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89화 (89/149)

89화. 전대미문의 작전(1)

***

청천강 이북 강변.

특공여단의 우주 방어 덕에 편하게 후퇴한 국군 7사단, 8사단 장병들이 총대신 곡괭이와 삽을 든 채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소대장님! 대체 왜 우리가 여기 땅이나 파고 있는 겁니까? 뭔 이유라도 알아야 힘이라도 나지 설마 우리보고 이 안에 들어가서 중공군을 막으라는 명령은···”

사방에서 투정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별다른 설명 없이 청천강을 건너가 깊은 땅굴 진지를 파놓으라는 명령 때문이었다.

“어디서부터 떨어진 명령인진 나도 모르니까 투정 부릴 시간에 삽질 한 번이라도 더 해. 주어진 시간 안에 못 끝내면 자네 말대로 이 안에 들어가서 중공군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까라면 까. 알겠어?”

“에라. 염병할.”

소대장의 대답을 들은 병사들이 소대장은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로 저마다 욕을 내뱉었다.

7사단과 8사단이 합동해 땅굴을 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가지 확신이 든다.

피라미드나 고인돌은 그 어떤 중장비 도움 없이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것을.

정해진 위치에 족히 수천 명은 들어가 대피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땅굴 진지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 서둘러라! 시간이 얼마 없다! 이곳에서 통구이가 되기 싫다면 쉬지 말고 땅을 파라!”

중공군이 청천강 방어선 유역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직접 사지에서 겨우 탈출한 7사단, 8사단 장병들이다.

손에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쯤은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후퇴하고 있는 특공여단에 이어 중공군이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엄청난 포격이 이곳에 떨어질 것이다.

포격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쉬지 않고 삽질과 곡괭이질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거기 너! 이 개새끼가. 뒤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파라는 말 안 들려? 콱. 씨.”

부대원끼리 서로를 따듯한 말로 보듬어주며 협력해 힘든 고난을 헤쳐 나가는 아름다운 광경이 청천강 근처 어디선가 펼쳐지고 있었다.

***

청천강 이북 10km 지점. 특공여단 임시 휴식 지점.

청천강 방어선이 코앞에 있었다.

사실 10km라는 거리는 하루, 아니 조금 강행한다면 반나절 만에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여단장님. 또 폭격기가 떴습니다.”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이 여단을 지나쳐가는 미 공군 폭격기를 보며 말했다.

“알겠네. 이곳에서 30분간 휴식한다.”

“잠시 이곳에서 휴식한다! 휴식!”

한참이 지난 후에도 폭격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속임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보네. 하긴, 2시간 전에 한차례 쏟아부었으니.”

미 공군은 악마도 울면서 지옥으로 돌아갈 악랄한 재치로 중공군을 괴롭혔다.

행군 대열 틈틈이 껴있는 대공포를 제외한다면 대공 방어 체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중공군은,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와도 몸을 숨길 곳을 찾아 소산 해야 했다.

제각기 폭격을 피하려 흩어진 병력이 다시 모여 출발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이점을 이용해 진짜 폭격 사이에 근처를 배회만 하고 돌아가는 가짜 폭격을 심어 가뜩이나 불안한 중공군의 심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단장님. 놈들이 대열을 수습해 출발준비를 마쳤습니다.”

“우리도 이제 출발하지.”

장철부 중령이 이끄는 기마대는 김동석 대위의 정찰 중대와 함께 뒤따라오는 38군의 동태를 빠짐없이 살폈다.

놈들이 서면서고, 출발하면 출발했다.

중공군과 특공여단의 추격전은 생각했던 것처럼 빠르고 촌각을 다투는 그런 추격전이 아니었다.

토끼와 거북이가 아니라 거북이와 또 다른 거북이.

거북이끼리 우열을 다투는 그런 느려터진 추격전이었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됐다는가?”

원래 계획대로라면 놈들이 쫓아올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희망 고문을 계속하며 방어선에 도착할 생각이지만, 계획이 조금 바뀌었다.

“여단 본대가 도착할 즈음이면 완성될 것 같습니다. 벌써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다니··· 엄청나게 닦달한 것 같습니다.”

그럼 그럼.

원래 군대가 그렇다.

사단장 정도만 되더라도 낮은 산 정도는 손쉽게 들어 옮길 수 있다.

겨울에 눈이 옴과 동시에 도로에서 눈이 사라지는 마법을 부릴 수도 있고,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주변이 깨끗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데.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이라면 더 강한 마법을 부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땅굴? 그까짓 거 뚝! 하면 딱! 하고 금방 만들지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는 즉시 기마대와 전차 중대, 포병대는 청천강을 건너갈 것이네. 미 8군과 이미 말을 맞춰놓은 상태니 다른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예. 알겠습니다. 말씀 그대로 각 부대에 전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나라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어디에선가 영웅이 생겨나 위기를 이겨냈다.

