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32화 (132/149)

132화. 군수 공장(2)

[검색 완료]

나노봇이 띄운 수많은 총기 도면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한동안 나노봇이 잠잠했을 때도 신체 강화 프로세스를 통해 몸을 강화해 주고 있었기에 일을 쉬었다고 하기엔 뭐하긴 하다.

이제 일 좀 제대로 해볼까?

지금은 전쟁 중이다.

지어진 군수 공장 생산 설비에 한계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겠지만, 하루라도 빠르게 만들어내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군수품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병력 전원에게 보급되면서 전투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개인화기인 소총만한 게 없다.

‘음··· AK-47 도면 확대해 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총! AK-47 도면을 확대합니다.]

신났네. 이거.

오랜만에 대화를 길게 나눠서 그런가, 착각이겠지만 나노봇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목 부분이 갈비뼈까지 늘어난 난닝구, 거기에 이곳저곳이 구멍 난 허름한 바지가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쓰거나, 뜨거운 날씨에도 온몸을 가리고 눈만 내놓은 혁명전사들이 떠오르는 소련군의 제식소총이다.]

‘설명 한번 옹골차네.’

AK-47은 소련이 극한 전시상황에도 생산하기 편하도록 오로지 높은 신뢰성과 생산성을 고려해 개발됐다.

‘패스. 저기, 저 도면 가져 와봐.’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 가스피스톤 방식을 채택해 추위와 이물질 유입에도 총기 정상 가동률이 높습니다.]

로딩이 늦게 된 건지, 그냥 넘기긴 아쉽지 않냐는 건지 나노봇이 AK-47에 대한 장점을 나열했다.

사실 많은 사람이 AK-47 소총은 흙탕물과 진흙에 넣어다 빼도, 영원히 총기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무적의 소총이라 착각하는데 천만에.

‘미국이 멍청하거나 자존심을 부리려고 AK 시리즈를 채택하지 않은 게 아니니까 말이지.’

엄청나게 긴 장전 손잡이가 후퇴하는 후퇴홈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많은 양의 이물질이 들어오는 경우, 총이 뻗어버리기 다반사였다.

게다가 연발로 갈기면 시베리아 굴라그까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반동, 가장 큰 장점인 내구력 또한 지금의 저급한 프레스 가공 기술로는 글쎄.

지금은 나토 표준화 협정(STANAG) 같은 표준 규칙이 공용되기 전이다.

나토나 그와 비슷한 협의체는 곧 만들어질 것이고, 지금 잘만 만들어낸다면 라이센스를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보름달 아래 총을 머리 위로 들고 갈겨야만 할 것 같은 강렬한 혁명전사 이미지를 주게 될 AK 종류는 패스다. 패스.

총을 만들기 위해선 탄환, 가스 배출방식 선택부터 노리쇠 무게, 가늠자 형태를 고르는 것 외에도 골라야 할 게 수백 가지.

‘FN 사에서 만들어낼 FAL도 있고··· AR 계열은 너무 이르려나?’

제기랄.

어떤 총을 만들어야 가히 명품이라고 전 세계에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가장 기본적인 개인화기도 이럴 진데 괜히 탱크, 전투기, 함정을 개발할 때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게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내가 준 도면을 기반으로 군수 공장에서 생산해낸 총에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거늘,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요 키워드를 입력하시면 도면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도면 조합을 원할 시 키워드 입력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조합?

‘이게 진작 말하지 않고···’

아무래도 나노봇 이 자식이 나를 엿 먹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진작 각 도면이 가진 장점에 대한 조합이 가능하다 알려줬으면 이리 골머리 썩지 않았을 테니까.

‘키워드 입력.’

[키워드를 입력하세요.]

보편적으로는 각 나라 계절, 지형적 특성에 따라, 정규군의 전투 방식에 따라 키워드를 고민해야겠지만?

그건 사람끼리 일 처리 할 때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명중률, 안전장치, 슬링, 관통력, 반동, 가늠자, 생산성, 호환성, 수리 용이성···’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장점이라는 장점은 싹 다 넣어버리면 된다.

[입력하신 키워드를 기반으로 기존 도면을 조합해 새로운 도면을 생성합니다. 예상 소요 시간···]

이러다 전 세계 방산업체들이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날지도 모르겠다만, 굽히고 싶은 생각도, 이유도 없다.

전쟁이 끝나고 그들이 나를 신경 쓸 때쯤이 되면, 나는 함부로 딸 수 없는 별이 되어 있을 테니까.

***

서울 경무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자, 전반적인 국정 운영은 이시영 부통령이 위임받아 처리하고 있었다.

“부통령님. 워싱턴에서 유감을 표하는 정도가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각하의 행적을 돌아본다면··· 트루먼 대통령의 인내심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길에 사는 개나 고양이도 저마다 영역이 있는 법인데, 다른 나라 대통령이 워싱턴 앞마당에서 설쳐대는 꼴이 달갑게 보일 리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땐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던 위기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남의 집 앞마당에 눌러앉아 그저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물가에 내어다 놓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자의를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 것을··· 나라고 남다른 도리가 있지는 않음세.”

