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애국회(5)
이종형 의원이 씨알도 안 먹힐 시치미를 떼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엄연한 이 나라 국회의원일세. 자네가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네!”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마주했을 때, 근육이 풀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배변 활동이 이루어지는 건 꽤 흔한 일이다.
바지를 저렇게 축축하게 적신 모습을 교과서에 사진으로 싣고 싶은 충동이 샘솟았다.
“의원님이 그토록 열심히 찾으시는 게 혹시 이겁니까?”
소련제 M1895 리볼버 권총.
방아쇠울 안에 검지를 집어넣어 한 바퀴 돌린 뒤 이종형 의원에게 내밀었다.
“그···그건 내 물건이 아닐세.”
“전방 지휘관인 저도 구하기 어려운 소련제 리볼버 권총이 어떻게 의원님 탁상 서랍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내 물건이 아니래도! 이보게···이 대령.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내가 뭐든 다 들어주겠네. 돈··· 돈이 필요한가? 아니면 승진?”
이종형 의원의 시치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 아무리 안간힘 써도 좁은 개구멍조차 보이질 않았다.
“돈도 필요 없고, 승진도 필요 없습니다. 의원님께서 주시지 않아도 제가 원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뭐든 다 들어주겠다면서 돈과 승진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역시, 이 인간이 가장 우선시 생각하는 게 부와 권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왜···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이유라···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의원님께 두 가지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이종형 의원이 대가리가 아니라는 건, 그와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토록 콩알만한 간을 가진 인간이 그림자에 숨어 많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을 리 없다.
“자네를 위한 선택지를 고른다면, 날 정말 살려줄 텐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걸 보면, 악당 소리도 들을 자격이 없다.
“첫 번째 선택지는 제가 시키는 간단한 일을 몇 개만 하시면 됩니다. 물론 모든 각본은 제가 준비해드릴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무엇보다 얼굴에 철면피를 까는 것이 가장 중요한만큼, 의원님께 딱 어울리는 일이 될 겁니다.”
“오! 그런 일이라면 자신 있네. 두 번째 선택지는 뭔가.”
“두 번째 선택지는··· 이 총을 의원님께 돌려드리는 겁니다. 단, 이 안에 들어있는 총알은 의원님 몸속에 심어 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연좌제는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해도 민중은 의원님 무덤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 어떤 선택지를 고르시겠습니까?”
연좌제는 사형의 방식을 교수형으로 한정 짓고 당사자만 처벌하도록 개혁되면서 1894년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해서 고려 시대부터 전해져 오던 3족을 멸하던 풍습이 완전히 사라질 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정적으로, 각종 편법으로도 연좌제는 이어진다.
이종형 의원을 비롯한 매국 친일인사들에겐 민중이 연좌의 벌을 내릴 것이다.
상황이 이럴 진데, 이보다 쉬운 선택이 또 어디 있기나 할까?
그리 오랜 고민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무조건 첫 번째··· 첫 번째 선택지를 고르겠네. 내가 일을 제대로 해내기만 하면, 난 이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야. 그렇지. 그렇지 않은가?”
이종형 의원이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저는 현 시간부로 의원님 손에 죽은 겁니다.”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탕! 탕! 탕!
손에 쥐고 있던 소련제 M1895 리볼버 권총 방아쇠를 세 번 당겼다.
“윽. 지금 저는 의원님 손에 죽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앞으로 하셔야 할 일은 노덕술 저 친구가 알려드릴 겁니다.”
대한민국 국군 특공 여단장 이강산.
이종형 의원 의원실에서 잠들다.
내일까지만.
이종형 의원이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 듯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착각은 때론 좋은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내가 살려준단 말에 대답한 적이 있던가?’
나는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
이종형 의원과 노덕술이 애국회 서울지사로 달려가고 있었다.
“자네. 절대 회장님과 눈을 마주쳐선 안 되네.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야.”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의원님이나 잘하십시오.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글쎄. 그건 미안하게 됐다니까. 그리고, 잘잘못을 가리자면 그게 어디 내 잘못뿐인가?”
“됐고, 빨리 가기나 하세요. 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은 금방 벗이 되는 법이다.
노덕술과 이종형 의원은 둘도 없는 벗이 되어 있었다.
“다 왔어. 부름이 있기 전까지 여기서 잠깐 기다리게.”
이종형 의원이 애국회 서울지사 대문을 넘었다.
‘제기랄. 어쩌다 내가 이런 꼴이 되어선. 여기서 도망갔다간 노덕술 저놈이 날 쏠지도 몰라.’
노덕술이 이강산 대령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모르는 이상, 잠깐 사귄 벗 이상의 사이는 될 수 없었다.
서로를 믿는 건 도저히 불가했다.
물론 이강산 대령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마자 도망칠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노덕술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접어두기로 했다.
군에 몸담은 노덕술도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특수부대가 이강산 대령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는데, 얼마 못 가 잡힐 게 뻔했다.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고른 선택지에 맞게 행동하는 것.
