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34화 (134/149)

134화. 군수 공장(4)

혁명(革命)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그저 정치판 안에서의 단순한 세력싸움, 기 싸움이 아니었다.

마오쩌둥이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지시한 것은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건!”

저우언라이 총리가 입에서 단호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말끝까지 힘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침착하다는 그 역시 적잖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내가 지금 동지한테 하는 건 부탁 같은 것이 아니야. 이 나라 주석의 자격으로 내리는 지시이자 명령! 그리고 혁명일세!”

굳게 다문 입의 결연한 표정.

자신이 믿는 게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무서운 표정이었다.

마오쩌둥의 표정을 본 저우언라이는 그 이상 그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만들어진 광기가 현실에 결과물로 반영되기 전까지, 자신의 지위가 완고하게 다져지기 전까진 그 누구의 말도, 그 누구의 조언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동지··· 군부에 틀림없이 그리 전하겠습니다.”

“수고하게.”

대답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저우언라이 총리가 곧바로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말이 끝나기 전에 움직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일평생을 마오쩌둥 옆에서 분신처럼 지내온 그였지만, 어찌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의 발언을 항상 주의 깊게 듣고, 존중했었다.

지금은 그 어떠한 말을 한들, 씨알도 먹히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반감만 사게 될 뿐이었다.

모두의 공통된 적은 나라와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뭉치게 한다고 했던가?

적이 안과 밖, 사방에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처럼.

“···주석께서 중대하게 지시하신 사안이니, 즉각 시행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 바랍니다.”

내가 들어도 쓴 말은, 남이 들었을 때도 쓴 법.

당 간부들과 군부에 마오쩌둥 주석이 내린 판단을 공표해야 하는 그 역시 쓰린 가슴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걸 말리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지 않습니까. 지금에라도 늦지 않았으니···”

“작금의 문제가 이리 심각하게 논의할 만한 사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 간부라고 해서, 고위직에 있다고 해서 모두 똑똑하고 명석한 건 아니다.

상황을 종합해 코앞에 와있는 머지않은 미래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라면 국가적 재난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만한 능력이 없는 자라면 다들 왜 이리 호들갑을 떨어대는지 말을 해줘야 알 테니까.

“상황이 이리된 이상, 소련 측에 연락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소련에서 뭔가 답을 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랬다간 소련에서 답이 오기 전에 동무 목이 먼저 날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목이 날아간다는 말에 존대를 섞으니 섬뜩함이 배가 됐다.

소련에 해답을 구하고, 단순히 마오쩌둥을 끌어내려 모든 일이 끝나기만 한다면 저우언라이의 고민은 깊고 깊은 심해 속으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답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땐, 믿을 수 있는 것과 믿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내는 것이 최우선.

소련?

북조선을 도우라며 등을 떠밀 땐 영원히 한 편이 되어줄 것처럼 굴더니,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마자 연신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데 통 믿을 수가 있나. 오히려 소련의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말려들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반대급부인 류사오치 부주석?

전반적으로 평판이 훌륭한 저우언라이 총리가 자신의 목을 걸고 힘을 쓴다면, 류사오치 부주석을 미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개나 소나.

똥이나 된장이나.

둘 중 뭐가 더 나은지 확실하게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권력 이양 과정에서 더 큰 피바람이 불어올지도 모르기에, 쉽게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었다.

“제 말이 어려웠던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말하지요. 저는 동무들에게 조언이나 듣자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동무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과업을 수행하기만 하시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동지. 알···알겠습니다.”

조곤조곤한 말투임에도 당 간부들의 고개를 절로 숙이도록 만들었다.

‘차라리 주석 동지가 천치였다면···’

얼핏 보면 마오쩌둥이 상황을 그저 우악스럽게 몰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권력 유지 측면에서만 본다면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를 고르는 중인 것이다.

“총리 동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대학을 다니는, 그보다 더 어린 인민들에 대한 소집을 해제하라는 명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중공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전쟁터에 끌려가면 무조건 죽는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사실에 가깝기도 하고.

마오쩌둥은 이들에 대한 소집을 해제할 것을 명령했다.

주석의 지시 덕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학생들은 그 성은에 망극하다 못해 감복할 것이고, 마오쩌둥은 이들을 권력투쟁의 선봉에 세울 계획을 세워뒀을 것이다.

그 이후.

[한국의 축구 스타 쏘니. 경기 중 폭발적인 가속력을 뽐내던 중 물리법칙까지 초월. 공과 함께 10초간 허공답보(虛空踏步) 선보여.]

[꿈은 이루어진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즐겨보던 평범한 직장인이 출근 중 숨겨진 9와 4분의 3 승강장을 경험한 생생한 후기.]

[비밀리에 한국에 들어온 전 세계 정상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무릎 꿇은 까닭은?]

오묘하게 은혜에 감복한 그들이 맛보기 좋은 선전용 활자들을 조합해 그들을 선동할 것이다.

선동 단계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마오쩌둥의 집권에 반대되는 인물이나 장소, 사상을 물어뜯어 공격할 테니까.

