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웨이크섬의 겨울(2)
당연하다는 듯한 뉘앙스에 트루먼 대통령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왜 그리 고민하고 생각했는지,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병기국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빠진 핵심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자네 말은 설계도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설마 일부러···”
그의 미간이 오묘하게 꿈틀거리는 걸 보니 신중해야 한다.
정말 마음만 같아선, 아니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뭘 믿고 완벽한 설계도를 보내냐? 라고 말하고 싶긴 하다만.
미국이 한반도에 우리가 쏟아부은 병력과 돈이 얼만데? 같은 이유를 대며 설계도를 맨입으로 삼키려는 시도를 안 한다는 보장이 없다.
일부러 알맹이가 빠진 설계도를 보냈다는 뉘앙스를 흘리며 밀어냈으니, 그의 기분이 너무 상하지 않게 당길 차례다.
오늘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현존 지구 최강의 권력자 트루먼 대통령이니까.
“제가 감히 대통령님께 올린 설계도를 일부러 그랬을 리가 있겠습니까. 부산에 만들어진 조병창에서 시제품을 생산하던 중 도면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설계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물론 수정된 시제품을 챙겨왔으니 잠시 후에 얼마든지 테스트해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렇게 대답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국 내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총기회사들과 조병창이 즐비하다.
역사와 전통은 허울뿐인 껍데기가 아닌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력을 뒷받침해주는 진짜배기 조병창.
미국 내에 있는 조병창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듣도 보도 못한, 그것도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부산 조병창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은 트루먼 대통령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충분하다.
‘역사와 전통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지만, 높은 신뢰성을 등에 업은 채 군수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좋은 기회지.’
적당히 밀고 당기고 한 것 같은데.
이제 진짜 거래를 할 시간이 왔다.
“잠시 후 말고··· 지금 바로 볼 순 없겠나?”
암요.
되고말고.
“그러시죠.”
트루먼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사격 테스트를 해볼 임시 사격장은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금방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사단장이 손짓 한번과 말 한마디로 산을 옮기는데,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라면 사격장이 아니라 활주로를 하나 더 만들라 했어도 금방 만들었을 것이다.
“대통령님. 세팅 끝났습니다.”
“가지. 자네가 가져온 시제품과 우리가 만들어본 시제품. 그 외에 개발 중인 소총 3종을 가져왔으니 확실한 비교가 가능하겠지.”
조용히 참모의 뒤를 따라 사격장에 들어서자, 탁자 위엔 소총 5정과 많은 탄창이 올라와 있었다.
‘저 정도 탄이면 거의 총열이 달궈지다 못해 휘어질 때까지 쏴보겠다는 심산이네.’
어차피 제식 소총으로 선정되기 위해선 수백 가지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야 한다.
테스트 중엔 소총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만큼 기본적인 것도 있었지만, 소총 특성상 극한의 환경에서 어떤 성능을 보이고 얼마나 견디는지도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
새까맣게 몰려오던 중공군을 상대할 때 기관총 총열과 포구가 벌겋게 익으며 녹아내리는 것을 직접 겪은 나다.
당연히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 설계했기에, 별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십니까?”
내가 가져온 시제품을 이리저리 만지고 문지르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정도라면 나중엔 시제품을 핥아 맛까지 볼 기세였다.
“안 그래도 소개해주려 했네. 존 개런드(John C. Garand) 라고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총기 자문을 맡고 있네. 지금 대부분의 한국군과 미군이 쓰고 있는 M-1 개런드를 설계한 실력 있는 설계사지. 오늘 테스트를 맡아줄 거야.”
2차 대전의 맹장, 조지 패튼이 유사 이래 가장 뛰어난 전쟁 무기라는 평을 내린 M-1 개런드 소총을 설계하고 개발한 설계사.
아직 칼라시니코프와 유진 스토너가 20세기 총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라는 평을 받기 이전이다.
잠깐, 생각해보니 칼라시니코프는 이미 AK 소총을 개발했다만, 총기 제작사 아말라이트가 생겨나기도 전인 지금 유진 스토너는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페어차일드에서 일하고 있다.
미리 말해두는데 미안하다, 유진 스토너.
이 세상에서 AR(ArmaLite Rifle)은 유명해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지금은 존 개런드가 현존하는 천재 설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 시간 뒤엔 M-1 개런드도 곧 더럽게 무거운 구닥다리 총 취급을 받을 테지만.
“오! 천재적인 총기 설계사가 제가 설계한 소총을 테스트한다니··· 최전방에서도 멀쩡했던 심장이 떨려옵니다. 대통령님.”
존 개런드를 이곳까지 데려온 걸 보면, 트루먼 대통령이 제대로 작정한 모양이다.
테스트가 시작되기 직전, 너스레를 떨어 분위기에 긴장감을 심었다.
“대통령님. 테스트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준비된 지 오래일세.”
참모진이 존 개런드에게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존 개런드가 트루먼을 향해 허리를 접어 예를 갖춘 뒤, 탁상 위에 올려진 총기를 손에 들었다.
‘시작이군.’
테스트는 다소 딱딱하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아무리 존 개런드의 신분이 확실하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총기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관람하고 있다.
만에 하나 나올지 모르는 상황까지 대비하기 위해 존 개런드 좌우에 경호국 요원들이 자리했다.
“첫 번째 총기는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이강산 준장의 설계도대로 만든 시제품입니다.”
철-컥
탕! 탕! 탕!
존 개런드가 장전 손잡이를 당겨 사격 준비를 마치자마자, 단발로 세 발을 격발했다.
그리고는 이내.
