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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24화 (124/149)

124화. 돼지 무리(5)

김원봉이 김동석 소령과 대화를 나눈 뒤 동굴로 돌아왔다.

혹여나 특공대가 꼬리를 밟고, 동굴 주변을 지키는 경계병들이 그를 발견할 것에 대비해 험한 길만을 골라 빙빙 도는 수고로움을 감수한 뒤였다.

“동지,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남조선에서 보낸 침투조가 희천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습니다.”

“대단히 큰일이 아니오? 당장 동지들이 있는 동굴로가 이 사실을···”

누워있던 김두봉이 허겁지겁 일어나려 하자, 김원봉이 손으로 그의 가슴을 눌러 다시 자리에 눕히며 말했다.

“동무! 이게 뭐 하는···”

김두봉이 무슨 짓이냐는 듯 눈을 부릅떴지만, 노쇠한데 더해 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으로는 김원봉의 오른손조차 떨쳐낼 수 없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잘 들으셔야만 할 겁니다. 남조선 침투조를 접선하고 오는 길입니다. 동지께서 제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아버리셨으니, 지금 바로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부터 얼굴을 가린 강도보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강도가 더 무서운 법이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얻고자 한 것을 얻으면 얌전히 눈앞에서 사라져줄지도 모르지만,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건 뒤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김원봉은 복면을 쓰지 않은 강도였다.

그 강도의 눈에선 살기가 피어올랐고, 입에서 나오는 말 역시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강계 지역에 설치한 중앙당 연락사무소와 앞서 만주로 넘어갔던 주요 기관장들에게서 연락이 끊긴 지 오랩니다. 그렇다는 건···”

김일성은 자신이 평양에서 도망쳐 나오기 며칠 전, 망명정부라도 세우겠다는 계획으로 세우기 위해 주요 기관들을 만주로 이주시켰다.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앙당 연락사무소와 연락이 끊긴 지 꽤 오래였다.

동굴에 있는 김일성과 그의 측근들은 눈뜬장님이요, 소리 내는 벙어리에 불과했다.

“중공과 소련이 우리를 버렸습니다. 어느 곳을 선택하든 망명정부는커녕, 처형당한 후 시신은 들개 먹이로 던져버릴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동굴 안에 있는 모두를 남조선 침투조에 넘길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는 그날부로 마지막이 되겠지요.”

“내래··· 잠깐 생각해보더라도 동무와 나 둘이 결정지을만한 것은···”

김두봉은 사실 이 전쟁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미지근한 태도의 원인은 한민족 사이에 총부리를 겨눠서는 안 된다던가, 이념 대립으로 시작된 전쟁은 둘 중 하나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될 것이며, 수많은 사람이 갈려 나갈 전쟁의 처참함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혹시 지면?

만에 하나라도 전쟁에서 패하면 어쩌지? 하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동심이 가득한 어린아이들에게 물었다면, 김두봉 같은 친구를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쫄보, 겁쟁이 새끼.

“저는 분명 기회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동지가 선택하지 못하시겠다면··· 저 역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원봉이 왼손으로 입고 있던 상의를 살짝 들추자, 튀어나온 칼자루가 보였다.

김원봉이 김두봉에게 낸 문제는 지금 당장 이곳을 묫자리 삼아 죽을지, 구질구질하더라도 목숨을 연명할지 둘 중 하나만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동지 진정하라··· 그래. 내래, 뭘 어찌하면 되겠나.”

“그냥 장단에 맞춰 흥만 돋게 도와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역시 이런 상황에서 겁쟁이가 고르는 선택지는 뻔하디 뻔했다.

***

다음날 06시.

특공대와 김원봉 양측 모두 약속을 어기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역시 김원봉은 혼자였다.

“일에 대해선 긴말이 필요 없으니. 받게.”

김원봉은 김동석 소령에게 서류종이 한 장만을 넘긴 채 홀연히 특공대 총구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음··· 이건 내가 직접 여단장님께 보고하지.”

한낱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북한의 근간이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엄청난 무게감을 몸소 느낀 김동석 소령은 직접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을 따르는 특공대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굳이 그 무게를 대원들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이동한다.”

김동석 소령과 특공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여단 본부와 통신할 수 있는 곳으로 은신처를 옮겼다.

은신처를 옮긴 뒤 조금 기다리자, 통신 임무를 맡은 대원이 본부와 통신이 연결됐음을 알려왔다.

“여단장님. 접니다.”

-그래. 김원봉과 접선은 성공했나?

통신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간혹 수화기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작았다 커졌다 반복해대는 것만 빼면.

“다음 작전 개시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아 김원봉이 건넨 서면에 쓰여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원봉이 건넨 서면의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림없이 이강산 준장에게 흘러 들어갔다.

***

특공여단 지휘 막사.

“알겠네. 두 어 시간 안에 연락하지.”

키를 건네받았다.

한민족이라는 커다란 몸뚱이에 퍼졌던 암세포를 제거할 키를.

김원봉이 건네왔다는 서면 내용은 간단명료하고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투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가장 먼저 적혀있는 건 숨어있는 돼지가 몇 형제인지, 친인척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전력 정보였다.

김일성 일가를 비롯해 함께 있는 북한 수뇌부 명단, 이들을 지키는 병력은 몇이나 되는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총원은 50여 명. 그 안에 속해있는 무장 병력은 30여 명. 최정예 호위병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전투 시 주의할 것.]

