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37화 (137/149)

137화. 웨이크섬의 겨울

워싱턴 D.C 백악관

트루먼 대통령이 보고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애가 닳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대통령님. 애치슨 국무장관이 지금 막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 지금 들어오라고 전해주겠나?”

한국 정부에선 이미 언제라도 트루먼 대통령의 일정에 따라 이강산 준장의 일정을 비워놓겠다는 연락을 취해왔다.

이미 한국은 부산 조병창에서 만들어진 첫 시제품이 여러 테스트를 끝마친 뒤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스프링필드에서 하도 마지막, 마지막 거리는 바람에···”

“왜지?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안부를 묻자마자 자연스레 이야기가 스프링필드, 스프링필드에서 만든 시제품에 대한 주제로 변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부릅뜬 눈을 보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제 사견을 일일이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걸 먼저 보시는 게 나으실 겁니다.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병기국에서 시제품을 테스트한 뒤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기대감에 찬 트루먼 대통령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과연.

물론 기대심리도 있지만, 이강산이라는 자가 대뜸 설계해 내놓은 총이 어떤 수준의 성능을 갖췄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음···”

보고서를 읽어내려가며 옅은 한숨을 쉬는 트루먼.

“저도 보고서를 읽자마자 대통령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끝까지 마지막 거린 이유도 비슷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그렇군.”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 두 사람 모두 총기에 대한 평가는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예상했다.

모 아니면 도, 동전의 앞면이거나 뒷면.

동전을 던졌는데 앞면도, 뒷면도 아니고 세로로 서버렸다고 해야 하나?

“내구도 및 신뢰도, 화력대비 반동과 사용자 편의성이 훌륭하고 생산성 또한 훌륭할 것으로 판단된다.”

트루먼 대통령이 보고서를 소리 내 읽었다.

여기까지만 읽어 보면 무조건 모가 나올 것 같지만.

[전투 적합 판정은 내릴 수 있으나, 제식 총기가 되기엔 부족해 보임]

여기까지 보면 그냥 그저 그런 애매한 총이라는 평가가 나올 것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라 보고서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고 이번 시제품을 직접 만든 직원들이 하나같이 이런 의견을 남겼다고 합니다.”

[훌륭한 요리사가 알려준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만들었지만, 그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마치 요리사가 핵심 비법을 숨긴 것 같다]

날로 먹고, 찌고, 굽고, 삶고, 튀기는 조리법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어 있듯, 소총 제조도 마찬가지.

틀은 이미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굳어져 있고, 맛집과 그냥 음식점, 시제품과 명품을 가르는 건 작고도 미묘한 한 끗 차이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다른 유럽국가들이 그러했듯 미국 역시 차기 신형 소총 선정에 고심하고 있었고, 그 흐름이 자동 돌격소총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소모되는 공정이 미묘한 한 끗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 역시.

“지름길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은데··· 애치슨 자네 생각은?”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애써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애치슨도 지름길로 갈 것에 동의하자, 트루먼 대통령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일정을 잡아 한국 정부에 알리게.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떠나도 될 것 같으니.”

“예. 대통령님. 새로운 일정이 나오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트루먼과 애치슨, 두 사람 사이에서 같은 생각이 오갔다.

이강산.

그가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이나 기술을 뺀 설계도를 보냈고, 핵심은 역시 그에게 있을 것 같다고.

***

중공.

바람이 불었다.

얼음송곳인 듯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비린내가 묻은 것 같았다.

[마오쩌둥 동지의 사상이 모든 것을 통치하고 통제하게 하라.]

당으로부터 하달된 선전 문구가 신문사, 라디오 등 대중 매체에서 흘러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오쩌둥 동지의 어록이 적힌 책은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몸 안에 난 갓난아이 크기의 혹에 책을 가져다 대자, 혹이 사라졌다.]

[서실 대륙은 점차 침몰하고 있었다. 주석께서 대륙을 1.9cm 들어 올리셨다.]

이런 엄청난 기적에 비하면 축지법이나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것은 그저 애들 장난이오,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5천 명에게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인민 청년들에 고합니다! 제국주의자들이 국경을 향해 다가오고, 그들과 모종의 흉악한 계략을 맺은 국민당군이 상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척해야 할 부르주아들과 당이 내리는 명령을 어기려는 자들이 사방에서 준동하려 합니다. 이들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이 바로잡아야 합니다!”

전황이 불리한 상황에서 무슨 개소린가 싶지만.

인민, 특히 그가 연설에서 대놓고 집어낸 청년들은 그의 말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국공내전을 공산당의 승리로 끝낸 영웅이자, 전쟁터에 끌려갈 운명이었던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을 징집 해제하라 명령한 마오쩌둥에게 반기를 드는 청년들은 없었다.

그렇게, 청년들은 홍위병이라 불리며 흥분과 분노에 휩쓸렸다.

“혁명 무죄! (革命無罪) 조반유리! (造反有理)”

“혁명 무죄! (革命無罪) 조반유리! (造反有理)”

“혁명 무죄! (革命無罪) 조반유리! (造反有理)”

혁명에는 죄 없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

고작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들이 떼를 이뤄 행진하며 구호를 외쳐댔다.

마오쩌둥 주석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방법은 각자 달랐다.

