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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20화 (120/149)

120화. 돼지 무리(1)

전투에 승리해 영토가 늘어난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어렵게 확보한 영토를 잘 지켜내기 위해선, 방어해야 하는 곳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대비책을 세움과 동시에 내부와 후방을 더 견고히 해야 하는 숙제를 동반한다.

‘이것들이 아직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라고 박헌영이 굳게 믿었던 남로당 봉기도, 공산군의 대규모 특수부대가 후방으로 침투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분대, 크게는 소대 규모의 공산 게릴라들의 유격전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정찰대장 김동석 대위 좀 불러주게.”

대위라고 부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이젠 대위가 아니라 소령이 될테니까.

특공여단은 다른 부대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최초 대대, 연대, 여단의 편제로 차근차근 몸집이 커지는 동안 새로운 지휘관과 부대원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부대 내 작은 소란 한번 없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기존 인원들이 새로운 인원들과 융화하려 노력하며 주축을 잘 잡아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간 크고 작은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며 명예롭게 싸워온 공로를 인정받아 전원 1계급 특진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입김을 조금 불어 넣긴 했지만.

이 정도쯤이야, 지금껏 나를 믿고 따라준 부대원은 특진할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강산 준. 장. 님.”

“그렇네. 김동석 소. 령.”

김동석 소령이 계급에 또렷하게 힘을 줘 부르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장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준장으로 진급했다는 것이 아직 실감 나진 않았지만, 듣기 나쁘진 않았다.

“소령으로 진급한 소감이 어떤가.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했을 때보다 기쁜가?”

“피땀 흘린 군인 중에 진급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 표정이 이래서 그렇지, 기뻐 죽을 것 같습니다. 중위에서 대위가 됐을 때보다 몇 배는 짜릿짜릿합니다.”

“자네가 그리 좋아하다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글거리며 따듯해지는 걸 보니,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저희가 진급할 수 있도록 힘써주셨다는 거··· 굳이 말씀은 안 하셨지만 다들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충성을 다해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있어 부르신 것 아닙니까?”

진급으로 기뻐하는 이를 앞에 두고 그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위험한 명령을 내려야 했다.

마음이 편친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

“고된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명령을 내리게 되어 유감스럽게 생각하네만, 자네가 사냥을 한번 다녀와 줘야겠어.”

“사냥이라 하시면···”

우리에게 있어선 사상을 도구로 민족을 이간질해 분열시키려 했던 아주 더럽고 추악한 놈.

돼지를 잡아들이기 위해 소련과 중공 모두 뛰어들었을 확률이 높다.

동시에 그를 믿고 전쟁을 지원했던 소련, 특히 중공은 돼지를 잡아 족치고 싶어 안달이 났을 테니까.

돼지 무리가 국경을 넘어 어딘가로 망명했다면 현실적으로 우리가 먼저 돼지를 잡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무언가를 찾기 위해 국경에 정찰기가 뜨는 걸 보면 돼지 무리는 아직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김일성. 그놈이 아직 북한 지역 안에 있는 것 같네. 그를 잡아 올 수 있겠나?”

마오안잉을 이용해 마오쩌둥의 몇 가닥 없는 머리털이 다 빠질 때까지 괴롭혔던 것처럼, 김일성은 충분히 이용할 가치가 있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축지법으로 단숨에 산 하나를 넘어버리는 김일성을 국군이 생포해 실체를 낱낱이 까발릴 수 있다면, 내부 결속은 물론이거니와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공산 게릴라를 확연히 줄일 수 있겠지.

“안 그래도 지난 침투에서 김일성을 못 잡은 것이 한이었습니다. 보내주신다면, 이 땅을 전부 다 뒤져서라도 잡아 오겠습니다.”

내가 내린 명령에 김동석 소령이 김일성이 어디에 있는지, 그를 호위하는 병력은 얼마나 있을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답했다.

“김일성이 숨어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지역이 있네.”

“그게 어딥니까?”

한반도 땅이 그리 넓지 않다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김동석 소령을 보내려던 건 아니었다.

“여기, 희천 주변이네.”

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희천을 찍어 보이며 말했다.

“희천이라면 지금 연합군의 주력이 있는 곳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김일성이 그리 가까운 등잔 밑에 숨어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등잔 밑이 어두운 법 같은 소리 말고, 김동석 소령의 물음에 답해줄 타당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평양에 진입할 당시, 사방이 포위된 김일성이 빠져나갈 유일한 방향은 동쪽뿐이었네. 내가 만약 김일성이었다면 큰 도로가 발달한 평성, 덕천, 희천, 강계를 넘어 우선 중공에 망명할 생각을 했을 거네.”

내가 말한 도시들은, 과거 김일성의 행적이 확인된 도주로다.

과거 김일성은 평양이 함락되기 이틀 전, 누구처럼 이미 평양을 버린 채 도망 길에 올랐다.

희천에 자신이 아끼던 리무진마저 버려둔 채로.

강계, 만포를 통해 국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럴 시간도,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중공이 예상보다 빨리 개입했고, 그만큼 빨리 연합군에 처참하게 패했네. 이런 변수는 예상치 못했겠지. 중공의 눈치를 보느라 망명을 주저하던 도중 또 한차례 대규모 중공군이 국경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놈들은 지금 청천강 일대에 비료가 되어버렸지.”