가장 유명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부터 시작해 유관순, 안중근 열사와 같은 독립운동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선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군과 연합군.

가끔은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세상 모두를 속여가며 온몸을 불 싸지르는 무타구치 렌야 같은 어둠의 독립운동가까지.

지금까지 어둠의 독립운동가라는 칭호는 무타구치 렌야가 그 누구보다 독보적이었지만, 명예의 전당에 한 명 더 이름을 올려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을 갈아버리는 분쇄의 신 마오안잉.

그의 분쇄 능력이 어디까지일진 아직 모르겠지만, 그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임무다.

‘나도 궁금하군.’

갈아버릴 수 있는 게 비단 사람뿐일지, 아니면 생각보다 더 강력한 분쇄 능력으로 땅까지 갈아버릴지.

이왕 가는 김에 땅까지 갈아버렸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

특공여단 뒤꽁무니를 쫓는 중공군 진영.

“군장 동지. 놈들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분명···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갑자기 모습을 감췄습니다.”

상관에게 하는 보고는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

보고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휘관의 역량이었다.

정찰을 나갔던 중공군 정찰병은 사실만을 말하고 있었음에도 오금이 절로 저렸다.

“눈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눈알을 파내 씻어주기라도 해야 제대로 말을 하겠나?”

량싱추 옆에서 보고를 듣고 있던 마오안잉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아악! 끄아아아아아악!”

가장 먼저 보고한 정찰병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러댔다.

마오안잉이 그의 눈 깊숙이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마오안잉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자··· 다음. 말해 봐. 똑같이 되고 싶지 않으면.”

비명을 지르던 정찰병은 이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다 한계점에 도달해 기절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동···동지. 정말입니다. 대체 저희가 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정말로 사라진 것을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동지···”

전우의 눈알이 뽑히는 것을 목격한 정찰병 두 명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 보는 젊은 놈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가 군장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건 이미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량싱추 동무.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들 말이 사실이라면 위군 놈들이 대체 어디로 갔다고 생각해야 하냐 이 말이오. 날개가 달려 하늘로 날기라도 했나? 아니면 그 찰나에 두더지 새끼처럼 땅이라도 파고 들어갔단 말이오?”

마오안잉이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물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의 안구를 적출 했음에도, 일말의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광기 어린 말투였다.

“이들이 잘못 봤거나···”

탕! 탕!

량싱추의 입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이 향한 곳은 바닥에 엎드려있던 정찰병 두 명의 뒤통수였다.

“그 말은 곧 부대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정찰을 나가 딴짓을 했단 말 아니겠소? 죽음으로 다스려야 마땅하지.”

“이런 불필요한 살상은 아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량싱추 군장이 마오안잉에게 호소하려는 찰나.

“동지! 동지!”

무언가를 말하려고 뛰어온 중공군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는 뒷걸음질 쳤다.

“괜찮네. 괜찮아. 와서 할 말은 하고 가게.”

마오안잉이 권총을 쥔 오른손을 까딱거리며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저승사자도 한 수 접어줄 그의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 그게 그러니까··· 39군과 40군 선봉 부대가 후미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특공여단을 섬멸하기는커녕, 뒤늦게 따라온 39군과 40군에 따라잡혔다는 소식이었다.

“자. 위대한 38군 114사단 동무들은 모두 똑똑히 들어라!”

그 어떤 예고도 없이 마오안잉이 주변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 소리쳤다.

“나는 마오쩌둥 주석의 맏아들 마오안잉이다!”

마오안잉이 정체를 밝히자, 사방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고향에 돌아갈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그 방법은, 저 강을 건너 미군과 위군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이다. 때마침 우리 뒤에 39군과 40군이 도착해있다. 아무런 생각도 말고 용맹하게 싸워라! 그리고 저들이 가진 것 전부를 빼앗아라!”

이토록 잔인하기 짝이 없고 대책 없는 지휘관의 명령을 듣긴 할까?

“마오쩌둥 동지 만세! 마오안잉 동지 만세!”

지칠 대로 지친 기색뿐이었던 중공군이 한두 명씩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만세를 불러댔다.

이들은 마오쩌둥과 마오안잉이라는 이름에 만세를 외쳐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에 대한 욕구.

욕구에 완전히 잠식되었을 뿐이다.

중공군의 총공세가 8일을 넘길 수 없다는 건 중공군 지휘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대로 된 보급로가 없어 탄약과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얼추 8일.

이미 배고픔에 굶주린 지 일주일이 훌쩍 넘어갔다.

“모두 진격하라!”

중공군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 달려나갔다.

인민 해방군과 인민 지원군.

그 어떤 이름도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굶주림에 눈이 먼 도적 떼,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방어선에 대한 정밀한 사전정찰?

축차 투입을 막기 위한 부대 간 협공 계획?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공격 준비 포격?

그런 건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만 가능한 것이었다.

“가자!”

이렇게 전대미문의 준비 없는 용맹 무쌍한 돌격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신들이 특공여단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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