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전대미문의 작전(2)
중공군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밤이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밤이다.
낮보다 밝고 뜨거운 밤이었다.
검은 연기가 강변을 가득 메웠다.
“3.2.1. 파이어!”
미군 1개 사단 포병대에 기본적으로 편제된 포의 숫자만 해도 최소 72문이다.
거기에 국군 2군단, 특공여단의 포병 전력까지 밀집되어 완벽한 화력 망이 구성된 방어선이 청천강 방어선이었다.
아무리 최소한의 수치로 잡은들, 수백 문에 달하는 모든 곡사포와 야포가 오로지 청천강을 향해 불을 뿜었다.
“사령관님! 중공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지.”
적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는 말에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웃고 있었다.
중공군이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청천강 방어선은 뚫어낼 수 없는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방어선 상태는?”
“놈들은 방어선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명령하신 대로, 후방에 있는 모든 포병대가 최대 발사 속도로 쏟아붓고 있습니다.”
“보유한 탄약량도 부족함 없이 충분합니다. 이건 전투라기보단··· 살육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살육전이라···”
연합군이 아무런 제약 없는 무한한 공간 주머니에 모든 것을 쓸어 담고 있는 형국이었다.
1분, 1초.
불규칙한 섬광이 땅을 때려댈 때마다 중공군 사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무능하기 짝이 없군.”
전의를 상실한 병력, 빈약한 무기와 보급상태.
가장 최악인 무능한 상관의 돌격 명령이 모두 합쳐진 결과는 역사에 익히 기록되어 있다.
이번 청천강 전투는 단번에 무능을 따지는 역사 맨 윗줄에 새겨져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쾅! 쾅! 쾅! 쾅!
지금까지 들려오던 소리와는 조금 다른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땅이 아닌 강 위.
미 10군단에 소속된 함선들이 쏴대는 함포 사격이었다.
함포는 야포와 곡사포와는 또 다른 리듬감으로 적에게 포탄을 뱉어냈다.
“사령관님! 정찰기로부터 방금 들어온 보고입니다.”
하늘에서 땅을 훤히 내려다보던 F4U 정찰기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양이다.
“무작정 방어선으로 돌격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포격을 피해 엄폐물을 찾아 숨어있거나, 정신없이 좌우로 이동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포착되었답니다. 마치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포병대에 연락해 살살하라고 전하심이···”
부관이 살살하자는 건, 중공군에게 자비를 내리자는 게 아니다.
무제한 포격전은 말 그대로 포탄을 무제한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비용도 무제한으로 지출된다.
사람의 목숨을 비용과 정확히 등가교환 하긴 어려우니 효율성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포탄 100발로 고작 중공군 몇 명을 잡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
“아니, 아니야.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숨도 쉬지 말고 쏘라고 전하게. 좀 더 밝은 조명탄은 아직인가?”
“예! 알겠습니다. 조명탄이라 하심은··· 아, 조금 전 출발했다고 하니 아마 금방 도착할 겁니다.”
잠깐 움찔한 부관이 워커 중장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워커 중장이 말한 조명탄은 일반적인 조명탄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조명탄은 이미 곳곳에서 터져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으니까.
-위이이이이이잉. 우우우우우웅.
아주 뜨겁고 화끈한 조명탄이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청천강에 들어섰다.
B-26 폭격기 5대와 B-29 폭격기 1대가 중공군에게 줄 선물을 가득 싣고 있었다.
텅.
모든 기체가 동체 하단에 있는 폭탄 저장고를 열어 6파운드 탄 (AN-M69)과 10파운드 탄(AN-M74)을 엄폐물을 찾아 숨어있는 중공군 머리 위에 떨어트렸다.
6파운드 탄 (AN-M69)과 10파운드 탄(AN-M74)은 네이팜 물질을 가득 담은 네이팜 탄.
40~40M 간격으로 폭격이 떨어지며 주변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불길이 치솟아 주변을 뜨겁고 환하게 밝혔다.
야간에 떨어진 네이팜탄은 살상과 시야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아주 효율적 무기였다.
“사령관님. 이제야 놈들이 후퇴합니다. 아군 측엔 거의 피해가 없습니다.”
“포병대에 연락해서 이제 슬슬 길을 열어주라고 하게.”
한국군 특공여단장 이강산 대령이 전해온 부탁은 두 가지였다.
두 가지 모두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첫째는 청천강 이북지역에 국군 7사단과 8사단을 동원해 빠르게 땅굴을 파줄 것.
둘째는 중공군이 가까이 오면 무제한 포격을 통해 적을 섬멸하고, 네이팜탄이 떨어지면 남은 적에게 숨구멍을 열어줄 것.
두 가지 모두 대성공.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보물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죽겠군.”
워커 중장이 커다란 불길을 보며 속마음을 내뱉었다.
이제 쥐고 있던 열쇠를 이강산 대령에게 넘겨줄 시간이다.
뭐가 들었는지 모를 보물상자를 그가 열어 보일 수 있도록.
네이팜탄이 일으킨 불꽃은, 서서히 동이 터옴에도 꺼질 줄 몰랐다.
***
청천강 주변 어딘가.
마오안잉이 돌격을 명령한 38군 예하 144사단은 방어선을 향해 총 몇 번 제대로 쏴보기도 전, 폭격에 휘말려 전멸했다.
청천강에 도착할 당시 7천 명이 넘었던 병력 중 살아남은 건 고작 100여 명뿐.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겨우겨우 화마의 힘이 가장 약한 곳을 찾아 간신히 도망쳤을 뿐이다.
“으···헙. 으···헉.”
마오안잉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며 호흡을 이어갔다.
