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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36화 (136/149)

136화. 군수 공장(6)

데이트 신청을 받긴 했지만, 보고 싶은 게 나인지 신형 소총인지.

둘 다라면 뭐가 더 보고 싶은지 물어볼 필요까진 없다.

“음··· 아직 국경 지대에 다다르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있기야 한데··· 사단으로 부대를 재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부담이 없진 않습니다.”

나도 안다.

당연히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는 걸.

-지휘관이 자리를 비우면서 부담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나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적으로 요청해온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는 끔찍한 말을 내 입으로 전하지 않게만 해줄 수 있겠나?

김홍일 총참모장 목소리와 말투에서 제발 다 좋으니 그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진심이 느껴졌다.

“당연히 거절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접선할 날짜와 시간 정도는 상호 간에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 조병창에서 첫 시제품이 완성되어 나오는 시점과 북진에 차질이 없도록 일정을 잘 조율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총참모장님.”

-어··· 알겠네. 일단 전달은 그렇게 해보겠네. 더 전달해야 할 사안 있나?

“생각을 한번···”

-아니, 아닐세. 있어도 거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다음을 기약하는 것으로 하자고.

트루먼 대통령이 요구한 대면 요청 일정에 조금 딴지를 걸었더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상대가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더라도, 적당한 밀고 당기기는 필수다.

을이 갑을 찾아가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게 아니라 갑이 을을 먼저 찾았다는 건, 분명 반드시 을로 하여금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

설사 트루먼 대통령일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군뿐만 아니라 자네에게 기대와 희망을 느끼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게. 딱히 걱정은 없네만.

김홍일 총참모장이 그간 담아뒀던 말을 대화 끝에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기대와 희망.

많은 이들이 나를 통해 아직 포화가 채 끝나지 않은 이 나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느낀다니.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저릿해져 오면서도, 그들의 기대와 희망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다졌다.

“앞으로도 걱정하실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하물며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 있기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뜨거운 화로 속에 장작 하나를 더 집어넣을 뿐이었다.

나와 모두를 위해.

***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럼 에도 늘 과거를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구식 군대와 별기군의 차별로 인해 벌어진 쌀의 전쟁.

임오군란을 겪은 지 채 70년이 되질 않았으니까.

“본부장님 말씀대로 다들 돌려보냈습니다. 찾아오지 말라고 좋게 말도 해보고, 체포한다고 엄포도 놔봤지만, 도무지 말귀를 들어먹질 않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수고했네.”

이종찬 본부장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공산군의 포화가 미치지 않아서인지, 부산에 내려오자 그는 그간 겪어온 일상과 다른 일상에 적응해야 했다.

“혹여나 저들로부터 쌀 한 톨이라도 받아 주머니를 채우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거든,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야. 알겠나?”

“쩝··· 예.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병기 행정부원의 입술이 미세하게 튀어나왔다.

광복 이후 5년 만에 전쟁이 발발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과 군인들이 조국을 대하는 태도를 제외한 다른 가치관을 성립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정부와 육군본부를 통해 각 부대에 조달되는 보급품도 있긴 했지만, 제대로 된 군수지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에 여전히 대다수의 부대는 주변에서 보급품을 조달하고 있었다.

이종찬 본부장이 부산에 내려오자마자 끗발 좀 날린다는 상인과, 사업가들이 장사진을 이뤄 병기 행정 본부에서 일하는 군인, 공무원들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다.

본인들이 팔거나 만든 제품을 군과 계약하도록 도와주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겠다는 조건은 기본 중 기본이었다.

“이곳 나름대로 관습이 있었을 테니,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겠네. 각오하라는 말이 절대 농담 삼아 한 말이 아니었으니, 모두가 새겨들었길 바라네.”

“···예.”

금품수수, 뇌물을 받는 부정을 저지르지 말라는 상관 앞에서 혀를 차거나, 대답을 늦게 하는 행동은 정강이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까여야 정상이다.

“나가 봐.”

이종찬 본부장이 애써 화를 참아냈다.

딱 꼬집어 누구라 할 것 없이 비리가 전반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는 판국에, 모두의 정강이를 까부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이냐···’

좀처럼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상인들도 납품하겠다며 들고 오는 물건은 다들 가장 최상품만을 골라 온다.

부산에 온 지 이틀 만에 납품받은 건빵 속에 곰팡이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생산지를 확인해 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거기서 그 건빵이 뭐가 들어있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폐드럼통에 들어있던 것이라는 걸 보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3사단장 시절 휘하에서 고생하던 병사들이 떠올라 분노가 절로 치밀었다.

“본부장님. 곧 첫 번째 시제품이 완성되기 직전이랍니다. 바로 육본에 보고하면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새로 만들어진 조병창에서의 첫 자체제작 소총 시제품.

만약 정상적인 품질을 갖췄다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는 순간이었다.

행정부원이 잔뜩 신이 난 채 보고 해왔다.

“뭐가 그리 급한가. 보고하기 전에 내가 직접 테스트해 볼 터이니, 준비되는 대로 가져오게.”

