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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97화 (97/149)

97화. 애국회(4)

서울 인근 어딘가. GOAT 지대 비밀 안가.

과다출혈로 죽지 않을 정도의 처치만 한 뒤, 이들 모두를 미리 정해놓은 장소로 끌고 갔다.

이름하여 진실의 방.

“여단장님. 안가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이 잠시 빨갱이들에게 넘어갔을 때도 근방에 인적조차 없었던 곳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조금 좁긴 하지만···”

“괜찮네. 오히려 좋아.”

좁은 건 전혀 상관없었다.

여기서 이놈들과 오순도순 살림 차릴 것도 아니고, 입에서 진실을 뽑아낼 수 있는 진실의 방으로 쓸 수 있으면 그만이다.

“내가 입이라도 뻥긋할 것 같은가! 욕되게 하지 말고 차라리 죽여라!”

얼라리요?

그런 대사는 일제 치하에 있을 때나 했어야지.

어딜 가나 꼭 저렇게 상황파악을 못 해서 한 대 더 얻어맞는 모자란 새끼들이 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그런 걱정이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다 죽여버릴 거니까.”

팔다리 통풍이 잘되도록 구멍을 뚫은 뒤 이곳에 잡아 온 놈들이 열다섯.

나와 최규봉 지대장을 포함한 지대원이 열다섯.

완벽한 1대1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총 서른 명이 이 좁은 안가에 옹기종기 들어차 있었다.

“자, 지금부터 시간관계상 존대는 생략하도록 하지.”

진실의 방 시작.

“먼저 소속과 이름부터.”

새근대는 숨소리 이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것이다.

“처음엔 다 그러더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입을 다문 포로들을 한 명씩 죽여가며 포로들의 심리를 압박하던데,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계속 말했듯, 시간이 별로 없거든.

“전부 손가락 한 개씩 꺾어.”

끄아아아아악! 끄아악!

사방에서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안가에 15명의 비명이 가득 찼다.

어떤 이는 새끼손가락, 다른 이는 중지, 검지 등 다양하게 취향껏 골라잡은 뒤 있는 힘껏 손가락 관절 가동 범위를 아득히 초월해 꺾어버렸다.

참고로 나는 제일 아플 것 같은 엄지손가락을 택했다.

“다시 이름.”

내가 운영하는 진실의 방은 세상 공평하다.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준 뒤, 그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이용구··· 이용구입니다.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가장 빨리 기회를 잡은 사람은 이용구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런 개만도 못한 새끼가 혼자 살겠다고. 야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야!”

“더러운 배신자 새끼! 천벌 받을지어다!”

“저것도 동지라고··· 웁.”

발언권 없이 시끄럽게 지방방송을 켠 놈들에겐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성한 팔이 없어 아픈 배를 부여잡지도 못한 채 옆으로 픽픽 쓰러졌다.

뒤에 있던 지대원들은 놈들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다시 제자리에 꿇려 앉혔다.

“무슨 협박을 받았지?”

“이번··· 이번 일만 도우면 과거 친일 경찰 행적을 전부 지워주고, 가족들과 편히 먹고살 기반도 마련해 준다 했습니다. 그때 생각이 짧아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실수.”

음.

내가 아는 실수의 의미와 이용구가 아는 실수의 의미가 다른 모양이다.

실수는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거나, 컵에 든 물이나 음료수를 쏟는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생각지 못한 큰 방귀를 뀐 뒤에··· 혹시 지린 건 아닌지 바지를 확인하는 것까지가 실수.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협력한 건 순전한 고의.

“좋아. 열외.”

열외라는 말에 안가가 시끌벅적해졌다.

“권중현이올시다!”

“윤덕영! 윤덕영입니다.”

이름만 열심히 외치는 부류와.

“독립운동하는 자들 사이에 숨어 그들을 몰래 밀고한 임선준입니다. 임선준!”

조금 심화 된 답을 외치는 부류.

이제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은 내 질문에 최대한 빠르게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다음 질문. 나를 죽이라고 시킨 자가 누구지?”

