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3화 (103/149)

103화. 제임스 앨워드 밴 플리트(1)

“중공 측에선 곧 마오안잉의 죽음을 숭고하고 거룩한 희생으로 포장할 겁니다.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따라 중공군 사기가 크게 오를 테고.”

탱크나 전투기는 숭고한 죽음에 관심도 없겠지만, 감정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

게다가 중공군은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70만이라는 대규모 보병을 주력으로 한다.

저글링이 인구수를 꽉 채워 달려드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까지 마쳤다면?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

“자네 말대로 분명 사기 진작에 써먹겠지. 어쨌건 적군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우리로선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네.”

워커 중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쟁에서 국가 핵심인물이나 그의 가족, 고위급 지휘관을 포로로 잡으면, 몸값을 매겨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일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흔하디흔한 일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까지 싹 다 중국의 역사라고 우겨대는 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사령관님. 벌써 크게 걱정할 필요 있겠습니까? 놈들이 어떤 사상으로 정신을 무장한들, 압도적인 화력 앞에 장사 없습니다. 안 그런가. 이 대령?”

“그야 물론입니다.”

이건 사실 호재다.

마오안잉의 죽음으로 기강을 잡은 중공군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트려 버릴 완벽한 호재.

부활한 마오안잉을 중공군 앞에 내세워 조련할 상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석원 군단장이 던진 말에 호응해주자, 워커 중장 입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왠지 자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니 어딘가 어색하군. 혹··· 이번엔 마오안잉을 자네가 데리고 있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워커 중장이 눈을 부릅뜨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미군에 정보가 새어 나가기라도 한 건가?’

대체 누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뗐다.

불확실한 상황엔, 시치미 떼는 것이 정석에 가까운 대처다.

나중에 내가 마오안잉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시간이 오면?

그땐 마오안잉인지 몰랐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허허. 농담일세. 농담. 그랬으면 좋겠다. 이거지.”

워커 중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마터면 야심차게 준비한 내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했던 마음을 저 인간이 알기나 할까?

“밴 플리트 장군이 도착하면 곧 청천강 방어선을 떠나 북진해야 할 테니, 다들 긴장을 늦추지 말게. 알겠나?”

드디어 청천강에 멈춰있던 연합군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이 나라에 호재일까?

호재가 아니라면, 호재로 만들 것이다.

***

미국 중북부 오대호 서쪽 위스콘신주.

“매카시! 매카시! 매카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매카시의 이름을 열렬히 외치고 있었다.

반공을 위해 추가파병을 결정한 미 국무부의 결정에 힘입어 미 전역, 특히 위스콘신주는 매카시 의원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자연스레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시민 여러분께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감사합니다.”

매카시 의원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걸어 내려오자, 동양인 남자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수고했네. 이렇게 뜨거운 집회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이번 집회는 특별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님께서 참석하신다는 소식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카시 의원에게 손을 내민 동양인 남자는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그런가? 내 나라에도, 자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지.”

“내일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게 아니라면,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음··· 좋네. 가지.”

안 그래도 숙소에 들어가면 위스키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잘 아는 바가 있습니다. 그리 가시죠.”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보좌관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분명 계획대로 미국에 온 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미 군용 화물기에 올라타 미국에 도착하고, 미국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미 의원들을 만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고 긍정적 반응을 얻는 것에도 성공했다.

미 의회는 한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파병을 했고, 추가파병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윽···”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속이 쓰렸다.

입안이 침 대신 신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이런,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멀미?”

매카시 의원이 목을 부여잡는 이승만 대통령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괜찮네··· 술이라도 한 모금 마시면 괜찮아 질게야···”

“보좌관! 운전 좀 부드럽게 할 순 없겠나? 대통령님께서 멀미하시잖아.”

매카시 의원의 괜한 트집이 운전석을 향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멀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를, 세상에서 제일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 운전해도 나아질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약으로도 절대 나을 수 없는 멀미였으니까.

***

매카시 의원이 자주 가는 단골 바.

바에는 바텐더 한 명과 매카시, 이승만 대통령뿐이었다.

문밖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경호원들이 앞문과 뒷문, 근처를 철통같은 보안으로 지키고 있었다.

“대통령님. 속은 좀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매카시 의원이 스카치위스키를 잔에 따르며 물었다.

“별일 아닐세. 한잔하지.”

맑고 청명해야 할 잔 부딪히는 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울림이 없는 것이 어딘가 깨진 곳이 있는 것 같았다.

“이봐! 미쳤어? 잔이 깨진 걸 확인도 안 하고 가져오면 어떡해. 자네 혹시···”

“죄···죄송합니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지켜보겠어. 조심하라고.”

서빙 실수 한 번에 공산주의자가 될 뻔한 바텐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새 잔을 꺼내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건 매카시 의원의 주특기이자 필살기.

몇 번 당한 적이 있는지, 바텐더가 적절한 대응을 선보였다.