누군가는 모여서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누군가는 마오쩌둥의 사진이나 직접 그린 초상을 가슴에 품기도 했으며, 무거운 반신상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리치앙, 이 신성한 반신상을 절대 땅에 내려놓거나, 떨어트려선 안 돼. 알겠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마오쩌둥 반신상이 행렬 맨 앞에 있던 리치앙 손에 들려졌다.

“물론이지. 넘어져 내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이 반신상엔 흠집 하나 나지 않게 지켜낼 거야.”

리치앙이 반신상을 조심히 품어 들고 행렬 맨 앞에 서자, 뒤따르던 이들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같은 중학생 또래보다 힘이 세고, 체격도 좋았기에 불안해하는 이는 없어 보였다.

“혁명 무죄! (革命無罪) 조반유리! (造反有理)”

행진은 계속됐다.

평지와 험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고, 행진 도중 자신들을 기분 나쁘게 쳐다보거나 부르주아처럼 보이는 인물이 눈에 들어오면 집단 린치를 선사했다.

감히, 이 나라와 주석 동지의 심사를 어지럽힌 엄청난 죄를 지었으니까.

“리치앙. 힘들지 않아? 내가 앞에 설까?”

슬슬 체력이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누군가 리치앙을 불렀다.

벌써 6시간째.

훈련받은 정규군도 쉽지 않은 강도의 행진이 이어졌다.

홍위병들은 제대로 된 밥도, 물도 마시지 못한 채 그저 걷고 있었다.

“됐어. 주석님의 반신상을 한 번 들었으면, 오늘 행진이 끝날 때까진 내가 책임을 져야지. 전쟁터에선 열흘 굶는 일도 다반사라던데, 이게 다 제국주의자 놈들과 주석님께 반하는 사상을 가진 놈들 때문이겠지···”

세뇌받으며 자란 중학생 청년들이 국제 정세를 이해하고, 왜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지를 이해할 순 없었다.

모든 일의 시작과 중간이 어찌 됐건 간에 그 끝은 망할 제국주의자 놈들과 주석님의 뜻에 반하는 불순분자의 탓이었다.

“알겠어.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나 너무 힘들면 말해도 돼.”

“됐다니깐? 가서 다른 애들이나 도와줘.”

대단한 혁명을 하려는 이들 같았지만, 하는 말과 행동에선 풋내가 가시질 않았다.

리치앙은 또래보다 힘, 체격만 큰 것이 아니라 자존심 역시 또래보다 월등했다.

“후··· 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마시지 않은 공복 상태로 쉬지 않고 행진했다.

이미 더 빠질 기운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처음엔 무게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주석님의 반신상은 왜 이리도 무거운지.

탈진 상태로 양손에 태산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순식간이었다.

태산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으로 변하는 데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어···? 어··· 어···”

광경을 지켜본 모두가 인지 부조화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말도, 행동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신성한 주석님의 반신상을 제깟 놈이··· 죽어! 죽어! 죽으라고!”

리치앙이 깨진 조각도 치우지 않은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치며 자책했다.

그만해, 반신상은 다시 구하면 돼, 네 탓이 아니야.

동무가 실수를 저질렀을 땐 이런 말이 오가야 정상에 가깝겠지만.

“세상에··· 죄송합니다! 주석님!”

자책하는 리치앙을 말리는 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걸음을 멈춘 뒤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이 자리에 반신상을 깨트린 죄를 물어 벌을 내릴 자격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저 수백 명이 하염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뿐인,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죄송합니다···흑.”

리치앙을 비롯해 몇몇은 자신의 불충을 참지 못하고 눈물마저 터트렸다.

이곳에 꿇어앉은 홍위병들의 나이는 고작 15살이었다.

***

북서 태평양 웨이크섬.

태평양 상공에서 바라보는 웨이크섬은 언제봐도 아름다웠다.

벌써 2번째 방문이었지만, 몇 번을 오더라도 내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은 변치 않을 것이다.

“곧 도착하실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때마침 슬슬 지루해지려던 찰나에, 먼저와 있던 트루먼 대통령의 참모진 중 한 명이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지루한 건 끝.

지난번엔 맥아더 사령관과 트루먼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그저 지나가던 행인1 정도의 작은 배역이었고, 맡은 배역에 충실하게 만주에 핵을 쏠 수 있냐는 발언으로 트루먼에게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그 공은 불과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트루먼 대통령이 나를 웨이크섬으로 불러낼 정도의 큰 공으로 성장했다.

‘오셨군.’

저 멀리 트루먼이 탄 공군 1호기가 활주로에 점점 가까워졌다.

피부에 느껴지는 웨이크섬의 겨울 날씨가 아주 환상적이었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습도, 적당한 바람까지.

-현재 활주로 이상 없습니다.

지상과 공중.

하늘과 땅에서 완벽한 체크를 마치자 1호기 발이 땅에 닿았다.

항공기 문이 열리고, 계단이 펼쳐졌다.

트루먼 대통령이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그가 내민 오른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바쁜 와중에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자네가 보내준 설계도면 말이야···”

어허.

엄연히 이것도 수도 없는 사족이 오간 뒤에나 본론을 조심스레 꺼내는 외교의 일부 아닌가?

“예. 설계도면에 관한 내용은··· 천천히 가면서 이야기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적당한 문제가 있지 않았습니까?”

분명 문제가 있었을 텐데, 일부러 그랬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