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71화 (71/149)

71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가장 훌륭한 군사작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중국 전국시대에 지어진 손자병법에서 유래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과거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공세를 당했을 땐 해결책을 몰라 남쪽으로 후퇴하는 방법뿐이었지만, 이젠 어쩌지?

연합군의 전력과 중공군의 전력.

중공군의 작전계획까지 전부 다 아는데.

“가장 먼저 청천강과 원산 방어선을 점 방어가 아닌, 선 방어선으로 촘촘히 구축해야 합니다. 주요 거점마다 병력을 배치한 점 형식의 방어선은 우회해 들어오는 중공군 병력에 의해 포위 섬멸당하기가 쉽습니다.”

중공군 부대는 대대급 이상에만 무전기가 보급되었을 정도로 병참과 보급이 매우 형편없었다.

당연히 차량, 기갑부대는 물론 지원을 약속했던 소련의 전투기 지원마저도 미비했다.

그럼 차량, 기갑부대는 물론 완벽한 제공장악까지 완벽했던 연합군이 초기 중공군 공세에 왜 밀렸을까.

멍청해서?

방심해서?

물론 지금 내 앞에서 푸르고 커다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맥아더 사령관께서 중공군을 군대 같지도 않은 군대라며 무시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사용하는 전술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산이 많은 지형이라는 것은 언제 전쟁이 터지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요점이다.

연합군이 자랑하는 차량과 기갑부대를 이용한 기동전 전술은 평지와 개활지에서 엄청난 진격속도를 자랑했지만, 수차례 경험했듯 열악한 도로와 산악 지형에선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반면, 가진 것이라고는 두 다리뿐인 중공군에게 산악 지형은 오히려 미군의 항공 폭격을 피할 수 있는 좋은 가림막이었다.

그 가림막에 숨어 방어 거점을 우회해 포위한 뒤, 야간기습을 감행하는 것이 중공군의 주된 전략.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미군 장성들이 숨소리마저 죽인 채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잘 이해하고 있는지,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계속하게. 집중해서 잘 듣고 있네.”

맥아더 사령관이 꼬았던 오른쪽 다리를 내린 뒤, 다시 왼쪽 다리를 올려 꼬았다.

“적에게 기갑전력이 없다는 것은, 철조망이 그 어떤 때보다 좋은 효과를 낼 겁니다. 1차 철조망을 화력 지원선에, 2차 철조망은 기관총과 소총 사거리에 촘촘히 배치한다면, 극대화된 효율을 얻을 것입니다.”

“잠깐.”

귀엽게 오른손을 살포시 드는 걸 보니, 워커 중장이 질문이 있는 모양이다.

“자네 말대로 기갑전력이 없는 상대에게 철조망은 지옥의 가시덤불과도 같지. 하지만 자네 계획에는 한가지 전제되어야만 하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네.”

지옥의 가시덤불, 표현 좋은데?

“철조망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지나가려는 모든 것들을 잡아 뜯네만, 이 대령 자네 말대로라면 중공군이 멍청하게 철조망과 장애물로 가득한 아군 방어선에 총공세를 펼쳐야 말이 되지 않는가?”

“맞습니다.”

“중공군이 그런 무리한 공세를 펼칠 것이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역시, 짬밥은 그냥 먹는 게 아니다.

워커 중장 말대로 가시덤불에 붙잡혀 지옥으로 직행하는 중공군들을 구경하기 위해선, 그들이 가시덤불을 넘어야 한다.

“꼭, 그들이 공세를 펼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지 않는가.”

“생각이 있는 중공군 지휘관이라면 그런 무리한 총공세를 명령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이 공세를 감행해 올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닌, 적이 공세를 감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불가능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고도로 훈련된 소수정예 특수부대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대규모 병력에 이런 엄청난 정신력을 강요하는 작전은 없느니만 못하다.

“그런 묘수가 존재하긴 하는가?”

“물론입니다. 그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이렇게 자신 있게 입을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알고 있다.

아주 과학적이면서도,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 방법은 곧 중공군을 홀릴 끌어들임의 미학이 될 것이다.

***

적유령 산맥 땅굴 어딘가.

달빛도 들지 않는 음습한 기운이 도는 땅굴 내부엔 촛불 하나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임시 탁자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은 넷.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와 부사령관 덩화, 홍쉐즈, 한센추였다.

“사령관 동지, 13병단과 9병단. 전 병력 집결을 마쳤습니다.”

펑더화이가 이끄는 30만 규모의 중공군은 적유령과 낭림산맥 곳곳에 모습을 감춘 채 숨어있었다.

30만 명이 밀집해 있음에도, 작은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전 부대의 이동은 황혼부터 새벽 4시 전까지만 허가한다. 놈들이 청천강을 넘는 순간 위군(한국군) 부대부터 포위 섬멸한다.”

“예. 알겠습니다.”

마오쩌둥이 지시한 작전 개시 선은 청천강.

연합군이 청천강에 발을 들이는 순간, 30만 대군이 비교적 약하다고 판단되는 한국군 부대만을 골라 포위 섬멸할 계획이었다.

“다시 한번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전투배치를 신경 쓰라 명하도록.”

중공군의 기본적 전투배치는 3선 배치였다.

1선엔 수류탄과 같은 투척 무기를 들고 적에게 돌진하는 척탄병들, 2선엔 연사가 가능한 기관총을 들고 광범위한 지역에 총알을 뿌려대는 돌격조, 3선엔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주력 부대.