타다다다다다다다당!
조종간을 연사에 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을 다 비워냈는지 총성이 멈추자, 곧장 탄창을 갈아 끼우고는 테스트를 이어갔다.
표적지 뒤에 있는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탄두가 모래에 박히며 튀는 모양새만 보더라도 집탄률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번째 탄창을 갈아끼고 얼마 되지 않아 총성이 멈췄다.
존 개런드가 탄창을 빼고 약실을 확인하며 안전검사를 마친 뒤, 소총을 내려놨다.
“왜 쏘다 말지? 마지막 탄창은 다 비워지지 않은 것 같지 않나?”
“아무래도 총열이 휘거나 총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연사로 200여 발.
설계의 문제가 있거나 강도가 충분하지 않은 합금 소재로 총열이 만들어졌다면, 충분히 총열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거나 심한 경우 총열이 완전히 찢어져 터져버릴 수도 있었다.
“대통령님. 총열이 휘는 문제가 발생했답니다.”
“흠··· 알겠네. 계속 진행하게.”
총열이 휘었다는 보고를 듣자 트루먼 대통령이 나를 쳐다봤다.
그에 뒤통수를 살살 긁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대응했다.
“이번엔 총열이 찢어졌답니다.”
“앞서 테스트한 두 소총보다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답니다.”
“이번에도···”
첫 번째와 두 번째 테스트 총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설계를 수정할 것 없이 폐기.
“이제 마지막입니다. 이강산 준장이 직접 가져온 소총입니다.”
철컥.
‘어때··· 좀 다르지?’
다른 이들은 못봤을지 모르겠지만, 난 봤다.
장전 손잡이를 당긴 존 개런드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는 것을.
뚜껑을 여는 소리 하나로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명품 라이터 듀퐁처럼.
부딪혔을 때 비로소 진가를 알게 되는 좋은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투명한 잔처럼.
존 개런드는 앞서 4개의 총기를 비교 테스트했기에, 명품을 고를 감각이 오를 만치 올라 있었다.
탕!
테스트 순서는 같았다.
단발, 그리고 연사로 변경.
“오··· 지금이 몇 개짼가? 확실히 다른 것들보다 오래 가는군.”
“탄창을 열다섯 개째 비우고 있습니다.”
총열의 내구성뿐 아니라, 다른 총기에 비해 표적 뒤 모래가 일정하게 튀어 올랐다.
스물.
존 개런드가 마지막 스무 번째 탄창을 끼워 넣는 걸 보고는, 트루먼 대통령 옆에서 상황을 보고하던 참모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한 번 더 옮겨서 쏴보라고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일단 전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총기들의 조종간은 많아도 3개를 넘지 않는다.
안전, 반자동, 자동.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방아쇠를 두어 번 당긴 존 개런드가 멈칫하며 사격을 멈췄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던 총성의 리듬과는 전혀 달랐다.
“이봐. 지금 개런드가 일부러 3발씩 끊어서 쏘고 있는 건가?”
“그것까지는 잘··· 알아보겠습니다.”
참모가 존 개런드에게 영문을 묻기 위해 다가가기 전, 입을 열었다.
“지금 3발씩 끊어 쏘고 있는 건, 개런드씨가 아닙니다. 탄을 3발씩 끊어주는 총에 탑재된 새로운 기술입니다.”
보수적인 군의 견해와 사고를 한 번에 깨부숴줄 소총의 새로운 패러다임.
3점사라고 들어는 봤을지 모르겠는데.
“소총 명은 K-1, K-1 소총입니다.”
그간 시제품이라 불렸던 이 소총을 내 이름 가운데 글자인 강의 이니셜 K, Korea의 앞글자를 딴 K-1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제식 소총이 되기엔 부족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그저 그랬던 소총의 이미지가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대체 우리에게 준 설계도와 어떤 점이 다르길래··· 이건 모양새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총입니다. 308탄을 이리도 안정적으로 쏘아내는 것 하며···”
아직 제식 소총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테스트는 많이 남아있었지만, 존 개런드의 입에서 칭찬이 쉼 없이 쏟아져나왔다.
“남아있는 다른 테스트들은 아무렇지 않게 통과할 게 분명합니다!”
그 또한 설계자이자 개발자로서 자신이 몸담은 분야의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적잖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고생 많았네. 이 준장과 둘이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를 좀 비켜주겠나?”
“아, 물론입니다. 제가 너무 신이나 흥분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입과 눈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자리가 비워지자, 남은건 트루먼 대통령과 나.
둘 뿐이었다.
“음···”
얼핏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니다.
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는 팽팽한 기가 오가고 있다.
“확실히 자네가 가져온 시제품··· K-1이라고 했나? K-1이 뛰어난 성능을 갖춘 소총인 모양이야.”
“과찬이십니다.”
“아직 더 많은 테스트를 거친 뒤 확실한 신뢰도를 쌓아봐야 분명해지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미국도 신형 소총에 대한 갈증이 큰 상황이네.”
그럼! 알다마다.
딱 필요한 상황에 나타난 좋은 제품은 비싼 값어치를 인정받는 법이다.
“그래서 말인데 진짜 설계도를 우리가 얻어가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물론입니다.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두 팔 걷고 도와주신 분이 대통령님 아니겠습니까. 여기 제가 준비해온 게 있으니 읽어보시겠습니까?”
조심스레 옆에 있던 서류를 넘겼다.
“이런 귀한 선물을 주다니 고맙네, 고마워. 이··· 이건 뭔가?”
서류를 읽어내려가던 트루먼 대통령의 눈이 갈 곳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