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5화 (105/149)

105화. 연극(1)

보고를 들은 즉시 밴 플리트 중장과 함께 통신대대 감청실로 향했다.

마오안잉의 죽음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미화해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나 마나 3류 영화에도 한참 못 미칠 테지만 뭐.’

밴 플리트 중장과 감청실 문을 열었을 땐, 방문 소식을 전해 들은 통신장교가 이미 재생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녹음기에 있는 재생 버튼을 꾹 눌렀다.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거슬리긴 했지만, 말을 알아듣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인민 여러분. 마오쩌둥입니다. 저는 5억 인민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한반도에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衛國)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터에 뛰어든 역사상 최대의 민병대가 제국주의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역시 뻔뻔한 것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100만에 가까운 민병대가 말이나 되는 소린가?

[제 맏아들 마오안잉 역시, 인민들 앞에 솔선수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오늘은 인민 여러분께 한 가지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흐느끼는 연기라도 하는지, 슬픔이 가득 찬 마오쩌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얼마 전, 인민지원군은 청천강이라는 곳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치열한 사투가 벌인 적이 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제 아들 마오안잉은 인민지원군의 한 지도자가 실은 제국주의자들의 첩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적에게 투항하려는 지도자를 생포하기 위해 전투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똥을 싸라 똥을 싸.

아무래도 마오쩌둥은 입으로 똥을 싸는 신기한 재주를 지닌 것 같다.

[지금은 생사를 확인할 수조차 없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으로 향한 인민지원군 부대는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으나, 제국주의자들이 쏘아 대는 포탄이 빗발치듯 떨어지던 강에서 마오안잉은 거룩하고 숭고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제 아들이어서가 아닌, 마오안잉은 전 인민에게 영웅과도 같은 모습을···]

“이 대령, 끝까지 들을 필요가 있겠나?”

밴 플리트 중장이 지루했는지, 입을 쩍 벌린 채 하품을 해댔다.

“이 정도만 들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더 들어봐야 뭐···”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느라 입에 쥐가 날 지경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판이 훨씬 커졌다.

기껏해야 지휘관들에게 서면을 보내 정신교육 자료로나 써먹을 줄 알았더니, 중공 온 동네방네 소문을 다 뿌려대고 있었다.

“나도 자식 가진 부모로서,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자식을 선전 공작에나 써먹는 걸 보니 역겹기 짝이 없군.”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이어준 천륜이라지만, 공산 독재자들에게 있어 그깟 천륜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금이라도 슬퍼하긴 하겠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일.

오로지 제 밥상을 챙길 생각뿐이다.

“상상이지만 저러다 갑자기 마오안잉이 어디서 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상상력도 풍부하군. 정말 자네 말대로 그가 부활이라도 한다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재밌는 코미디 쇼를 직접 보는 셈이 되겠지.”

밴 플리트 중장이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재밌는 코미디 쇼.

주연 : 마오안잉, 마오쩌둥

조연 : 량싱추

연출 : 이강산

소품 : 달걀 바구니

전 세계를 열광시킬 쇼의 개봉박두가 임박했다.

[···인민들의 영웅! 마오안잉, 마오안잉을 영원히 기억···]

녹음기를 꺼버렸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새로운 종교단체라도 하나 만들 기세다.

인민들의 영웅?

지랄하네.

내가 키우고 있는 식충이다.

***

청천강 특공여단 지휘소.

“여단장님께 온 편지입니다.”

지휘소에 도착하자마자 편지를 전해 받았다.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내용이 수두룩하게 적혀있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허가]

지금 중요한 건 쇼를 대중들에게 선보여도 된다는 이 한 단어였다.

온 정성을 다 쏟아부어도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지금껏 해온 노력은 물거품이나 다름없다.

이 편지를 보내온 사람은 방송국으로 치면 국장이다.

국장이 상영해도 된다는데, 내 계획을 막을 자는 없다.

좋아. 이제 슛 들어간다.

현재 1위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건, 전쟁터에서 안타깝게 아들을 잃은 마오쩌둥의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신파 쇼였다.

나는 오늘 그에 대적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주연 준비 완료됐고··· 조연 준비 완료. 소품까지 완벽하군.’

단번에 지구 반대편까지 소식을 전달할 인터넷이 되는 시대에는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에 손이 닿아야만 완벽한 쇼를 만들 수 있다.

“여단장님. 도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 감독이 도착했다.

카메라 감독은 언제나 고성능 확성기가 되어주는 잭 제임스 기자로 정했다.

“매번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별말씀을. 부를 때마다 흔쾌히 와주시니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의 입이 무겁다는 건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오늘의 주인공이 마오안잉이라는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일 처리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그래그래. 잘 하고 나면 두 개 줄게. 알겠지?”

“두 개! 두 개!”

마오안잉은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있었다.

2~3명이 먹는 배식량을 혼자 다 처먹으니 살이 안 찔 수가 없었다.

배식량을 늘려 살찌운 건, 마오안잉이 예뻐서가 아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그것도 다 옛말이다.

