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73화 (73/149)

73화. 웨이크섬(2)

순간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참모진 모두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 마냥 그 자리에서 동작을 멈춘 채, 눈동자만 사방으로 굴려댔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아까가 얼음이었다면, 지금은 땡.

사방에서 흥분한 참모들의 말이 쏟아졌다.

“아니, 대통령님께 다짜고짜 그게 무슨 경우 없는···”

“맥아더 사령관. 분명 훌륭한 장교라고 하지 않았소! 어찌 대통령님께 그런 무례한 질문을 한단 말인가.”

드디어 참모진 뇌가 상황 판단을 끝마쳤는지, 회담장이 한순간에 시골 오일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무례는 개뿔이.’

무례?

당신들한텐 내가 무슨 무례를 저질렀을까나?

내가 질문을 던진 사람은 트루먼 대통령이다.

무례했는지 안 했는지는 응답자가 판단할 문제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이 대령 말에는 분명 다른 숨은 뜻이 있을 겁니다.”

당연하지.

독단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겠냐고 물은 것이지, 다짜고짜 지금 만주에 핵을 떨구자는 계획을 세워달라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맥아더 사령관은 당황하지 않고 참모진들을 달랬다.

자신만의 선지자를 절대 지키려는 아름다운 인류애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마침내 침묵에서 깨어난 트루먼 대통령은···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시작으로 광대, 눈, 눈썹을 씰룩이고 있었다.

이내 소리까지 내가며 웃었다.

“재밌군. 재밌어.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내 독단으로 핵을 쏠 수 있을 것 같은가?”

트루먼 대통령은 질문에 답을 구하는 방법 중 가장 빠른 방법은 출제자에게 묻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많은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는 상상일 것이다.

그 상상에 대한 답이 현실에서 도출되고 있었다.

“이런 상상을 참 많이 해봤습니다만,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결정권자인 대통령님께서도 의회나 여론의 승인 없이 핵무기 사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자주 도달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과 긁어 부스럼 내길 바라는 사람이 있긴 할까?

맥아더 사령관이 말했듯, 내 질문에 대한 의도는 따로 있다.

“나 역시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없지 않네. 자네도, 나도 확실히 답을 알게 된 것 같군. 몇 모이지 않은 회담장에서도 이런 반응인 것을 보니. 안 그런가?”

한국군 장교 입에서 핵이란 단어만 나왔음에도 참모들이 펄쩍펄쩍 뛰어댔다.

대통령 단독적인 핵무기 사용?

불가능하단 말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맞장구를 쳐주기 시작하자, 나를 제지하려던 참모들의 궁시렁대는 소리가 목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이젠, 아까 말했던 진짜 의도를 말해줄 차례였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선, 국제사회 모두가 수긍할만한 확실한 명분과 이유가 필요합니다. 북한의 김일성, 중공의 마오쩌둥, 소련의 스탈린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들도 그렇겠습니까?”

북한은 인민해방을 명분으로, 중공은 항미원조를 명분으로, 소련은 이 두 국가 뒤에서 교묘히 모습을 감춘 채 공산화 야욕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저들끼리는 그럴싸한 명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앵무새 정도의 지능만 가지고 있어도 내뱉을 수 있는 말일 뿐.

“저들은 아주 작은 그럴싸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적당이라는 말로 포장해 서둘러 끝내는 것은 저들에게 또 다른 야욕과 탐욕을 불러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저 염병할 세 국가의 힘이 미국보다 약한들, 저들의 우두머리는 그 힘을 비교적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트루먼 대통령이 10의 힘을 가지고 1의 독단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3의 힘을 가진 채 2의 힘을 독단적으로 쓸 수 있음과 같았다.

그 독단적 힘이 모여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할 수 없는 일을 어쩌면 쉽게 벌일 수 있다.

오히려 일을 벌이는 결정의 속도도 미국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유부남이라면 다 알만한 명언이 떠올랐다.

저들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숙청하고 죽이는 가장 빠른 방법을 쓸 테니까.

“정치인, 군인, 시민 누구에게 물어도 전쟁을 빠르게 끝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 비극으로 인한 아픔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서둘러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만사에 무언가를 서두르다 보면 많은 빈틈과 약점이 생긴다.

그렇게 생겨난 빈틈과 약점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북한, 중공, 소련의 탐욕을 양분 삼아 기생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 비극 끝에 그런 기생충들이 득실거릴 꼴을 알고도 모른 척할 순 없다.

절대로.

“서둘러 끝내는 전쟁으로는 저들의 탐욕을 완전히 없앨 수 없습니다. 그들의 탐욕으로 인한 비극이 한반도에 드리울지, 다른 나라 드리울지는 알 수 없지만, 제 모든 것을 걸고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내뱉은, 내뱉을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가 트루먼 대통령과 참모진의 마음속에 깊숙하게 박히길 바랐다.

