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28화 (128/149)

128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2)

저우언라이는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모든 것이 싹 갈려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대륙에 친미 정권을 세우기 위해 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무엇보다 소련이 지금까지 해온 행보를 냉정히 돌아봤을 때, 미국과 중공이 격돌하면 누워서 떡 먹는 건 소련이 아닐까? 라는 생각.

나라가 있어야 권력도 있는 것이지, 나라가 없으면 권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니까.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고 했다.

저우언라이는 현실 속에 펼쳐진 정세를 기반으로 상황을 판단한 다음,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나가려 했지만, 마오쩌둥은 그렇지 않았다.

소련이 무조건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 걸 보면,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자네와 나 말고는 아무도 몰라야 하네.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돼. 알겠나?”

벌써 같은 말을 반복한 지 3번째, 저우언라이가 마지막 신신당부를 했다.

“알겠습니다. 동지. 절대 새어나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 또 주의하겠습니다.”

저우언라이가 입단속을 시키고 있는 자는 그의 최측근.

권력을 향한 온갖 탐욕이 들끓다 못해 넘치는 베이징에서 그가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당원 비서였다.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중공은 연합군이 보내온 포로를 교환하자는 제안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단속을 위해 연합군을 맹렬히 비난하는 메시지들을 만들어냈다.

[악랄한 제국주의자들의 실체]

마오쩌둥이 지시한 대로 선전문을 만들어 병력 보강과 민심을 선동할 준비까지 모두 마쳤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외교에는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외교의 기본은 갈등을 하나하나씩 풀어내는 것이고.

저우언라이는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중공의 공식 입장 외에, 본인의 생각을 보이지 않는 물밑으로 전달했다.

전달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마오안잉을 생포했던 한국군 장교 이강산 준장.

중공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전시에 상대국과 물밑 접촉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아무리 저우언라이 그일지라도 사형을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혼자만 사형당하면 다행이지, 마오쩌둥은 3대를 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자들을 모두 잔인한 방식으로 숙청해버릴 것이다.

“부디···”

바다에 띄운 배에서 물이 새고 있었지만, 항해는 무사히 마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

처음엔 보고도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잘 믿기지 않았다.

마오쩌둥 주석의 최측근이자, 중공의 총리 저우언라이가 물밑으로 접촉을 시도해오는 걸 보면 중공 내부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대륙이 쪼개질 가능성에 한 발 더 가까워지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오르는 환희를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워싱턴에 보고가 들어갔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딱 집어 자네를 고르다니··· 인기가 높다 못해 하늘을 찌르겠어.”

워커 중장이 능청맞은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놈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르니···”

저우언라이가 물밑으로 접촉해왔다는 사실은 곧바로 워커 중장을 통해 트루먼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으로 날아 들어갔다.

특급 기밀 도장이 찍힌 채로.

아무리 이곳저곳에서 온갖 예쁨이란 예쁨은 다 받는 나일지라도, 이런 중대한 사항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까진.

“이상하단 말이지. 저우언라이 그놈이 머리가 갑자기 돌아버린 것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 되는 거물이 물밑으로 접촉을 시도해오다니···”

“포로 교환을 거절한 건 마오쩌둥 주석의 결정이겠지만, 아마 저우언라이 총리는 이번 포로 교환을 성사시킴으로써 중공에 작은 숨구멍이라도 만들어내 숨을 트고 싶었을 겁니다. 이런 위험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연락을 취해온 것으로 보아 두 사람 간에 의견이 갈린 게 이번뿐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공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승리라고 해야겠지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정확한 건 마오쩌둥 머리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희망 회로를 기차게 돌려가며 정신승리하고 있거나, 연합군이 국경에 다다르면 소련이 개입해 연합군을 몰아 내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자네를 잡기 위한 함정 같은 것일 수도 있겠군.”

함정?

너무 갔다.

함정이라기엔 너무 대책이 없다.

“만약 함정이라면··· 저우언라이라는 이름으로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을 겁니다. 가명을 쓰거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았겠습니까?”

저우언라이라는 이름이 물밑으로 접촉했다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불 난 집에 스스로 기름을 왕창 들이붓는 격.

그는 지금 연합군이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만큼 중공 내부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음··· 그것도 그렇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듯, 워커 중장의 입꼬리가 불독마냥 아래로 처졌다.

‘마오쩌둥이 포로 교환을 거절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건 순전히 소련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일 테고,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건?’

하나하나.

차근차근.

