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10화 (110/149)

110화. 비밀병기(2)

적막이 흘렀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맥아더 사령관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두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핵은 맥아더 사령관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지휘관의 말문마저 막아버릴 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네만···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한 것과 핵을 투하할 능력을 갖췄냐는 것은 분명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 현재로선 자네가 던진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

맥아더 사령관이 난처하고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그야 지구상에 스탈린을 포함한 몇몇만이 극비리로 알고 있을 테니까.’

미국 진주만을 공습할 정도로 정신 나간 사고방식을 가졌던 그 시기 일본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천황은 입고 있던 팬티까지 벗어 던지며 무조건 항복을 외치며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하물며 지금 미국과 소련이 가진 핵폭탄의 위력은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큰 파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핵무기가 아닌 그 어떠한 무기도 결국 적에게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소련이 핵무기 투발 수단의 개발 정도와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만 알아낸다면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입니다.”

“핵무기와 관련된 사항은 기밀 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기밀이네. 지난 수년간 미 정보국에도 전담팀이 있지만, 알아낸 사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설마 자네 머릿속엔 이것마저 알아낼 방법이 있다는 건가?”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온다.

아무리 그 분야에 타고난 인재일지라도, 인간으로서 넘을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인간이 치타보다 빨리 뛸 수 없고, 맨몸으로 새처럼 날 수 없는 것처럼.

“지금껏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작전, 일들도 알고 보니 모두 가능한 일이지 않았습니까. 시도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방법이야 무궁무진할 겁니다. 조금의 도움만 받으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릅니다.”

조금의 도움이면 충분하다.

약육강식만이 통하는 생태계에서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생명체보다 뛰어난 지능에 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니까.

우선 핵탄두를 맛보여주고 싶은 상대에게 배달하는 방법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말 그대로 B-29와 같이 커다란 전략 폭격기에 핵탄두를 실은 뒤, 목표지점까지 날아가 떨구는 방법.

현재로선 이 재래적인 방법이 유일하면서도 신뢰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다.

둘째, 셋째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라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미국과 소련에서 아직 개발조차 되지 않았기에 실전 배치까지는 너무 먼 얘기.

현재 소련은 첫 번째 방법을 실행할 TU-4라는 복제기를 보유하고 있다.

복제기의 정확한 보유 수량이나, 핵무기를 운반할 정도의 신뢰성이 갖춰졌느냐가 소련의 핵 투발 능력을 판가름할 것이다.

TU-4가 폭격기가 아니라 왜 복제기냐 하면 말 그대로 B-29를 나사 하나까지 분해한 뒤 복제한 복제품이었으니까.

‘그러게 소련 이 양아치들을 특히 더 조심했어야 한다니까···’

소련 또한 미국에 버금갈 훌륭한 항공기 제조 기술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춘 터라 단순하고 신뢰도 높은 설계기술에 국한되었을 뿐, B-29 전략 폭격기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설계 분야에선 미국에게 늘 뒤쳐져 있었다.

스탈린이 2차대전 당시 독일이라는 공공의 적을 몰아낸다는 명목하에 전략 폭격기의 배치를 미국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기술 유출을 우려한 미국은 당연히 콧방귀도 끼지 않았고.

미국이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음에도 복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태평양 전쟁 도중 일본을 폭격하고 돌아가던 길에 B-29 폭격기 몇 대가 소련 극동 기지에 불시착하는 일이 발생하고, 소련은 상호중립국이라는 핑계를 대며 불시착한 B-29 폭격기와 조종사들을 억류한 뒤 돌려주지 않았다.

아마 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좋아서 몇 날 며칠을 환호성을 질러댔을걸?

당연히 소련은 웬 떡이냐며 B-29 폭격기를 나사 하나까지 분해해 베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토록 기술 유출에 민감했던 미국이 소련에 직접 떡을 던져준 셈이 되어버렸다.

여기까지가 그야말로 웃지 못할 블랙코미디.

“빨리··· 조금 빨리 말해보게. 애가 타는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한 맥아더 사령관의 눈을 바라보며 나긋나긋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드리는 방법이 성공하려면, 중공과 그 수뇌부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여야 합니다. 중공 수뇌부들이 가진 권력, 돈, 명예. 그 모든 것이 덧없이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말입니다.”

톱니바퀴가 빠진 듯 정신이 나간 중공 수뇌부들은 마오안잉처럼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공을 벼랑 끝에 몬다··· 그 후엔? 그리고 나서는 어찌할 계획이지?”

“막다른 길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그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게 만들 겁니다. 상황을 그렇게 만들려면··· 사령관님의 말 몇 마디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는 듯, 목소리를 줄여 속삭이듯 말했다.