최정예 호위병?

예전엔 그랬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북한 고위직 몇몇을 지키고 행여 그들이 배고플세라 식량을 구해오는 개일 뿐, 배고픔에 포악해진 김일성이 저지르고 있을 만행을 상상해본다면, 최정예 호위병들의 뱃가죽과 등가죽은 이미 혼연일체로 합체해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동석 소령의 특공대 역시 최정예임은 물론, 영양 상태까지 매우 훌륭하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보고 먼저 쏜다면, 만에 하나도 변수가 없지.

두 번째 내용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목표물을 확보하면, 김두봉 동지와 함께 희천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

뭐, 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한다만.

자신을 포함해 단 두 명만 언급한 것으로 봐선, 다른 이들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요리하던지 상관 안 하겠다는 뉘앙스가 다분했다.

“특공대 연결해.”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바라보고 있던 통신 장교가 있는 곳을 보며 말했다.

괜히 두 어 시간이라고 말한 모양이다.

생각 정리를 잘 해둬서인지, 머리를 복잡하게 할만한 게 없었다.

특공대가 선점하고 있어야 할 장소, 어떤 식으로 돼지 무리를 몰아 나올 것인지.

마지막쯤엔 이 제안에 대한 답을 어떤 방법으로 자신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적혀있을 뿐이었다.

이것들은 현장에 있는 김동석 소령이 충분히 알아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어, 난데.”

-예.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쏴. 작전이 끝나면, 최대한 신속하게 복귀하는 것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통신 끝.”

얌전히 수화기를 내려놨다.

좋아.

이제 떠나간 서방님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린 망부석처럼, 김동석 소령의 다음 보고만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드디어 그토록 잡고 싶던 돼지가 덫에 걸렸다.

***

산속에서 맞이하는 밤은 칠흑과도 같다.

그나마 주변을 밝혀줄 달빛마저 쉽사리 새어 들어오지 못했다.

“작전 개시 시각은 정확히 자정. 그로부터 30분을 전후로 적과 교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질문은 이곳에서 끝낸다.”

김동석 소령이 3명의 분대장들을 차례로 훑으며 지시했다.

야간 작전에 들어가면, 수신호 외에 소리를 통한 그 어떤 의사소통도 할 수 없다.

누가 먼저 발견하고 쏘느냐에 따라 전투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질 테니까.

“질문 있습니다. 최초 비무장이었던 병력이 총기를 주워들고 저항해 온다면, 사살합니까?”

“좋은 질문. 사살한다.”

그의 대답엔 거침이 없었다.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면 실제 작전에서 순간 멈칫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 작전 역시 신속하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투가 길어지면 냄새를 맡고 여기저기 흩어진 놈들이 개떼처럼 몰려올지 모르니, 무장 병력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다. 또 질문?”

“없습니다.”

“각자 위치로.”

“위치로.”

작전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한 분대장들이 각자 맡은 구역을 향해 흩어졌다.

오후 11시 57분.

작전 개시 3분 전이었다.

특공대 2개 분대는 작전 구역 정면에, 나머지 1개 분대는 후방과 주변을 살피면서도 즉각 지원이 유리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황상 그럴 확률은 희박해 보이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라는 이강산 준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오후 11시 59분.

작전 개시 1분 전.

김동석 소령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방아쇠 울안에 손가락을 넣고 기다렸다.

‘5··· 4··· 3··· 2··· 1.’

작전 개시.

탕! 탕! 탕!

그의 소총 총구에서 작은 불꽃이 세 번 튀었다.

산 전체를 울리는 공허한 총성이 이곳저곳에서 메아리칠 뿐 그 외에 다른 소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공대원들 역시 제자리에서 그 어떤 움직임도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기다림이 미학으로 바뀌길 기도하면서.

요즘은 기도에도 시간제한이 있단다.

단 30분.

김원봉이 일 처리를 제대로 했다면, 30분 안에 이곳은 더는 고요한 숲이 아니라 돼지 잡는 도살장으로 변할 것이다.

만약 30분이 지났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즉시 철수한다는 계획까지 특공대 전원에게 공유되어 있었다.

‘흠···’

총성이 울리고 20분쯤 지났을까?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숨소리마저 숨기기 위해 코로 숨을 내쉰 김동석 소령이 재차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27분.

칠흑 같은 어둠과 잔잔히 몸에 흐르는 긴장 때문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설마, 이제 3분밖에 안 남았는데.’

후방에 대한 대비까지 마쳤기에, 제한시간이 거의 다 끝나감에도 불안하진 않았다.

김원봉이 일 처리를 똑바로 못 했을까 걱정될 뿐이지.

그때였다.

따-각!

바닥에 있는 나뭇가지가 무언가에 의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처음 소리가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쉿. 혹시 모르니 발밑을 주의하라. 침투한 괴뢰군이 심어놓은 지뢰나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는. 동지들이 다치지 않도록 몸 받쳐 모시라.]

‘왔다.’

본인들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미리 숨소리마저 죽인 채 눈과 귀를 어둠에 적응시키고 있던 특공대에게는 확성기나 다름없었다.

발소리만 해도 족히 수십 개.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 분명했다.

휘이이이이웅! 펑!

밤과 낮이 순식간에 바뀌며,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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