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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18화 (118/149)

118화. 이가 빠진 칼날(3)

“고작 모집된 병력이 그뿐이라고? 정녕 인민들이 이 중대한 기회를 현실로 이끌 안목이 없다는 말인가!”

미국과 한국의 전쟁 개입 허가는 타이완, 장제스에게 있어 기회였다.

그것도 이미 100만에 가까운 군대를 날려 먹은 채 양면 전선으로 힘겨워할 중공을 남쪽부터 차근차근 씹어 삼켜 대륙에 발 뻗을 절호의 기회.

“대륙 이곳저곳에서 국부 군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이들은 채 10만이 되질 않습니다··· 상륙한 뒤 인민들을 징집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모든 인민이 함께 인간의 자유와 국가적 독립에 반대되는 국제공산주의 국가들의 위협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 타이완 정부 국민당군은 개별적인 투쟁에서 나아가 집단적 투쟁을 행동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안전보장은 오직 단결! 단결에 의해서만 강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제스는 굳건하고 강한 포부를 대륙과 타이완을 통틀어 5억 명의 인민을 향해 공표하며 동조를 요청하는 한편.

[만약 지금 이 기회의 손길마저 놓아버린다면, 세계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며 인류는 절반의 자유인과 절반의 노예로 나뉘어 도저히 살아 견딜 수 없는 처지에 이를 것입니다.]

내 말 안 들었다간 싹 다 노예 된다? 라고 엄포를 냈지만, 강제 징집 없이 의사를 표해온 이들은 채 10만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적어도 50만, 상륙 즉시 100만이 넘는 대군의 병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현재 타이완 국부군의 전력은 육군 48만 명, 해군과 공군을 합쳐 13만, 긴급 상황에서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7만 명으로 68만 정도였다.

상륙을 공표한 뒤 최소 50만, 상륙 후에는 100만이 넘는 병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장제스뿐 아니라 군부, 당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병력만이 모집되었다.

이 병력으로는, 남부 해안에 상륙한 뒤 펼칠 수 있는 작전이 극히 제한 된다.

아무리 한탕을 좋아하는 장제스라 할지라도, 전 병력을 모두 상륙시켜 타이완을 빈집으로 놔둘 순 없는 노릇이니까.

무엇보다 병력을 뻥튀기시켜 놓긴 했지만, 그보다 부족한 무기, 군사와 정치의 기본조직과 그 수준에 맞는 역량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장제스는 알고 있었다.

미국이 무기를 제공해주더라도, 다른 모든 제약을 단기간에 해결할 해결책으로는 역시 인해 전술 만한 것이 없었다.

“송구합니다··· 총통 각하. 지금 당장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장제스의 호통에 모집을 담당했던 군 간부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할 것 없네. 난징 정부는 사라졌지만··· 내 뜨거운 가슴으로 청천백일기를 단 한 순간도 품지 않은 적이 없어. 자네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지?”

“예? 그야··· 총통 각하···”

난데없이 난징 정부와 청천백일기를 운운하며 사색에 잠긴 장제스를 보며 군 간부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장제스야!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라고! 차질이 조금 생겼을지언정, 대륙 수복엔 아무 문제 없을 테니 돌아가 보게.”

“예! 각하.”

장제스는 뭔가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난징 정부와 청천백일기를 떠올리며 가슴에 새겼다.

진정 세계 평화와 모든 대륙의 인민들이 얻을 자유를 위함이었을까?

자리에 있던 모두가 사라지자, 장제스가 나지막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내가 바로 대륙이야. 대륙은 나 없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 암.”

장제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청천강 방어선.

코앞에 다가와 있던 중공군이라는 큰 위협이 사라졌다.

3일간 이어진 전투로 소모된 체력을 회복하고 나면, 남은 건 북진뿐이었다.

간혹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아 도망친 중공군 패잔병을 만날지도 모르지만, 그쯤이야 다시 발로 걷어차 구덩이에 넣어버리면 그만이다.

너흰 딱 지옥이 어울려.

“여단장님?”

항상 다급한 상황에서만 나를 찾아댔던 통신장교가 웬일인지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불러왔다.

“그래. 귀는 좀 괜찮은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는 뭐··· 괜찮습니다. 그보다 샤오위린(邵毓麟) 중화민국대사가 여단장님 만나기를 원하는 모양입니다.”

“중화민국대사가 나를?”

한참 대륙 진출에 대한 열망으로 들떠 있어야 할 때, 중화민국대사가 나를 찾는다는 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제기랄, 아무래도 이 전쟁이 끝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후처리까지 끝낸 뒤에야 쉴 수 있을 것 같다.

“예. 북진준비로 인해 여단장님께서 숨 쉴 틈 없이 바쁜 상황이라고는 전달했습니다만, 잠깐이면 된다고 직접 찾아온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언제 이곳을 떠날 줄 알고 찾아온다는 거지? 그밖에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없었습니다.”

어디 보자.

지금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는 초대 중화민국대사 샤오위린은 상당한 수준의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다.

전체적인 세계정세와 한반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전쟁 분위기가 고조된 뒤엔 반드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해냈으니까.

‘대륙을 정복하겠다는 야심 찬 야망에 뭔가 제동이 걸린 모양이네.’

이제 타이완은 이 전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장제스의 뜨거운 대륙 수복 열망이 있어야만 대륙을 쪼개고, 그 쪼개진 대륙을 통해 대한민국은 많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어··· 여단장님?”

말꼬리 끝을 올리는 통신장교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통신장교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먼지를 일으키며 가까워지고 있는 지프 한 대가 보였다.

