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47화 (147/149)

147화. 무력 시위(2)

국가 차원에서 상대방에게 무력을 과시하는 방법은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달라져 왔다.

무기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는 그저 타고난 힘이 무력 과시의 수단이었고, 무기라는 개념이 생겨나고부터는 전보다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은 보유 사실만으로도 무력시위가 절로 되는 무기인 핵무기를 발명했다.

***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핵 실험장.

이고리 쿠르차토프는 모스크바에 도착해 스탈린을 만나자마자 카자흐스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스탈린은 이고리 쿠르차토프에게 길거나, 어렵게 말하지 않았다.

[예산이 얼마가 들어도 좋고, 인력을 얼마든지 뽑아 써도 좋으니 RDS-1 보다 강력한 핵폭탄을 사용해 최대한 빠르게 RDS-2 핵실험을 실시하라.]

“동무들, 이번 실험에 쓰일 폭탄이 발생시킬 핵 출력이 몇 kt이 되겠소?”

“예상치는 대략 40kt 이상. 지면이 아닌 공중에서 폭발이 발생할 경우, 더 큰 출력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음···”

이고리 쿠르차토프가 긴 수염을 매만지며 긴 숨을 내쉬었다.

원래 킬로톤은 1000톤을 표현하는 단위지만, 핵 실험장에서는 핵무기의 위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쓰이고 있었다.

40kt이라면 TNT 40,000톤을 한 번에 터트리는 엄청난 폭발력.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한 팻맨이 22kt 정도의 위력을 가졌던바, 그 2배에 가까운 위력을 뜻했다.

“현재까지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동지, 혹여 어떤 문제라도···”

게오르기 플료로프가 자리에 모인 핵물리학자들을 대신해 그에게 긴 숨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왔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을 뿐, 아무것도 아니네. 실험 예정일은 언제가 좋을지 회의를 통해 종합해서 알려주면, 내가 직접 스탈린 동지께 보낼 보고서를 쓰겠네.”

“내폭형 탄두는 이미 이전에 완성해둔 것이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동지, 생각이 깊어지면 잘 될 일도 그르치는 법입니다.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영예스럽게 생각함이 옳을 것입니다.”

플료로프가 쿠르차토프를 보며 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음에도, 왜 쿠르차토프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동무는 과학자지, 점쟁이가 아니네. 동무 마음대로 내 의중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야. 예정일을 산출하는 것에나 집중하게.”

“예. 새겨듣지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가 뒤를 돌아 나가기 직전까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흠···”

그가 나간 뒤에도 쿠르차토프의 한숨은 끊이질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소련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에서 빠져선 안 될 중요 인사였지만, 마음가짐과 그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행실은 조금씩 달랐다.

쿠르차토프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핵폭탄을 개발하긴 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과학자로서 자신이 개발한 핵폭탄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핵 연쇄반응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만들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인류를 파멸시킬 재앙과도 같은 무기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실험이 계속될수록 핵폭탄의 위력은 점점 강력해져 갈 것이고, 마지막 순간에는 인류가 만든 핵을 인류가 통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얗게 질려왔다.

반면, 플료로프는 직접 스탈린에게 핵무장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시할 정도로, 핵무기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일단은··· 보고서나 준비해야겠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났다.

쿠르차토프는 곧바로 종이와 펜을 들어 열심히 뭔가 적기 시작했고, 한참 뒤에야 펜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열 길 물속보다 사람의 마음이 알기 어렵다지만, 자연도 그에 못지않다.

장진호 전투에서의 위기를 견뎌낸 2군단은 혜산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했고, 서부전선의 국군 1군단과 연합군 역시 신의주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개마고원의 추위를 겪어서인지, 흡사 날이 따듯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벌써 봄이 오나?

봄은 개뿔이, 한참 멀었다.

“제기랄.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가는 일이 하나도 없네.”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어려워도 되나 싶다.

연합군 사령부에서 갑작스러운 진격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북진하는 전 부대는 현 위치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대기 할 것.]

“사단장님,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힘들게 지은 밥을 이제야 한술 떠보겠다는데, 대체 왜들 이러는 겁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먼저 문기준 대령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물론 다 차린 밥상을 먹지 말고 기다리라는 명령에 짜증이 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어째 요즘 평소보다 과한 것이···

마거릿 히긴스 기자가 예비 유부녀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인 것 같은데, 그냥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어쩔 수 없지만, 참···”

아마 모든 이가 비슷하거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단장님께서도 이유를 알아보겠다 하시니··· 조금 기다리면 이유를 알게 되지 않겠나. 진정하게. 문기준 대령.”

그나마 실연의 아픔을 겪지 않은 김상옥 대령이 문기준 대령을 달랬다.

‘일단 멈출 수밖에 없긴 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야 나만 이유를 알고 있었으니까.

소련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첩보.

일개 사단장이라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단장급 지휘관은 절대 알 수 없는 기밀 정보였다.

이런 특급 기밀을 미국이 내게 공유해주는 것을 보면, 트루먼이 나에 대해 상당한 신뢰도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진 작전이 취소된 것이 아니고 잠시 멈춘 것뿐이니, 다들 너무 열 내지 말고 그간 하지 못했던 개인 정비를 하며 잠시 기다리게. 물론 자리만 털고 일어나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뒤에.”

