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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2화 (102/149)

102화. 동계 준비(2)

소련 공산당. 정치국 긴급회의.

윗입술 위에 난 콧수염이 인상적인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이 의자에 앉아 회의에 참석한 정치국원들의 얼굴을 뚫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중공 저우언라이 총리가 지금 모스크바로 오고 있다는데,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잔인하고 냉혹한 독재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스탈린이 내뱉는 말엔 높낮이나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억양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

정치국원 사이에서 정적이 흐르자, 스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꼿꼿한 걸음걸이로 정치국회의장을 걸어 다녔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스탈린이 한 정치국원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묻자, 정치국원의 얼굴에 불안감이 도졌다.

스탈린은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냉혹한 시선과 손길을 받은 정치국원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중공이 군사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체면 무릅쓰고 달려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대답은 모스크바 길거리에 있는 거지를 데려다 놔도 할 법한 대답이군.”

정치국원이 스탈린 취향에 맞춰 최대한 간결하고, 핵심만 대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리 마음에 들지 못한 모양이다.

“저우언라이 총리가 헛걸음했다 생각하지 않게, 적당한 명분만 챙겨 보내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침묵을 깨고 소련 중앙위원회 서기국원 니키타 흐루쇼프가 입을 열었다.

“오! 흐루쇼프. 자네로군.”

“만주에 집결하는 중공군에 군사 고문단을 추가로 보내 주겠다 약조하고, 북한 내 제한된 지역에서만 소련 공군기를 띄우는 정도가 적당하지 싶습니다. 서기장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국원의 대답을 들은 스탈린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저우언라이 총리가 직접 오는데, 그 정도만으로 돌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다른 정치국원의 의견이 나왔지만, 스탈린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긴급회의는 그저 형식상의 절차일 뿐, 이미 모든 건 스탈린의 마음대로라는 것을 모르는 정치국원은 없었다.

“군대를 모스크바 시장에서 판다면 저우언라이 양손 가득 쥐어 보내 주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장에선 군대를 팔지 않지.”

스탈린이 혼잣말하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회의장 안에 있는 모든 정치국원이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이 전쟁은 기회야. 기회라고! 역시 악마는 내 편이고 훌륭한 공산주의자였어. 안 그런가?”

깊은 감명이라도 받은 표정을 지으며 스탈린이 일어서자, 장내에 있던 모든 이가 일어나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우언라이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편지라도 전해줘야겠어. 받아 적게.”

받아 적을 대상을 지목하지 않자, 모두가 펜을 꺼내 그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한반도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끄는 것은, 중공군이 현대전 연구 기회를 얻게 되는 것과 더불어 미국과 트루먼 정부의 위신을 실추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어차피 인민은 봄이 되면 새로 돋아나고, 겨울이 오면 떨어지는 낙엽과 같으니 강한 군대를 가진 중공은 희생을 두려워 말고 맞서 싸워라! 우리 소련이 함께 하겠다.]

인간은 어차피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죽는 법이니, 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중공군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한반도에서 끝없는 소모전 양상의 결전을 벌이면, 중공과 연합군 양측 모두 재건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재화가 필요하거나 재건이 불가하다는 속셈이 대놓고 드러나 있었다.

편지를 받아든 입장에서 반가울 말은 소련이 함께 하겠다는 단 한 문장뿐.

“저우언라이가 도착하면 음··· 어디 보자.”

스탈린이 장내 모든 정치국원과 눈을 마주치며 신중을 기울였다.

“그래. 명색이 중공 총리인데, 흐루쇼프 자네가 좋겠군. 여인이라도 붙여서 적당히 환대하고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적은 전문을 쥐어서 돌려보내도록.”

“짧은 시간이라도 서기장님께서···”

“нет!(아니!) 나는 머리가 아프군.”

스탈린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가 손동작을 사용했다는 건, 이미 확고하니 되묻지 말란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흐루쇼프가 질문을 멈춘 뒤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 짧은 찰나, 스탈린이 즐겨 했던 말이 흐루쇼프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할 뿐이다.

재밌는 싸움을 구경할 생각에 스탈린의 콧수염이 씰룩거렸다.

***

청천강 방어선. 미 8군 사령부.

연합군 중요 지휘관 회의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영국, 프랑스, 터키군 지휘관까지 모여 회의장 안이 북적였다.

“일단 이거부터 받게.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관께서 직접 보낸 편지네.”

회의 시작에 앞서, 워커 중장이 내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궁금함에 슬쩍 편지봉투를 뜯어 편지를 보려다 이내 편지를 집어넣었다.

“자, 그럼 시작하지.”

얼핏 보면 워커 중장이 이 회의 자리를 만든 것 같지만, 이들을 모두 모이게 한 건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관이었다.

내 부탁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자리를 만든 데 이어 편지까지 보내왔다.

“다들 직접 몸으로 느껴 알고 있겠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이곳 바람이 매서워지고 있네. 우리도 충분한 방한 대책을 강구해 대비하라는 지시네.”

“날씨가 벌써 꽤 쌀쌀하긴 하다만··· 원래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제일 추운 법 아니겠나.”

통역을 통해 워커 중장의 말을 전해 들은 김석원 군단장이 입을 오물거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렇긴 하지. 제주도도 춥긴 할 테니.’

김석원 군단장의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게 겨울을 피해 터지는 건 아니기에 추운 날씨 속에 벌어졌던 전투는 역사적으로 꽤 많았다.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도 추웠고, 나치가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때 겨울도 매서웠다.

