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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6화 (106/149)

106화. 연극(2)

후대는 나에게 이것만큼은 반드시 감사해야 한다.

구하기 어렵지 않은 달걀 몇 개만 있으면 중국인들과의 말싸움에서 승리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테니까.

“적과 선전전을 펼칠 때 가장 흔하게 쓰이는 방법이 몇 가지나 있는 줄 아나?”

달걀을 손에 쥐고 좋아하는 마오안잉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1대대장 김상옥 중령에게 물었다.

“그야 가장 기본은 적을 최대한 죽일 놈으로 만드는 것이겠고···”

그다음은?

수많은 전쟁에서 검증된 방법은 많다.

첫째는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방어를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이해관계가 아닌 숭고한 목적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

셋째는 적은 대패하고 있지만, 아군은 연전연승하고 있다고 알리는 것.

등등 많지만, 아무 말이나 지어내 적을 혐오하도록 선전하는 방법만으론 그리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물론 거짓 선전도 때론 잘 먹혀들 때가 있지. 한 가지 경우만 조심한다면.”

“한 가지? 그 한 가지 경우가 어떤 것입니까?”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사람들은 참혹하고 잔인한 전쟁터에서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난세를 극복해줄 영웅이 필요한 것이다.

마오안잉의 죽음은 중공 입장에선 전쟁영웅으로 포장하기 너무 좋은 재료였기에, 당연히 영웅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듯, 선전하는 것도 사람이네. 도박판에서 떠도는 말이 하나 있지.”

구라치다 걸리면?

그대로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다.

중공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기 손모가지를 스스로 날릴지, 자존심을 버리고 싹싹 빌지.

그야말로 그것이 알고 싶어 미칠 노릇이다.

‘모든 건 내일. 막이 오르면 알게 되겠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쇼의 막이 오를 생각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흥행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쇼.

개봉박두.

***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까지.

북한의 북쪽 상공에 같은 임무를 받은 거대한 폭격기들이 이미 출격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폭격기의 움직임이 평소에 비해 날래 보였다.

폭탄창은 평소와 같이 꽉 차 있었지만, 그 안에 든 건 무거운 폭탄이 아닌 가벼운 종이였으니까.

종이라고 해서 절대 무시할 게 아니다.

쉬지 않고 밤새 찍어낸 수십 만장의 종이는, 하나하나가 재래식 폭탄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테니까.

“바람은?”

B-29 폭격기 조종사 윌리스 대위가 부조종사 모리스 중위에게 물었다.

“날씨가 우리를 반기나 봅니다. 남풍, 드디어 기다리던 남풍입니다.”

모리스 중위가 조종석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투하 준비.”

“투하 준비!”

그간 해왔던 임무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는 일보다 쉬운 임무였다.

폭탄을 투하할 땐 적 머리 위로 비행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적의 대공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남풍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투하.”

“투하! 잘 가라.”

모리스 중위가 복명복창과 동시에 폭탄창을 열었다.

7000M 상공.

B-29 폭격기 폭탄창이 열리자, 그 안에 담겨있던 수십 만장의 작은 전단이 바람을 타고 펄럭이며 북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거··· 전단 폭격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풍경이 장관입니다. 대위님.”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폭격기 창문으로 보이는 모든 시야에 보이는 건 전단뿐이었다.

전단 속에는 달걀을 든 채 해맑게 웃고 있는 마오안잉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투하 완료. 기지로 복귀한다.”

윌리스 대위가 전단을 보고 신기해하는 모리스 중위의 들뜬 모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복귀 명령을 내렸다.

“전쟁을 재밌다고 말해선 안 되는 거겠지만··· 이 전쟁은 뭔가 재밌는 일이 잔뜩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모리스 중위.”

윌리스 대위가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모리스 중위를 바라봤다.

“예?”

“재밌어. 이건 재밌는 게 맞아.”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

각기 다른 곳에 출격한 4대의 폭격기 안에서 모두 같은 대화가 오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지 못했다.

***

중공 마오쩌둥 집무실.

집무실 안에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단 둘뿐이었지만,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저우언라이가 작은 전단 여러 개를 마오쩌둥이 앉아있는 탁자 앞에 내려놨다.

“이 전단의 진위를 놓고 지금 당 간부들부터 중앙군사위원회까지 난리가 났습니다. 긴급회의를 열어달랍니다. 열어주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모여 열기라도 할 기세였습니다.”

좀처럼 듣기 힘든 저우언라이의 흥분한 육성이 집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이··· 이···”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마오쩌둥은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저우언라이가 흥분한 이유도 모를 리 없다만, 역시 가장 흥분하고 있는 사람은 마오쩌둥이었다.

아들이 죽은 것으로 모자라 그 죽음을 선전으로 이용했다.

슬픔은 잠시일 뿐,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죽음이었다는 합리화를 가까스로 마친 뒤였다.

“분명! 분명 뼛조각도 못 찾는다면서, 대체 어떻게···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고 몇 번을 물어!”

분에 못이긴 마오쩌둥이 저우언라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탁자에 있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다른 이들은 의문과 의심을 품을 뿐이었지만, 그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살이 좀 오르긴 했지만, 전단 속에 있는 남자는 맏아들 마오안잉이 분명했다.

