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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12화 (112/149)

112화. NSC 회의(1)

마오쩌둥이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부랴부랴 한반도로 보낸 70만의 장난감 병정들.

건전지라도 떨어졌는지 병정들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구성, 희천, 장진, 단천. 일대에서 중공군이 진격을 멈춰섰다는 보고입니다. 내부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진 모양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들이 멈춰선 지 벌써 하루하고도 반나절.

뭐 반나절 정도라면 대병력을 갈무리해 공격해올 생각인가? 싶겠지만 하루 반나절이면 그냥 그 자리에 말뚝을 박은 셈이었다.

‘장제스가 슬슬 꿈틀거리는 모양이군.’

아마 옆구리에 모기 백 방은 물린 것처럼 따끔거리겠지.

아무리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맏아들과 100만 중공군을 지옥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다곤 하지만,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모기 같은 장제스를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군이 힘이 빠졌다곤 하지만, 단전 끝에서 기를 끌어모은다면 위협적인 한 방은 가진 놈들이니까.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만 생각한 탓에 옆구리에 칼침 놓기만을 기회만 엿보고 있던 국민당군을 잠시 잊은 결과 아니겠나.”

“그러면 이제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방아쇠나 당길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앞을 조금만 내다보려 해도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

2대대장 문기준 중령이 머리를 감싸며 질색했다.

“자네는 내가 점쟁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예. 제 생각엔 여단장님이 점쟁이보다 더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다그친다고 느낄 수 있는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받아치는 걸 보니 역시 많이 늘었다.

“어떻게 돌아갈 것이냐··· 그게 궁금하다 이거지.”

어디 보자.

중공은 지금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몇 주, 참전 결심을 했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미칠 지경일 것이다.

중공에 남아도는 자원 중 하나가 인민이다.

100만에 가까운 병력이 전부 괴멸된다 해도, 시간만 조금 있다면 아무나 끌어다 대충 만든 군복과 구형 소총을 던져주면 머릿수는 금방 채워진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한반도에 내려와 전투를 벌이면 큰 문제가 없다.

전투에서 지더라도 국군과 연합군이 반격해 국경까지 밀고 올라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

다 좋은데 모집병에 대한 훈련은?

탱크는, 전투기는?

이것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그리 깊게 생각했으면 저런 멍청한 결정은 내리지도 않았겠지.

“하나던 전선이 두 군데로 확장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로 변하지. 지금 중공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뭐가 있다고 생각하나?”

“잠깐 생각해봤는데··· 저였다면 주저앉아 주먹이 갈려 나가는지도 모른 채 땅바닥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원시적으로 보자면 제일 정답에 가까운 대답일지도 모르지.

주먹질하는 시늉을 하는 문기준 중령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곳에 내려와 있는 중공군은 우리와 전투를 벌이지 않아도 무사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네. 우리는 이미 완벽한 준비태세를 갖춘 채 저들에게 날카로운 창끝을 들이대고 있고, 창을 피해 도망간다면 그보다 더 매서운 칼바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중공이 자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은 이제 몇 없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다.

죄를 지은 죄수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졌다면··· 누군가 도움을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소련··· 소련이 개입하면 그야말로 세계 3차대전 아닙니까?”

땡.

틀렸다.

“이 전쟁이 일어나서 제일 이득을 본 나라가 어딘 줄 아나? 소련이야.”

미국?

통일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

싹 다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 한반도에 그려낸 지옥도를 보며 깔깔대고 있을 놈은 스탈린이다.

자연스레 경쟁국의 국력이 소모되는 꼴을 구경하고 있는 격이니까.

“후··· 여기까지가 제 한계인가 봅니다. 여단장님이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는 전부 이해가 되는데 도무지 합쳐지질 않습니다.”

문기준 중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원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생각 정리를 포기한 모양이다.

역시 포기하면 빠르다니까.

“이미 판은 깔렸고, 지금 어디선가 그 판이 짜 맞춰지고 있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말한 판은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지리,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 등등.

삶에 밀접하지만 복잡한 모든 것들을 고려해 짜 맞춰진다.

‘장제스가 움직임을 보였으니, 급히 NSC(미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됐겠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듯이 작은 조각이 모여 큰 조각을 이룬다.

큰 조각들을 이어붙이면 판이 된다.

이곳에 온 지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만들어낸 판치고는, 이보다 훌륭할 수가 없는 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미합중국 백악관. NSC(미 국가안보회의)

국가안보회의장에 걸맞은 크고 웅장한 책상, 모인 이들 자리 위엔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한 목표와 계획에 관한 국무 및 국방장관 보고서’ NSC-68이 올라와 있었다.

“다 모였으면 시작하지. 정책기획관 자네부터 하겠나?”

트루먼 대통령이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국가안보회의의 포문을 열었다.

동시에 발언권을 정책기획관 폴 니츠에게 넘겼다.

“흠흠. 정책기획관 폴 니츠입니다.”

