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9화 (109/149)

109화. 비밀병기(1)

평양 비행장.

익숙한 필리핀 육군 원수 정모에 레이밴 선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이 콘파이프를 입에 문 채 수송기에서 내렸다.

옆에는 그의 부관 펀치 중령이 함께였다.

“오셨습니까. 사령관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자네와 한시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밀린 서류를 한 트럭은 처리하고 오는 길이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맥아더 사령관이 다가와 오른팔을 내 어깨에 걸며 어깨동무를 했다.

“세이버 전투기가 맹활약하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네. 굳이 야심차게 준비한 비밀병기까지 출격시킬 필요가 있겠나?”

그걸 말이라고?

야심차게 준비한 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해 박살을 내줘야지.

“전황과 관련된 이야기는 회의시간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역시! 내 끼니까지 챙겨주는 건 자네밖에 없군.”

“저도 도착하는 대로 사령관님께 여쭤보려 했습니다만···”

맥아더 사령관이 쏘아낸 눈총을 펀치 중령이 못 본 척 흘려낸 뒤 말했다.

“종종 퇴근도 일찍 시켜줬더니만··· 쯧.”

펀치 중령이 울상을 지었다.

수년간 맥아더 사령관과 함께 지내온 펀치 중령조차 그의 비위를 제대로 못 맞추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우리 형이 유순한 양으로 변하는 건 오직 내 앞,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모양이다.

“출발하지.”

맥아더 사령관이 지프에 올라탔다.

서류가방을 든 펀치 중령이 지프를 향해 다가오던 중이었다.

출발하라는 그의 말에 운전병이 슬며시 눈치를 살폈다.

“펀치 중령은··· 안 데려가십니까?”

“놓고 가. 오늘도 일찍 퇴근하라고 해.”

아무래도 펀치 중령의 진급은 물 건너간 것 같다.

***

연합군 지휘관 비밀회의.

대외적으로 공개된 시간과 장소에서 하는 회의가 아니었다.

핵심 수뇌부 몇몇을 제외하고는 오늘 회의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핵심 지휘관들의 보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사령관님 들어오십니다.”

앉아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엉덩이를 떨어트렸다.

만약 여기 모인 개개인 장성들이 다른 회의에 갔더라면, 누워서 회의해도 뭐라 꾸짖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다들 앉게. 밴 플리트 자네도 있었군. 생활은 좀 어때. 지낼만한가?”

맥아더 사령관이 가장 먼저 안부를 건넨 사람은 밴 플리트 중장이었다.

“전쟁터가 어딘들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탈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 저보다 제 아들놈이 더 정신없이 바쁠 겁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밴 플리트 중장이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아들이 참전했음을 은연중 모든 이에게 각인시켰다.

평생을 군에 몸담아온 그가 아들과 같은 전장에 있다는 것이 걱정도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럼 우선 골칫거리들부터 해결하지. 어젯밤에만 B-29 폭격기 3기가 격추당했다는 보고를 받았네. F-86 전투기까지 투입한 마당에, 작전 수행 중에 문제라도 있었다는 건가?”

“공군 측에서 알려온 바로는, 국경 지역에만 수십 대의 미그 15 전투기가 출격해 있었다고 합니다.”

워커 중장이 맥아더 사령관의 물음에 답했다.

맥코넬 편대가 미그 15 전투기 3기를 격추한 지 불과 하루.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중공군을 정찰, 폭격하라는 임무를 받고 출격한 B-29 폭격기가 모조리 미그기에 의해 격추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말을 꺼냄과 동시에 장내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발언권이 넘어왔다.

“지금 국경을 넘어온 미그기는 전부 소련이 제공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미그 15 전투기는 중공, 무엇보다 소련에도 귀중한 공중자산입니다. 연합군 F-86 전투기와 첫 교전에서 편대가 모두 격추당했다는 결과를 듣고도 곧바로 미그기를 국경에 재출격시킨 게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소련이 암암리에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는 없었다.

중공군은 국경을 넘어 참전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어떠한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

지금까지 흘러온 흐름만 보더라도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승전에 대한 신뢰를 얻었을 리 없다.

“그야 같은 공산 진영의 큰 축인 중공이 크게 휘청거릴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와주는 것이지 않겠나?”

“물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같은 진영.

서로 어느 정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끼리나 통하는 소리다.

뒷방에 똬리를 틀고 앉아 소극적으로 전쟁을 바라보던 스탈린이 갑자기 수십, 수백 대의 미그기를 같은 진영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순히 중공에 넘겨줬을 확률?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극히 희박하다.

스탈린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게.”

워커 중장에 이어 맥아더 사령관이 물어왔다.

“그 정도 규모라면 소련이 미그기를 중공에 팔아넘기고 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십 원짜리 한 장 안 빼주고.

