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커져가는 호기심(2)
서울. 대한민국 국회 부민관.
본래 부민관은 1935년 일제강점기 경성부가 지은 극장이었다.
국회가 처음 생겼을 당시엔 중앙청을 개수해 국회로 사용했지만, 잠시 서울을 북한군에 내준 뒤 돌아오면서부터 부민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전방에선 연합군과 국군이 총칼을 들어 나라를 수호하고 있었고, 국회에선 210명 중 참석한 100여 명의 국회의원이 입으로 따발총을 쏴대며 나라의 미래를 논하는 중이었다.
부민관이 아주 시끌벅적했다.
“아니! 그래서 대체 김홍일 총참모장은 언제 도착한다는 게요? 바쁜 사람들 모아놓고 뭐 하는 짓인지 원 참.”
“맞소! 벌써 10분이나 지났는데 왜 안 나타나는 것이오?”
“이게 얼마나 외교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중대한 사안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하룻밤 사이 미국에서 요청한 무언가 덕에 긴급하게 소집된 임시 회의였다.
김홍일 총참모장이 개회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나지 않자, 의원들이 가진 따발총이 거칠게 불을 뿜어냈다.
“자자, 다들 진정하고 정숙하세요. 이제 막 도착했답니다.”
신익희 국회의장이 근엄한 목소리로 타이르자, 화끈했던 장내 열기가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덜컥.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김홍일 총참모장이 장내로 들어섰다.
그가 장내로 들어서자, 다시 전투가 시작됐다.
“이게 뭐 하는 짓이오! 대체 뭘 하다 늦었는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오!”
“어허. 의장님께서 정숙 하라는 말 못 들었습니까?”
체통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의원 나리들께서 매우 화가 나 보였다.
김홍일 총참모장이 천천히 자신의 자리까지 걸어 들어간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핵심 작전계획에 수정할 부분이 생겨 조금 늦었습니다.”
김홍일 총참모장은 늦은 이유를 전달했을 뿐, 고개를 숙이지도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몇몇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이를 갈았다.
“자, 그럼 총참모장도 도착했으니 안건에 따른 회의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시 상황인 점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회의를 진행할 테니,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신익희 국회의장의 진행 아래 회의가 신속하게 진행됐다.
“미 정부로부터 현재 서부전선에 있는 특공여단장 이강산 대령에 대한 신원확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본 의장이 회의 전 확인해본 바로는, 1949년 13연대 입대부터 지금까지 행적만 확인될 뿐, 이전의 행적은 확인이 되질 않습니다. 이에 관해 아는 바가 있다면 김 참모장은 대답해 주길 바랍니다.”
“대체 근본도 모르는 자가 어찌[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국회의장의 질의가 끝나자, 일순간에 장내가 시끌벅적한 시장판으로 변했다.
말이 좋아 회의지 김홍일 총참모장의 청문회나 다름없었다.
의원들의 반응은 크게 3부류로 나뉘었다.
뛰어난 공적을 세워 나라를 지킨 군 지휘관 행적이 뭐가 중요한지 되묻는 부류.
출생과 호적도 모르는 자가 어찌 수천 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국군 지휘관이 될 수 있었는지 캐묻는 부류.
이강산 대령의 행적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두 부류의 싸움을 지켜보는 부류.
답변을 생각하던 김홍일 총참모장이 생각을 끝낸 듯 입을 열었다.
“특공여단장 행적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아는 바 없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끝입니다.”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했다.
그의 대답도 짧았지만, 더 짧게 요약하자면 3글자로 모른다였다.
‘건수 하나 물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김홍일 총참모장은 시끄러운 주변 소리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참모장. 나중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성실히 답변해주기 바랍니다.”
“성실히 답하겠습니다.”
시끄러운 와중에 유독 전투력이 뛰어난 의원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친일 관련 행적이 분명한 의원들이었다.
그들에겐 미국의 요청이나 특공여단장의 신원, 행적은 중요치 않았다.
과거 담화문을 통해 자신들을 욕보이고 반민특위를 연장하게 한 이강산이라는 자가 구설에 올라왔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왜 미국이 특공여단장 이강산 대령에 대한 신원확인 요청을 해온 겁니까?”
“그 또한 모르겠습니다만, 이 대령에게 특이사항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김홍일 총참모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성실히 답하겠다는 말에 ‘모른다.’ 뒤에 알아보겠다는 사족을 붙여 성실한 답변을 만들어냈다.
“이봐 참모장! 그게 제대로 된 답이야? 어? 의원들 앞에서 건방지게···”
의원 한 명이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소리쳤다.
건방지게?
웬만한 쓸데없는 지방방송은 모두 걸러져 나갔지만, 건방이라는 단어가 김홍일 총참모장의 심기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곧바로 김홍일 총참모장이 목에 힘을 실은 뒤, 말을 쏟아냈다.
“존경하는 의원님들께서 근본과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것 같아 말씀 올리겠습니다. 근본적으로 부민관에서 이 회의가 열릴 수 있는 이유는! 이 시간에도 국군이 피를 흘리며 적과 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모장···”
국회의장이 잠시 말을 끊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또한, 저는 이 나라 총참모장이지, 대변인이 아닙니다. 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특공여단장의 행적이 궁금하시거든 그에게 직접 물으시고, 미국이 왜 신원확인을 요청했는지 궁금하시거든 미국에 직접 물으시는 게 가장 정확한 답을 얻는 길일 것입니다.”