“예를 들면··· 적이 보유한 주요 군수산업 목표물들은 적 군사력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선, 그들의 전쟁 수행 잠재력 자체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라거나.

“한반도 내에 인위적인 분단 선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에는 어떠한 평화나 안전도 있을 수 없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만주, 시베리아 국경까지 돌진해 나가 한반도 전역에서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정도?

뭘 믿고 한국에 한반도를 통째로 넘겨주냐는 말이 나온다면 썩 내키진 않지만, UN이 향후 몇 년 한반도를 감시한다던가 하는 몇 가지 단기적 조항을 던져주면 그만이다.

“이쯤 되면 이 방법이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향한 지름길에 이바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거 중국과 일본에 당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대법관 앞에서 놈들 대가리를 있는 힘껏 찍어도 무죄판결이 나와야 할걸?

세상에 100% 확실한 일은 없다지만, 맥아더 사령관이 나에게 가진 신뢰는 100%다.

그럼 그럼.

이 각박한 세상에 믿을 사람 몇은 있어야 살맛 나지.

“좀 더 세부적인 계획만 있다면···”

“자세한 작전계획은 서면을 통해 올려드리겠습니다. 사령관님.”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맥아더 사령관을 향해 방긋 미소를 날렸다.

***

마오쩌둥은 아들의 얼굴이 떡하니 박힌 전단을 본 그날 이후,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끔은 사방에 있는 벽이 자신을 옥죄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은 환각이 보일 정도였다.

당 내부와 군부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을 처리하는 건, 순전히 저우언라이의 몫이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적군 최고사령관과 이리도 사이좋게 사진을 찍다니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끔찍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내전 중에도 이런 치욕은 없었습니다. 나 원 참, 이젠 이놈들의 뼈를 갈아 마셔도 속이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전투에만 몰두해도 부족한 판에, 병사들이 선전에 동요하고 있어요! 동요!”

“총리 동지. 선전에 동요하는 인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 모릅니다.”

일이 커질지 모르는 게 아니라, 이미 일은 커졌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만에 저우언라이는 머리가 쪼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제가··· 여러분께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모두의 말이 끝나자, 저우언라이가 입을 열었다.

“불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여기 모인 누구 한 사람이라도 대책을 가져온 사람이 있습니까?”

대책을 가져왔냐는 저우언라이의 말에 거침없이 튀어나오던 불만이 쏙 들어갔다.

말투 또한 온화하고 따듯하던 저우언라이의 평소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냉정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아, 한 가지만 더 말하겠습니다. 주석 동지 앞에선··· 절대 대책 없이, 아니 대책이 있어도 불만을 토로하지 마세요. 소에 매달린 채 사지가 찢겨 토막으로 관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저우언라이 입에서 나온 섬뜩한 말에 장내가 공포에 휩싸이며 숙연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온화한 성품을 가진 저우언라이가 뱉은 말이었기에, 공포는 배가됐다.

“이제 곧 놈들과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질 겁니다. 그땐 다들 이렇게 모여 불만이나 지껄일 시간도 없겠지만··· 그 전까지 여러분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바랍니다. 주석께선 더 좋은 대체품이 있다면 갈아 끼는 게 우리 모두와 인민을 향해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시니 말입니다.”

저우언라이는 언성을 높이지도, 물건을 집어 던져 화를 표출하지도 않았다.

조곤조곤한 말 몇 마디만으로 늙은 여우들의 입에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나가보세요.”

자리에서 일어선 늙은 여우들의 표정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후···”

몸에 있는 기운이란 기운이 싹 다 빠져나간 듯, 숨을 내쉬는 것에도 저항이 느껴졌다.

“어쩌다 일이 여기까지 흘러버렸는지···”

그 순간 저우언라이 머릿속에 오래된 서적에서 봤던 시 하나가 떠올랐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선봉장 우중문에게 보낸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신의 경지에 이른 당신의 계책이 하늘에 가 닿았고 )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절묘한 그대의 헤아림은 땅의 이치에 통달하였도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싸워서 이긴 공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족함을 알겠거든 이제 멈추길 바라노라)

한반도를 넘보는 게 아니라 국민당군을 몰아낸 것에 만족하고 내실을 다졌어야 했다.

이젠 발을 뺄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신묘한 계략에 홀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저우언라이가 공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본 채 눈을 감았다.

그것도 잠시, 고요함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지! 동지! 지금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놈들이···”

저우언라이는 웬만한 일은 이제 난리 축에도 못 낄 정도로 뇌가 받아들이는 역치가 높아져 있었다.

이어지는 보고에 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젠장. 제대로 난리가 터졌군.”

아무리 역치가 높아졌다지만 이건 난리가 난 게 분명했다.

아니? 난리(亂離) 그 자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