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11화 (111/149)

111화. 비밀병기(3)

초승달이 뜬 날이었다.

마치 눈을 잔뜩 찌푸린 듯 가는 모양의 달.

그에 걸맞게 달이 뿜어내는 달빛의 양도 많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은색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그 어두운 달빛을 반사 시키며 반짝이고 있었다.

김포기지에서 출격한 제4 전투 요격 비행단 소속 F-86 세이버 1개 대대와.

일본 요코타 기지에서 출격한 제98 폭격 비행단 소속 B-29 1개 대대.

어두컴컴한 탓에 조종사 육안으론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하늘길.

그 선두를 F-94 스타 파이어 전투기가 맡아 대규모 항공 부대를 이끌었다.

“오늘 처음으로 조종간을 잡았는데 손이 다 떨리더군.”

작전에 투입된 B-29 폭격기 승무원들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기장 도널드 코빅 대위였다.

“전 지금도 손이 떨립··· 전방에 적기 포착! 미그기가 떴습니다!”

중공 국경 지역에 다다르자, 폭격 낌새를 눈치챈 미그기가 연합군 공군에 대응 출격을 해왔다.

칙.

-덩치들은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가 맡는다.

짧고 굵은 무전 노이즈가 들린 뒤, 거의 동시에 폭격기 호위를 맡은 F-86 세이버 전투기 편대장의 음성이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F-86 세이버 전투기 편대가 공격 대형으로 전환한 뒤, 미그기를 격추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높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얼마 지나지 않아 F-86 세이버 전투기와 미그기가 공중에서 어지럽게 엉키며 가지고 있는 무장을 적기를 위해 쏟아냈다.

무수히 많은 예광탄과 기관포, 기관총이 허공을 가르는 것도 잠시, 승패의 향방은 금새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애초에 만주기지에서 출격한 미그 15 전투기는 4개 편대, 총 16기뿐이었다.

작정하고 작전에 나선 F-86 세이버 1개 대대와 F-94 스타 파이어 전투기 편대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놈들이 호위기와 교전을 포기하고 이쪽으로 옵니다!”

미그 15 전투기 2대가 호위기의 추격을 떨쳐내고 코너 대위가 모는 B-29 폭격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수들 준비시켜. 2기쯤이야··· 벌집을 만들어 버리자고.”

B-29 폭격기가 무서운 이유는 긴 항속거리, 막대한 양을 실을 수 있는 폭탄 탑재량 이외에도 4기의 원격 조종 사격 조준석, 1기의 유인 사격 조준석을 보유해 유사시 전투기와도 어느 정도의 교전이 가능했다.

에이스 칭호를 얻은 폭격기도 있을 정도니까.

“땅에나 처박혀라. 이 개자식들아.”

B-29 폭격기 기총 사수 제임스 플레밍 하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

드르르르르르륵.

총 다섯 군데에서 12.7mm 기관총이 미그기를 향해 불을 뿜었다.

“병신들.”

선두에서 다가오던 미그기 날개에 총알이 박히자, 고도를 급하강해 좌측으로 선회했다.

후미로 우회해 공격하려던 그의 윙맨은 그 즉시 계획을 바꿔 북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우측날개 명중! 놈들이 기수를 돌렸습니다. 저런 것들도 팀이라고··· 윙맨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갑니다.”

“수고했어. 혹시 모르니 방아쇠 놓지 말고 대기해.”

도널드 코빅 대위와 제임스 플레밍 하사가 헤드폰으로 무전을 주고받았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놈들 전부 미그앨리로 도망친 다음 만주기지에 착륙할 테니.”

미그앨리는 공산군 조종사들에게 있어 최고의 피난처이자 휴식처다.

격추되기 직전 상황까지 몰렸더라도 미그앨리만 넘는다면, 기지에 무사 착륙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연합군 공군은 미그앨리를 조금도 넘어오지 못했으니까.

“지옥에 가길 기도해주자고.”

그날 밤.

연합군 공군의 대규모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미그앨리를 넘었다.

표적은 국경을 넘어있는 주요 군수산업 목표물.

군수공장과 큰 교량, 전력시설, 만주 공군 기지 위에 100톤이 넘는 1000파운드 고폭탄과 소이탄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표적에 떨어진 소이탄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붉은 화염을 만들어 산소마저 태워버렸다.

극동공군 사령부를 통해 이들에게 하달된 작전명은 Scorched Earth Tactics(초토화 작전)

정확히 말하자면 적군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을 없애버린다는 의미에 청야 작전이었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습이 끝나고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전투기가 출격할 만주 공군 기지를 비롯해 보급품을 조달할 후방 군수 공장들이 폭격에 흔적도 없이 박살 났다는 소식이 지휘관들에게 전해졌다.

“작전이 계획대로 아무런 차질없이 성공했네.”

맥아더 사령관은 며칠이나 특공여단 지휘소 인근에서 자신의 업무를 보며 지내고 있었다.

언제 적의 칼끝이 턱밑에 닿을지 모르는 최전방이라고 수십 번은 설득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고집만은 꺾을 수 없었다.

형과 동생은 좀 떨어져 지내야 가끔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법인데.