이시영 부통령이 관심 밖이라는 표정을 짓자, 국회의장 신익희가 고개를 저으며 이시영 부통령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각하께서 정확한 귀국일이나 일정을 국회에 알리지 않고 계시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통령님! 곧 통일이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국회의장,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시게. 정말 그 이유하나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인가?”

“그야···”

신익희 국회의장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진 못했다.

49 대 51.

51 대 49.

대통령은 쉬운 결정이 아닌, 이처럼 시선에 따라 한 끗 차이인 어려운 사안을 결정하는 최종결정권자.

당연히 공석으로 오래 둬서는 안 되는 자리다.

“각하께서 정확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시기 전까지는··· 이 늙은이가 최선을 다해 빈자리를 메꿔볼 터이니, 자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 생각은 조금 나중으로 미뤄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부통령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이시영 부통령은 신익희 의장이 워싱턴과 통일을 운운하며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보겠네.”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무소속의 총 강세였다.

신익희가 이끄는 제1 야당 민주국민당과 윤치영이 이끄는 대한국민당 의석수를 더해도 총 의석에 20%가 채 되질 않았으니까.

여소야대로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를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친일파 수사로 정치 기반이 약해지자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묵묵히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명문가의 후손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 청렴결백의 대명사인 이시영 부통령.

거기에 더해 전쟁의 포화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강산 준장이 조카인데, 이시영 부통령이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무소속 의원들의 환심을 사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 이 될 것이다.

“부통령님께서 제 마음을 이미 다 헤아리신 것 같으니··· 긴말하지 않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알겠네. 조심히 돌아가게나.”

신익희 국회의장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섰다.

물론 신익희 의장의 행보가 잘못됐다거나, 못마땅한 건 아니었다.

그게 정치고, 그는 정치인이니까.

“후··· 벌써 이리들 안달이 나 있으니, 이 노쇠한 몸이 그때까지 버텨줘야 하거늘···”

신익희 의장이 정치권이 단합되는 모습을 눈에 그렸다면, 이시영 부통령은 미래를 눈에 그렸다.

“그 아이라면··· 그 아이라면 할 수 있을 게야.”

이시영 부통령이 행동과 발언, 그 어떤 정치적 행보도 모두 삼간 채 경무대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건, 자신의 조카 이강산의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정치의 더럽고 추악한 이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말실수 한 번,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행동 하나가 화살과 비수가 되어 날아오는 곳이 정치판이다.

너무나도 훌륭히 자라나고 있는 조카에게 더러운 구정물이 튀지 않게 막아줄 것이다.

명이 다하기 전까지.

이시영 부통령이 눈에 그린 미래는 하나뿐인 조카 이강산이었다.

***

[도면 조합 완료. 새로운 도면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큰일이다.

내 손으로 괴물을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이 도면대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괴물의 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인간이 손바닥에 마나를 응축해 쏘아내는 마법의 시대라면 불을 뿜는 거대한 용가리 정도는 되어야 괴물일 것이고.

나무나 돌로 만든 조잡한 무기밖에 없을 시대라면 덩치가 조금 큰 짐승이라면 괴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방산 기술 역시 마찬가지.

미래에는 레이저로 광선 총을 만들어 초음속으로 나는 전투기도 격추하고, 탱크도 한 발에 작살 내는 정도는 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연사력이 좋으면서도 반동이 적고, 명중률이 높으면서도 가벼운, 생산성이 보장된 데다가 고장까지 잘 나지 않는 소총이 있다면?

그게 괴물이지 뭐야.

잘 훈련된 신속대응사단 전 병력이 이 도안으로 만들어진 소총을 사용해 적을 쓸어 버릴 상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절대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특급 기밀이네. 하나는 육군본부로, 다른 하나는 경무대로. 이건 각각 도쿄와 워싱턴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해주겠나?”

“육본··· 경무대··· 도쿄, 워싱턴. 예! 알겠습니다.”

서류 안에서 괴물이 꿈틀대고 있는 게 내 눈에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건 당연히 특급 기밀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건 확실히 해둬야지. 암. 어떤 세상인데.’

서류 안에는 새로운 소총의 반쪽짜리 설계 도면이 들어있다.

가장 중요한 부품 설계만 빼뒀으니, 뒤에서 군침 흘리는 놈들 신경은 안 써도 될 것이다.

어떤 음식점이 좀 잘 된다 싶으면 그 옆으로 비슷한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뭐가 좀 유명해졌다 싶으면 복제품과 짝퉁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아 봤는데, 이 정도 보험을 들어놓는 건 기본이잖아?

“사단장님, 이젠 그림까지 그리십니까? 대체 뭘 그리시기에 오늘 내내···”

“그냥 취미 삼아 좀 끄적여봤네. 왜 한 번 볼 텐가?”

“그림과 글에는 그리 관심이 없긴 한데··· 사단장님께서 직접 그리셨다니 궁금하긴 합니다.”

1연대장 김상옥 대령이 고개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바쁘지 않을 때 해둬야지, 국경에 가까워지면 도면을 그릴 시간 따윈 없을 테니까.

“자네라면 못 보여 줄 것도 없지.”

“사단장님··· 대체 이 신기한 건 뭡니까?”

김상옥 대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보지?

“괴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