미운 놈은 몇 대 더 신명 나게 패주는 거라면 모를까.

마오안잉은 대외적으로 얼굴이 노출될 포로다.

그런 포로의 행색이 삐쩍 말라 다 죽어간다면, 그 점을 파고들어 어떠한 선전을 해올지도 모른다.

상처 하나 없이 낯빛이 좋고 평소보다 살이 쪄있다는 건, 지금부터 마오안잉이 할 행동이 고문이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마오안잉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싹 날아갔다.

“자자, 좀 더 웃어보시고··· 3. 2.1 김치~”

김치?

미국인 잭 제임스 기자 입에서 김치라는 말이 나오자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이 꺽꺽대며 웃었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국 군인들을 사진에 담다 보면 늘 하던 말이라 따라 해 봤는데 혹시 이상한 말인가요?”

“전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일단 일부터 끝내시죠.”

행여 실수였을까 걱정하는 잭 제임스 기자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내 쇼는 그게 3부작으로 기획되어 있다.

1부작은 달걀을 입에 가득 쑤셔 넣은 채 우걱우걱 씹어먹는 마오안잉의 모습을 찍어 신문은 물론, 전단지를 만들어 중공군 위에 잔뜩 뿌려주는 것.

“이 정도면 사진은 충분히 잘 나올 것 같습니다.”

잭 제임스 기자가 카메라를 만지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을 세뇌당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진 하나로 마오안잉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일 것이다.

어쩌면 신이 되어 부활했다는 헛소리로 마오안잉을 모시는 사이비종교가 곳곳에서 생겨날지도 모르고.

그때, 2부가 연이어 이어진다.

“큐!”

정신병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남들이 다 알지언정, 정작 본인들은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 눈에는 오직 살고 싶다는 욕망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죽어가는 마오안잉에게 부유물을 던져 살려준 은인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친부 마오쩌둥보다 달걀 몇 개를 던져주는 나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지금 마오안잉을 누군가 처음 본다면, 전공에 눈이 멀어 미친 광기로 수만 명을 청천강에 수장시킨 지휘관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흠흠.”

마오안잉이 목을 가다듬은 뒤, 준비된 대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인민 여러분께. 저는 마오쩌둥 주석의 맏아들 마오안잉입니다. 최근 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을 큰아들이 거역해버리는 아름다운 대본이었다.

“저는 총사령관과 군장의 허가 없이 적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인민해방군이 청천강에 수장됐고, 시신을 수습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제 눈으로 직접 봤지만, 뼛조각 하나 성한 게 없을 정도니까요.”

대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에도, 마오안잉의 시선은 오로지 내가 흔들고 있는 달걀을 따라다닐 뿐이었다.

“얼굴을 보면 아시겠지만, 고문이나 협박 같은 건 없었습니다. 이들이 포로가 된 저를 정성스레 치료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달걀! 제가 좋아하는 달걀까지 챙겨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저 마오안잉은 죽지 않았습니다! 멀쩡히 살아있어요!”

컷.

이 정도면 2부는 충분하다.

손에 쥔 달걀을 던져주자, 행여 깨질까 두려워 온 몸을 던져 받아내며 실실 웃어댔다.

아주 현실적인 대본이었다.

대본에 적힌 모든 게 사실이었으니까.

본인이 추격 명령을 내린 것으로 시작해 수많은 병력을 수장시킨 것도, 고문이나 협박 같은 건 없었다는 것도.

마오안잉을 치료하고 달걀을 챙겨주는 것까지 모두 사실이다.

“오늘은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잭 제임스 기자님,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아무래도 기자 생활에 있어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포로를 이토록 잘 대우해주고, 포로는 사람 된 도리로 진실을 고하는 참혹한 전쟁 이면에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니까요.”

잭 제임스 기자가 받은 대본은 주어만 뺀다면 마오안잉의 대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게 가장 핵심이긴 하지만.

나는 원하는 대로 연출을 만들었고, 잭 제임스 기자는 기자 생활에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 받았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다는데, 그러면 장땡이지.

3부는 관객의 반응과 아직 나오지 않은 주연의 반응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될 계획이다.

“이만하면 놈들의 선전에 대응하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1대대장이 자신도 만족한다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 영상, 소리.

원한다면 실시간 라디오까지.

마오안잉이 살아있음을 부정할만한 요소는 전부 완벽하게 제거했다.

남은 건 1부와 2부를 동시에 공개하고 마오쩌둥의 반응을 기다리는 일이다.

“충분? 내 생각엔 훌륭한 것 같은데.”

그래. 다시 생각해도 훌륭하다.

수백, 수천 번을 더 고민해본 결과 마오안잉의 몸값은 싯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오쩌둥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선전용 간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반응을 보인다면···

예상치 못한 잭팟이 터져줄지 모른다.

‘미국이 끙끙 앓아대고 있을 사랑니를 내가 빼 줄 수 있지.’

미국의 사랑니.

힘들게 잡은 마오안잉의 몸값을 가장 비싸게 받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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