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청천강 방어선(3)
지금 시기에 군수 공장을 건설하는 것과 수십 년이 지난 뒤에 건설하는 건 하늘과 땅 그 이상의 차이다.
“건설 계획 두 곳 중 부산은 확정이고, 다른 한 곳은 인천과 목포 중 한 곳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이왕 만드는 거 부산 인천 목포 세 군데 전부 짓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어차피 창이나 칼, 활 같은 병장기가 아니라면 첨단무기는 한 곳에서 전부 제조될 순 없다.
첨단무기에 들어가는 작은 스프링, 베어링, 나사를 만드는 공장도 보는 시야에 따라 군수 공장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알겠네. 군수 공장과 관련된 후속 보고가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통신장교가 짧게 경례한 뒤 지휘소를 나갔다.
중공군이 코앞에 와있는 위급한 상황에, 그깟 군수 공장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응. 다시 생각해도 안 된다.
한시라도 빨리 진행되어야 할 사안 중 하나다.
자국에서 군수 물자를 생산할 기반을 갖춘다는 건, 단순히 보급이 수월해지고 빨라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니까.
원래 군수 사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은 불편한 것을 편리하게, 소수가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리게 만들면 각지에서 돈을 쓸어모을 수 있다.
이 논리를 군수 산업에 대입해보자면, 사용법이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무기를 다량으로 만들면 돈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군수 공장에서 전차나 전투기, 군함을 만들어낼 순 없겠지만, 핵폭탄도 만드는 미국에도 아직 특허 등록되지 않은 무기들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가장 단순한 예를 들자면 내가 만든 크레모아랄까?
진짜 외계인을 협박해 기술을 뽑아내고 있을지도 모를 미국보다 먼저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려면 단 하루, 몇 시간이라도 빠를수록 좋다.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레일 건이나 레이저 같은 무기 정도는 만들어야 미국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내겐 미국이 협박하고 있는 외계인보다 더 고등지식을 뽐낼 나노봇이 있기에 가능할 일이다.
나노봇.
할 수 있지?
‘그리고 언제까지고 미국에 기댈 순 없지.’
전쟁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지옥이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전쟁의 전후처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다.
당장 북한 영토가 전부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됐을 경우만 생각해보더라도, 그에 따른 무수한 장점도 있지만 수많은 문제점 또한 발생한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져 중공과 국경을 맞대고 그 넓어진 국경선을 방어하는 문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미국에 아양을 떨어가며 약자행세를 해야 하는 문제.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한민국 스스로 힘을 키우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가 없는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지구상에 부모님밖에 없다.
물론 그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이 대한민국을 벼랑 끝에서 건져 준 아주 고마운 나라인 건 분명하지만, 부모가 될 수도, 부모를 자처할 리도 없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세계 최강국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나라.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 중 하나였다.
“여단장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
순간 군수 공장에 대한 보고를 듣고 사색에 너무 오래 잠겼던 모양이다.
지휘관들이 나를 걱정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 사색에 잠기는 건 이쯤 해두고.
“물론. 괜찮네. 작전계획을 전달하기에 앞서 심민수 중위에게 반드시 패튼 전차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라 전하게. 성능에 저하는 없는지. 포탄이 부족하진 않은지.”
뭐 그 외에도 포탑이 돌아가는 각도가 좀 줄었다던가, 최고속력이 좀 감소했다던가.
더럽고 치사하게 그럴 리 없겠지만, 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
혹시 뭐하나 빼고 줬을 수도 있으니까.
***
중공군의 개입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청천강 방어선을 넘어 북진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전선 전체를 지휘할 큰 틀에서의 국군 작전계획은 이미 미군의 자문단과 함께 짜놨다지만, 그 작전계획을 각 부대 상황에 맞게 조율하는 회의는 특공여단 지휘소에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진격 일에 맞춰 국군 1군단은 문천, 함흥, 신포 동해 해안선을 따라 북진할 것이다. 우리 특공여단은 국군 2군단과 전선을 맞춰 신의주를 향해 진격한다.”
해상, 공중에서 연합군의 화력지원을 받긴 하겠지만, 육상에서는 국군 단독 작전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청천강을 넘어 적을 발견하는 즉시, 적의 규모와 상관없이 진격을 멈추고 사전에 계획된 진지를 구축한다.”
남은 북한 지역을 수복하는 건, 어쩌면 청천강에 오기까지 걸린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30만이라는 적군 아가리 속으로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갈 순 없으니까.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규모여도 진격을 멈춥니까?”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이 물어왔다.
“멈춰야 할까? 이 정도면 돌파해도 되겠지? 라는 마음속 의심이 드는 즉시 멈춘다. 적의 규모가 연대 이상이거나, 그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아군의 피해가 예상된다면, 그 즉시 방어선 뒤로 후퇴한다.”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국군과 연합군은 개전초기를 제외하면 큰 피해 없이 청천강-원산까지 진출했다.
연이은 승전에 국군과 연합군의 사기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갈 것을 예상한 모양이다.
