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군수 공장(3)
“생긴 건 괴물처럼 생기긴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괴물과는···”
김상옥 대령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하긴, 이 도면에 그려진 괴물이 지금의 고정관념으로는 조금 상상하기 어려운 생김새라는 건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 괴물이 세상에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걸세.”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기존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돌격소총을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
머지않은 미래에 자유 진영의 오른팔이라는 벨기에 FN 에르스탈 사가 개발하고 있는 FAL 자동소총, 유진 스토너가 설계하고 아말라이트사가 개발할 AR 시리즈가 세계 제식 소총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각축전을 벌일 예정이지만.
곧 세상에 나올 AR 시리즈와 FAL, AK까지, 전부 충분히 훈련받은 사용자가 적절한 곳에 사용한다면, 훌륭한 명품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시대를 잘못 타고 개발된 비운의 총기가 되어버릴 것 같은데.
나노봇이 내놓은 설계도엔 이들보다 발전된 현대 소총의 설계도까지 모두 들어있었지만, 무리해서 현대식 소총을 선택하지 않고 이 괴물을 선택한 타당한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현재 보유한 합금, 성형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총기일 것.
단단하면서도 내구성 좋고 가벼운 소총은 설계도만 있다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빨리 만들어낸들, 합금 기술과 성형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동일 선상에 있다 해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둘째. 이 전쟁에서 훌륭한 성능을 뽐낼 것.
전쟁 상황에서 만들어낸 총, 평화로운 상황에서 만들어진 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쟁은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환경 속에서 사용자가 느낄 경험은 평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일 테니까.
뛰어난 무기로 적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건 물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어지게 될 이 괴물의 명성과 유명세는 덤이다. 덤.
그렇게 세간의 관심을 통해 얻은 명성과 유명세는 곧 자본으로 치환될 것이고, 자본은 또 다른 시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기초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총이 왜 괴물로 불리게 될지 조금만 설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전히 부족한 제 견해로는··· 사단장님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니 말입니다.”
평소였다면 시제품이 나왔을 때 직접 손으로, 몸으로 느껴보라며 넘겼겠지만, 눈앞에 아름답게 그려진 도면을 보니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조금 맛만 보여줄까?
“7.62 x 51mm 탄, 오픈 볼트에 더블 컬럼 더블 피딩 방식, 정확성을 위해 영점 조절이 가능한 가늠자와 가늠쇠 설치가 가능하고 개머리판 역시··· 1연대장, 내 말 듣고 있나?”
아···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도면대로 제작해서 나오면 그때 직접 이 완벽한 괴물을 느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단장님.”
“흠흠··· 알겠네.”
설계자나 생산자가 아닌 전선에 투입된 군인 입장으로 보자면 총은 고장 없이 잘 쏴지고, 잘 맞고, 가벼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뿐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방식들이 채용되고 생산 비용이 얼만지 알아가며 싸울 필요도 이유도 없긴 하다.
이 작품을 다 설명하지 못해 조금 아쉽긴 했지만, 1연대장이 보이는 반응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걸 이미 예상해서 인지, 서운하거나 섭섭하진 않았다.
“총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제 머릿속으론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지금 사단장님께 느껴지는 분위기와 표정을 그간 저의 경험으로 판단해보자면, 엄청난 요물이 탄생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어차피 이 설계도면에 대한 냉정한 점수는 워싱턴에서 매겨질 테니까.
***
워싱턴 D.C 백악관.
트루먼 대통령이 책상에 올려진 총기 설계도면을 눈빛으로 뚫어버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도면을 한차례 훑어본 애치슨 국무장관은 트루먼 대통령이 도면 감상을 마치기만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게 한국에서 이강산 준장이 보내온 총기 도면이란 말이지··· 국무장관은 어찌 생각하시오.”
신형 제식 소총 개발은 미국에도 중요한 안건이자 관심사였다.
이강산 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방위산업체에서 보내온 것이었다면, 지금 트루먼 대통령 책상 위에 놓여 있진 않겠지만.
“안 그래도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설계도에 대한 평가를 지시해뒀습니다. 담당자가 설계도면을 받아 들자마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1777년부터 M1903, M1 개런드와 같은 미군 제식 소총을 개발, 생산해온 전문적이고 유서 깊은 조병창인 만큼, 실력 있는 전문인력이 즐비했다.
애치슨 국무장관이 평가를 지시한 담당자 역시 마찬가지일 터.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사용하던 스텐 기관단총과 구조가 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인답니다.”
“스텐 기관단총이면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그 싸구려 총 말인가?”
[총이 아니라 투척병기]
[쇠파이프를 잘라 대충 만들어낸 쓰레기]
[배관공이 들고 휘두를 법한 쇠몽둥이]
스텐 기관단총은 조병창이 아니라 철공소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들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를 가진 기관단총이다.
덩케르크에서 모든 군수 물자를 다 던져버리고 철수한 영국군은 빈손이었다.
