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2화 (2/155)

2화. 소설에 빙의한 모양입니다

상황은 무척 급박하게 흘러갔다.

이유가 뭔지 무거운 머리를 쉽게 돌리기가 힘들었으나, 누군가가 밖에서 창문을 깨고 요란 벅적하게 들어온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날 두고 시끄럽게 다투던 두 남자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버, 벌써? 어, 어떻게 찾은 거야!”

“으아아악!”

상황은 더 개떡같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네놈들이 멀리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았나?”

마치 특공대원처럼 멋지게 나타난 인물들이 남자들을 제압하려 한 모양인데, 잡힌 건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남자 하나가 살겠다고 내게 달려와 날 달랑 품에 안아 든 것이다.

“움직이지 마!”

난 심각한 표정으로 가볍게 들린 내 몸뚱이를 내려다보았다.

“큰일 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라고!”

목청이 큰 남자가 뒤에서 버럭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나한테 설명 좀 해 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상황인지에 대한 고민도 오래가지 못했다.

“우, 움직이지 말라니까!”

으악!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네놈은 죽은 목숨이야.”

“내, 내가 혼자 뒈질 것 같아?”

아, 이 미친놈이.

남자는 날 거칠게 흔들었다. 덕분에 골이 댕댕 울려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쌍욕을 크게 하려던 순간, 물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침에 축축히 젖어 있는 동그란, 무언가.

그러니까 저건.

‘저거 아기들 무는 공갈 젖꼭지 아니야? 저게 왜 내 입에서 떨어져?’

두 눈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순간, 비명을 지르는 납치범과 그를 제압하고 있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한참 대화 중이었다.

“네놈이 건드린 것이 힐링턴 가라는 것을 명심해라.”

“제, 제기랄.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판사판이야, 왜 이래?”

“네놈만 죽겠나. 네 가족도 모두 죽을 것이다.”

“으윽! 비, 비겁한 놈들!”

“비겁한 게 아기를 잡고 위협하는 네놈인가, 아니면 구출하려는 우리인가?”

납치범을 제압한 사람들은 확실히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잘생겼다. 머리카락도 어찌나 현란한지 “어느 헤어샵에서 머리 염색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아가씨를 내놓아라.”

하지만 제일 이상한 것은 그들이 맨정신에는 입을 것 같지 않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화려한 정장이 아닌, 온갖 번쩍번쩍한 장식이 달린 옷이다.

‘그래! 게임에 나오는 판타지 속 기사들이 입는 옷처럼!’

게다가 그들의 시선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정확히 날 향해 있었다.

“아가씨의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나는 날엔, 네놈은 팔다리가 잘려 죽을 것이다.”

와, 영화 대사 같은 말이었다.

얼마나 눈빛이 살벌한지, 내가 납치범이었다면 바지에 실례했을지 모르는 그런 살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저기요, 제가 왜 이 판에 끼어 있어야 하나요?

“우, 웃기고 있네. 지금 네, 네놈들의 아가씨가 누구 손에 있는지 몰라?”

“네놈이 감히!”

심각하게 불길했다.

남자가 갑자기 내 목을 턱하고 쥐었기 때문이다.

‘아파!’

그리고 그 남자들이 날 애타게 바라보며 아가씨! 하고 버럭 외쳤기 때문에, 깨닫고 싶지 않은 것을 정확히 깨달았다.

납치범이 지칭한 애새끼가 바로 나이며, 날 들어 올린 상태라는 것을.

설마.

‘나 지금 아기가 된 거야?’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고, 식은땀마저 축축하게 맺혔다.

일촉즉발의 순간, 날 들어 올리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으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날 허공에 집어던진 채 말이다!

이 미친놈이!

‘으아악!’

부웅 몸이 움직이는 부유감 속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상황이 뭔지 몰라도 아기가 된 모양인데, 바로 또 죽겠구나! 내 머리통!

바로 그때였다.

“하아. 늦지 않았군.”

“각하!”

턱-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단단한 품으로 날 안아 들었다.

안정적인 느낌에 질끈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니…….

‘우와.’

어떤 남자가 보였다.

“…….”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첫인상은 극호! 였다.

남자와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무뚝뚝한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워 보였지만, 나도 모르게 처음 보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방긋 웃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는 시선을 돌렸다. 앗, 무정해.

“범인은 저 둘뿐인가?”

“예, 어찌할까요? 데리고 가서 취조를.”

“아니. 들을 필요 없다.”

남자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나가떨어져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가 다른 남자들의 손에 제압당한 납치범이 보였다.

납치범의 얼굴은 무척 붉었고,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악을 써대고 있었다.

“그 어떤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아우, 숨막혀! 단단한 품은 좋았는데 얼굴이 품에 가득 눌렸다.

납치범의 욕설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남자가 바위 같은 팔로 날 가득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용서할 생각은 없다. 내 딸을 건드린 것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지.”

그가 말할 때마다 무척이나 낮고 짙은 음색이 귀에서 둥둥 울렸다.

웃음이 났다. 내가 다른 누군가의 품에서 안심하는 순간이라니.

‘아하. 이제 알겠다. 이거…… 꿈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다 큰 성인이 갑자기 아기가 되는 것이라니. 그리고 누군가가 날 걱정하는 꿈이라니.

“…….”