어쩐지 소련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했다.

이 타이밍에 핵실험이라는 깜짝 선물을 준비했을 줄이야.

타이밍이 조금 빨랐다면 웨이크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진득한 조언을 해줬을 텐데, 연합군의 대장인 미국이 움찔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매우 극비리에 핵무기 개발을 마쳤기에, 실전에서 그 위력을 보였다 한들 당분간은 유일한 핵보유국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다.

핵무기는 매우 정교하고 만들기 어려웠기에, 행여 소련이 비슷한 핵무기를 만든다 해도 족히 수십 년은 걸릴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세계대전 이후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었다지만, 소련이 핵무기를 연구 결과보다 빨리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 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련 첩자 클라우드 푹스가 원자폭탄 설계도를 훔쳐 소련에 넘겼고, 미국 내 공산주의 신봉자였던 로젠버그 부부도 팻맨의 설계도를 소련에 넘겼다.

거기에 더해 소련식 일사불란함이 더해져, 소련이 일찍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물론 소련식 일사불란함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소련에서는 그렇게 한다.

안 하면 뒈지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직 미국 내 남아있는 첩자 색출도 할 겸, 첸쉐썬 일당에도 손을 좀 써야겠군.’

첸쉐썬 일당이 핵 관련 연구자료를 가지고 중공으로 돌아간다?

중공이 몇 개의 나라로 아름답게 쪼개졌다 한들, 인민이 죽어 나가든 말든, 대기근이 오거나 말거나 핵 개발에 몰두할 게 분명하다.

이빨 다 빠진 호랑이가 꼴에 핵보유국이라며 잇몸을 들썩이고 한반도를 향해 야옹거릴 상상을 해보면, 벌써 짜증이 미친 듯이 솟구친다.

“사단장님! 맥아더 사령관이 곧 평양 비행장에 도착한다 합니다.”

“알겠네. 나도 준비하지.”

그렇게 일본이 편한지, 하기야 나 같아도 쇼군으로 강림하고 있으면 미국보다 편할지도 모르겠다.

겸사겸사 신형 제식 소총 선정에 입김도 불어 넣을 겸, 그간 도쿄에서 달콤한 꿀물을 들이마시고 있던 우리 형을 좀 이용해야겠다.

전처럼 맞나? 아닌가? 싶은 애매하고 간질간질한 선교자 놀이 말고.

“미래에 커질 암세포들도 미리 싹 도려내야 나중이 편하겠지.”

어차피, 지금 소련의 핵 따위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까.

***

소련. 모스크바.

“제발··· 이렇게 부탁하겠네. 스탈린 동지께 다시 한번 여쭤봐 주게.”

저우언라이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스탈린이 있는 서기국을 찾았다.

일개 서기국 문지기 역할을 하는 정치위원에게 스탈린을 만나게 해달라 간곡히 부탁했지만, 스탈린은 이번에도 저우언라이를 만나주지 않았다.

“동지, 제게 이러셔도 소용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스탈린 동지께서는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없습니다. 고단하실 텐데 모스크바에 오신 김에 천천히 바람이나 쏘이다 가시지요.”

예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보이는 것만 그럴 뿐.

실상은 명백한 무시였다.

타국 총리가 방문했음에도 코끝도 비추지 않는 스탈린도, 애걸복걸하며 스탈린을 찾는 저우언라이도 대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며칠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을 테니, 언제든 스탈린 동지의 마음이 바뀐다면 이곳으로 한달음에 달려오겠네.”

저우언라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돌아서며 마른침을 삼켰다.

‘명분은 됐고···’

그의 슬프고 처량했던 눈이 또렷하게 변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서기국을 찾아온 것도,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집주인에게 매달리는 척 한 것도.

어디까지나 모스크바에 머물 명분을 만들기 위한 연기였다.

“약속 장소로 곧장 이동할 것이니, 뒤따르는 미행은 없는지 주변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게.”

“예. 총리 동지.”

저우언라이를 따라온 수행원은 단 한 명.

중공 총리라는 직책이 민망할 정도였지만, 마오안잉 건과 물밑 접촉을 함께했을 만큼 입이 무겁고 신중한 수행원이었다.

미리 잡아둔 숙소에 들러 소련인들이 즐겨 입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길을 나섰다.

옷을 갈아입고 잠행에 나선 순간부터는, 절대 그가 중공의 총리라는 사실이 밝혀져선 안 됐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의 연속.

그 자체였다.

“미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기 보이는 좌측 도로 두 번째 골목이 약속 장소입니다.”

“둘보단 혼자가 눈에 띄지 않을 테니, 여기서부턴 혼자 가겠네. 지금으로부터 10분 뒤. 이곳에서 다시 보는 것으로 하지.”

조급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천천히 약속 장소를 향해 걸었다.

첫 번째 골목.

골목엔 인적은 없고 음습한 기운만이 맴돌고 있었다.

다음 두 번째 골목.

음습한 기운은 같았지만,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 형체가 보였다.

“성공했나?”

저우언라이의 질문에, 그림자의 고개가 조금씩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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