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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79화 (79/149)

79화. 꼬리잡기(2)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설사 바람이 불었다 한들, 이토록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와 수풀을 뚫진 못했다.

측면 고지대에서 자연스레 떨어지는 자갈? 작은 돌멩이?

전차 장갑에 튕긴 게 자연스레 떨어 질만 한 것이었다면, 아무리 나라고 한들 패튼 전차가 내는 웅장한 엔진음에 묻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전 전차 해치 닫아! 빨리!”

전차 간 연결된 무전기를 재빨리 집어 들고 외쳤다.

“소대장. 전속력으로 이곳을 빠져나간다.”

“예? 예! 알겠습니다. 소대 전속력 기동!”

서둘러 해치를 닫은 심민수 중위는 아직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그런 그도 해치를 닫으라는 명령을 왜 내렸는지 알아차리기까지는 몇 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쾅!

좌측과 우측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소리로 보나, 진동으로 보나 박격포탄이나 전차가 쏘아낸 포탄은 아니었다.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이었다.

“측면에 적 출현! 사방에서 적이 몰려옵니다!”

전차 소대를 향해 쏟아져 내린 건, 수류탄뿐만이 아니었다.

좌측과 우측, 전면과 후면 할 것 없이 중공군이 전차 해치를 열기 위해 달라붙었다.

“앞 전차에 기관총 사격으로 대응한다!”

이미 근접거리에서 달라붙은 중공군에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전면 포탑 아래 설치된 7.62mm 차체 기관총,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김동석 대위의 정찰 중대뿐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달라붙은 중공군을 떼어내기 위해 차체 기관총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크아아아악!”

사람의 것인지, 야생 동물이 내는 괴상한 소리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괴이한 비명이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전차에 뛰어든 중공군들은 설치된 철조망에 걸려 패튼 전차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전신이 찢겨 나갔다.

패튼 전차 철조망에 시체와 부산물이 조각조각 걸려 극도로 혐오스러운 광경이 만들어졌다.

“이 끈질긴 새끼들···”

맞이한 중공군 정찰대 역시 수차례 전쟁을 겪은 정예 중 정예였다.

접근을 막기 위한 철조망에 몸이 찢겨 나가면서도 해치를 열기 위해 손을 뻗어댔다.

“여단장님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철조망은 1차적인 접근을 완벽히 차단했지만, 점점 효과가 줄어들고 있었다.

차체 기관총에 맞은 중공군 시체가 철조망 곳곳에 걸리고 눌리면서 연이어 올라오는 중공군들을 더는 옭아매지 못했다.

말 그대로 자기들 동료의 시체를 보호막 삼으며 전차에 기어올랐다.

“포탑 왼쪽으로 최대 각도까지 돌려! 왼쪽 끝까지 돌아가면 반대로 돌린다.”

차체에 달린 기관총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격 가능한 각이 제한되어 있다.

측면과 후면에 달라붙는 중공군을 사살하기 위해 포탑을 좌에서 우로 선회했다.

-두두두두두두두

포탑이 왼쪽으로 돌며 뒤에 있던 전차가 노출된 중공군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댔다.

왼쪽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 싶으면, 오른쪽으로.

후미에 있는 전차 측면과 후면에는 김동석 대위가 이끄는 정찰 중대가 소총 사격을 가해 적을 사살해나갔다.

“끝까지 긴장 늦추지 마라! 알겠나?”

“알··· 알겠습니다!”

호통에 심민수 중위의 격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굳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해치 밖 세상이 아비규환 생지옥으로 변해있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100mm가 넘는 장갑을 갖춘 패튼 전차 내부는 평온할까?

아니,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중공군에게 장갑을 뚫어낼 대전차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언제 해치 뚜껑이 열리고 그 틈으로 수류탄이나 총알이 들이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

바깥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웬만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정도였다.

전투는 꽤 오래 이어졌다.

30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 시간이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차체 기관총의 총열이 거의 녹아내릴 것처럼 새빨갛게 변해갈 때쯤 기관총의 콩 볶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여단장님. 바깥상황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후우-후.”

전차 중대장 심민수 중위가 거친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좁아터진 전차 내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무전을 했을 뿐,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가며 적과 교전을 하지도 않았다.

그가 내쉬는 거친 숨은, 얼마나 전차 내부에 공포와 불안이 기승을 부렸는지 알 수 있는 부분과도 같았다.

끼이익,

해치를 열자 쇠끼리 비벼지는 마찰음이 가장 먼저 들렸다.

“뭐야 이건 또.”

마찰음 다음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중공군의 잘린 손목이었다.

잘린 손목을 툭 건들자 힘없이 전차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청각, 시각, 후각까지 아비규환이 오감을 통해 느껴졌다.

마찰음, 잘린 손목을 치워냄과 거의 동시에 비릿한 피비린내와 매캐한 화약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여단장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전차 사이에서 김동석 대위가 달려 나와 걱정이 잔뜩 낀 눈으로 물었다.

“나는 괜찮아. 적은 완전히 소탕되었나?”