과학적으로 따지고 보면 방한 장비라는 개념이 없었던 임진왜란 당시 겨울이 제일 추웠을 것 같기도 하고.

“저희 터키군은 충분한 방한복을 보급받았습니다.”

“영국군도 마찬가집니다.”

“프랑스 군인은 추위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좋다.

문제는 가장 먼저 냉동 참치가 될 후보 1, 2, 3이 되었다는 것뿐이고.

“한반도의 동장군은 그리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닙니다.”

냉동 참치 후보들을 향해 일침을 던졌다.

“보급받은 방한복은 일반적인 추위를 견디는 데는 충분한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합니다.”

옷을 껴입은 채로 격하게 움직이면, 추운 날씨에도 몸에서 땀이 나기 마련이다.

땀이 나 옷이 젖은 상태 그대로 있으면 냉동 참치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어디 그뿐만인가?

과하게 껴입은 옷은 몸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어 전투 효율마저 떨어트린다.

“오! 그간 말로만 듣던 한국군 이강산 대령이 있었군. 반갑네. 나는 터키여단장 타흐신 야즈즈 준장일세.”

깊은 눈매와 높은 코가 인상적인 터키여단장 야즈즈 준장이 먼저 오른손을 건넸다.

“국군 특공여단장 이강산 대령입니다.”

야즈즈 준장이 먼저 내게 관심을 보이자, 영국, 프랑스 지휘관까지 합세해 순식간에 글로벌 관심거리로 우뚝 섰다.

“이 대령 자네가 그리 자신 있게 말한다는 건 방한복 말고 다른 해결책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내 예상이 맞나?”

워커 중장이 그간 내 표정이나 말투를 유심히 관찰한 모양이다.

모두가 나를 위해 멍석을 깔아줬다.

정말··· 나 없으면 어쩔래?

“해결책이 있습니다. 단! 이 방법은 제가 가장 먼저 고안해 냈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새로운 발명은 당연히 돈이 된다.

아직 국내에 있는 군수 공장이 가동되기 전이라 이런 방한용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만, 군수 공장이 가동되면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천문학적인 돈으로 바뀔 것이다.

“이게 올겨울 동장군을 상대로 싸울 무기입니다.”

군복 안주머니에서 동장군에 대적할 최신예 무기를 꺼내 들어 흔들었다.

“이 대령··· 괜찮네. 자네가 신도 아니고, 어찌 매번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겠는가. 나는 다 이해함세.”

김석원 군단장이 슬픈 눈으로 위로와 함께 어깨를 두들겼다.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무기를 나눠줬다.

“1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겁니다. 급하게 만들어 가져온 터라 완벽하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 이상의 병력을 이끄는 지휘관들이 한데 모여 작은 주머니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만지는 모습에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침묵 속에 30초가 지났음에도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어디선가 어색한 기류가 흘러나왔다.

‘역시 밀봉이 제대로 안 돼서 그런가···’

내가 선보인 무기의 성공 여부는 공기를 차단하는 밀봉에 달려있다.

밀봉이 제대로 됐다면, 이제 곧 반응이 와야 정상이다.

“앗 뜨거!”

“C'est chaud!”

“몹시 뜨거우니 다들 조심하게!”

한 명도 빠짐없이 내가 쥐어진 무기를 탁상 앞에 던졌다.

‘기껏해야 60도 일 텐데 뜨거워 봐야 얼마나 뜨겁다고 호들갑은···’

김석원 군단장이 던진 주머니를 손에 쥐었다.

아!

뜨겁다. 조금 많이.

갓 나온 뜨거운 공깃밥을 아무 생각 없이 잡은 느낌이랄까?

“저도 처음 만들어 보는 터라··· 배합 조절이 잘 안 된 모양입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손으로 만져도 괜찮을 정도로 변했다.

“이게 뭔가? 분명 처음 받았을 땐 차가운 주머니였는데.”

“저는 이 주머니를 핫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철의 산화 발열반응을 이용하는 핫팩은 철 가루, 활성탄, 소금과 조금의 수분만 있으면 쉽게 제조할 수 있다.

“대단하군. 대량생산하고 보급할 수만 있다면 동상 피해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겠어.”

철 가루가 공기와 접촉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밀봉만 가능하다면,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얼마든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핫팩은 국내에서 얼마든지 대량생산이 가능합니다.”

그 누구도 제작 방법이나 원리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오직 대량생산이 가능한가.

비용대비 효율이 충분한지 정도가 끝이었다.

‘분위기 보아하니 그것까진 필요 없을 것 같다.’

나노봇이 심드렁하게 [4Fe+3O2 -> 2Fe2O3+발열] 이라고 써진 화학 반응식을 눈에서 지워버렸다.

“역시 대단해! 한국 명문가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지덕체를 다 갖춘 지휘관이군. 그래서 말인데 우리 터키여단에도 당연히 충분한 양을 보급해 주겠지?”

“우리 프랑스···”

핫팩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프랑스 군인은 추위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은 벌써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자, 핫팩에 대해선 나도 상부에 보고하겠네. 이게 핫팩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워커 중장이 핫팩으로 인해 뜨거워진 분위기를 잠시 가라앉힌 뒤 말했다.

“중공 내부에서 주석의 맏아들이 청천강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이 도는 모양이야.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 중일세.”

이제야 마오쩌둥이 본인이 아끼던 새끼 돼지가 사라진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중공이 곧 마오안잉을 전쟁영웅으로 만들기 시작할 테고···’

아주 지독하게 재밌는 장난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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