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돼지 무리(3)
특공여단의 편제를 사단급으로 확장하는 것은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이곳저곳에서 훌륭한 지휘관들과 병력을 모아 차츰 부대 규모를 확장했기에, 머릿수가 늘어났음에도 들려오는 잡음이 극히 미미할 수 있었다.
“다들 썩 내키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네. 내가 이런 부탁할 곳이 특공여단의 기둥인 자네들 말고 누가 있겠나. 힘들고 귀찮겠지만 조금 더 신경 쓰고, 고생해주게.”
내가 싸놓은 똥이 아님에도 진급하자마자 아쉬운 소리는 내가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달가울 리 없었다.
전 7사단장 유재흥 소장이 김석원 군단장에게 즉결처형을 당한 이후, 7사단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부대편제라도 온전했다면 모르겠지만 사단 예하 3개 보병 연대 중 1개 연대는 공적에 눈이 먼 유재흥 사단장과 연대장, 두 사람이 함께 환장의 호흡을 보여준 덕에 보충조차 불가능한 전멸 상태.
7사단 예하 온전한 2개 연대를 특공여단에 합류시키라는 명령이 육군본부로부터 떨어졌다.
북진을 멈추고 방어선을 구축한 상황에서는 7사단 예하 2개 연대가 연대장의 지휘 아래 해당 방어 구역만 잘 지켜내면 그만이었지만, 북진해야 하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평양 입성 당시, 이미 전쟁을 레이스로 착각한 전적이 있는 경주마들을 고삐도 채우지 않은 채 전장에 풀어놓을 순 없었다.
“여단장님께서 직접 결정하신 것도 아닌데··· 그런 부탁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입이 완벽하게 적응하도록 저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그 대신 말 안 듣고 뺀질대는 놈이 있으면 한 대 쥐어박아도 되겠습니까?”
김상옥 대령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물어왔다.
다행히 다른 지휘관들도 김상옥 대령과 같은 생각이라는 듯,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대는 안 되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지, 진짜 쥐어박지는 않겠습니다.”
김상옥 대령이 머쓱했는지, 주먹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뺀질대거나 거드름 피우는 놈들이 있으면 한 대가 아니라 정신 차릴 때까지 쥐어박아 줘야지.”
잘못을 빨리 깨우치게 돕는 치료제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다 큰 성인이 사회에 나와 뭔가를 잘못했다면 인생은 역시 실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금융치료를.
폭력을 조장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달래고 구슬려도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겐 적당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되는 치료법이다.
하물며 등을 맞대야 하는 전우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 경락 마사지 몇 번 해주는 정도의 치료제는 꼭 필요한 법.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속이 편해졌습니다. 신입이 오면, 문제 일으키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전우애를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문기준 대령이 말한 전우애에 물리 치료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기존 특공여단 내 주요 지휘관들의 응어리는 좀 풀어진 듯했다.
“자네들을 믿네. 그리고···”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입에 발린 표현으로 꾸며낼 필요가 없었다.
우러나오는 진심은 입이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법.
이곳에 모인 지휘관 중 한 사람이라도 부대를 이끌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자가 있었다면 쥐어박으라느니, 물리 치료니 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괜히 미친놈에게 칼을 건네주는 더 미친놈이 장래희망은 아니니까.
“혹여나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이면, 밤낮 할 것 없이 즉시 보고하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간 많이 보고, 느껴왔다.
무능하고 멍청한 아군은 적군보다 무섭다는 것을.
썩은 싹이 피어오르기 전에 도려내야 주변이 함께 썩어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게 나라든, 전쟁터든.
마찬가지다.
***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 안.
“동지, 정신이 좀 드십니까?”
“으음···”
김일성의 발길질에 정신을 잃은 김두봉이 옅은 신음을 흘렸다.
정신을 차리자 통증이 밀려오는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인상을 찡그렸다.
“동무가 나를 살려놓았나? 인생 한번 지랄 맞고만, 기래.”
“서둘러 몸부터 회복하셔야 할 겁니다. 구해오는 식량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동굴 안에 있는 머릿수는 줄지 않았으니··· 칼바람에 얼어 죽는 것에 앞서 곧 이 동굴 안에 지랄 맞은 피바람이 불지도 모릅니다.”
“내래··· 이미 곱상하게 늙어 죽긴 틀린 것 같으이.”
동굴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북한으로 넘어와 각자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라는 요직을 꿰차 승승장구했다는 점.
그러나 지금은 피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냄새만 맡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운한 신세였다.
“김원봉 동무가 내 수발을 해주는 날이 있을 거라고는···”
김일성의 구타로부터 김두봉을 살려낸 이는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 김원봉이었다.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항일 무장 단체 의열단을 조직한 장본인이자, 국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 암살과 같은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수행해온 인물.
한때는 독립운동의 희망이자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했으나, 지금은 김두봉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여느 나라의 전범과 다름없었다.
“동지, 지금 와서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노덕술 그놈이 죽었답니다. 그것도 애국회인지 하는 친일파 쓰레기들과 함께 재판도 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으로 말입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김원봉이 김두봉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려 하자, 악몽 같은 일들이 떠올라 머리를 찌르는 것 같았다.
