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39화 (139/149)

139화. 역사의 어긋남(1)

미국은 대한민국을 도운, 지금도 돕고 있는 아주 고마운 나라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없을 것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이는 미국 수뇌부가 이해관계나 국제 정세를 모두 세세히 검토한 뒤 내려진 국가와 국가 간의 결정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K-1 소총의 설계도면을 사이에 놓고 트루먼 대통령과 거래를 해야 하는 나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

“라이선스에 관한 계약서입니다. 대통령님께선 위기에 빠진 제 조국을 존망의 갈림길에서 구해주셨습니다. K-1 소총은 대통령님의 조국인 미국에 있어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계약서에 이해하기 어렵거나 법무팀이 오랜 시간을 검토해야 할만한 내용은 없다.

괜히 한미양해각서니, 외교 채널을 통해 체결된 한미 상호조약이니 하는 서로를 옭아맬 가능성이 있는 군더더기는 싹 빼버렸으니까.

군더더기를 넣었다면 한미동맹 강조,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 각 국간 군사적 책임공유 같은 우정을 다질 수야 있겠지만, 우정을 굳이 내가 설계한 소총 설계도로 할 필요는 없다.

“소총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오롯이 자네에게 있는데, 로열티의 일부분은 부산 조병창으로 조달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지?”

가져갈 거면 다 가져가지, 굳이 왜 로열티의 일부를 국영 조병창에 넘기는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야 조삼모사니까.’

나중엔 결국 내가 다 회수해갈 수 있는 돈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지금의 부산 조병창은 한국정부의 국영 조병창이다.

이것저것 개발한다며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잡아 먹어가며 허송세월할 바에, 로열티와 정부 지원을 시설과 설비 최신화에 집중투자한다면, 나노봇이 가진 설계도들을 하루라도 빨리 시제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사회환원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더불어 그렇게 최신화 설비를 갖춘 조병창은 머지않아···

내 것이 된다.

“그저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뿐이지, 어떤 다른 의도가 있겠습니까.”

“흠··· 그렇군.”

장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험난한 과정을 굳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가 계약서를 만지작거렸다.

계약서를 요약해 보자면.

[1. 이강산은 미국 내 총기회사와 국영 조병창에서 전체총기를 라이선스생산, 판매하는 것을 허가한다.]

[2.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한다. (K-1 소총 1정 생산 당 3달러의 로열티를 각각 설계자 이강산에게 2달러, 대한민국 부산 조병창에 1달러를 지급)]

[3.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 제3국으로 K-1 소총 수출 금지]

[4. 이 계약은 양측이 서로 합의하여야 파기 가능, 한쪽의 일방적인 파기는 불가능하다]

그 외에 자잘하고 다소 섬세한 내용도 들어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깔끔한 계약서였다.

1정 생산 당 3달러, 내 손에 들어오는 2달러의 로열티가 지금 당장엔 크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미국 제식 소총으로 선정되는 순간 반영구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셈이다.

근현대를 포함해 잘 팔려나간 총기들은 적게는 수천만 정, AK의 경우 1억 정 이상 팔려나갔으니까.

어디선가 불법복제, 라이선스 무단 사용의 문제들이 터지기야 하겠지만, 최소 수천만 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지급 받을 수 있다.

무려 가만히 앉아서.

극도로 보수적인 미군 일부 수뇌부들과 병기국, 방위산업체 양반들이 한국산 소총이 제식 소총이 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겠지만, 어쩌지?

향후 몇 년간 이보다 나은 성능을 가진 소총이 개발되지도 않을 예정일뿐더러, 함께 전쟁터에서 구르고 있는 미군 수뇌부들이 나를 보는 태도까지 매우 호의적인데.

“지금 당장 계약서에 대해 더 의논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 같네. 아주 까다로우신 분들께서 이 계약서를 쥐어 뜯어보고, 맛도 볼 테니까. 다만 최대한 빠르게 답을 전해주라 전하겠네.”

트루먼 대통령이 계약서를 옆에 있는 참모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신형 기관총과 소부대가 운용할 수 있는 화력 무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설계도와 시제품이 나오게 된다면, 대통령님께도 꼭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자네가 야전에서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군.”

이상하리만큼 트루먼 대통령 그가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번 웨이크섬에서 만났을 땐 단독적으로 만주에 핵을 쏘라 명령할 수 있냐는 질문을, 이번엔 소총 라이선스 계약서를 건네주었다.

최고 결정권자 위치에 있는 대통령일지라도, 즉각적인 답을 내릴 순 없는 문제들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언제나 마지막엔 겸손함으로 마무리.

미국 대통령마저 대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건, 적어도 나와 대한민국에 청신호가 분명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당연히 세계 정복 같은 미친놈도 안 할 법한 망상을 꿈꾸는 건 더더욱이 아니고.

‘전쟁이 끝난 후에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나가기 위해선···’

돈과 명예, 둘 다 필요할 테니까.

그래서 그럴 뿐이다.

***

타이완. 타오위안 츠후. 국광 작업실.

장제스가 손에 쥔 붓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일기를 써 내려갔다.

