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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83화 (83/149)

83화. 하늘도 눈 감아 줄 일(1)

적유령 산맥 깊은 골짜기 작은 목조건물.

8연대와의 전투를 통해 노획한 지프를 타고 중공군 지휘관들이 중공군 총사령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각 군 군장들과 정치위원들이 도착해 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활기입니다. 총사령관님.”

펑더화이의 비서.

양펑안이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가지.”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목소리는 양펑안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동지.”

펑더화이가 직접 소집한 당 위원회의.

계획해둔 1차 총공세를 앞둔 시점에서 아주 중요한 회의였다.

문을 열고 자리에 들어서자, 모든 군장과 정치위원들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펑더화이를 반겼다.

“빠짐없이 다 왔나? 자리에 앉지.”

자리에 모인 군장들은 펑더화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감정 표현이 아주 분명하고, 돌려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군장들이 눈치를 살폈다.

“우선, 지난 작전에 대한 성과를 짚어보도록 하지.”

펑더화이는 각 부대에 한두 차례 적과 소규모 교전을 벌이라 지시했다.

한국군의 화력이나 대응 능력 수준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제39 군장 우신취안, 지난 전투에서 위군 1개 연대를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고 들었네. 총공세를 벌이기도 전에 이뤄낸 큰 전공이니 치하하지 않을 수가 없군.”

“마땅히 명령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해냈을 뿐입니다.”

“아주 훌륭해.”

펑더화이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군장들을 바라봤다.

13병단은 38, 39, 40, 42, 50, 66등 6개의 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6개 군 6명의 군장 위로 덩화, 홍쉐즈가 각각 3개의 군을 도맡아 지휘했다.

공을 세운 우신취안에게 작전 명령을 내린 인물은 부사령관 덩화.

“덩화, 자네도 수고 많았어.”

중공군 작전계획의 8할은 덩화 머릿속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작전 구상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펑더화이는 세 명의 부사령관 중 덩화를 가장 신임했고, 신임은 더욱더 커지는 중이었다.

“반면에 말이야.”

득을 치하했으니, 실을 돌아볼 차례였다.

펑더화이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린 몇몇 군장들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군장도 더러 있다. 1개 연대 병력을 움직였음에도 그 어떠한 정보도 얻어내지 못한 채 이 자리에 앉아있는 파렴치한 놈이 있지. 량싱추! 대체 어떤 새끼야!”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기쁨은 벌써 지나간 듯했다.

펑더화이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노여움을 표출시켰다.

“예···예!”

38 군장 량싱추가 총알같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노여움이 향한 곳이 자신이라고 인지하자 온몸에 식은땀이 솟구쳤다.

“왜 네 놈이 지휘한 38군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게지? 그 쉬운 유인책 하나 제대로 성공을 못 시키고 어찌 군장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네깟 놈이 38군의 호랑이라고? 너는 호랑이가 아니다. 쥐새끼 하나 제대로 물어뜯지 못하고 뒷걸음질이나 치는 고양이에 불과하다!”

펑더화이는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처음엔 작은 질책으로 시작해 점점 비난의 강도가 거세졌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펑더화이를 쉽게 말릴 수 없었다.

“그··· 그것이 38군이 공격한 위군 부대는 아예 진지에서 틀어박혀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미끼는 분명 제대로 던졌지만 좀처럼 물지 않았습니다.”

38군이 공격한 한국군 부대는 특공여단과 8사단이었다.

조금의 실수도 없이 상부의 명령대로 지휘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억울하다는 듯 량싱추의 얼굴 근육이 씰룩였다.

“오냐! 그래. 네놈의 억울함을 봐서라도 내가 땅을 치고 울며 읍참마속(泣斬馬謖) 해야겠구나.”

펑더화이가 던지려던 재떨이를 다시 탁상에 올려놓은 뒤 말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베어버리겠다는 뜻이 내포된 사자성어.

쉽게 말하면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입이 달려있다 한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제 목을 베십시오.”

량싱추가 낙담하며 고개를 떨궜다.

“사령관 동지. 량싱추는 실추된 명예를 찾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닌 군장입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큰 공적을 세워 사령관 동지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덩화가 나서 펑더화이를 말렸다.

덩화의 만류에도 한참을 선 자리에서 씩씩거린 후에야 겨우 자리에 앉았다.

“부총관, 자네가 마저 해.”

“예. 동지.”

이성을 찾을 시간이 필요한지, 회의 주도권을 부총관 덩화에게 위임했다.

고성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덩화의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회의를 다시 이끌었다.

“처음 정찰을 통해 위군의 진격 속도나 방어 진지 형태를 봤을 땐, 아군의 전술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 같은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덩화의 말에 군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39군과의 전투를 분석하며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진격 속도가 늦었던 건 우리 해방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고, 미군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멍청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덩화가 주먹을 불끈 쥔 뒤, 높이 들어 올렸다.