“윽··· 남조선이 정신이라도 나갔는지 친일파를 숙청하고 있다고는 들은 것 같네만, 자네 뺨을 후려쳤던 노덕술 그놈 소식을 들으니 고것 참 속 알맹이가 시원하고만 기래.”
“그 쓰레기보다 못한 매국노 새끼의 손이 제 뺨에 닿았던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해방 직후, 정권은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기 위해 친일파 청산은 커녕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만주, 소련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협박받거나, 의심받았다.
때마침 친일 경찰 노덕술의 눈에 띈 김원봉은 경찰서에 끌려가 노덕술로부터 온갖 모욕과 뺨 싸대기를 후려 맞는 치욕을 당했음과 동시에 함께 정치 활동을 했던 여운형이 암살당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월북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우리가 이 꼴이 되리라고는 몰랐지 않네. 몰랐어··· 몰랐단 말이지.”
김두봉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김원봉과 김두봉 두 사람 모두 이유가 어쨌건, 그 이유로 인해 내린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결정이었다.
남조선이 친일파를 청산한다는 말까지 들리자 자신들의 결정에 어떠한 핑계도 가져다 붙일 순 없었다.
“동지, 동지께서는 왜 위원장 동지에게 계획이 있냐 물으셨습니까? 구해오는 식량이 적어진다 한들, 동지가 배 곪는 날은 아직이었을 텐데요.”
“풀뿌리 며칠 더 배에 쑤셔 넣어 버틴다고, 그저 뭐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지 않아 물어본 것 아니갔서? 내래 질문 한번 했다고 이리 모욕을 얻을 줄은 몰랐지만 서도···”
김두봉이 풀이 죽은 목소리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미 중공으로도, 소련으로도 갈 수 없는 신세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이곳에서 도망친 뒤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소작농인 척을 해서라도 살고 싶었지만, 노쇠한 몸으로 김일성이 데려온 호위병들을 따돌리고 도망가는 건 불가능했기에 도저히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참···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합니다. 노덕술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전쟁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니 괜히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굴에 있는 인민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에 위원장 동지가 뺨을 올려치는 것을 보니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이보게 동무··· 큰일 날 소리를···”
김두봉이 입을 벌리며 만류했다.
그뿐이었다.
만류했을 뿐, 김원봉의 말을 반박하진 못했으니까.
만약 누군가 이 둘의 대화를 듣고 김일성에게 일러바쳤다면, 노동상, 상임위원장이라는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이마에 총알이 박혔을 것이다.
평상시라면.
“어차피 모두가 북에서도, 남에서도 대우받기는 그른 것 아니겠습니까. 천천히 숨이 옥죄여 말라죽을 바엔, 후손들이 재밌어할 역사에 남을 이야깃거리라도 하나 만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김원봉이 입맛을 다셨다.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그려놓았을지 상상하면서.
***
자강도 희천 일대.
오랜만에 마주하는 사방 시야가 확보되는 곳이었다.
지겨운 수신호에서 벗어나, 작은 소리 정도로 의사소통해도 큰 문제는 없을 만한 곳.
“그럴듯한 흔적은 못 찾았습니다.”
“2분대도 마찬가집니다.”
“3분대도··· 죄송합니다.”
희천으로 작전지역이 한정되긴 했지만, 김일성의 흔적을 찾는 건 노련한 특공대 역시 쉽지 않았다.
어느 해수욕장인지 안다고 해서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게 쉬울 리가 없는 것처럼.
“대장님, 혹··· 놈들이 희천에만 코 박고 계속 있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정말 희천에 있는 개구멍까지 다 뒤지게 생겼습니다.”
다소 격앙된 감은 없지 않았지만, 김웅 상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무랄 수 없었다.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지금 복귀했다간,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네. 놈들이 아직 희천에 코 박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는 보장도 없는 것처럼. 모두 조금만 힘을 내보자고.”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김동석 소령이 분대장들을 모아 다독이자, 분대장들이 수긍한 채 분대로 돌아갔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음에도 예상했던 것보다 피로도가 극심한 작전이었다.
겨우겨우 사람의 흔적을 찾아 쫓으면 중공군과 북한군 패잔병들이, 때로는 시체가 뭉쳐있기도 했다.
간격이 그리 넓지 않음에도 서로 연락 수단이 없어서인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인지 나뉘어 있었다.
‘대원들의 피로도가 생각보다 빨리 쌓이고 있다···’
최대한 적과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작은 흔적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확인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중공군 몇몇을 사살하는 건, 특공대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대장님, 잠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겠네.”
모두가 희천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며 지쳐가던 찰나.
특공대원 중 한 명이 뭔가 발견한 듯, 김동석 소령을 불러 뭔가를 보였다.
“누군가 일부러 남겨놓은 듯한 흔적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같은 높이에 있는 나뭇가지가 꺾여있고, 부러진 가지 끝에 인위적으로 찍어놓은 듯한 핏자국이 있습니다.”
인위적인 핏자국.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절대 지나칠 수 없는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