1915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온 자신만의 루틴이었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국광(國光) 국광(國光) 국광(國光) 국광(國光) 국광(國光)]

평소엔 그 날 있었던 주요 사건을 제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을 예정. 정세 평가와 판단을 주의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작성했지만, 오늘은 오로지 나라의 영광, 국광(國光)만을 붓으로 써 내려갔다.

“각하, 진먼에 있는 포병대가 샤먼을 향해 포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비축 탄약은 전부 쏟아부으라 명령해뒀습니다.”

“우리 인민들의 한이 풀어질 드디어 때가 드디어 왔군. 비록 몸은 이곳에 있었지만, 늘 마음만은 대륙에 있었으니까. 지휘소로 가지.”

“예! 각하.”

장제스가 붓을 내려놨다.

진먼에 위치한 중화민국 포병대가 중공 샤먼시에 포격을 개시하는 건, 대륙 상륙의 신호탄이자 시발점이었다.

미10 군단 상륙함과 군함이 타이완 해협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일, 장제스는 국군 고위 군관들을 모아 유서를 작성할 것을 지시했다.

정보 수집을 위해 첩보 부대를 동남 연해에 잠입시키는 노력을 하는 한편, 태국 북부에 남아있는 국민당 세력과 통신 재개까지 성공하는 등 침공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특공대는 잠입에 성공했나?”

“해안에서 배 2척 중 한 척이 해안포에 의해 침몰당했습니다만, 살아남은 특공대가 침투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중공이 배치한 수많은 해안포와 해안진지를 피해 대륙에 첩보 부대를 심는 건, 성공확률이 매우 희박하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지난번 배 2척에 나눠 침투시킨 특공대는 단 한 명도 대륙에 발을 딛지 못하고 전멸했기에, 침투 성공 소식이 매우 기쁘게 느껴졌다.

국민당군은 군수품도 부족하고, 대륙을 침공할 상륙함도 부족했다.

반면 전선이 2곳으로 갈라졌음에도 대륙에서 상대해야 할 중공군은 여전히 수백만, 민병은 그 수를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럼 에도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미 공군과 해군의 지원이었다.

“각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

“됐네. 일어섰다 앉을 시간이 없으니 그냥 앉아들 있게.”

자리에서 일어서 달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제스가 고개를 저으며 들어섰다.

국민당군 참모진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반쯤 떨어진 뒤, 다시 붙었다.

“현재까지 상황 보고들 하게.”

“예! 각하. 현재 샤먼시를 향한 포격을 선두로, 사거리가 닿는 포를 모조리 동원해 동남 연해를 포격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반격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나··· 대의를 위한 희생 정도입니다.”

이 또한 미국이 승인한 국광 계획의 일부였다.

타이완의 국민당군이 중공 해안을 포격해 도발하면, 포격을 맞은 중공군은 당연히 반격을 가해올 것이고 이를 국제 사회에 ‘중공의 타이완 침공 시도’라며 국제 사회에 선전할 예정이었다.

누가 먼저 포격을 통해 도발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국제 사회에서 중공의 이미지는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또한, 한반도에서 북진하고 있는 국제 연합군이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다다를 때쯤 10개 상륙 사단과 해병대 2개 사단이 즉각 상륙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마쳤습니다.”

“수고했네··· 수고했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던 숙원이 하나씩 풀려가는 기분에 장제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아직 상륙도 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대륙이 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상하이와 난징, 베이징을 오가며 단상에 올라 격전 끝에 인민들을 해방했다는 연설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각하, 중공에 침투해있는 정보원에 따르면 현재 중공 각지에서 이상 현상이 목격되고 있답니다.”

“이상 현상이라니?”

혹여 국광 계획에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장제스가 눈을 부릅떴다.

“각지에서 어린 청년들이 행진 시위를 하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답니다. 당 차원에서 민심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만들어낸 시위대 같긴 한데··· 폭력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조금 전까지 눈을 부릅떴던 장제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여전히 장제스는 스스로 힘을 기르는 대신 미국의 원조, 국제 사회가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달라진 점도 분명 있었다.

이전엔 오직 무력, 미국의 지원을 받은 전쟁으로 대륙 반공의 대업을 이루려고 했었다면, 지금은 중공 체제의 부조리함을 파고들어 민심을 얻어야겠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으니까.

“그야 우리에게 있어선 천운이 아닌가! 시위대라는 것이 본디 목적이 어찌 됐건 간에 국력을 소비하고 당원들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사안일 테니 말이야. 마오, 그놈이 얼마나 흉악한 놈인지, 선전하는 것에 힘을 아끼지들 말게. 하하.”

“조금의 문제도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제스 측근들이 판단하는 그의 계획은 그저 늙은이의 노망처럼 치부됐다지만, 점차 현실에 가까워져 갔다.

중공에서 시위대가 창궐하는 걸 보니, 세상의 모든 운이 국민정부에 몰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다들 대륙으로 가 그간의 치욕을 씻어 보자고! 알겠나?”

결의에 찬 타이완 참모진과 장제스.

한 가지 이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중공에서 창궐한 시위대가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홍위병이라는 것.

밀고 당겨짐에 따라 역사가 어긋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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