“이제 며칠 안에 중공군 포격이 청천강에 떨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이제 슬슬 안전한 도쿄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맥아더 사령관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겠지. 자네만 이 위험한 곳에 두고 가는 것 같아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는단 말이지··· 자네가 계속 돌아가라고 하니 더 돌아가기 싫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 먹으면 도로 애가 된다더니.

고집이 아니라 순 어리광이다.

“그야 사령관님의 안위가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일 뿐입니다. 제 마음이 어떤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보다 저에 대한 관찰은 충분히 되셨습니까?”

“알고 있었나?”

“화장실까지 따라올 기세로 붙어 다니는데··· 제가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악의는 아니었네.”

맥아더 사령관이 머쓱한 듯 주머니에서 담배 파이프를 꺼내 물었다.

그가 청천강 방어선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나를 곁에 두고 싶어서만이 아니었다.

미행수준은 아니었지만, 그의 부관인 펀치 중령, 참모들, 운전병이 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관찰했다.

명색이 연합군 총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낸 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닐 순 없었을 테니까.

이유는 뻔했다.

어떻게 부하들을 관리하고, 부대관리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을 내리는지 등.

‘이런 게 궁금했으니 일거수일투족 따라다닌 거겠지.’

내가 의심스럽거나, 단지 못 미더운 부분을 발견해서는 아닐 것이다.

맥아더 사령관이 이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나를 닮은 장교를 양성하고 싶은 마음일 터.

닮고 싶은 누군가의 작은 행동까지 지독하게 따라 하면 절로 닮아가기 마련이니까.

“자네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산전수전 다 겪은 호랑이와 여우들을 잘 다루고 부대에서도 존경받는지. 그게 궁금해서 그랬을 뿐이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래서 궁금증은 좀 풀리셨습니까?”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기에 포기했네. 이 나이 먹도록 전쟁터에서 굴러왔는데 자네가 가진 능력을 다 가늠할 수가 없었어. 말 나온 김에 비결이라도 알려주겠나?”

특공여단이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건, 내 지휘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탓도 있겠지만 지휘관부터 휘하 이등병까지. 모두가 저마다 맡은 역할을 구멍 없이 훌륭하게 수행해내기 때문이니까.

“비결이라면 제가 상관의 명령에 잘 복종하고 부하들을 사랑으로 대한다는 것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사교육 없이 학교 수업과 교과서만으로 공부했어요.]

백날 따라 해봐라. 그게 되나.

“하기야 타고난 자들을 이겨 먹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지. 아, 가기 전에 자네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지고 가겠네. 나는 답을 찾지 못했어. 다음번 만날 때 자네가 내게 답을 줬으면 좋겠군.”

맥아더 사령관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덩달아 내 표정도.

어려운 건 딱 질색이거든.

“최선을 다해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폭격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조종사 중 일부가 폭격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네. 공군이 최대한 정밀한 폭격을 시도했지만, 폭탄 몇 개가 주변 민간에 떨어진 모양이야.”

어려운 질문임과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기도 했다.

‘이 인간이 기어코 도쿄로 떠나기 전에 내 입에 고구마를 물리는구나.’

현재 미 전략공군 사령관은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극동공군 폭격기 사령관은 오도넬이 맡고 있다.

두 장군의 공통점은 목표지점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는 엄청난 폭격을 추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터에서 이러한 폭격은 딱히 문제 될 게 없다.

나 역시 미그앨리를 없애고 만주 공군 기지와 병참 기지를 폭격해야 한다고 맥아더 사령관에게 바람을 불어 넣었으니까.

“민간인 피해를 줄일 방법은 제가 따로 모색해보겠습니다. 해당 조종사들은 잠시 작전에서 배제하고 정신치료 및 작전 수행 성공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건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이와 같은 질문에 르메이 사령관의 지론은 확고했다.

[전쟁터 그 어디에도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스즈키네는 군용 볼트를 만들고, 그 옆집 하루노보네는 군용 너트를 만든다. 그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전투기와 함정을 만든다.]

총력전 상황에서 인민은 볼트와 너트같은 전쟁 부속품이라는 생각과 비슷하다.

그렇다 해서 르메이와 오도넬 사령관이 인류를 몰살시키고 싶어 안달 난 미치광이 싸이코냐? 그건 또 아니다.

그래서 답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문제겠지만.

“이 대령 자네 머리에서 나올 답을 기대하고 있겠네.”

맥아더 사령관이 평양 비행장으로 향하기 위해 펀치 중령과 지프에 올라탔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사령관님.”

나에게 고구마를 던지기 전에, 맥아더 사령관의 등을 좀 더 세게 밀어 보냈어야 했다.

“여단장님.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상옥 중령이 나를 불렀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당연하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알겠네.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땐, 잠시 뒤로 미뤄뒀다 다시 푸는 게 산책이다.

“···뭐라고?”

어려운 문제 뒤에, 또 어려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솔직히 이건 반칙 아니냐?

***

“총통 각하. 연합군이 만주 일대에 폭격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폭격 소식에 잔뜩 신이 난 목소리였다.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연합군이 만주를 폭격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야··· 하늘이 아직 우리 중화민국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중화민국 총통이자 국민당 총재.

장제스는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애써 참지도 않았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