안도, 기쁨, 반가움.

문 앞에 당당히 선 김동석 중위를 보자 샘솟는 감정들이었다.

또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기대였다.

수십 년에 걸쳐 심어놓은 첩자들과 최첨단 장비들로 정보를 캐내는 미 정보국과 직접 발로 뛴 김동석 중위.

둘 중 누가 더 양질의 정보를 얻어왔는지 말이다.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네.”

“감사합니다.”

김동석 중위의 어깨를 토닥이듯 두들겼다.

당장에라도 작전 중 특별한 어려움 없이 진행됐는지, 다치거나 전사한 대원들은 없는지, 그간 고생했으니 잠시 쉬라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남은 수다는 연대 지휘소에 가서 해야 할 것 같다.

“특공연대 본대가 평양에 진입하기 전, 평양을 빠져나가려는 당 고위급 간부나 유명인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특공대를 편성해 침투시켰습니다. 비공식이지만 국군과 연합군을 통틀어 평양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건 김동석 중위가 이끄는 특공대일 겁니다.”

간단한 소개만으로도 모두의 눈에 기대와 궁금함이 생겨났다.

미리 보고받은 바 없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눈치 빠른 김동석 중위가 보고를 시작했다.

“특공대 제1의 목표는 김일성 생포였으나,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김일성을 생포했다면 더 없이 재미난 장관이 연출됐겠지만, 전혀 아쉬워할 것이 없었다.

뭔가 소득이 있었기에 김동석 중위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일 테니까.

“그 대신, 군 고위급 간부로 추정되는 인물을 생포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 입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으나, 북한군 포로들을 심문해 얻어낸 정보가 있습니다.”

부대를 이탈해 도망치다 포로가 된 장교나 군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자신의 군복을 그대로 입은 채 붙잡혀 포로가 되기도 하지만, 계급이 낮은 병사 군복으로 갈아입거나 여의치 않다면 옷깃에 붙은 계급장을 떼어 버리는 경우도 빈번했다.

포로가 됐을 땐 머릿속에 든 정보가 많을수록 독이 되는 법이니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북한 총참모장 강건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강건?

정말 북한의 총참모장 강건이라면, 대어 그 자체다.

김일성, 김책과 같은 빨치산 출신이자 김일성의 최측근 중 하나로, 어린 나이에 총참모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원래였다면 경상북도 안동에서 지뢰 폭발 사고를 당해 폭사하지만, 지금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되어 있었다.

나뭇가지로 만든 낚싯대로 아주 커다란 대어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 총참모장을 생포했다니! 지금 어디 있나.”

강건은 맥아더 사령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쓸모가 아주 많다.

각종 선전 공작에 이용할 수 있음은 물론, 그를 회유해 북한군의 정확한 실태와 한반도에 들어온 중공군의 규모까지.

입만 연다면 많은 걸 알아낼 수 있다.

“혹시나 해서 데려왔습니다. 분대원들과 함께 차에 있을 겁니다.”

“데려오게.”

“예. 알겠습니다.”

이제 남은 건 물고기 주둥이를 열어보는 것뿐이었다.

주둥이를 안 열면···

어쩔 수 있나?

배라도 갈라봐야지.

***

김동석 중위가 차량에 있는 강건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데려올 동안, 회의실에선 각기 다른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이 대령의 특공대가 생포한 포로가 정말 북한의 총참모장이라 하더라도, 그가 쉽게 입을 열겠습니까?”

얼굴을 보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게이 소장.

“입을 연다고 해도, 그 정보들이 진실인지 확인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 워커 중장.

그럼 어째.

다시 반품이라도 할까?

물고기 잡아다 줬더니 비늘치고 내장 빼서 요리까지 해달라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북한 강건 검색해줘.’

여기 있는 사람 중 강건의 얼굴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전쟁 전에 주요 지휘관들끼리 사진을 예쁘게 찍어 주고받진 않으니까.

[본명 : 강신태 출생 : 1918년 6월 23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상주 정당 : 조선로동당]

‘곱슬머리에 짙은 눈썹, 귀는 조금 뾰족하고···’

혹시 모를 헛수고를 방지하기 위해 나라도 먼저 얼굴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물론 나노봇이 보여주는 사진은 내 눈에만 보이기에 맥아더와 워커 중장, 게이 소장에게 확신을 얻을 방법이 될 순 없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가장 좋은 건?

스스로 강건이라 밝히고 제발 믿어달라며 부르짖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뿐.

‘어디 보자···’

스스로 부르짖게 할 좋은 도구를 찾고 있었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회의실 문이 열리고, 김동석 중위가 두 팔이 뒤로 묶인 포로 한 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서 이렇게 지린내가···”

이 양반들 콧구멍이 커서 그런가,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

포로의 상태는 냄새가 조금 나는 것만 빼면, 폭행이나 학대를 당한 흔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곱슬머리에 짙은 눈썹, 뾰족한 귀. 진짜 강건이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잡아 내렸다.

“신원을 밝혀라.”

그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심문하는 것에 가장 적임자는 통역을 거칠 필요가 없는 나였다.

“오호라. 여기서 미 제국주의자 장군들이 모여 작당 모의를 하고 있던 모양이구나. 신원? 내래 인민 전사일 뿐이야. 캭- 퉤. 이거나 먹으라. 동무.”