“잔 조금 깨진 걸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깨진 곳에 입이 닿아 베이기라도 하면 큰일 아닙니까. 돌아가실 일정은 언제로 잡고 계십니까?”

매카시 의원이 자신도 모르게 이승만 대통령의 치부를 찔렀다.

“돌아 간다라···”

이승만 대통령이 잔에 든 위스키를 한 번에 비워냈다.

높은 도수의 술이었음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끔찍한 고통을 동반해 찾아오던 멀미, 두통의 원인이 매카시 의원의 질문 속에 있었다.

돌아갈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기 두려웠다.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것까진 충분히 수습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까짓 법쯤이야.

최대한 소리소문없이 바꿔버리면 그만이었다.

“자네는 시민들 관심에서 멸공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져도 지금 그 기세를 유지해나갈 수 있겠나?”

이승만 대통령의 날 선 물음에 매카시 의원이 옆자리에 놓아둔 검은 서류 가방 하나를 테이블에 올린 뒤 말했다.

“멸공의식이 희미해져 갈 때쯤이면, 이 가방이 저를 지켜주지 않겠습니까?”

[이 안에 모든 이름이 있다!]

매카시 의원은 자신의 서류 가방 안에 미 국무부 205명의 공산 간첩 이름이 적힌 서류가 있다고 호언장담해왔다.

한 번도 그 가방을 열어 보인 적은 없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요 며칠 사이 이승만 대통령의 최후의 보루는 전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는 저런 가방을 가진 매카시 의원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제 명까지 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군.”

이승만 대통령이 위스키 한잔을 더 들이켰다.

두 번째 잔은 식도가 탈 정도로 쓰게 느껴졌는지, 목을 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의석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도 모자라, 애국회가 와해됨과 동시에 그의 정치기반 또한 절반이 넘게 박살 났다.

“그 얘긴 들었습니다. 미국엔 한 종류의 바람이 불지만, 한국에는 지금 두 종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미국엔 멸공의 바람.

한국엔 멸공과 친일파 청산에 대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런 이야긴 하지 않아도 되네. 괜히 마음만 불편해짐세.”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떠받들고 예를 갖추는 것 같으면서도, 무시하는 것도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한국과 미국, 그 어디에도 제대로 섞일 수 없다고 놀리는 것처럼.

“그나저나 자네··· 정말 그 가방에 간첩 명단이 들어있기는···”

가득 찬 3잔의 독한 위스키를 연거푸 마신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 점점 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앉은 채로 곯아떨어졌다.

가방에 대한 질문이 입에서 나오다 끊겼다.

“거참··· 술도 못 마시는 모양인데 과음하기는···”

그가 잠들자, 매카시 의원이 다리를 꼬아 편한 자세를 만들었다.

손을 흔들어 이승만 대통령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가방을 열었다.

“이제 좀 편안하게 즐기면서 마셔볼까?”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따라준 위스키보다 더 고급 위스키, 그리고 마른안주였다.

매카시의 가방 속 서류는 모두를 속인 뻥카.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

평양 비행장.

미군 수송기 한 대가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착륙했다.

곧이어 수송기 문이 열리고, 제임스 앨 워드 밴 플리트 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추가 파병된 미 3개 보병 사단이 하늘과 바다를 통해 한반도에 도착하고 있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이 3성 장군 밴 플리트를 보내온 걸 보면, 도쿄에 있는 우리 형이 아직 자기 밥그릇을 잘 쥐고 있는 모양이다.

밥그릇이 위태로웠거나 위태로울 예정이었다면 밴 플리트 장군이 아니라 리지웨이 장군을 보내왔을 테니까.

“수송기 창밖으로 바라본 한국이 참 아름답더군. 반갑네. 자네가 이강산 대령?”

지휘관들 사이에서 나는 이미 관등성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특히 미군 사이에선 나도 모르는 소문이라도 돌았는지,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부탁하는 일이 잦았다.

“맞습니다. 국군 특공여단장 이강산 대령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밴 플리트 장군을 맞이하고, 한반도의 특징과 전황을 설명하고 전하는 역할은 내가 자원했다.

한국에 우호적인 마음을 가진 미군 3성 장군에게도 한 번쯤 내 팬클럽이 될 기회를 줄 필요가 있으니까.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적 규모가 70만이 넘는다고?”

비행장에서부터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듣던 대로 화끈한 성격인 것 같다.

“이미 넘어와 있는 병력까지 포함하면 대략 90만, 쉽게 100만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00만? 젠장. 오자마자 포탄부터 더 달라고 조르게 생겼군.”

준비를 많이 해왔다더니, 생각보다 통이 작다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인당 한 발씩은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예상했던 70만 개로는 너무 부족해.”

그의 입에서 나온 70만 개는 총알이 아니고 포탄이다.

연합군과 국군이 보유한 105mm, 155m, 175mm, 203mm 고폭탄.

밴 플리트 장군의 시원시원함에, 나는 한술 더 뜨기로 했다.

“포탄은 넉넉히 150만 발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 쏘기 귀찮으면 큰 거 한 발도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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