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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72화 (72/149)

72화. 웨이크섬(1)

어쩌면 현재 세계관 최강의 남자를 만나는 자리에 예상치 못한 초대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시간에 청천강에 도착해 철조망 한 겹이라도 더 깔아야 할까?

위대한 미합중국 대통령 앞에서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이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으니 피한다?

둘 다 답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차라리 옳다구나 만세를 부르는 게 답에 가깝다고 본다.

맥아더가 왜 나와 동행을 원하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의 눈빛이 이미 말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세상과의 연결을 위해 메시아를 내려보냈듯, 맥아더는 나를 자신과 트루먼의 사이를 이어줄 메시아로 택한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을 뵙는 자리에 제가 동행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나···사령관님께서 이리 부탁을 하시니 제가 어찌 동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 사이좋은 형님 아우 사이일수록 필요할 때 서로 부탁도 좀 하고, 가끔 듣기 좋은 말로 알랑방귀도 좀 뀌고 그런 거 아니겠나?

‘트루먼 대통령이라면 맏형으로 불러도 손색없지. 맏형 얼굴 좀 보겠다는데.’

실상 맥아더 사령관이 한반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영향력은 모두 트루먼 대통령의 승낙 아래 나오는 것이다.

현재 전선 상황은 개전초기처럼 중과부적인 적에 맞서야 하거나, 한시가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특공연대 또한,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 하더라도 김상옥 중령과 문기준 중령이 부대를 맡아 무사히 청천강까지 병력을 이동시킬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나 또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기에 그리 나쁜 상황이나 환경은 아니었다.

“정말인가? 귀한 시간 내어주어 고맙네. 시간은 이번 주말, 장소는 웨이크섬. 시간에 맞추려면 내일 곧장 출발해야 할 것이네.”

태평양 한가운데, 산호초로 이루어진 미국령 외딴 섬.

웨이크섬은 연합군 최고 사령부 도쿄를 기준으로 3,058km.

워싱턴으로부터 7,564km 떨어진 곳으로 도쿄에서 조금 더 가까울 뿐, 절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웨이크섬으로 회동 장소를 정한 건 트루먼 대통령이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라 맥아더 사령관이 작전지를 너무 멀리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까?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사령관님.”

과거에는 중공군의 개입을 우려해 회담이 열렸다지만, 지금 트루먼 대통령은 이미 중공군의 개입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 속내를 알아차리기 위한 이유만으로도, 수천 km를 날아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

다음 날 태평양 상공.

맥아더 사령관과 내가 탄 C-54 수송기가 항공유를 한가득 채워 넣은 채 평양 비행장을 이륙했다.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사령관님. 질문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작은 형과 이런 소소한 질의를 나누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이지. 앞으로 그런 질문 해도 되냐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되네. 말해 보게.”

작은 형, 최고.

“웨이크섬에서 회담이 이뤄진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 정보입니까?”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 한 발이 세계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왔는지는 말해 뭐해다.

하물며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인 지금, 트루먼 대통령이 태평양 상공을 날아오다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곧바로 핵 꿀밤이 날아갈까?

그런 극도의 위험성을 가진 채 웨이크섬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극비라··· 동네방네 떠들어대진 않겠지만, 극비라기엔 트루먼 대통령이 웨이크섬을 향해 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각국 정상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네. 어째서 모두가 알고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가?”

맥아더 사령관의 대답을 듣는 순간, 머리를 띵하게 하는 무언가 지나간 것만 같았다.

“역시, 실수하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각국에 알리는 것이 극비리에 움직이는 것보다 아주 극도로 미미한 확률이라도 없애는 방법으로 작용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일정을 미리 알려둔 이상, 도중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그 누가 포장한들 실수로 포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론 이 모든 건,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과 군사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히 맞췄네. 미국은 절대 고의적인 실수를 용서하지 않아.”

강한 국력과 군사력은, 모든 국가가 지향하는 이상향이다.

강함만으로도 누가 해올지 모를 어지간한 실수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짧은 사이에 또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전쟁을 겪을수록 대한민국이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생겨났다.

북한이나 중공 따위가 다신 넘보지 못할, 나아가 소련과 미국조차 절대 만만하게 보지 못할 나라로.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의식 또한 더욱더 또렷해져만 갔다.

***

웨이크섬 상공.

동그랗고 작은 수송기 창 사이로 에메랄드 빛 산호초가 비치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통령님께서도 곧 도착하실 겁니다.”

미리 도착해있던 선발대가 맥아더 사령관에게 경례를 건네 왔다.

아, 다행이다.

하마터면 과거의 실수를 답습할 뻔 했다.

초면에 지각은 최악이다.

약속상대가 미국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멋지십니다.”