“서두른 종전은, 머지않아 더 큰 희생을 낳을지 모릅니다. 그때가 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부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윽고 내 말이 끝났을 때, 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3시간에 걸친 회담이 끝난 뒤, 트루먼 대통령의 다음 일정인 오찬이 차려지는 중이었다.

과연 아까 회담이 한국전쟁에 대한 실질적 의미를 생산해 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자, 어서들 들게.”

오찬에 참석한 사람은 매우 조촐했다.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기 딱 좋은 3명.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사령관, 그리고 나.

어쩌면 회담에 이어 오찬 자리까지 초대받은 것 자체가 트루먼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고 생각하기엔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 나에 대한 궁금증은 불러일으켰다는 뜻과 같다.

국군 최초 회담 참석자라는 타이틀에 이어,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한 최초의 국군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별맛 없네.’

트루먼 대통령에게 무언가 확실한 답을 듣지 못해서일까?

오랜만에 보는 맛좋아 보이는 음식들이 식탁에 잔뜩 깔렸지만, 맛이 느껴지기보다 그저 칼로리 섭취에 가까운 듯했다.

“이강산 대령. 회담장에서 보니 맥아더 사령관이 왜 자네를 그리 칭찬했는지 알겠더군. 음식은 입에 맞는가?”

회담이 긴장과 정치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딱딱한 자리라면, 오찬은 그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도는 자리였다.

그에 걸맞게 서로 오가는 말투나 대화 주제 또한 부드럽고 가벼웠다.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말을 용기 내어 어렵게 꺼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말일세.”

‘그런데’는 참 신통한 단어다.

한순간에 부드럽고 가볍던 분위기가 반전됐다.

트루먼 대통령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식탁에 내려놨다.

“이 전쟁이 단순히 이념대립 때문에 일어났는지, 김일성과 그를 부추기는 자들의 탐욕 때문에 일어났는지 정확한 건 당사자가 속마음을 말해야만 아는 문제겠지만, 자네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흡을 들이마신 뒤에 말을 잇는 그 짧은 순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 걸까?

나에게 궁금증을 느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쟁은 비극 중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비극이라는 것. 땅을 차지하고 싶더라도 그 땅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차지할 가치가 있는지. 미국 대통령으로서 솔직한 내 입장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네.”

“물론 동의합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전쟁은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이해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트루먼 대통령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연합군 각국의 수많은 이들이 전쟁터에 발을 들였다.

뼈를 깎는 희생과 모두의 노력으로 이전의 38선 실지를 되찾고, 적도 평양마저 수복했다.

전쟁에는 천문학적인 자원이 들어간다.

무기, 포탄, 그 무슨 방법을 써도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는 군인이라는 인적 자원까지.

민주주의도 수호했겠다, 미국이 전쟁을 지속함으로 멸공을 제외한 어떤 이득을 더 취할 수 있는지를 떠보는 질문이었다.

“이번 전쟁에 들어가고 있는 막대한 비용을 문제 삼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속속 들려오고 있네. 아직까진 그들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커질 것이네.”

결국, 돈.

돈은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 한들 깎아주는 법이 없었다.

이것도 공평하다면 공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인의 본분이 전쟁터에서 명령에 따라 목숨 걸고 적과 싸우는 것이라면, 정치인의 본분은 군인들이 부족함 없이 전투를 치러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

아직까진 미국 내 80%에 가까운 여론이 미국의 참전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비용을 많이 부담할수록 여론이 바뀌어 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전부는 아닐지언정, 만약 그 비용을 일부라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대통령님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쯤 되면 모를까, 사실 이 문제는 내가 나라를 대변해 말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문제다.

“전쟁비용을 충당하는데 돈을 찍어내는 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내가 생각한 게 맞나?”

대한민국이 미국에 어떤 보상과 이득을 줄 수 있는가는 정치인들이 고심할 문제다.

그런데 그 이득이 만약 내가 줄 수 있는 이득이라면?

내가 줄 이득을 내 입으로 말하는 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조금 건방지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대통령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는지에 따라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상체를 트루먼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자네가 허무맹랑한 농담 따먹기나 하잔 것은 아닐 테고, 지금 이 상황은 마치 내가 자네와 딜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은데.”

굳이 갑과 을을 따지자면, 트루먼 대통령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슈퍼 갑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히 트루먼 대통령의 힘이 미국이 가진 힘과 비례하기 때문이고.

굽혀갈 필요가 없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딜’을 할 때는 어느 한쪽이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저자세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혹 저와 딜,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자, 물어라.

물 수밖에 없는 완벽한 미끼가 오찬 식탁 위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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