열변을 토하려는 듯, 폴 니츠 정책기획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현재 우리 미합중국은 그간 행해오던 대소련 전략의 일종인 봉쇄에서 벗어나 반격으로의 변화를 이룩해냈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어디까지나 북한도, 중공도 아닌 소련이었다.

그간 서유럽과 일본, 대한민국을 통해 소련의 세력확장을 봉쇄하고 있었다.

미군과 연합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진격과 만주 폭격은, 봉쇄에서 벗어난 반격을 뜻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중공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재 정세를 정책기획 연구단이 분석한 바로는, 단순히 한반도에서 공산세력을 몰아내는 것은 소기의 목적달성일 뿐, 우리 미합중국이 한반도를 통해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흠···”

정책기획관의 말을 들은 트루먼 대통령이 콧잔등을 쓸어내렸다.

그가 듣고 싶던 말과는 정반대의 말이었으니까.

“만약 반격으로의 전환이 실패했다면, 한반도에서 제한전쟁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서유럽과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것이 훨씬 비용면이나 군사적 측면에서 타당했겠지만, 지금 한반도를 기점으로 중공의 세를 꺾는다면 서유럽과 한반도 양측에서 소련을 압박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트루먼 행정부의 목표는 힘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외교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소련이 핵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핵 독점만으로도 충분한 우위를 가졌지만, 소련이 핵을 개발한 순간 압도적 우위는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대한 대응책이 NSC-68을 기반으로 한 국방비의 대대적 증액, 서유럽과 일본에 대한 경제지원과 군사지원을 통해 재무장을 단행하는 것이었다.

전쟁 초기만 해도, 미국 정책부는 대륙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일본보다 한참 밑으로 생각했다.

일본은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를 기반으로 뛰어난 산업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트루먼 행정부는 일본과 서유럽의 산업 능력을 높이 평가해 세계 자본주의를 복원하는 동반자로 함께할 생각이었으니까.

폴 니츠 정책기획관에 입에서 나온 말은 섬나라 일본대신 한반도로 동반자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단순히 동반자를 바꾸는 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자네 말대로 한반도가 중공과 소련을 견제할만한 능력을 보유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지금 모든 서유럽 국가들이 모든 것을 제쳐놓고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자기 안보 아니겠나.”

트루먼 대통령 얼굴에 온갖 근심, 걱정, 우려가 점점 짙어졌다.

아무리 뛰어난 엘리트들이 모여 정책과 군사적 의견을 제시한들, 결국 문서에 도장을 찍는 건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

국민으로부터 결정권을 위임받은 만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의 어깨는 상상할 수 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 그때 여쭤보셨던 제 생각을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봐도 괜찮겠습니까?”

회의 내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말을 아끼던 애치슨 국무장관이 입을 열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의사는 존중받아야 하네.”

“지금 상황엔 군이 요구하는 만큼의 병력을 확충해도, 우방국들이 저마다 원하는 군사 원조를 전부 다 들어줘도, 군수공장을 쉬지 않고 돌려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정 적자를 생각하느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머지않아 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비록 전쟁이 한반도와 중공 국경에 국한되어있지만, 공산세력이 일으킨 전쟁으로 유럽과 세계 역시 위협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미국이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결정.

한번 결정을 내리면 번복은 불가했다.

결과를 미리 엿볼 수도 없다.

최악의 경우 소련이 참전해 또다시 세계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를 아찔한 결정을 트루먼 대통령은 내려야만 했다.

“의회와 시민들 반응은?”

트루먼 대통령이 옆자리에 앉은 정책 보좌관을 보며 물었다.

“공화당이 언론을 적잖이 선동하는 면은 있지만, 아직 멸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민심이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는···”

정책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은 제시했으니, 알아서 잘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이것 참 묘한 기분이군. 혹시 자네들끼리 모여 회의라도 하고 나를 부르기라도 한 건가?”

“전혀 아닙니다. 대통령님.”

트루먼 대통령이 가벼운 농담으로 무겁던 분위기에 환풍기를 돌렸다.

자리에 모인 이들 역시 자신들만의 처세로 트루먼의 농담을 맞받아쳤다.

“브래들리. 자네 생각은 어떤가?”

초대 미군 합참의장 오마 브래들리에게로 트루먼 대통령의 시선이 향했다.

“군사적 측면으로 생각해본다면 중공과의 전투가 상당히 유리하게 흘러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타이완에 있는 국민당군은 대륙에 발을 디디고 싶어 잔뜩 안달이나 있습니다. 이미 내전을 겪어봤던 이들이라 적당히 무기를 건네주면 알아서 잘 싸울 겁니다.”

“국민당군이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킬 능력을 보유했나?”

타이완은 섬이다.

바다를 건너려면 당연히 배가 필요했다.

“한반도 서해에 미 10군단과 중공 국경 인근에 7함대가 배치되어 있긴 합니다만···”

“우리가 숟가락을 입안까지 쑤셔 넣어줘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그리고 핵. 소련이 보유한 핵은 어찌할 생각들인가.”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폴 니츠 정책기획관이 새로운 서류를 내밀었다.

[NSC-88]

트루먼 대통령이 서류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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