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16화 (116/149)

116화. 이가 빠진 칼(1)

미국이 서해에 머무르고 있던 미 10군단 상륙함을 타이완해협으로 이동시켰다.

상륙함을 텅텅 비운 채.

무슨 생각으로? 라는 의문이 생기지도 않을 의도가 분명한 군사적 행동이었다.

“아무래도 중공 전선은 곧 두 곳으로 확장될걸세. 나도 위에서 이런 명령이 내려올 줄은 몰랐네.”

워커 중장도 대담하고도 빠른 결정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제대로 공산세력의 힘을 빼놓겠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트루먼이 공산세력에 대응할 승부수를 띄웠다.

그에 따라 타이완으로 쫓겨난 국민당 장제스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 상륙함을 지원해주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장제스의 머리에선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오직 희망 회로만이 돌아갔을 것이다.

아침은 상하이.

점심은 난징.

저녁은 베이징에서.

높은 곳에서 드넓은 만주 들판을 내려다보며 ‘조금 돌아왔지만···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자기 위로와 함께 흐뭇한 미소를 지을 상상까지.

“솔직히 말하면 나로서는 조금 의아한 명령이라고 느껴지기는 하네. 그 멍청한 놈들이 제대로 된 전투나 할 수 있을지···쯧.”

워커 중장이 굉장히 한심한 상상을 해봤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리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이가 빠진 칼이라도, 누가 칼자루를 쥐었냐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명검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워커 중장의 저런 반응은 사실 지극히 당연하다.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이가 빠진 칼.

내 머릿속에 저장된 국민당군 현주소도 그러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무능과 무지도 그 정도면 죄 아니겠나.”

“저 또한 중장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것 또한 맞는 말이다.

본래 가진 의도야 어찌 됐건 간에 무능과 무지도 정도가 넘으면 죄가 된다.

최소 4배는 많은 병력과 기세, 최신화된 무기.

2차대전을 끝낸 미국이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를 장제스 국민당에 쏟아부었음에도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의해 속절없이 쓸려나갔으니까.

당연히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

흔히 말하는 국민당의 부정부패.

국민당 내부에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고는 하나, 어디 중국 역사상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지 않았던 적이 있기나 했던가?

패전의 원인 중 한 축이 될 수 있을진 몰라도, 부정부패는 오랜 중국의 고유전통이다.

이것저것을 전부 뭉뚱그려 국가의 기반을 다지긴 했지만, 군벌 연합체 수준에 불과했던 구조상의 한계.

그 한계에서 나오는 비효율에 더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뭉쳐 큰 나비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국가라면 마땅히 가장 중요시해야 할 민심은 개나 줘버렸는지, 나중에 어영부영 쓰레기장이라도 뒤져 찾아오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장제스가 대륙 통일에 성공했다면 지금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넓은 토지와 막대한 인구수.

그 땅이 주는 자원을 가진 중국이 일찍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의 공장이 되는 것을 자처했다면, 한반도는 그저 중국에 붙은 작은 땅덩어리로 인식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이라고는 하나, 이곳저곳에 흩어진 국민당군 세력을 모은다면 족히 50만은 될 것입니다. 50만의 병력으로 중공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순 없겠지만, 날카로운 쇠붙이를 든 깡패 정도는 될 겁니다.”

“쇠붙이를 든 깡패라··· 비유가 끝내주는군. 자네 말대로 어디에 흩어졌는지도 모를 50만이라는 머릿수를 모을 수만 있다면 깡패 정도는 인정해주지. 뭐, 다 위에서 생각이 있겠지만 말이야.”

깡패라는 비유가 마음에 들었는지 워커 중장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저와 내기 한번 하시겠습니까? 저는 지켜볼 만한 싸움이 된다는 것에 걸겠습니다.”

국민당군의 패전이 확실해질 무렵, 그들이 퇴각했던 방향은 크게 3곳이었다.

동남 연해의 여러 섬.

광서와 베트남 국경지대.

운남과 버마 국경지대.

“내기? 자네와 내기라··· 참을 수 없지. 좋아. 나는 국민당군이 이전처럼 이곳저곳에서 대패하는 일방적인 싸움이 된다는 것에 걸겠네. 사람은 쉽게 안 변해. 사람 한 명의 마음을 바꾸는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50만이라니. 이번엔 아무리 자네라도 잘못된 쪽에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듯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패는 까봐야 아는 법. 그래서 내기에 뭘 거시겠습니까?”

워커 중장은 대화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옳은 소리만 하고 있다.

국민당군이 멍청했다는 것도, 무능과 무지가 죄가 된다는 것도,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것도 다 맞는 말이니까.

“음··· 그저 그런 내기는 재미없으니 좀 큰 걸 걸어보게.”

“좋습니다.”

이 내기는 반드시 내가 이겨야 한다.

국민당군이 전과 같이 멍청한 짓을 한다면, 뒤통수를 갈겨서라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해 줄 것이다.

그들이 중공의 심기를 건들고, 이겨가며 점차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당군, 중공군 양측이 감내하는 희생은 대륙을 완벽하게 통일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상대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죽도록 미워할수록, 대륙은 점차 아름답게 변해갈 것이다.

“이건 어떠십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정말 괜찮겠나? 이러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좋아 죽으면서 걱정하는 척은.