말 그대로 영국군이 가지고 있는 거라곤 머리 달린 사람뿐인데, 이들을 무장시키기 위해선 엄청난 생산성과 값싼 제작 비용이 전제조건.
생산성을 위해 많은 부품을 없애버렸는데, 그 덕에 기존에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던 총이라는 물건이라기보다, 총알을 발사시키는 장치에 가까웠다.
총알 분무기라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스텐 기관단총을 몰래 찍어내던 공장에 독일군들이 검열을 나왔을 때도, 총기 부품이라는 생각을 안 해 그냥 넘어갔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을 정도니까.
“예. 스텐 기관단총은 그렇습니다만··· 비슷한 구석이 많으면서도, 설계도대로 만들어내면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총이 나올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탄 또한 미군이 표준으로 밀고 있는 7.62mm 308구경을 사용한다는 것으로 보아···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설계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기야 그자가 종이에 대충 그린 낙서를 나에게 보낼 위인은 아니지. 조병창에서 설계도대로 만들어낸 시제품은 언제쯤 나온다고 이야기해 주던가?”
미국이 노골적으로 7.62mm 308구경 탄을 나토 제식 탄환으로 만들기 위해 밀어붙이고는 있다만.
그렇다고 최전방에 있는 야전 지휘관이 소총을 설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프링필드 조병창이 흥미를 느낄 정도라니.
절대 흔히 있을법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크게 만들기 어려운 부품이 없어 짧으면 1주에서 길어야 2주 안에는 시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답니다.”
총기 개발은 극히 짧으면 3개월, 길게는 몇 년씩도 잡아먹는 게 일반적이다.
아무리 설계도면이 있다지만 2주 만에 시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건, 생산성을 고려한 설계와 실력 있는 조병창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지 될까 말까 한 일.
“생산성도 신경 썼다는 말로 들리는군.”
“그가 생산성까지 염두 하고 설계도를 만들었을지는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지만, 결과론 적으로 따지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치슨 국무장관의 답변을 모두 들은 트루먼 대통령이 코 밑까지 내려온 안경을 올려 썼다.
가만히 앉아있기엔 좀이 쑤셔오는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국무장관, 한 가지 부탁을 좀 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서유럽 방문 일정을 조금 간략히 줄이고, 휴양을 좀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하겠나?”
“대통령님께서 원하신다면, 물론 가능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일정이 바뀌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곤란한 내색은 하지 않았다.
휴양이라는 표현을 쓸 때부터 애치슨 국무장관은 트루먼 대통령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이 시기에 정말 휴양을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지난번에 가셨던 웨이크섬 바다에 산호초가 꽤 볼만하던데, 다시 가면 감회가 좀 새로우시지 않겠습니까? 천천히 둘러보실 수 있도록 일정 조율해놓겠습니다.”
애치슨 국무장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트루먼 대통령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실 백악관에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전해주는 보고서로만 상황을 보고 듣자니··· 뭔가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계속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이미 계획해 놓은 일정이 있을 텐데 미안하게 됐네.”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미안하실 필요 뭐 있겠습니까. 흐름이 끊긴다고 느끼시는 게 동북아에 대한 전체적인 정세인지··· 이강산 준장 그 한국군 장성에 대한 흐름인지 저는 모르는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애치슨 국무장관이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었다.
“부탁한 김에 조금만 더 솔직해져 보겠네. 웨이크섬에서 이강산 준장이 보내온 총기 시제품, 그와 비교할 다른 시제품들을 직접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겠나?”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한번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첫 만남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강산을 또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가 만들어냈다는 총기를 직접 테스트해 볼 생각에.
앞마당에서 매카시 의원과 불장난을 해대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국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
중공 베이징.
김일성이 연합군에 생포 당한 뒤 전국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은 소련 모스크바에도, 베이징에도 자연스레 흘러 들어갔다.
이미 판이 뒤집힌 마당에 김일성을 두고 스탈린, 마오쩌둥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사단의 원흉, 김일성 이놈을 극악무도한 전범으로 몰아가자.]
발을 조금 많이 깊숙하게 넣긴 했다만, 확실하게 물어뜯을 먹이를 던지면 연합군의 화가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소련도 아니고 한국군이 김일성을 생포 버린 이상, 이젠 아쉬워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마오쩌둥의 인내심을 붙잡아두는 마지막 교두보가 끊겨버린 셈이었다.
“기어이··· 그 계획을 실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군.”
한겨울임에도, 습기가 가득 찬 찝찝하고 불쾌한 바람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엔 온통 이 불쾌함을 한시라도 빨리 씻어버리고 싶은 충동만이 가득했다.
국가도, 인민도. 주석인 내가 있어야 존재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음을 굳힌 마오쩌둥이 문밖을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
“이 보라! 지금 당장 저우언라이 동무를 불러오라.”
이 불쾌한 바람을 지워버릴 방법은, 피비린내와 광기 가득한 피바람을 불러오는 것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