의원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 뒤에도 김홍일 총참모장의 태도는 당당하고 반듯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저도 질문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이 회의 언제 끝납니까?”
육군 본부가 아닌 이곳에 있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
청천강 방어선. 특공여단 지휘 막사.
“또?”
“이게 마지막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미 눈앞에 쌓인 서면만 해도 한가득, 다들 날이라도 잡았는지 이곳저곳에서 서면을 보내왔다.
“후··· 이리 주게.”
지루하지 말란 건지, 서면을 보내온 곳도 다양했다.
워싱턴과 도쿄에서 보내온 서면엔 밴 플리트 장군과 지원군을 한반도에 파견하겠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담겨있었다.
“벌써 등 따시고 배들이 부르셨나. 가지가지 하는군···”
김홍일 총참모장이 직접 보내온 서면엔 미국이 나의 신원확인을 요청했고, 과거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구설에 오름과 동시에 자신이 의회에 출석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이건 볼 필요 없을 것 같고···’
마지막 장은 한 줄만 읽은 뒤 그냥 넘겨버렸다.
의회에서 김홍일 총참모장이 펼친 기괴한 활약상(?)이 소상히 적혀있었으니까.
결론은 나보고 알아서 하란 거잖아.
“여단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정찰 보고를 하기 위해 들어온 김동석 대위가 안부를 물었다.
“자네 먼저. 특이사항은 없나?”
“정찰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알겠네.”
청천강에서 된통 당한 이후 중공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마오안잉을 어떻게 팔아먹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펑더화이도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안색은 평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주치의 나노봇이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건강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
김동석 대위가 궁금함 반, 걱정 반을 섞은 표정을 지었다.
“별일 아니야. 내가 어떤 구설에 좀 휘말렸을 뿐.”
“어떤 썩어 문드러진 놈들이 감히 여단장님을 구설에 올린답니까? 분명 제정신이 아닌 놈들일 테니 너무 심려 마십쇼.”
“그 썩어 문드러진 게 국회야. 국회.”
“예? 그··· 제 뜻은 그러니까···”
국회라는 말에 김동석 대위가 화들짝 놀랐다.
“좀 더 할 순 없겠는가? 덕분에 속이 좀 시원해졌네.”
좀 더 해달라는 요청에 부끄러운 듯, 김동석 대위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궁금해 미치겠다 이거지?’
정식으로 정부에 내 신원을 요청한 걸 보면, 트루먼 대통령이 나에 대한 호기심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빈털터리 20살의 몸 상태로 1949년에 떨어졌다.
가족도, 연고도, 돈도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친 결과이자, 노력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첩보기관이 와도 내 정확한 신원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터, 그것도 최전방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최연소 여단장의 20살 이전 행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 그건 못 참겠지.
이건 국회에 서식하는 하이에나들이 절대 물어뜯어 보지 않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소재라는 건 인정한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국회와 정치적으로 엮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한번 구설에 오르기 시작한 이상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
“여단장님! 여단장님! 안에 계십니까!”
좀처럼 호들갑 떨지 않는 김상옥 중령이 호들갑을 떨며 헐레벌떡 지휘소 안으로 들어왔다.
“누가 보면 하늘이라도 무너진 줄 알겠군.”
“지금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헌병 대장이 직접 와 여단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김상옥 중령은 중공군이 공세를 펼쳐올 때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만했다.
부대에 찾아오는 헌병대는 그리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으니까.
“밴 플리트 장군과 지원군은 언제쯤 도착하는지 알아봤나?”
“일주일쯤··· 여단장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김상옥 중령이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들겼다.
“일주일? 충분하군.”
북한군을 물리치니 중공군이 쏟아지고, 중공군을 주춤하게 만드니 내부의 썩은 암세포가 나를 전이시키려 달려드는 꼴이었다.
피곤하기 그지없지만, 이런 썩은 암세포를 도려내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도려내 주리라.
“금방 돌아올 테니, 기다려.”
왜 헌병대가 왔는지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내가 그 어떤 죄도 지을 시간이 없다는 건, 24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나에 대한 걱정만이 느껴질 뿐, 그 어떤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 생기시면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특공여단 전 병력을 서울에라도 끌고 올 기세였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말만으로도 더없이 든든했다.
“달려오긴 어딜 달려와. 그럴 일 없을 거야. 아! 그놈 2명 상태 확인하고 밥 주는 거 절대 잊으면 안 되네. 밥은 잘 먹던가?”
“그릇 씻을 필요도 없이 싹싹 긁어먹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사료··· 아니지. 배식이 입맛에 잘 맞는 모양이군. 그럼 이만 나가보지.”
공백은 채울 능력이 없는 자에겐 지옥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기회나 다름없다.
아주 깨끗한 공백은 내가 채워나가기 나름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들.’
오래간만에 여단장이 아닌 이강산으로 날뛸 기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