강건이 쏘아 뱉은 가래침이 군복 상의에 떨어졌다.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 같다.

“이 새끼가 어디라고···”

김동석 중위의 커다란 손바닥이 강건의 입을 막아버렸다.

“괜찮아. 내버려 두게.”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게 될 테니까.

“동무, 동무는 억양과 사투리가 그리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하니 남쪽 태생인가 보군. 안 그런가?”

강건은 혁명 1세대 중에서는 드문 남쪽 출생이다.

북한 억양과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 있었을 뿐, 심하지 않았다.

“내래 무슨 말을 쓰든 간에, 얍삽한 앞잡이처럼 미국 말을 쓰는 네놈보단 낫지 않겠나?”

맥아더 사령관과 휘하 장군들은 멀찍이 앉아 통역을 통해 들으며 심문하는 과정을 관람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말 안 듣는 인간에게도 매가 약이 되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인간은 패봐야 손만 아플 뿐이다.

피 칠갑을 할 때까지 고문을 당하더라도, 절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강신태.”

그의 본명을 나지막하게 읊조리자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자네를 보호해줄 수 있는 건 여기가 끝이야. 여기서 입을 열지 않으면 그 뒤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어. 도망치다 포로가 된 주제에 자존심 세울 것도 없고. 피차 피곤할 필요 없잖아?”

국군과 미군. 어디로 끌려가도 이곳을 벗어나면, 입을 열고 말고를 떠나 죽기 전까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은 뻔했다.

포로에 대한 대우보다 중요한 정보들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테니까.

“앞잡이 노릇을 하다 보니 조선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게로구나. 내래 강신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 동무 말대로 괜한 시간 낭비 말고 죽이라.”

강신태가 눈깔을 부릅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욕설이나 비난은 들어온 즉시 귀에서 흘려보냈다.

“내가 말이야. 좀 치사한 것 같아서 참으려 했는데···”

강신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당신 강성산이라고 알지?”

강성산은 정무원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하는 북한의 고위급 정치인이다.

“누구냐면 네 아들 말이야.”

강성산이라는 말을 들은 강신태의 얼굴 근육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붙잡고 있던 정신 줄이 무언가에 의해 끊긴 것처럼.

“너··· 대체 누구야. 누구길래···”

‘물었다.’

강신태가 그물 안에서 바늘에 걸린 미끼를 물었다.

사실 강성산이 강신태의 아들이라는 건 극히 일부에서 떠돌던 전설 같은 소문이나 다름없었다.

출생기록에 따르면 강신태의 출생일은 1918년, 강성산의 출생일은 1931년.

출생기록으로만 따지자면 13살 나이에 강성산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말이 되니까.

강신태가 조숙증을 가지고 태어나 일찍 씨를 뿌릴 수 있었는지, 출생기록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가 미끼를 물었다는 사실뿐.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혹시나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다면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알면 다쳐.

“자, 내가 궁금한 것 중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다시 하지. 지금 이북에 넘어와 있는 중공군의 전력이 어느 정도지?”

호기롭게 가래침을 뱉어대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죽음까지 불사하겠다던 강신태가 정신 줄이 끊겨 보일 정도라니.

대체 죽음보다 숨기고 싶은 강성산과 관련된 치부가 무엇인지는, 혹시나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 전에··· 강성산 동무가 여기에 있다는 비밀을 지켜줄 수 있나?”

갑자기?

강성산이 여기 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강신태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상상이 사실인 듯 믿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뭔지 모를 그의 풍부한 상상의 나래를 지켜주기로 했다.

“국경을 넘어 청천강 이북 산맥에 대기하고 있는 중공군은 2개 병단, 9개 군단으로 편제된 30개 사단이다.”

“30개 사단!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통역 장교를 통해 강신태의 말을 전해 들은 맥아더, 워커, 게이 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공군의 편제는 1개 사단이 대략 1만 명 정도로 연합군의 편제보다는 적은 숫자였지만, 30개 사단이 30만 명에 육박하는 대군임은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 10군단에 연락해 방어태세를 최대한 빨리 갖출 것을 지시하게.”

맥아더 사령관이 서둘러 탁자에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이 대령, 어서 이쪽으로 오게. 자네는 지금 30개 사단이 인해전술로 몰려온다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가?”

게이 소장이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모두 강신태 입에서 나온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잊은 모양이다.

물론 사실이겠지만.

중공군 30개 사단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현재 미 8군과 미 10군과 국군을 포함해 북진해 있는 연합군의 병력 또한 20만에 육박한다.

인해전술?

인해전술은 말 그대로 사람의 파도다.

죽이고 죽여도 그 시체를 밟고 끝없이 몰려오는 그런 압도적 병력의 차이.

북한 정규군이 거의 전투력을 상실한 지금, 중공군과 연합군의 병력 비율은 채 2:1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연합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격속도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탓에 보급선이 길어지고 부대 간격이 벌어진 것.

연합군이 야간전투와 산악전에 약했던 것.

이런 결정적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지, 이 약점들을 해결한다면?

“물론 큰일입니다만.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계획대로 된다면, 청천강은 중공군 도살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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