“이제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역시···”

어디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볼까?

작전에 투입될 김동석 소령에게 나머지를 맡겨보기로 했다.

“자네가 생각한 흐름대로 이어보게.”

“중공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괜히 수십만의 병력만 잃은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마오안잉이라는 변수까지··· 제가 김일성이었다면, 중공에 갔다간 머리가 목에 붙어있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흐름 좋고.

“강계에 몸을 숨기고 있자니 중공과 너무 가까워 발각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 오히려 남쪽으로 내려와 연합군과 중공군이 마주하고 있는 사이가 오히려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적유령 산맥이 뻗어있는 희천이 숨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훌륭하네.”

김일성은 희천이라는 부표에 붙은 채 바다에 떠다니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쓰레기 신세다.

눈에 보이는 즉시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타버리거나.

둘 다 아니라면 시베리아 극지에서 얼어 죽는 선택지도 있기야 하겠지만.

“돌아가는 대로 정예를 뽑아 특공대를 꾸려 출발하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돼지를 꼭 잡아 오겠습니다.”

김동석 소령이 결의에 찬 눈빛을 보내왔다.

그라면 지난번 강건을 잡아 왔듯, 김일성을 잡아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잡아 와야 한다.

이미 성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김동석 소령이라면 잡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잡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로 기록될지도 모르네. 반드시 잡아 오게.”

이리와. 착하지?

형이 잘해줄 테니까 어서 와.

***

한반도 어딘가.

“으··· 동무. 나가서 땔감 좀 구해오라. 나는 괜찮지만, 이대로 있다간 동무들이 얼어 죽겠어.”

두꺼운 옷을 잔뜩 껴입고 있음에도, 춥다는 어리광을 돌려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원장 동지, 땔감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지금 이곳에 땔감으로 불을 피웠다가는··· 남조선 놈들에게 위치가 발각될지도 모릅네다.”

“이런 빌어먹을 남조선 새끼들···”

평양에서 도망친 김일성과 그의 무리가 동굴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동굴은 몸을 숨겨줄지언정,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마저 막아주진 못했다.

“곧 경계조가 교대할 시간입네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동무들에게 옷을 몇 개 더 받아올 테니, 조금만 참아 주시라요.”

김일성과 함께 평양에서 도망쳐온 이들은 50여 명.

한곳에 모여있다간 정찰기에 의해 발각당할 것을 우려해 이곳저곳에 흩어져있었다.

물론, 따발총을 든 무장 병력이 경계하고 있는 건 김일성이 머무는 동굴뿐이었다.

“명령을 내렸으면 들어먹어야지, 도대체가···”

김일성은 평양에서 도망치기 직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인이 찍힌 절대 비밀 제70호 명령을 전 군부대 상급 군관들에 하달했다.

[미 제국주의자들의 지시로, 우리 조국에 동족상잔의 내란을 도발시킨 리승만 괴뢰군의 불의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궐기한 조선인민군은 영웅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였다.]

독재자들이 내려보내는 전문의 시작은 늘 비슷하다.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북조선은 평화를 원했지만, 남조선이 쳐들어왔다는 개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수신자가 잘못됐는지, 발신자가 내용을 잘못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뢰군에 맞서 조선인민군이 영웅성과 헌신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과 전문에 적힌 명령의 내용은 어울리지 않았다.

[첫째. 일보도 퇴각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이 이상 더 퇴각할 곳이 없다.]

[둘째. 우울 분자, 요언 분자는 우리의 적이다. 무기를 던지며 명령 없이 전장을 떠나는 자들은 직위 여하를 불문하고 모두 인민의 적으로서 그 자리에서 사형할 것.]

···

그 아래 다섯까지 명령도 글자만 다르게 적어놨을 뿐,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나 김일성이 도망갈 때까지 인민들은 자신들의 몸을 방패로 버텨라.’ 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위원장 동지. 이대로 상황이 흘러가면, 다른 동무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입네다. 결단을 내리셔야···”

“동무들이 그러하다면···”

막상 말은 했지만, 김일성은 그 어떤 것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평양을 버릴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차피 평양은 곧 중공군이 다시 점령한 후에 돌려받으면 그만이었고, 위기를 기회 삼아 눈엣가시들에 책임을 모조리 전가해 숙청하는 데 성공했다.

평소 거슬리던 연안파 김무정이 평양 방어는 무리라고 주장하자 김무정을 평양 방어 사령관에 앉혀 실각시켰고, 무엇보다 성가시게 굴던 남로당 박헌영도 비밀리에 숙청했다.

전쟁이 원점으로 돌아가 38선에서 끝나기만 했어도, 북조선 내 모든 권력이 오로지 김일성 자신 손아귀 안에 들어와 있었기에, 아쉽긴 하지만 그리 손해될 것이 없었다.

“위원장 동지··· 혹 앞으로의 계획이 있긴 하신 겁네까?”

“뭐이야?”

동굴 안에서 평상시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질문이 김일성을 향해 쏘아졌다.

짝!

누군가 뺨을 맞는 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때마침, 교대를 마친 경계조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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