화마는 직접 닿는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그 모든 것 안에는 호흡에 필요한 산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뜨거운 열로 인해 식도마저 화상을 입었는지, 목구멍이 끔찍한 고통과 함께 따끔거렸다.
“빨리 도망··· 도망가야 해. 너무 뜨거워···”
마오안잉의 패기와 광기는 연합군의 포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타버렸다.
뜨겁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마오안잉을 부축하고 있는 사람은 량싱추.
자신이 그토록 비난하던 멍청한 노인네에게 몸을 의지해야만 걸을 수 있었다.
“마오안잉, 살고 싶다면 제발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게. 동무들··· 마지막 힘을 짜내 주변에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곳을 함께 찾아보세.”
량싱추가 살아남은 100여 명의 병사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중엔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곧 죽겠지만 당장은.
이 말이 들어가야 그나마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
스무 명 남짓한 병력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살아남은 병력 중, 명령을 이해하고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이게 전부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화상을 입어 오른팔이 검붉게 익어버린 병사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와 희망을 전했다.
“군장 동지. 근처에 땅굴이 있습니다. 누가 어떤 용도로 파놓은 건진 모르겠지만··· 산 전체가 타버려 잿더미가 됐습니다. 몸을 숨길 곳이라고는 그 땅굴뿐인 것 같습니다.”
꼼꼼히 주변을 살펴볼 시간 따윈 없다.
미 정찰기가 이 주변을 정찰하는 순간,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사라질 테니까.
“고생 많았네. 남은 이들을 데리고 동무가 발견했다는 땅굴로 가지.”
그 엄청났던 포격을 견뎌낸 땅굴이다.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마오안잉과 량싱추, 남은 병력이 터벅터벅 희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아직도 온몸이 울리는 것 같다.
포격 한복판에서 보낸 황홀하고 짜릿한 밤이었다.
“다들 괜찮은가? 각 부대 지휘관은 병력 상태 먼저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걸 보니 1대대장은 일단 무사한 것 같고.
곧 2대대장과 3대대장도 기지개를 켜며 얼굴을 비췄다.
“1대대 이상 없습니다.”
“2대대 이상 없습니다.”
“3대대 이상 없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여단장님.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지만, 나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김상옥 중령의 표정을 보니, 어젯밤이 꽤 끔찍했던 모양이다.
“여단장님께서 예상하셨듯, 중공군 주력이 큰 병력손실을 당한 채 후퇴했다고 합니다. 어젠 정말 땅굴이 무너지면 어쩌지? 이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엄살은.
사실 땅굴 진지 주변에 떨어진 포격은 중공군이 밀집된 곳에 떨어졌던 포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사실 그 수준도 아니다.
본래 야포와 곡사포라는 게 정밀 타격을 위한 무기가 아닌 탓에 좌표를 벗어난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연합군의 포병대는 모두 미리 지정해 둔 정확한 좌표를 토대로 포격을 했다.
이 땅굴 주변으로는 좌표에 구속되기 싫어하는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포탄 몇 발이 떨어졌을 뿐, 땅굴은 공격 좌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 급하게 만든 땅굴만 믿고 여단 보병 전체를 걸었을 리는 없잖아?
“지금부터 주변에 살아있는 중공군이 있는지 샅샅이 살핀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포해.”
가장 선두에서 방어선을 향해 대가리를 들이민 부대는 열심히 특공여단을 쫓던 38군 추격대.
조금 뒤에 떨어진 중공군 주력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한 후퇴가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장담컨대 추격대는 절대 청천강 방어선에서 후퇴하지 못했을 것이다.
38군 추격대가 후퇴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피부가 네이팜탄의 화염을 이겨낼 수 있다면 모를까.
사실 섭씨 3천 도에 가까운 열을 내기에 그 어떤 방염도 소용없겠지만 말이다.
그놈들은 절대 알 수 없겠지만, 미리 워커 중장과 긴밀한 연락을 통해 한 줄기 희망처럼 보일 길을 만들어줬다.
상어를 피해 도망친 물고기가 자연스레 떡밥 냄새를 맡아 통발로 들어오는 것처럼.
“여단장님! 2개 소대 정도 되는 규모의 중공군이 이쪽으로 이동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어젯밤 살아남은 중공군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자, 통발에 어떤 물고기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볼까?
그나저나 2개 소대가 전부라면 1개 대대 정도만 해도 충분했었을 텐데.
피라미 잡는데 상어 잡는 바늘을 쓴 모양이다.
‘바늘을 내가 만든 건 아니니 별 상관은 없지만.’
3개 대대가 들어갈 땅굴을 파느라 수도 없이 욕을 해대며 삽질을 했을 얼굴들이 떠올라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저깁니다. 연대장님.”
주변보다 높은 곳에 올라 다가오는 중공군 무리를 확인했다.
정확히 95명, 이젠 94명이네.
얼마 길지도 않은 행렬 와중에도 속속 쓰러지는 중공군이 생겨났다.
무기를 지닌 중공군은 몇 되지도 않았다.
맨몸으로도 움직이기 힘든 판에, 움직이기 위해 4kg이 넘는 총부터 버린 모양이다.
전부 숯 검댕이 된 탓에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최대한 한명 한명 익숙한 얼굴이 있는지 확인했다.
“1대대장. 저기 오는 중공군들 전부 생포해. 무기를 가진 놈은 열 명 남짓이니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누가 뭘 들고 있는지까지 보이십니까?”
그럼, 보이다마다.
저렇게 큰 대어가 둘이나 들어있는데.
아주 큰 물고기를 잡았으니, 이걸 어디에 팔아야 가장 비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