지금 해야 하는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임무인 시제품 만드는 일은 오히려 쉬웠다.

이강산 사단장이 설계도만 준 것이 아니라 그 외에 품질, 가공해야 할 재료에 대한 부분까지 이미 언급을 해줬으니까.

그 기준에 맞는 자재만을 이종찬 본부장이 직접 납품받아 만들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본부장님. 이쪽으로···”

행정부원을 따라 조병창 안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이미 시제품은 맨 앞에선 직원 손에 들려있었다.

“지금 막 조립을 마친 부산 조병창 1호로 제작된 시제품입니다.”

조병창 직원이 조심스레 두 손을 내밀어 소총을 건넸다.

“오···”

손이 닿자마자 차가운 금속의 느낌과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게를 달아보니 M-1 소총과 같은 4.3kg이 나왔습니다.”

“그래? M-1 소총과 무게가 같단 말인가? 거기! 자네 총 이리 줘 보게.”

때마침 M-1을 메고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가 보였다.

무게를 비교해보기 위해 두 소총 모두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저도 조금 놀란 부분입니다만, 설계상 무게중심이 매우 잘 잡혀있어 같은 무게거나 무게가 덜 나가는 소총을 들었을 때보다 비교적 가벼운 느낌이 드실 겁니다.”

“정말 그렇군.”

잠깐 들었음에도 몸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M1을 들었을 때 보다, 무게감이 덜 느껴졌다.

무게감은 곧 피로도와 직결되고, 군인이 몸에서 절대 떼어 놓을 수 없는 게 소총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작은 차이는 벌어질 것이다.

새것이어서 그런가?

첫인상은 완벽한 합격이었다.

“실사격은 어디서 해 볼 수 있지? 빨리 쏴보고 싶은데.”

지금은 본부장이라는 행정적인 느낌을 주는 직책에 앉아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전방에서 야전군을 이끌던 사단장이었다.

이종찬 본부장 머릿속엔 시제품에 대한 성능을 조금이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은 생각뿐.

“이쪽 문으로 나가시면 모래 포대를 쌓아 만들어 놓은 임시 사로가 보이실 겁니다. 혹시 모르니 제가 경고 방송을 좀 하고 올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종찬 본부장이 시선은 새로운 소총에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다녀오지.”

[아아, 곧 조병창 옆 임시 사로에서 실사격 테스트가 있을 예정이오니 주변에 있는 병력과 직원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조병창에 있던 직원들 대부분이 실사격 테스트를 구경하러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이건 20발들이 탄창이고, 이건 30발들이 탄창입니다. 탄창 역시 설계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철컥.

이종찬 본부장이 부드럽게 탄창을 집어넣자, 여기까지 넣으면 된다는 듯 청량한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총기 좌측에 방아쇠를 고정할 수 있는 조종간 안전, 오른손 엄지를 이용해 우측으로 90도 회전시키면 단발 사격, 거기서 90도를 더 돌리면 자동발사가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공장장의 설명에 따라 조종간을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이종찬 본부장의 손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총구를 적에게 겨눈 상태에서 한 손으로 조종간을 바꾸기 어렵지 않았다.

“그럼 이제 쏴보겠네.”

틱.

우선 조종간 단발.

조병창 직원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탕!

조용한 가운데 탄약에 있던 화약이 터지며 공기를 찢었다.

발사 성공.

총알이 정상적으로 총열을 타고 앞으로 쏘아지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탕! 탕! 탕! 탕! 탕!

단발로 빠르게 다섯 발 이후.

틱.

이종찬 본부장이 조종간을 자동으로 바꾼 뒤 방아쇠를 힘껏 당기자, 남은 탄약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쏟아져 나갔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당!

“오···”

20발들이 탄창을 순식간에 비운 이종찬 본부장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떠십니까···?”

공장장이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왔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남아있는 30발들이 탄창을 삽입했다.

-철컥.

7.62mm 탄약을 사용하면 파괴력이 강력해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작용과 반작용으로 인한 반동, 그로 인한 총기 내구성에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

급탄 불량이나 탄 걸림 역시 마찬가지.

방금 나온 시제품이 탄창 하나를 무사히 비워냈다는 것만으로도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틱. 틱.

엄지를 두 번 움직여 조종간을 자동으로 만들었다.

첫발부터 자동으로 사격하겠다며 조종간이 알려오자, 저마다 본능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7.62mm 탄을 사용하는 총기들은 연발로 사격 시, 엄청난 반동을 동반했고 그에 따라 명중률 또한 급격히 나빠졌다.

적을 맞추기보다, 겁을 주는 용도가 더 바람직할 정도로.

“쏘겠네.”

3초.

30발들이 탄창이 모두 비워지는 데 채 3초가 걸리지 않았다는 건, 분당 600발 이상의 발사속도를 지닌 총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탄창과 탄약 역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와 개머리판을 견착했던 자신의 어깨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기랄··· 이거라면 안 쉬고 며칠 내내 연발로 갈겨댈 수 있겠군.”

사로 끝에 묶여 있던 표적지엔, 수십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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