-저··· 저놈입니다.

-저희는 저자를 따라왔을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봐, 내가 먼저 말 꺼낸 거 안 들려?

워낙 여러 명이 한 번에 입을 열어대 시끄러운 탓에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진실의 방이 시작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를 물어뜯기 바빴다.

마치 태생부터 그러했듯이.

“내가 말하라고 하기 전까진 입 열지 마. 손가락 몇 개라도 남기고 싶다면. 거기, 네가 말해봐.”

이 지겨운 심문이 빨리 끝날만 한 정보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한 놈을 골라 발언권을 줬다.

“감··· 감사합니다! 발언권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감사하긴, 간사한 새끼.

“여기 있는 대부분이 경찰 출신입니다. 명령을 내리는 머리가 누군지는 모르나, 저기 있는 저 노덕술이라는 자가 허리··· 아니, 어깨쯤은 될 겁니다. 정말입니다. 다들 아니 그런가?”

못 볼 꼴 그 자체였다.

이 안에서도 꼬리를 자르고, 본인이 덜 더러운 똥이라며 믿어달라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네가 노덕술인가?”

“···”

나름 어깨라 입이 무겁다는 건가?

“끄아아악!”

검지와 중지를 한 번에 꺾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목소리엔 이상이 없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 헌병들이 내 뒤를 따라다니나 했더니, 자네 덕이었군.”

노덕술은 일제 치하에서 수사과장을 맡으며 독립운동가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반민특위 간부들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으며, 70만 원(현재 가치 100억 원 이상)이 넘는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쓰레기.

지금은 육군본부 제1사단 헌병 대장이다.

헌병 대장씩이나 되는 놈이 국군 지휘관 암살 현장에 직접 투입됐다는 건, 헌병 대장 정도는 우습게 움직일만한 큰 권력을 쥔 쓰레기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치안 기술자 노덕술. 그래. 그 정도는 버텨야 내가 질문하는 맛이 나지. 잔챙이들 다 치우고 새롭게 시작해볼까?”

노덕술을 심문하는 나와 눈이 마주치려는 사람은 안가 내에 없었다.

지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비명이 쉴새 없이 이어졌다.

“이 정도는 괜찮아. 사람 쉽게 안 죽어. 네놈이 자주 하던 말이잖아. 맞지?”

딱 죽기 직전까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치안 기술자’ 칭호를 얻게 해준 기술들을 고스란히 그에게 되돌려줘야겠다.

***

애국회 서울지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였음에도, 이종형 의원 이마에선 땀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현장 소식은 아직인가요?”

상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높낮이, 억양이 없는 기계음 같았다.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씁··· 금방 연락이 올 겁니다. 현직 군인들과 경찰 출신을 포함해 열다섯이나 보냈습니다. 연락이 조금 늦어지는 것일 뿐, 이미 완벽하게 처리했을 겁니다.”

대단한 착각.

그럼 에도 이종형 의원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죽는 건 매한가지일 테니까.

연락이 조금 늦어진다는 핑계는 회장의 인내심을 그리 오래 잡아두지 못했다.

“이종형 의원. 이리 가까이 오세요. 가까이.”

이종형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으로 다가가자, 커다란 손이 그의 울대를 움켜쥐었다.

“으윽··· 켁. 회, 회장님···”

손톱을 세워 울대를 움켜쥐었는지, 이종형 의원 목에서 난 피가 상의까지 적셔 들어가고 있었다.

피를 보자, 애국회 회장은 웃었다.

재밌다는 듯이.

“반민특위에 끌려가 복날 개 맞듯 맞아 죽을 놈을 국회 의원으로 만들어 놨으면··· 주인이 시키는 일은 실수 없이 해야죠. 안 그런가요. 이종형 의원?”

“젝··· 제ㄱ···”

이종형 의원의 성대가 짓눌려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자, 회장이 손아귀의 힘을 풀어줬다.