밥과 반찬을 따로 먹어도 위에선 모두 섞이듯 3선 배치도 결국 총공세를 위해선 모두 섞였지만,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겪으며 체득한 전투배치였다.

“위군은 그렇다 치고, 미군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말해보게.”

국군이 중공군을 오랑캐라며 깔봤듯, 중공군 또한 국군을 위군(괴뢰군)이라 칭하며 깔보고 있었다.

“미국놈들의 화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방어선 정면에 많은 병력을 투입하기에 앞서 놈들을 툭툭 건드려 약점을 파악한 후,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목을 졸라 죽여야 합니다.”

부사령관 덩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험한 단어들을 조심스레 말하는 것으로 보아 펑더화이를 매우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아.”

덩화의 말에 펑더화이가 호기롭게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미군은 지노호(紙老虎, 종이호랑이)가 아닌 진짜 호랑이다. 다만, 호랑이인 줄 아는 호랑이는 무섭지 않은 법이지.”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펑더화이는 매우 노련한 지휘관이었다.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미군의 약점을 이미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둔 터였다.

“지금까지 놈들의 전투방식을 보면 분명한 약점이 있다는 건 자네들도 모두 파악하고 있을걸세.”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말에 나머지 3명의 부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는 미군은 행군을 매우 꺼린다는 점, 둘째는 야간에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점, 마지막 셋째는 공중 지원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지. 우리는 이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한다.”

어차피 부대를 이동시킬만한 차량은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에 두 다리로 걸어야 했다.

주간엔 정찰기와 폭격을 피해야 했기에 야음을 틈타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화력에서 압도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정면충돌은 피했다.

최신을 원시로, 정공 대신 변칙으로,

펑더화이는 중공군의 약점을 오히려 미군의 허를 찌를 비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만약 놈들이 청천강을 넘지 않는다면··· 다시 국경을 넘어 돌아갑니까?”

폭탄도 결국 도화선에 불이 붙어야 터지는 것이다.

전면 개입 선을 청천강으로 정해놓은 이상, 적이 청천강을 넘어야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다.

펑더화이의 작전계획을 듣던 한센추가 궁금해하며 물어왔다.

“자네는 아직 내 성격을 모르는 것 같군.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눈앞에 절세미인이 알몸으로 자네를 홀린다면··· 그에 침 흘리지 않을 대장부가 있겠는가?”

이야기만으로도 침샘에서 침이 돋는지, 한센추가 입안에 가득 찬 침을 가득 삼켜내는 소리가 땅굴에 울렸다.

“자네들 각자 겪어온 풍부한 경험을 믿어 의심치 말고 발휘해라. 다만, 명령에는 한 치의 혀 놀림 없이 무조건 복종해. 거역할 시 그 누구라도 용서치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에서 세 명의 부사령관이 가진 비장함이 느껴졌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교훈을 잊지 말고 다들 돌아가 쉬게. 범 사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펑더화이는 생각했다.

미군은 자신들이 적유령 산맥과 낭림산맥에 숨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아가 한반도 전역을 집어삼키는 기분 좋은 상상을 떠올렸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가슴에 새긴 것이 본인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채.

***

만수대. 연합군 임시 작전 지휘소(CP)

“가히 훌륭한 작전계획이네. 자네 말대로 흘러간다면 세계 전쟁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걸세.”

작전계획 구성을 끝낸 뒤, 지휘소에서 나와 맥아더 사령관을 배웅하는 중이었다.

“이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 그것뿐입니다.”

맥아더를 구슬리는 건 이미 경지에 올라있었다.

곧 표정, 말투, 억양만으로도 그의 기분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만 가보겠네. 자네 혹시··· 음. 아닐세.”

곧이 아니라 지금도 가능한 모양이다.

맥아더 사령관이 하려던 말을 끊고 뜸을 들였다.

“사령관님, 뭔가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편히 하셔도 됩니다. 사령관님과 제가 전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할 사이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평소에 그어 두었던 선을 조금 넘었음에도, 오히려 맥아더 얼굴엔 화색이 돋았다.

그래, 우리 사이에.

까짓거 사랑 고백만 아니라면 웬만한 건 들어줄 테니까.

“사실 급히 평양에 왔던 이유는 중공군 개입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함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네.”

모든 눈치를 동원해 재빨리 머리를 굴린 결과, 다른 이유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100%였다.

“다른 이유라 하심은···”

“나의 다음 일정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것이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부탁을 좀 해도 되겠나?”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조용한 곳에서 정신교육을 좀 하는 건데.

트루먼 대통령을 만날 때 제발 늦지도 말고, 옷도 정복을 제대로 갖춰 입으라고.

안 그래도 트루먼과 맥아더 두 양반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다.

자질구레한 실수로 내 팬클럽 회장이 사회적 직위와 권한을 잃는 건 절대 막아야 할 일이었다.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사령관님.”

트루먼 대통령에게 줄 선물을 대신 좀 골라달라거나, 편지를 대신 좀 써달라거나 하는 부탁은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이 정도 부탁이면 이렇게 뜸 들이지 않았으려나?

“그럼 편하게 말하겠네. 자네도 그 자리에 같이 갈 수 있겠는가?”

“예?”

예상에 없던 초대에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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