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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8화 (108/149)

108화. 출현(2)

미그기의 출현은 제공권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확보한 제공권을 통해 밤낮 가리지 않고 항공 폭격 세례를 퍼붓던 연합군 폭격기에 큰 위협이 되었으며, 폭격기 운용이 제한된다는 건 공중뿐 아니라 지상군 작전 계획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곧 목표지점에 도착한다. 수송기가 비상착륙한 곳에 중공군이 개미 떼 마냥 몰려있다니 빨리 끝내주자고. 기수 올려.”

맥코넬 대위 편대가 압록강 부근에 다다르자 기수를 올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시야를 확보해 적과 머스탱 편대를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맥코넬 대위님! 발견했습니다. 1000피트 밑 3시 방향입니다.”

“하강.”

“하강!”

맥코넬 대위의 지휘 아래 전투기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고도를 낮추자 머스탱 편대가 처한 상황이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크게는 미그 15 전투기 3기가 머스탱 2기의 꼬리를 잡기 위해 기동하고 있었다.

머스탱 조종사들은 속도, 선회율, 무장 등 불리한 기체조건을 급상승, 급하강, 배면 비행과 같은 곡예비행으로 대응하고 있는 듯했다.

엔진 부근과 날개에서 검은 연기가 거칠게 피어오르는 걸 보니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긴 했지만.

“편대장님, 놈들이 상승합니다.”

미그기 편대가 맥코넬 대위 편대를 발견한 듯, 기수를 올리며 머스탱 전투기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고생했어. 친구들. 이제 우리한테 맡기라고.”

이제라도 와줘서 고맙다는 듯, 머스탱 전투기가 좌우로 날개를 두어 번 흔들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맥코넬 대위가 이끄는 F-86 세이버 편대와 미그 15기 편대가 서로를 격추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이 발발한 뒤, 최초의 제트기 공중전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F-86 세이버는 레이더를 비롯한 최첨단 장비들을 기수에 탑재하고 흡기구, 엔진, 노즐이 일렬로 연결되어 고속을 내는데 효율적인 기체로 설계되었다.

F-86 세이버 전투기의 무장은 기수 부근에 달린 12.7mm M3 중기관총이었지만, 1문이 아닌 6문.

미그기에 비하면 일격 필살 화력 면에서는 약할지 몰라도 엄청난 연사력으로 적기를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미 공군이 자랑하는 최신예 전투기 중 하나였다.

“놈들이 정면으로 옵니다!

“선두부터 처리한다.”

맥코넬 대위의 간단명료한 명령이 떨어졌다.

F-86 세이버 편대와 미그기 편대가 서로 얽히고 섞이기를 반복하다 서로의 꼬리 대신 정면을 바라본 채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편대 간 거리는 600M.

워낙 빠르고 거리가 먼 탓에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미그기 기체 한 부분이 열리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열린 것은 37mm 기관포 포문.

세이버 편대를 향해 무언가 찔끔 쏟아져 내리는가 싶었지만, 허공을 가른 뒤 더는 쏟아지지 않았다.

40발밖에 장전되어 있지 않던 37mm 기관 포탄은 이미 머스탱과의 교전에서 거의 다 소비한 탓이었다.

편대 간 거리 300M.

사실상 거의 충돌 직전이었다.

“편대장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좌측으로 회피!”

드디어 명령을 받은 모든 F-86 편대원들이 조종간을 급히 왼쪽으로 꺾었다.

“우측으로 꺾어서 꼬리 잡아!”

충돌 직전 거의 마지막 순간에 급격히 방향을 전환한 뒤, 재빨리 반대편으로 기수를 틀어 정면으로 지나간 적기의 꼬리를 잡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기동이었다.

“놈들도 우리를 따라 기수를 우측으로 꺾었습니다.”

미그기 편대 역시 꼬리를 잡히지 않고 꼬리를 잡기 위해 급상승하는 동시에 기수를 우측으로 꺾었다.

머스탱과의 교전이 초짜 중공 조종사들에겐 오히려 교육이 되었는지,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기동을 보였다.

“최대 각도로 좌로 선회! 우리가 어떤 놈들인지 보여주자고. 훕!”

안 그래도 40도가 넘는 큰 각도로 우 선회하던 중이었다.

조종간 한계를 시험해보겠다는 듯 좌측으로 힘을 주어 꺾자, 엄청난 압박감이 온몸에 전해졌다.

심하게 격렬한 기동으로 인해 기체 밖으로 튕겨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제기랄!”

“하버. 먼저 갈 거면 가서 밥이나 준비해 놔.”

가장 비행경험이 적은 하버 대위가 격렬한 기동을 버티지 못하고 편대 대열에서 이탈했다.

“뒤집어.”

맥코넬 대위가 또다시 짧은 명령을 뱉어냈다.

그와 동시에 3대의 F-86 세이버 전투기가 기체를 뒤집으며 배면 비행을 선보였다.

기체를 뒤집자, 자연스레 기동 압력으로 인해 몸과 조종석이 순식간에 밀착되었다.

이제 적과의 거리는 불과 100여 미터.

두 번의 급선회와 배면 비행으로 적기의 꼬리를 잡았다.

맥코넬 대위가 조종간을 앞으로 밀어 넣어 맡은 미그 15 전투기를 완벽하게 조준선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조종간에 걸린 방아쇠를 당겼다.

“굿바이.”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F-86 세이버 기수에 달린 M3 중기관총 6정이 엄청난 연사속도를 뽐내며 순식간에 수 백발의 탄환을 미그기를 향해 쏟아냈다.