“보시다시피···”

족히 100구는 넘어 보이는 시체가 전차 주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일부는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갔을 것을 생각해 볼 때, 전차를 습격한 건 중공군 1개 중대 규모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놈들··· 아주 지독한 놈들입니다. 우리 정찰대 사격은 일절 신경도 쓰지 않고 전차에 달라붙어 대는 걸 보니 사람이 아니라 마치 벌레떼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몇 놈이 살아 도망가긴 했지만, 무리해서 추격하진 않았습니다.”

“잘했네. 자네가 그리 판단했다면 그 판단이 맞는 것이지.”

전차 밖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김동석 대위의 판단이 정확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망치는 몇 놈을 잡겠다고 정찰이 되지 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아주 위험한 행동이니까.

숨을 고르고 옆에 있는 패튼 전차를 바라봤다.

“피 칠갑이 따로 없군.”

패튼 전차의 표면이 마치 피로 도색이라도 한 듯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서둘러 본대로 돌아간다. 심 중위, 철조망은 도착하는 즉시 새것으로 설치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전보다 더 촘촘히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오늘 이후 패튼 전차를 감싼 철조망은 더욱 견고하게 설치될 것이다.

만약 철조망이 없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지만, 집요하게 해치를 노린 중공군들에게 어떤 전차는 해치를 열어줘야 했을 것이다.

직접 전투를 통해 효과를 체득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절대 대충 넘어가지 않겠지.

“여단장님. 여단에서 보낸 지원 병력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지원 병력이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맨 앞에서 달려오고 있는 사람 얼굴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군.”

중공군을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가슴이 초조한 건 기분 탓이겠지?

김상옥 중령이 이를 악문 채 달려왔다.

***

전투가 끝난 줄 알았던 건, 완전한 나의 오판이었다.

-다다다다다다다다.

적을 향해 맹렬히 쏘아지던 패튼 전차 차체 기관총보다 빠른 연사력을 가진 김상옥 중령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아니, 대체 여단장님. 저 피 말라 죽는 꼴을 보시고 싶으신 겁니까? 왜 말도 없이, 심지어 몰래 전차에 올라타 계셨던 겁니까. 오늘은 꼭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예?”

강적이다.

북한군이나 중공군을 상대할 때면, 그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를 쟁취해냈다.

김상옥 중령의 말에는 좀처럼 약점이 보이질 않았다.

“새로 부대에 편제된 전차병들의 숙련도를···”

“설마 전차병들의 숙련도를 파악해야만, 후에 있을 작전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 쓰리다.

정곡을 찔리면 이런 기분이구나.

“다음부턴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저를 못 믿으신다면···”

“내가 자네를 못 믿으면 여기서 누굴 믿겠나. 다음부턴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주의해보겠네.”

1대대장은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다.

지금 입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는 것도 나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혹여 제 말에 무례함을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무례라니,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정도면 선방한 것 같다.

정말로 귀에 딱지가 앉지는 않았으니까.

-세상에. 전차에 귀신이라도 씌이는 거 아냐?

-중공군 놈들도 보통이 아닌 가베.

-으··· 저기 철조망에 창자 걸려있는 것 좀 봐.

여단 본대와 합류하자,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깨끗이 전차를 씻길 여유도 없었지만, 흉측한 모습 그대로 본대에 합류한 이유가 있었다.

중공군이 미개하고 원시적인 전술인 인해전술만 사용한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개인 전투 장구류, 부족한 식량, 심한 부대는 군복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부대까지.

외형적인 것이 그러한 착각을 주지만, 전투에 있어 외형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번 전투에서도 느꼈듯, 중공군은 절대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2군단 작전지역 내 교전 보고 들어온 것이 있나?”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중인 통신 장교에게 물었다.

중공군 사령부에서 운전에만 정찰 병력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특공여단 지역에서 전투가 발생했다면, 국군 2군단 작전지역에서도 중공군 정찰부대와 교전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여단장님께서 도착하시면 보고하려던 참입니다.”

통신 장교가 자신이 쓰던 서류를 내게 넘겼다.

“정주, 박천 지역에서도 중대 규모의 적과 교전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적을 끝까지 추격해 전멸시켰다고 합니다.”

예상대로였다.

청천강 전 지역에 중대, 소대 규모의 정찰대를 보내온 모양이다.

“그게 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얼핏 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교전 보고지만, 찝찝한 구석이 존재했다.

추격, 그리고 전멸.

김동석 대위가 이번 전투에서 도망가는 중공군 잔당을 추격하지 않은 건, 추격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도망치는 놈들이 김일성, 펑더화이 정도 된다면 모를까, 일반 병사들을 섬멸하자고 미정찰 지역에 발을 들이는 건 수지타산에 맞지 않으니까.

수차례 말했듯 이번 북진의 가장 큰 목적은, 적을 청천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지 마주치는 적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전달하게. 절대 전선에서 돌출되거나, 무리한 적과의 교전, 추격은 필시 삼가야 한다고.”

세상만사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지만, 자기 팔자를 자기가 꼬는 행태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또한, 내일 내가 직접 군단 사령부로 가겠다고 전하게.”

북진이 계속될수록 군단 사령부와의 거리는 점점 자연스레 멀어진다.

부디, 쓸데없는 발걸음이 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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