인과관계와 시간의 흐름까지 고려해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마오쩌둥은 이 전쟁을 소련이 중재하거나 끝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저우언라이는 소련이 보이는 미지근한 태도에 심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우리에겐 아주 좋은 카드가 하나 더 생긴 것이나 다름없어. 워싱턴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바로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원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연합군이 만주에 발을 들이고, 중공이 존재 자체의 위기를 느낄 정도는 되고 난 뒤에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일이 한결 쉬워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배제한 채 현재 상황만 놓고 결론을 내려 보자면, 저우언라이가 접촉해 온 이유는 숨구멍을 만들기 위해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살아날 작은 명분이라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저우언라이가 당장 중공의 군사 기밀이나 배치현황 같은 굵직한 기밀들을 넘기진 않겠지만, 내 요구를 들이밀 정도의 틈이 생긴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워싱턴에서 답이 오면, 그때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게.”

워커 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문 쪽으로 향해 보였다.

‘원하는 걸 얻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군.’

내가 그토록 얻길 바라는 것.

이 전쟁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정보임과 동시에 미국의 사랑니.

소련의 핵 관련 정보들을 얻을 날 말이다.

***

소련 모스크바.

집무실 책상에 무수히 많은 서류,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다.

처리해야 할 것을 미뤄서 쌓인 것이 아닌, 매일매일 새롭게 들어오는 따듯한 보고서들이었다.

스탈린은 매우 사무적이고 꼼꼼했다.

아무리 처리해야 할 보고서가 많이 쌓여있어도 모든 것을 직접 보고, 일일이 계산해가며 보고서를 결재했다.

들고 있던 보고서에 전부 만년필로 서명을 휘갈기고 나서야 시선을 옮겼다.

“그래.”

한 시간은 넘게 부동자세로 스탈린의 업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린 당원 한 명을 향해서.

“예. 스탈린 동지. 요 며칠 사이 중공에서 보내온 서신들입니다.”

당원이 들고 온 서신은, 방금까지 스탈린이 서명한 보고서를 합친 것만큼이나 두꺼운 두께를 자랑했다.

“우리 마오쩌둥 동무가 어지간히 똥줄이 타는 모양이군. 쓸데없이.”

스탈린은 당원이 전한 서신을 책상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전에 던져놓은 서신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이제 슬슬 제대로 된 답변을 해줄 때가···”

“제대로 된 답변? 이보게. 동무. 내가 언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스탈린은 중공이 보내오는 원조 요청 서신에 둘 중 하나의 방식으로 답을 했다.

소련 내부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형식적인 답이거나, 책상 아래 쌓인 서신들은 무응답이라는 답을 한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동지.”

“모든 일에는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네. 전쟁에 전문가는 군인들 아니겠나. 소련군 사령부에서 중공에 대한 계획 수립이 끝나는 대로, 새로운 답변을 준비하도록 해보지.”

그의 말대로 사령부에서 계획 수립이 완벽하게 짜여 나오기 전까진, 중공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은 잠시 접어둘 생각이었다.

“예! 동지.”

“나는 들었던 말을 또 듣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니, 다른 동무들에게 재미난 경험을 하기 싫으면 중공에 대한 논의는 군에서 계획이 나오면 하자고 좀 전해주게.”

재미난 경험이라는 말에 당원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소련에 있는 그 누구라도 스탈린이 선사해 주겠다는 재미난 경험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재미난 경험을 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지언정, 죽음이라는 결과는 모두에게 공통된 사항일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스탈린이 군을 그토록 신뢰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스탈린은 독소전쟁 초기, 현장 지휘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크게 몇 번 말아먹고 난 후에도 정신을 못 차린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은 변했다.

군의 문제를 군인들에게 일임하고 스탈린 자신은 막강한 독재 권력을 이용해 국력을 군에 쏟아부어 군사력을 키워나갔다.

그럼에도 미국과의 마찰은 극도로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탈린은 독소전쟁을 지휘하며 미국의 엄청난 생산력과 국력을 뼈로 체득했고, 전쟁으로 인해 소련 전체 인구의 15%에 가까운 엄청난 인력이 손실됐다.

핵실험에 성공하긴 했지만, 아직 미국처럼 실전에서 사용한 경험도, 그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

물론 가만히 있다간 공산권 국가들이 신뢰를 잃을 것이기 때문에 중공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미국처럼 어떠한 명분만을 가지고 참전해 군수물자와 병력을 쉴새 없이 중공에 지원하기엔 엄청난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아, 가는 길에 바실렙스키 동무 좀 나에게 오라고 전해주게.”

소련군 최고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바실렙스키.

스탈린이 바실렙스키를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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