지프 안에 보이는 얼굴이 그간 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인 걸 보니, 소개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법했다.

제자리에서 조금 기다리자, 지프를 주변에 세운 채 샤오위린 대사가 다가왔다.

“이강산 대령님? 초대 중화민국대사 샤오위린입니다. 연락 한 통 남긴 채 갑작스레 찾아와 죄송합니다.”

중년 미가 느껴지는 정중한 말투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하도 시끄럽게 샬라샬라 떠들어대는 중공 놈들만 봐와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썩 나쁘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좀 더 빨리 연락을 주셨다면 제가 준비라도 하고 있었을 텐데, 어제까지만 해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 손님 응대할 준비가 미흡하긴 합니다만, 안으로 들어가시죠.”

내가 샤오위린을 빠르게 훑고 그의 첫인상을 파악했듯, 그 역시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를 파악하고 있었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보시다시피 변변한 살림이 없습니다. 그쪽에 앉으시겠습니까?”

“엉덩이를 걸칠 의자만 있으면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샤오위린이 막사 안에 있는 낡아빠진 의자를 보며 말했다.

“중화민국대사께서 어찌 한낱 군인인 저를 만나기 위해 최전방까지 오셨습니까? 혹여 제게 꼭 하실 말씀이라도···”

쓸데없는 말을 해가며 시간을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맥아더를 만났을 때도,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랬듯이.

“실은 제가 워낙 부족한지라 작은 고민거리가 있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소문으로만 익히 들어온 이강산 대령님을 만나면 해답은 아니더라도, 실마리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샤오위린 이 인간,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대사가 군 장교에게 존대하는 것 하며 상관이 아닌 사람에게 ‘제가 워낙 부족한지라’라며 자신을 낮추며 말하는 것 또한 자존심 더럽게 강한 중국인들과는 다른 면모였다.

“저 역시 부족한 사람입니다. 해결책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대사님의 말을 듣고 드는 제 생각을 가능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차례 가벼운 탐색이 오갔다.

그렇다면 선공은 내가 먼저.

“외람될지도 모르겠으나, 혹 국민정부가 대륙에 상륙할 병력이 충분치 않은 것이 고민은 아니십니까?”

샤오위린이 나를 찾아온다고 했던 순간부터,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타이완으로 쫓겨난 국민정부는 전쟁이 일어난 초창기부터 대한민국을 돕겠다고 나섰다.

중공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정도의 군 전력을 갖추지도 못한 타이완은 3만 명 이상의 지상 병력과 20여 대의 항공기를 한반도에 파병시켜 공산세력의 위협을 뿌리쳐 내겠다며 미국에 졸라댔다.

‘제 코가 석 자인데 말이지.’

대한민국을 돕겠다는 건 어디까지나 대륙으로 상륙할 교두보 구실,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한 허울 좋은 껍데기였지만 말이다.

장제스 머릿속엔 오로지 빼앗긴 대륙 수복!

딱 하나뿐 일 테니까.

“역시··· 제가 제대로 찾아온 모양입니다. 이강산 대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 또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짧은 감탄을 마친 샤오위린이 말을 이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타이완 국민정부에서 중공과 맞설 병력을 모집하기 위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모집률이 한없이 저조하다는 것이 제 고민입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얼마만큼의 병력이 자발적으로 군에 자원하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3자 입장으로 보기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문제라면··· 대사께서도 그에 대한 원인을 알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권력에만 눈이 돌아가 있는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샤오위린 정도의 안목을 가진 이가 있다면 원인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원인을 파악했으면 그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세상 모든 문제해결 방법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야··· 제 입으로 내뱉기 창피합니다만 국제외교, 정치, 경제, 교육, 군사. 국가라면 마땅히 힘써야 할 모든 분야에서 국민정부가 실패한 것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아서겠지요.”

“대사께선 이미 답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5대 방침과 5종, 3대 요목을 내세워 자력갱생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그럼 그렇지.

샤오위린은 여기까지다.

그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겸손하며 온화한 사람이더라도 딱 여기까지.

기득권을 손에 쥐고 태어난 이들은 죽을 때까지 알기 힘든 한 가지가 있다.

사실 지금 국민정부가 행하고 있는 5대 방침? 5종 뭐? 3대 요목 따위는 국민 그 누구의 안중에도 없을걸?

“그래서 실질적인 타이완 국민정부 아래 살아가는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타이완 국민이 국민정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는 이 한 문장이면 된다.

[개가 떠나니 돼지가 왔다.]

정신 나간 개처럼 물어뜯으며 괴롭히던 일본이 떠나니, 국민정부라는 돼지가 타이완에 넘어와 모든 것을 돼지처럼 처먹어 댄다는 뜻.

“그야 모든 일은 과도기를 거쳐 가는 법이지요.”

과도기 같은 소리 하네.

“그렇다면 국민정부의 염원인 대륙 상륙도 과도기를 잘 다스린 다음 행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녕 방법이 없겠습니까?”

샤오위린이 즉시 꼬리를 말아 내렸다.

왜 자꾸 나에게 방법을 묻는진 모르겠지만, 방법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위기라는 말은 사실 거짓일지도 모릅니다. 전장을 전전하다 보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존재했고, 제가 그 끈을 잡고 놓치지 않았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방법이 있다는 말을 조금 거창하게 풀어놓았다.

나를 바라보는 샤오위린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도록.

“방법···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가 빠진 칼날을 날카롭게 다듬어달란다.

가능은 한데 어쩌지?

공짜론 안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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