그렇게 헛웃음을 짓고 있을 때 나를 품에서 추어올려 더 단단히 안은 목소리 멋진 미청년이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 했다.

딱 봐도 남자주인공 같은 외모의 사람이라,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대사를 상상해 보았다.

이게 영화라면, 정말 드라마 같은 것이라면 아이가 무사하니 용서해주마, 그런 대사를 내뱉는 게 보통…….

“죽여.”

네?

난 눈을 끔뻑였다.

“알겠습니다, 각하.”

뒤이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면 난 계속 이 상황을 아기가 된 꿈이라고 인지했을 것이다.

으아악! 하고 울리는 비명.

‘지금, 사람을 죽였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들 대체 정체가 뭐야?

‘도, 도망을…….’

바짝 굳은 심장이 콩닥거리면서 난리를 피웠지만, 연약한 아기의 몸은 스트레스에 무척이나 취약한 듯했다.

까무룩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지금 잠들면 안 된다고!

이게 꿈인지, 정말 지독한 현실인지 확인을 해야…….

“정리하고 철수하라.”

“예!”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무뚝뚝한 음성을 들으며 완벽히 수면 속에 퐁당 빠져버리고 말았다.

‘망할, 생각을 할 수가…….’

고로롱. 어딘가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아무튼 숙면은 꿀맛이었다.

*

내가 다시 태어났거나, 혹은 빙의한 이 세계가 소설 <영애는 달콤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납치사건으로 기절하듯이 어떤 오빠 품에서 잠든 바로 다음날이었다.

‘으으.’

짹짹, 새들이 단체로 합창이라도 하는지 유독 시끄럽게 우는 소리에 눈을 반짝 떴다.

온몸이 찌뿌둥하거나 잠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자각을 하기도 전이었다.

내가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으헉.’

하마터면 꽥하고 소리를 질러버릴 뻔했다.

내가 본 것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중세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엄청나게 예쁜 여자들.

‘누, 누구세요?’

문제는 저 미인들이 나한테는 초면이었다는 거지.

‘진짜 어떻게 된 거지?’

눈을 뜨니 아기였습니다, 하는 상황은 소설 속에서나 볼 법했다.

순간 변해버린 상황에 귀신같이 적응하기에는 난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얼마나 놀랐는지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오겠다.

잠들기 전까지의 상황을 떠올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납치되었었고, 날 구하러 온 사람들은 중세 귀족 가문의 기사들이었던 것 같다.

‘그 옷, 정말 평범하지 않았다고.’

죽기 전까지 질리게 보았던 <영애는 달콤하다>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네 집안 기사들처럼.

그럼 나는 귀족 아가님?

‘아니야. 이럴 때는 조용히 상황을 살펴야 하는 거랬어.’

코오, 코오 작위적인 소리를 흘리며 번쩍 떴던 눈을 다시 사르르 감았다.

날 관찰하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던 메이드로 보이는 여자가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다시 잠드셨나?”

슬쩍 한쪽 눈을 살짝 들어 올리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난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잠든 줄 확인하는 거겠지?’

역시나.

“다시 잠드셨나 보네. 배고프지도 않으신가?”

골치 아픈 아기가 다시 잠든 것에 안도하는 것인지 한숨을 내쉰 여자들이 의자를 갖고 와 내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뭐, 순하시면 다행인 거지. 손이 덜 가잖아.”

“그 일로 피가 얼마나 흘렀는데. 다행이라는 말이 나와?”

“그건 죽을 만한 것들이고. 그리고 덕분에 아가씨를 신전에서 모시고 왔잖아.”

“그 덕분에 우리는 아기 돌보기나 해야 하는 거고 말이지?”

“입 조심해.”

좋았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건질 수 있을지도 몰라.’

엉덩이를 꼼실거리며 한쪽으로 몸을 틀고 사실 내가 완벽히 잠에서 깨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면 내 엉덩이밖에 안 보이겠지?’

자아, 언니들.

난 아무것도 몰라요.

어서 말해봐, 여기 대체 어디야? 난 누구고?

메이드로 보이는 여자는 셋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눈 번쩍 뜨며 바라본 그 한순간에도 잊히지 않았을 만큼 눈부시게 예쁘다는 것과 미소 한 점 없이 무표정했다는 것일까.

아마도 곁에 가장 가까이 있던 흑발 여자인 듯한 사람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지금 살얼음판인 거 몰라? 무슨 부자 귀족 집안이 이렇게 뒤숭숭한지 모르겠네. 아가씨 납치된 것부터 해서…….”

“그러게. 괜히 들어온 것 같지만, 받은 돈이 얼만데. 좀 지내봐야지.”

부잣집. 귀족의 딸.

아마도 아기인 내가 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이번 생의 부모들은…… 날 애지중지하며 아끼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사람을 셋이나 붙여놓고, 납치되었다며 우르르 달려오는 기사들에, 푸근하고 단단한 가슴팍을 가지고 있었던 그 냉정남하며…….

“그 인간들이 미쳤던 거지. 감히 힐링턴을 건드려?”

톱니바퀴처럼 팽팽 돌아가던 희망 회로가 딱 멈춘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힐링턴. 힐링턴?

그러고 보니 날 납치한 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남자들의 대화 속에도 저 이름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

‘재밌네. 그 소설 속 여주 집안 이름이랑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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