마치 도박판에서 장땡을 받아든 사람처럼 워커 중장은 환호하며 내 제안을 수락했다.

이래서 도박이 무서운 거다.

내 패가 무조건 상대 패보다 높다고 생각할 때, 그때만큼 위험한 순간이 없거든.

***

중공 베이징. 마오쩌둥 집무실.

불과 한 달.

그 짧은 사이에 저우언라이의 얼굴엔 접힌 주름이 몇 배는 늘어있었다.

“펑더화이 사령관과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통신문제일까 싶어 다른 군장들에게도 연락을 돌려봤지만··· 전부 연락이 두절 된 상황입니다.”

“연락 두절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펑더화이 그놈이 지금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힘든 날을 인내하고 버텨내면 좋은 날이 온다던데.

하루하루 다가오는 날은 힘든 날, 어려운 날, 괴로운 나날뿐이었다.

투항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총사령관 펑더화이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반역은 하고 싶어도 못할 겁니다. 국경을 넘을 수도 없을 테니···후.”

“저우언라이 자네 지금!”

저우언라이의 한숨 소리를 들은 마오쩌둥이 그에게 역정을 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평생을 함께해온 동반자였기에 망정이지, 저우언라이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이미 목이 천안문에 대롱거리며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애써 정신을 붙잡은 저우언라이가 할 말을 이어나갔다.

“동지, 그보다 더 큰 일이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 들어가 있는 70만 대군에게서 연락이 끊긴 건, 큰일 축에도 끼지 못했다.

투항하라는 명령을 내린 순간 이미 그들은 마오쩌둥의 머릿속엔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하라.”

“타이완에 있는 장제스가 미국과 함께 움직일 것 같습니다. 한반도 서해에 있는 군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큰 전선이 두 곳으로 확장됩니다. 저희로선···”

도무지 방도가 없다는 말을 힘겹게 참아냈다.

그 말까지 했다면, 정말 내일 아침 천안문에 목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군대를 보내 장제스 이놈 목을 진즉 쳤어야 했는데··· 하필!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마오쩌둥은 국공내전 내내 인중에 난 여드름 같은 존재인 장제스를 처리하고 싶었다.

고작 몇만도 채 되지 않는 국민당군과 타이완에 넘어간 장제스를 처리하지 못한 까닭은, 타이완이 섬이었기 때문이다.

탈출 당시 미 해군과 공군이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국민당을 지지했던 자본가 계층은 상당히 많은 선박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덕에 군인과 민간인, 본토에 있던 유명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까지 싹 털어 타이완으로 도망칠 수 있었고, 당연히 탈출에 필요한 선박 외에 다른 선박들은 모두 파괴해 침몰시켰다.

수십만 대군이건, 수백만 대군이건, 선박 없이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 죽일 놈들···”

마오쩌둥이 장제스와 미국을 죽일 놈들이라고 칭했지만, 저우언라이는 다른 대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원을 요청한 북한, 뒤에서 등 떠민 소련, 이를 알고도 파병을 강경하게 주장했던 강경파들 모두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투입된 반만 타이완에 쏟아부었다면, 타이완을 진즉에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을 테니까.

“인민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하고는 있지만···”

“그래. 어떻게든 짜내 머릿수를 채우고, 무기는 소련에서 사 오면 그만 아닌가. 이보게 저우언라이. 우리가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이 성난 파도 또한 언젠가 잔잔한 파도가 되어 지나갈 것이네.”

“알겠습니다.”

저우언라이가 말을 아꼈다.

그 무슨 혜안을 생각한들, 마오쩌둥 귀 안에 가득 찬 귓밥에 막혀 들어먹을 것 같지가 않았다.

혜안이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스탈린 동지가 아무런 말이 없지만, 설사 우리가 잘못되면 소련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겠지. 우리가 가진 막대한 생산력을 이용한다면 능히 괴뢰군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게야.”

마오쩌둥이 생각하는 막대한 생산력은 전투기, 군함 같은 첨단무기가 아닌 인구였다.

인간의 당연한 욕구인 성욕만 있으면 생산되는 인구.

“고생해주게. 저우언라이.”

저우언라이가 뒤를 돌자마자 마오쩌둥이 입맛을 다셨다.

“주석인 나부터 생산에 일조해야지··· 암···”

오늘 밤, 국가를 위해 인구를 생산하는 상상을 하면서.

***

청천강 방어선.

-서부전선에 있는 놈들이 움직입니다!

-동부전선도 마찬가지랍니다. 땅을 뒤덮을 정도로 새까맣게 몰려온답니다.

“모든 전선에서··· 놈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부대에 있는 통신병과 통신 장교들은 귀에서 무전기를 단 1초도 떨어트릴 수 없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다시 수화기를 들어야만 했다.

“알겠네.”

드디어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놈들 마음속에 결심이 선 모양이다.

그래, 와라.

누군가의 자존심, 굳건한 사상이 70만 목숨값보다 귀중하다면.

“여단 내 모든 지휘관에게 전달해. 달콤했던 휴식은 끝났으니 일 좀 하자고.”

다른 부대들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새까맣게 중공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도 특공여단 지휘관들은 유난을 떨지 않았다.

방심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미세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포병대 사격준비.”

이미 머리 위론 공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날아가고 있었다.

쾅!

“주님, 아무튼 오늘은 좀 많이 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