‘아직··· 아직은 좀 더 참아야 한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 한편, 저우언라이의 계획은 아직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디까지일진 모르지만, 아직 저우언라이 그에겐 인내심이라는 것이 남아있었다.

***

평안도와 자강도 사이의 경계지역. 향산.

아직까진 국군과 연합군의 진격을 막아서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럼에도 쉴새 없이 출격하는 정찰기가 보내오는 보고가 들어올 때면, 언제나 긴장되기 마련이었다.

“아무래도 적 주력이 여전히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포진해 있는 모양입니다. 북한 지역 내 눈에 띄는 대규모 병력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중을 기울이는 걸 보니, 드디어 바퀴벌레 같은 놈들에게도 지능이란 게 생긴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인구 생산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인 중공이라 할지라도 지난번 전투처럼 전멸을 당한다면, 또다시 머릿수를 채우기도 전에 주요 도시들이 함락될 게 뻔했으니까.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인데 당연히 신중해야 함은 당연지사긴 하다.

“아직 국경과 거리가 있어도 절대 긴장을 늦춰선 안 돼. 이 정도 추위라면 강이 중심부까지 완전히 얼어붙었을 테고, 마음먹으면 한반도로 들어서는 건 순식간이 될 걸세.”

“저 역시 언제든 지휘봉을 내려놓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그래.

지휘관이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

청천강에서 한차례 중공군의 목을 자르다 못해 거하게 갈아버렸지만, 그들은 재생되고 있었다.

동부, 서부, 중부 전선 전 지역에서 새롭게 편제된 중공군과 교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국지적인 전투가 벌어지게 될 확률이 높다.

연합군의 진격속도는 결코 빠르다고 말할 순 없는 속도였다.

환경의 제약이 없는 봄이나 가을이라면 모르겠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병력뿐 아니라 군수물자와 보급품의 상태도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에서 오는 체력적,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장 적절한 진격속도를 찾아가는 중에 있었다.

“늦어도 강계 일대에 들어서기 전에 전투가 벌어질 것이네. 자네가 방아쇠 당기는 걸 봐야 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길 바라네만.”

“사단장님께서는 놈들이 강을 넘어올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야 저쪽 사령관 마음이긴 하겠지만··· 전력은 아니더라도 일부는 반드시 강을 넘어올 걸세.”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굳이 꼭 그래야만 하는 특이점이 없다면 우리 집 앞마당에 폭격이나 포격이 쏟아져서 쑥대밭이 되는 것보단 남의 집 마당이 쑥대밭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

그뿐만 아니라, 앞마당과도 같은 국경에서 패하면 문을 걸어 잠그거나 할 시간 없이 곧장 현관문을 넘어 집 안까지 직행이다.

‘슬슬 연락이 오거나 뭔가 일이 터질 텐데···’

사방에서 중공을 조여 들어가고 있는 지금, 어떻게든 터진 둑을 막아보려 애쓰는 저우언라이에게서 올 연락이나 일이 남아있다.

아직까진 예측에 불과하지만, 밖에서 새는 바가지는 자세히 보면 안에서도 새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안에서부터 구멍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 터.

“사단장님. 지금 막 육군본부로부터 연락이 들어와 있는데··· 직접 사단장님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통신장교가 엄지와 검지를 벌려 수화기 모양을 만들며 통신이 아직 끊기지 않았음을 알려왔다.

“꼭 직접 전달하겠다던가?”

“예. 육군본부 측에서 하도 끊지 말고 바로 전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수화기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보고하러 왔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신신당부까지 했다는데 가야지 뭐.

그나저나 반드시 직접 연결을 원하는 경우는 꽤 드문 일이다.

예상과 어긋난 적의 정황이 포착되거나 작전을 수정해야 할 긴급한 상황이더라도, 늘 통신대대장이나 참모가 내용을 전달받고 나에게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보고체계였으니까.

“괜찮네. 가지.”

그간 통신장교의 목소리와 표정만 주의 깊게 보더라도 이 사안이 얼마나 긴급한지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통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니 궁금증이 샘솟았다.

발걸음을 옮겨 통신 장비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유일하게 수화기가 내려진 통신 장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통신 장교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무엇이 육군본부와 연결되어있는 통신 장비인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신속대응사단장 이강산입니다.”

-주변에 누가 있으면 좀 물려보겠나?

주변을 한차례 훑은 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자, 자리에 있던 인원들이 눈치껏 알아서 주변을 비웠다.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잘했네. 내가 직접 이야기를 전하겠다 한 이유는···

근데 누구지?

육군본부도, 신속대응사단 통신대대도 비교적 가장 최신형이라는 통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수화기를 넘어오는 음질이 아주 깨끗하진 않다.

따라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차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뭐, 상대방 측에선 내 관등성명을 알고 반말을 하는 것이긴 하겠지만.

“통신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지 잘 안 들립니다. 실례지만 먼저 관등성명 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급하고 바빠도 중요한 편지를 전하는 우체부 신원은 확실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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