그와 동행한 노덕술 역시 이종형 의원과 마찬가지인 이유로 선택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이종형 의원입니다.”
-들어오세요.
문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자, 이종형 의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회장님. 성공··· 성공했습니다. 제가 이강산 그놈을 처리했습니다.”
“시신은 가져왔습니까?”
애국회 회장이 의심의 눈초리를 켜며 이종형 의원을 바라봤다.
혀에서 나오는 말 말고, 증거를 가져오란 소리였다.
“지금 당장 확인시켜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요? 지금 당장은 어렵다?”
회장이 뿜어대는 살기에 오금이 저리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이종형 의원이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은 일이 조금 복잡하게 꼬였던 터라··· 제가 권총을 챙기러 간 사이, 어떻게 알았는지 이강산 그놈이 의원실에 제 발로 찾아왔었습니다.”
말을 하는 내내 눈 한번 감지 않았다.
이 정도면 거짓말이 체질인가 싶었다.
“지금 연락이 안 되는 한 놈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놈이 제 신원을 밝힌 것 같습니다. 곧바로 총 한 발을 갈겼는데 빗나가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가히···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놈 같았습니다.”
“말만 듣자면 그놈이 아니라 이 의원 자네가 송장이 되었어야 맞는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애국회 회장이 코웃음 치며 웃었다.
이종형 의원은 그에 굴하지 않겠다는 듯,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때마침 제가 일전에 이강산 대령을 암살하기 위해 보냈던 노덕술이라는 자가 끝까지 이강산 대령의 뒤를 밟아 제 의원실에 들어왔고, 둘이 합심해 겨우겨우 놈 머리와 심장에 총알을 우겨 박을 수 있었습니다. 노덕술은 이강산 대령이 쏜 총에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어 제대로 거동조차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근방에 대기시켜 놨습니다.”
“만약 지금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여부가 있겠습니까. 일 백 번 고쳐 죽겠습니다. 회장님.”
“노덕술이라는 자를 만나보면 알겠군요. 지금 데려오세요.”
회장이 노덕술을 만나보겠다는 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종형 의원이 겨우 한숨 돌리며 밖으로 나가 노덕술을 불러들이고는, 주사위를 노덕술에게 넘겨주었다.
“육군본부 제1사단 헌병 대장 노덕술이라 합니다. 존귀하신 회장님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의원에게 노 대장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오늘 이 의원 일을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노덕술의 뻔뻔함은 이종형 의원보다 한 수 위였다.
노력하지 않아도 말이 우수수 자연스레 쏟아졌다.
“이강산 대령의 시신은 현재 전사자 시신을 보관하는 곳에서 제 부하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공산 게릴라의 소행으로 수사 방향을 잡기 위해 멋대로 시신을 옮긴 점,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 의원.”
“예! 회장님.”
“노 대장.”
“예.”
애국회 회장이 이종형 의원과 노덕술을 차례로 불렀다.
이름만 불렀음에도,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노 대장 말대로 이강산 대령의 시신이 전사자 시신보관소에 있다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이시영 부통령은 안타까운 조카의 비보를 접했겠지요?”
송곳같이 예리한 질문이었다.
국군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이강산 대령의 죽음을 늦게 알리더라도, 그의 핏줄인 이시영 부통령에겐 전달 되었어야 앞뒤가 맞다.
“그렇습니다.”
노덕술은 당연하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그것까진···”
둘이서 같은 교육을 같은 사람에게 받아도 조금 부족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이종형 의원이 말을 절며 자신이 그러한 인간이라고 알렸다.
“이 의원.”
회장의 부름에 이종형 의원이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예··· 예. 회장님.”
“이 의원은 나를 봐온 몇 년간 내 눈을 먼저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이 말입니다. 마치 뻔뻔한 가면을 쓴 사람처럼.”
이종형 의원의 먼지 만큼 아주 작은 틈을 발견하고는 그 틈을 벌려 대기 시작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이시영 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를 알아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1시간? 30분?”
“회장님··· 그게···”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통령님껜 보고가 들어갔기에 이미 상심이 크실 것입니다.”
이종형 의원이 말을 꺼냄과 동시에 노덕술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여기.”
애국회 회장이 손뼉을 치자, 이내 주변에 있던 애국회 간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시영 부통령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육본 전사자 시신보관소에 오늘 들어온 시신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예. 회장님.”
애국회 회장이 문밖으로 나가려던 간부 뒤로 싸늘한 말을 더했다.
“내일까지 전 간부들에 대한 소집 명령을 내리세요. 배신자의 최후가 어떤지 보여줄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까. 그때까지 이 둘은 매달아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줄에 묶인 채 끌려나가는 이종형 의원은 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장 입에서 배신자의 최후라는 말에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다.
모든 이에게 존대하며 고상한 척하는 회장이 얼마나 잔인무도한 인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이 모든 걸··· 어떻게···”
끌려나가는 노덕술 또한 정신이 혼미했다.
다만, 회장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이 모든 판이 한 사람의 손바닥 안에서 굴러가고 있음에 대한 공포감.
공포가 그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