“미군의 폭격을 피해 어둡고 축축한 음지에 숨어있어야 했던 지난날의 복수를 할 차례입니다. 각 군장은 부대로 돌아가는 즉시, 명령에 따라 총공세를 펼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기 바랍니다.”

“위군을 조선 땅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테니.”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총공세 명령에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국군 2군단 사령부.

“그런 작전은 절대 승인해 줄 수 없네.”

김석원 군단장이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미 공군의 항공 지원 아래 천천히 전선을 북상시키려는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됐다.

7사단의 주력인 8연대가 괴멸됨과 동시에 서부전선 국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 됐기 때문이다.

“자네가 말한 작전이 성공하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하네. 자네도 전선 상황이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도 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작전이 의미하는 바를.

사실 소대 규모의 부대도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김석원 군단장에게 제시한 작전은, 특공여단과 8사단이 제 손가락 움직이듯 정확하게 움직여야만 성공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현재 7사단은 전투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합니다. 군단장님께서도 중공군이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걸어 오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김석원 군단장은 중일전쟁에 참여해 중공군을 직접 상대해본 경험이 있다.

그를 설득하는 데는 그리 긴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만, 가장 취약한 꼬리가 놈들에게 잘려나간 지금이 중공군 놈들의 몸통을 잘라버릴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국군 7사단을 거의 그로기에 빠지게 만든 중공군 지휘부는 매우 의기양양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매우 단순한 유인술만으로 전투보단 학살에 가까운 전공을 세웠으니까.

가뜩이나 국군을 무시하는 중공군이 지금까지는 눈치싸움을 하느라 소극적으로 병력을 투입했다면, 지금부터는 완전히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어떤 몰상식한 새끼 덕에 눈치 싸움에서 지긴 했지만.’

김석원 군단장이 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7사단과 8사단을 먼저 청천강 이남으로 후퇴시켜야 한다는 점 때문.

펑더화이와 그 곁에 있는 중공군 참모진은 절대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다.

서부전선의 모든 부대가 동시에 후퇴한다면, 낌새를 눈치챈 그들은 절대 청천강을 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을 청천강까지 끌어내는 방법은 당장이라도 잡힐 것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잡히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거리 조절에 실패하거나 예하 부대 간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그 즉시 적에게 포위된다.

아주 먹음직한 미끼가 되어야 하는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건, 오직 특공여단.

단 하나뿐이다.

“미군과 연합군의 육군이 청천강을 넘어 국군과 합류하지 않는 이상 7사단이 전투력을 상실하면서 북진은커녕 현 방어선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북진할 기회는 살아생전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군단장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김석원 군단장을 설득해야만 한다.

주어진 시간이 많다면 내게 우호적인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작전 명령을 받아 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다.

청천강에서 전선이 오래 고착되면 연합군은 하나둘씩 한반도를 떠날 것이고, 그 흐름에 동조해 미국이 발을 빼는 순간, 이 전쟁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후. 자네는 나에게 항상 어려운 결정을 하게 만드는군. 혹시 내가 자네한테 잘못한 것이라도 있나? 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해왔지만, 마음속은 아주 복잡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아휴. 잘못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저는 제 부하들을 그 누구 보다 아끼고 사랑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작전은 욕심이나, 복수심처럼 순간적으로 피어오르는 감정에 의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나도 내 몸을 적진 한가운데에 내던지고 싶진 않다.

그런데 어째, 내가 아니면 해낼 사람이 없는걸.

자.

이 정도 했으면 들어줄 만도 하다.

나 믿지?

“오늘 참··· 여러 가지 결정을 하게 되는군. 사단장을 즉결처분한 것으로 모자라 이젠 특공여단 전부를 미끼로 낚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니.”

“군단장님. 부디···”

최대한 애처로운 눈으로 김석원 군단장을 바라봤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그도 속이 편치야 않겠지만, 적진 한복판에서 미끼를 자처하는 내 심정도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자네 머릿속에서 어디까지 생각해 놓았는지는 모르겠네만, 그 미끼로 낚을 수 있는 게 최소한 이 나라의 통일쯤은 되나? 최소한 말일세. 그 정도는 되어야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거든.”

어째 진짜 무언가를 낚기 위한 미끼가 되어 버린 기분이지만.

“맞습니다. 미끼에 걸려 올라오는 가장 작은 물고기가 통일일 것입니다.”

“하하. 내가 졌네. 어찌 나라를 통일할 기회를 날려버린 대역 죄인이 될 수 있겠는가. 자네 뜻대로 하게.”

김석원 군단장이 일본도를 땅에 찍으며 호쾌하게 웃었다.

웃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험한 말과 함께.

“자네는 나라에 목숨을 걸었지만, 나는 자네에게 목숨을 걸었네. 자네가 작전에 실패하면 이 작전을 승인한 나 역시 즉결처분 감이거든. 아무튼, 잘해보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작전을 승인받은 뒤, 막사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이 먹구름은 좋은 징조다.

왜냐고?

“하늘이 눈 감아 주겠다는군.”

청천강에서 일어날 일을 눈감아 주겠다는 하늘의 뜻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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