“적은 야간에 산악지형을 통해 진출한 아군을 포위, 섬멸하려 할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번 작전은 적에게 절대 꼬리를 잡혀선 안되는 꼬리잡기나 다름없다. 꼬리를 잡히면 죽는다.”
아무리 진격속도를 맞춘들 북한 지형 특성상, 모든 부대가 전선을 일렬로 맞춰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어느 한 곳엔 삐쭉 솟은 돌출부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부대가 적지를 향해 돌출하게 되면, 그 돌출된 부위는 적에게 있어선 함몰부일 테고.
돌출 부대가 적지에 깊숙하게 파고든 순간, 함몰부는 돌출 부대의 꼬리를 끊고 고립시킨 뒤 사방에서 포위 공격을 감행해올 테니까.
사방에서 포위를 당한 전투에서 승리?
생각조차 사치일 뿐이다.
“비교적 안전하게 진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으나, 진격속도가 너무 늦춰지진 않겠습니까?”
“이번 작전에서 진격속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신의주로 진격하는 것이지, 빨리 진격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전쟁을 끝마치는데 주어진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다.
분명한 제한시간이 있다.
연합군의 주력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을 때까지.
이 작전을 위해 트루먼 대통령을 어르고 달래 제한시간을 늘려놓은 참이었다.
“1대대와 기마대가 전방, 2대대, 3대대가 후미 좌측과 우측을 맡아 삼각대형으로 진격한다. 1대대가 적 발견 시, 2대대와 3대대는 즉시 진지를 구축하고 1대대를 엄호한다.”
“예. 알겠습니다.”
신의주 선봉? 북진 선봉?
이제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빨리 가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고 난폭하게 운전한다고 목적지에 빠르고 정확히 도착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엔 그 목적지가 천국이나 지옥이라면 모를까, 글쎄올시다.
서두르는 순간, 중공군에 포위당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여단장님 말씀대로 포위당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펼치는 작전임은 인지했습니다. 다만, 결국 신의주를 탈환하기 위해선 적과의 전면 전투를 피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2대대장 문기준 중령이 나무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숲을 보고 있었다.
훌륭하지만, 아직 멀었어.
“2대대장. 자네가 원하지는 않지만 불을 꼭 내야 한다면, 이미 불타고 있는 옆집에 불을 지르겠나? 아니면 멀쩡한 자네 집에 불을 지르겠나. 하나만 골라보게.”
“꼭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겁니까?”
“골라봐.”
문기준 중령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이미 불타고 있는 집에 지르겠습니다.”
“이미 불타고 있는 집은 대한민국이네. 멀쩡한 건 중공, 이미 저들이 불을 지르겠다고 작정한 이상 멀쩡한 자기 집에 불을 내고 싶진 않겠지?”
자기 집 앞마당이 전쟁터가 되길 바라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청나라 채권 압박카드가 먹힐지라도, 중공은 그로 인한 압박을 최소화하기 위해 격하게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과거 휴전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던 것처럼.
“지금 북한 지역에 들어와 있는 중공군이 끝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중공이 북한에 병력을 보냈다는 건, 전쟁의 불씨를 자기 앞마당으로 절대 가져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앞으로 수십만, 어쩌면 백만이 넘는 중공군과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공이 두손 두발 다 들었을 때 진격할 힘이 있으려면, 지금 1차로 들어와 있는 30만 중공군은 비교적 손쉽게 처리해야만 한다.
“우리의 전투력이 부족해서, 중공군이 무서워서 이런 작전을 펼치는 게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게 가장 상책이지만, 싸워야 한다면 다신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밟아놓는 것이 차선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2대대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가장 좋은 상황은 중공군이 제 발로 청천강 방어선까지 찾아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정답.
정답을 도출하는데 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작전계획의 숨은 뜻을 지휘관들 스스로 도출해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전진 같은 후퇴를 반복한다. 놈들이 승리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놈들을 청천강 방어선으로 끌어들인다.”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 아니라면, 청천강 방어선까지 다가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린 그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온다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정교하게.
“자기들 꾀에 자기들이 넘어가는 통쾌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작전에 임하겠습니다.”
이젠 내가 주도하지 않아도 지휘관들끼리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아주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의 청천강 방어선은 그 어느 방어선보다도 견고하고 강력하다.
인해전술? 제파전술?
땅에 있는 전차를 칼로는 베지 못하고, 하늘에 있는 전투기를 활로는 떨어트릴 수 없는 법.
청천강에서 집안싸움에 끼어든 중공군을 기다리는 건 자유, 사랑, 박애가 아니다.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옭아맬 철조망, 깊고 견고한 진지와 토치카, 그 모든 걸 쓸어 담을 전차와 폭격기가 뿜어낼 압도적인 화력뿐이다.
“출발에 앞서 각 지휘관은 부대 정신 기강을 확립하고, 미비한 점을 보충한다. 이상!”
제대로 준비된 한걸음은, 열 걸음보다 무섭다는 걸 보여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