맥아더는 즐겨 입던 필리핀 원수 복장 대신, 미 육군 정복을 차려입었다.

어두워도 벗지 않을 것 같던 선글라스와 버릇처럼 입에 물던 담배 파이프도 없었다.

수송기 안에서 미리 복장부터 점검한 결과물이었다.

“고맙네. 저기 오시는군.”

먼 상공에서 활주로에 다가오는 대형 수송기 한 대와, 수송기를 수호하는 F-80 전투기 편대가 양 쪽에 갈라져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뽐냈다.

수송기가 착륙바퀴를 내리며 활주로에 가까워졌다.

20M, 15M, 10M, 5M¨ 랜딩.

무엇하나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착륙이었다.

어쩌면 미 공군 중 가장 뛰어난 조종사가 조종하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비행기 출입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 건, 트루먼의 참모진이었다.

혹시 모를 위험이 있는지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훑어 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

맥아더 사령관의 경례와 공손함은 그 어디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심지어 맥아더 사령관은 70세, 트루먼 대통령은 66세였다.

트루먼 대통령이 중절모 챙에 손끝을 대며 맥아더의 경례를 받아줬다.

“고생이 많네. 사령관.”

트루먼 대통령은 중절모와 안경을 쓴 멋진 노신사였다.

사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신분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바꾸기엔 충분했다.

“대통령님. 이쪽은 서면으로 보고 드렸던 한국군 장교입니다. 지금 전쟁의 판도를 만든데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훌륭한 장교이기에 데려왔습니다.”

원래 수많은 팬클럽들은 자기 오빠들이 최고다.

전쟁에서 1등 공신을 가리는 게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만,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법.

“대통령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언가 벨 수 있을 정도로 날 선 각을 만들어 경례를 하자, 트루먼 대통령이 미소로 화답했다.

“오! 자네가 말로만 듣던 한국군 장교군. 이야기 많이 들었네. 맥아더 사령관이 누군가를 그리 칭찬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궁금했던 참이네.”

왜인지 모를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존심 강한 맥아더가 이런 말을 들은 이상 표정을 구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저 역시 누군가를 이리 칭찬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대통령님.”

아주 뿌듯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다.

트루먼 대통령의 가장 빠른 일정은 맥아더 사령관과의 회담이 아닌 한국에 대한 의지를 담은 성명문을 낭독하는 것이었다.

[통일, 독립, 민주적 한국 건설. UN군의 주된 임무는 침략을 물리치고 UN 헌장 아래 한반도의 국제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 입에서 나온 성명문이었다.

사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성명문에 나오는 말들은 근본적으로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진짜배기는 수면 아래에서 기본 안건들을 논하는 회담.

나는 그 엄청난 자리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복 받은 놈이다.

“자리에 앉지.”

자리에 참석한 모든 참모진들이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한가하게 웨이크섬을 둘러볼 여유 따위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성명문 낭독이 끝나자마자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 몇몇의 고위 참모진들이 참석한 회담자리가 마련됐다.

“사령관, 전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나?”

첫 주제부터 아주 화끈했다.

과거에는 중공군의 개입 사실을 몰랐기에, 당장 내일 모래라도 통일이 될 줄 알았다.

오죽하면 맥아더 사령관이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따듯하게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했었으니까.

맥아더 사령관에게 집중이 쏟아졌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북한군은 괴멸상태에 이르렀고, 현재 연합군은 청천강과 원산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만, 물자 보급 및 부대 재편, 중공군에 대한 파악을 마치는데 시간이 조금 소요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도저도 아닌 맥아더 사령관의 첫 대답은 트루먼 대통령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것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사령관. 그런 두루뭉술한 대답으로는 미국의 앞날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네. 자네 역시 알겠지만 나는 이 전쟁이 오래가는 것을 원하지 않네.”

누가 트루먼 대통령을 안경 쓴 샌님이라 말했지?

맥아더 사령관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본질을 꿰뚫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트루먼 대통령의 반응은 나로선 그리 달갑지 않았다.

미국이 한반도에 오래 묶여있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자네 이름이··· 이강산이라고 했나?”

트루먼 대통령의 시선이 나에게 옮겨지자 모두의 시선이 따라 옮겨졌다.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보게. 그렇게 훌륭하다는 장교 입에선 어떤 말이 나오는 지 궁금하군.”

내 생각?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기존에 가진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내 새살이 차오르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트루먼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반도의 상처가 곪지 않고, 새 살이 예쁘게 자리 잡아야만 한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트루먼 대통령의 의지를 바꿔놓아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모 아니면 도.

앞면 아니면 뒷면이다.

자, 간다.

“궁금한 것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선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만주에 핵을 떨어트릴 수 있으십니까?”

나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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