날아간 수 백발의 탄환은 단순히 조종석, 엔진실, 날개 어느 한 곳에 맞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체 모든 부위에 고루 박혔다.

“격추했습니다.”

“격추! 오늘부로 저도 에이스입니다. 편대장님.”

미그 15기 3개가 빠르게 고도를 잃으며 바닥으로 처박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격추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미그기 조종사들이 추락하는 기체를 붙잡고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음에도, 이미 기수가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땅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축하한다. 갈매기와 함께 기지로 복귀한다.”

하늘에서 격전이 이뤄지던 틈을 통해 구조를 마친 SA-16 알바트로스 수륙 양용 구조기가 떠올랐다.

상공의 수호자.

F-86 세이버의 화끈한 데뷔전이었다.

***

미그 15 전투기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

더불어 그 미그기 편대를 맥코넬 대위가 이끄는 F-86 세이버 편대가 한 대도 빠짐없이 격추했다는 소식은 연합군 전 부대에 전달됐다.

수송기와 머스탱 전투기가 격추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긴 했지만.

“여단장님께서 F-86 전투기를 미 본토에서 받아오기 위해 그토록 미 장성들과 시간을 보내셨던 겁니까?”

“음··· 그렇다고도 볼 순 있겠군.”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이 F-86의 활약을 전해 듣자마자 물어왔지만, 애매한 질문에 애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반은 맞고 반을 틀렸으니까.

국군 내에선 김홍일 참모장과 김석원 군단장을.

연합군 내에선 맥아더 사령관과 워커 중장, 가장 늦게 한국에 도착한 미군 장성 밴 플리트 중장을 설득해 F-86 세이버 전투기를 일찍 한반도에 전개하도록 노력한 건 맞다.

‘진짜 비밀병기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사실 물 밑에서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연합군 공군은 무조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B-29 폭격기를 비롯한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꽤 격추된 이후에야 급하게 심각성을 느꼈을 테니까.

“이제 연합군이 미그기 대항마로 세이버 전투기를 도입했으니, 연합군의 제공 장악력이 더 강력해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글쎄··· 확실한 대항마는 되겠지만, 압도적 승리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번에 F-86 편대를 이끈 편대장 맥코넬 대위는 투입되기 전부터 에이스였거든. 같은 수준의 실력을 지닌 조종사가 미그기에 타고 있었다면 쉽게 승부를 점칠 수 없었을 거야.”

에이스라는 칭호는 적기 5기 이상을 격추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베테랑 조종사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였다.

F-86 세이버 전투기와 미그 15 전투기 간 전투가 벌어지면, 베테랑 조종사들이 모는 세이버 전투기가 압도적인 교환비를 기록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로 장단점이야 있겠지만, 초기형 F-86은 미그 15에 비해 기체가 크고 무겁다는 분명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여단장님 말씀대로라면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공군 놈들과 전투에 돌입할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텐데···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

김상옥 중령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우리는 그간 해오던 대로만 하면 돼. 탱크 한 대 없던 시절에도 북한군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주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천국이다. 천국.

그간의 노력은 F-86 세이버 전투기만을 한반도에 배치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을 위했다면, 이미 더 빨리 한반도 상공에 F-86 세이버 전투기가 날아다녔을 것이다.

“탱크는 그렇다 쳐도 전투기는 좀···”

암만 땅 위에서 대공포를 쏴대며 날고 기어봤자, 하늘에서 빠르게 날아다니는 전투기는 잡기 어려운 법이다.

전쟁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만큼,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각국이 기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만큼 큰일은 없을 테니, 걱정 접어두고 돌아가게.”

어두운 표정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여 그의 긴장을 풀어줬다.

“사실 걱정할 게 뭐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이강산 대령이라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가 보겠습니다. 여단장님.”

이강산 보유국?

그건 그렇지.

걱정을 떨쳐버린 김상옥 중령이 막사 밖으로 나섰다.

“형은 곧 도착할 테고···”

갑자기 하늘이 두 개로 쪼개지지만 않는다면, 맥아더 사령관이 내일 평양 비행장에 도착할 것이다.

도착하는 즉시 연합군 수뇌부들이 모여 중공군 공세에 대응할 큰 맥락과 세부적인 작전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아, 온 김에 마오안잉과 부둥켜안은 사진이라도 몇 개 찍어둬야지.

“후···”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었다.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할 비밀병기까지 숨겨 둔 마당에 조금 쉬어도 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지금 내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서로 엉키고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쟁 초기엔 몸이 좀 고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머리 쓸 일은 드물었다.

이 전쟁은 이미 동북아 패권국을 바꿀 만큼 중요한 전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 양반이 절대 가만히 앉아 있을 양반이 아니지.”

조만간 또 다른 대어(大魚)한 마리가 자기도 전쟁놀이에 껴달라며 팔딱거리겠지.

중공이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타격을 입고 숨을 헐떡이면, 섬으로 쫓겨난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지도자 장제스가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어쩌면 지금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참전시켜 달라며 트루먼 대통령 바짓가랑이를 흔들고 있을지도?

이처럼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꼬여버린 국제 정세를 풀어내는 건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지럽게 꼬여있다 한들 실타래의 처음과 끝.

엉킨 실타래를 푸는 핵심인 처음과 끝을 찾아 노력하면 결국 언젠간 풀리게 되어있다.

처음과 끝을 찾아내려면?

“마오쩌둥 이놈을 더 열심히 괴롭혀야겠군.”

중공과 소련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내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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