전쟁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다.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같은 진영의 국가를 돕기 위해 경제, 군사력을 제공할 때에도 분명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이해관계를 따지기 위해선 그 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비롯해 위치와 지정학적 특성, 잠재력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따지자면 당장 눈에 보이는 가치를 지닌 금이나 돈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중공은 경제적으로 그럴 여건이 안 될 텐데···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그런 판단은 못 내리지 않겠나?”

정상?

마오쩌둥이 과연 정상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애초에 그 새끼들이 언제부터 정상이었다고.

“음··· 정상이라는 게 상황마다 달라진다지만, 적어도 상식을 가진 지도자라면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시점에 70만이 넘는 대병력을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

자, 내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

“중공은 그야말로 북한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한반도에 들어오긴 했지만, 어쩌면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지도 모릅니다. 소련이라는 늪은 중공이 발버둥 칠수록 더 깊게 중공을 잡고 놔주지 않을 겁니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이 자리에 있는 고위급 지휘관들은 전쟁이 단순히 폭력배출의 수단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의해 시작되기도, 이해관계에 의해 끝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확한 중공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정보국을 쥐어 짜내고 있으니 곧 소식이 들려오겠지. 그리고 야간에 폭격기가 격추당하는 문제는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생각보다 이르긴 했지만, 모두에게 비밀병기를 선보일 시간이 왔다.

“어제부로 일본 니가타 기지에 있는 제41 전투 요격 비행대대 소속 조종사들이 F-94 전투기에 대한 기종 전환 훈련을 마쳤네.”

F-94 스타파이어.

F-94는 승무원 2명이 운전하는 단발복좌 터보 제트 전투기로서, 현재로선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레이더 중 가장 고출력 레이더인 휴즈와 AN/APG-33와 E-1 화기 관제장치를 탑재한 제트 야간 전투기였다.

“정말 잘 됐습니다. F-94까지 투입된다면 미그기 따위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밴 플리트 중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F-94의 등장은 B-26 폭격기 조종사인 그의 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전장치나 다름없었다.

“사령관님 혹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한 가지가 남았다.

천천히 입을 떼며 맥아더 사령관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마지막으로 말하려 했네. 현 시간부로 미그앨리는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지금까지 연합군 전투기와 폭격기는 미그앨리라고 불리던 개마고원, 국경 일대를 넘어 다니지 못했다.

공산군 조종사들은 이를 이용해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국경을 넘어 전장 이탈을 시전.

연합군 조종사들은 다 잡은 먹잇감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F-94 전개와 사라진 미그앨리.

두 가지가 의미하는 건, 연합군이 완벽한 제공 장악 능력을 갖췄다는 것.

‘준비 완료.’

국경을 넘어오는 해충들을 박멸하기위해

연합군이 지상에 이어 하늘에서도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

청천강 특공여단 지휘소.

비밀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 사람만 빼고.

“사령관님 좀 더 환하게 웃어보시겠습니까? 마오안잉 너도.”

맥아더 사령관과 마오안잉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기가 막힌 투 샷이었다.

“빨리 찍어줄 순 없겠나? 이놈 입에서 지독한 닭똥 냄새가 나거든.”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자, 웃으시고 진짜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셔터음이 들린 뒤, 맥아더 사령관이 재빨리 마오안잉에게서 떨어졌다.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단순히 선전에 사용하기 위해서 뿐인가? 이유라도 듣지 않으면 저 닭똥 냄새가 평생 코에서 빠지지 않을 것 같군.”

“선전에 사용하기 위함은 맞습니다. 잠시 이 뒤로 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사령관님.”

이미 중공 수뇌부와 군부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선전이 전선에서 행해지고 있다.

선전에 사용할 사진이야 많을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절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맥아더 사령관을 데리고 막사 뒤로 향했다.

몇 번에 걸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령관님 말씀대로 이토록 지독하게 선전을 이어가는 것엔 이유가 있습니다.”

“오! 역시. 진즉에 말해줬다면 숨을 더 오래 참을 수 있었을 텐데. 어서 말해보게.”

맥아더 사령관이 나를 선지자라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저 특유의 그윽한 눈빛이 드디어 나왔다.

“아직까진 소련이 전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기에 큰 영향이 없었지만, 언제나 작전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염두 했던 건 소련의 개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그기에 소련 조종사가 타고 있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는 것도, 미그앨리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전투를 벌인 것도.

모두 소련의 눈치를 어느 정도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야 우리 모두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소련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는 순간 말 그대로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고 말 테니···”

소련 눈치를 보지 말자는 게 아니다.

눈치를 살피되, 그렇다 해서 언제까지 모든 작전계획에 소련 눈치 보기 항목이 들어가 있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니까.

“전 세계가 소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는··· 그 어떤 이유보다 소련이 보유한 핵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핵폭탄 한 방으로 전쟁을 끝낸 미국이 핵폭탄을 두려워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미국이 소련의 핵을 두려워하는 건 사실이었다.

소련이 핵폭탄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소련은 이미 1949년에 핵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을 긴장시켰다.

“그야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 미국도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 건 사실이지.”

그래서 말인데.

“소련이 핵 투하 능력을 갖췄다고 확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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