얼마나 강하게 쥐어뜯었는지, 목에 난 손톱자국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허업··· 허···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청천강에 가서라도! 이 이종형이 직접 그놈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래요. 언제부터 그런 잡놈들을 믿었다고. 설사 놈이 간신히 도망쳤다고 한들, 사태파악을 하기 전에 숨통을 끊고 오세요. 이번에도 제대로 일 처리를 못 한다면··· 이 의원 당신 딸들이 내 가랑이 사이에 꿇어앉아 내 양기를 맛볼 영광을 얻을 테니.”

“지금 당장···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오로지 생존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생존 앞에서, 자신의 가족이 모욕당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의원?”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종형 의원이 화들짝 놀랐다.

“내가 말하기 전까진, 앞으로 이곳 문턱을 드나들 때 네발로 기어 다니세요. 동네 똥개 새끼 마냥. 아시겠죠?”

“예! 회장님.”

대답과 동시에 이종형 의원이 곧장 바닥에 엎드렸다.

2개의 팔과 2개의 다리를 가진 인간이 아닌, 4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밖으로 빠져나간 이종형 의원이 다시 사람처럼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장 자신의 의원실을 향해 뛰었다.

“의원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머 목에 피···”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사정이 있어 당분간 의원실에 못 올지도 몰라. 누가 나를 찾거든, 다른 말은 하지 말고 그리 전해. 알겠어?”

“피 좀 닦으시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시킨 일이나 해. 어? 나가봐.”

그의 보좌관이 피를 닦을 천 쪼가리를 가져왔지만, 신경질을 내며 보좌관을 나무랐다.

보좌관이 똥 씹은 표정을 하며 뒤돌아섰다.

“총··· 총을 어디에 뒀더라? 분명 여기에 넣어뒀는데.”

일전에 호신용으로 구비 해 둔 리볼버 권총을 찾아 서랍장 이곳저곳을 다 뒤졌다.

모든 서랍장을 빠짐없이 열었음에도, 권총은 보이지 않았다.

“보좌관! 보좌관!”

의원실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본인이 아니면 보좌관뿐이다.

이종형 의원이 신경질을 내며 좀 전에 나간 보좌관을 찾았다.

“거참 부르면 빨리빨리···”

문이 열리고 들어온 이는 보좌관이 아니었다.

“노덕술이? 이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어? 연락은 왜 안 했고 꼴은 또 그게 뭔가!”

“실패··· 실패했습니다. 이강산 대령은 우리가 어찌해 볼 상대가···”

노덕술의 상태는 살아서 말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디 한 곳 성해 보이는 곳이 없었다.

온몸 곳곳에 묶어놓은 붕대에선 피가 배어 흘러나왔다.

“실패? 실패라니. 일단 앉게. 어떻게든 일을 끝마치라는 지시가 떨어졌어. 보좌관! 보좌관! 이 염병할 새끼가!”

자기 생각만 할 뿐, 당연히 노덕술의 상태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보좌관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그가 직접 의원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문밖엔, 상상조차 못 한 인물이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다리 사이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나왔다.

***

이종형 의원 의원실.

노덕술이 입을 여는 건, 단순한 시간의 문제였다.

태생이 입이 가벼워 나라까지 팔았는데, 손에 쥔 부와 권력이 사라질까 두려워 조금 무거워졌을 뿐이지.

문 앞에서 만난 보좌관을 아주 잠깐 꿈나라로 보낸 뒤 노덕술을 들여보냈다.

사이 좋게 대화할 시간을 좀 주려고 했는데, 반대편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뭐··· 뭐야. 자네가 어떻게···”

아씨.

쌌네. 쌌어.

예의 없게 초면에 오줌이나 지리다니.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국군 특공여단장 이강산 대령이라고 합니다.”

“그···그래.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종형 의원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용무를 보기 전에, 이 말을 들으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민족을 배반해 부를 축적한 그대들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한없이 미미하리라. 그 끝을 보러 왔습니다. 의원님.”

이종형 의원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럴만하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부수러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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