“진정, 진정하셔야만 합니다. 지금 마오안잉이 어떻게 살아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나중에 따져봐야 할 문제일 뿐입니다. 주석 동지께서 직접 마오안잉의 죽음을 인민들에게 알렸습니다. 이 전단이 더 퍼지기 전에, 서둘러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우언라이가 숨을 고르고 최대한 침착하게 뜻을 전했다.

일반적으로 자식의 죽음을 겪은 아버지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죽도록 얻어맞았을 테지만, 마오쩌둥의 태도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당연히··· 당연히 지금 당장 제국주의자들이 꾸며낸 거짓 선동이라고 발표해야겠지. 내가 지금 믿을 건 저우언라이 자네 하나뿐이네. 제발··· 제발 서둘러주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거짓말이 들통나기 직전 상황에 즉면했을 땐, 그 누구라도 초조함을 감추기 힘든 법이다.

조금 전까지 불처럼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 던지던 마오쩌둥이 저우언라이의 손을 꽉 잡으며 부탁했다.

일국의 지도자가 거짓 선동을 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지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없다.

몇몇 일부만 아는 소문이라면, 그들을 전부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된다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역시, 이 전단을 본 모두를 죽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정말 마오안잉이 살아있고, 마오안잉이 놈들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이라면··· 놈들이 준비한 게 이것뿐이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더 큰 바람이 불어닥칠 겁니다. 지금 당장 거짓 선동이라 발표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그럼 내가 어찌하면 되는가. 어찌!”

급할수록 돌아가라지만, 돌아가는 길이 표지판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항상 마오쩌둥에게 해결책을 던져줬던 저우언라이였지만, 이번만큼은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둘러야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되는 엿 같은 상황에 저우언라이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동지, 죄송하게도··· 처음으로 제가 내놓는 해결책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사실 방법이 없는 건 당연했다.

제갈공명이 중공에 재림해도 답도 없다며 미국이나 한국으로 전향해 돌아갈걸?

“괜찮아. 괜찮으니 빨리 뭐라도 말해보게. 빨리!”

마오쩌둥이 화장실 없는 곳에서 괄약근에 신호가 온 사람 마냥 동동 뛰어댔다.

“일단은 동지가 말씀하셨던 대로 놈들의 거짓 선동임을 밝히시는 겁니다. 놈들이 준비한 게 그뿐이라면, 발표와 동시에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만으로도 상황 악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저우언라이가 무언가 결심한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그래. 내부 단속이야 제일 시끄러웠던 놈들 모가지 몇 개 따면 그만 아닌가. 만약 놈들이 또 다른 것을 준비했다면. 그다음··· 그다음은 어찌하면 되겠는가.”

거짓말이 들통났다면 최대한 빨리 사과하는 것이 가장 원만하게 사태를 해결할 방법임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중공 주석이라는 권력을 어떻게 얻었는데.

수십 년간 이어진 내전에서 승리하고 나서야, 겨우 얻어낸 권력이다.

권력의 탈을 쓴 악마가 절정의 쾌락을 선사하며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만에 하나 상황이 나빠질 조짐을 보인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저우언라이를 보고 있자니, 마치 악마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본디 소란은 더 큰 소란에 파묻히는 법입니다.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자네 지금 설마···”

마오쩌둥이 저우언라이가 할 말을 예상했다는 듯, 이를 꽉 깨물었다.

“인민들이 미국과 한국을 더 혐오하고, 경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당장 만주에 있는 군을 움직여야 합니다.”

만주에 있는 70만 중공군은 아직 겨울 대비조차 제대로 못 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출정 준비를 마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둘 중 하나를 고를 시간이 왔다.

만주에 있는 70만 중공군이 완벽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출 때까지 기다리거나, 마오쩌둥 자신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좋네. 그리하지. 지금 당장 펑더화이와 린뱌오에게 출전 명령을 내려야겠네.”

마오쩌둥의 대답은 빨랐다.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머릿속엔 출전 명령을 내릴 생각뿐인 것 같았다.

“주석께서 마음의 결정을 하셨다면, 이제 남은 일은 제발··· 제발 놈들이 준비한 게 이것뿐이길 하늘에 비는 것뿐입니다.”

저우언라이도 지휘관으로 대규모 군을 지휘한 경험이 있다.

제대로 겨울 준비를 하지 않고 한반도로 70만 대군을 출전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해결책을 찾았으니, 자네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틀림없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질 테니.”

마오쩌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잔뜩 조였던 괄약근을 풀어버린 장소가 화장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아니었음에도, 괄약근을 풀자 그저 행복이 밀려왔을 뿐이었다.

***

특공여단 지휘소.

“무사히 전단 투하에 성공했답니다. 바람을 잘 탔다면, 지금쯤 중공군이 숨어있는 곳까지 전단이 사방팔방 뿌려졌을 겁니다.”

통신 장교가 전단 투하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전해왔다.

“과연 놈들이 어떤 작전계획으로 나올지··· 좀처럼 예상이 가질 않습니다.”

2대대장 문기준 중령이 심오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딱 이때, 이 말을 하면 좋을 것 같다.

“2대대장. 그들도 다 계획이 있겠지만 항상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네.”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고.

처맞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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