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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4화 (4/155)

4화. 쑥쑥 자라는 중입니다

“미안하구나.”

의뢰 대상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처럼 보고로 아이에 대한 것을 듣는 상황이 무척이나 씁쓸하고 우스웠다.

“잘 자라주고 있어 고맙구나.”

리라의 말에 따르면 정말 이럴 수 없을 정도로 순하고 순한 아기라 했다.

그러면서도 발달이 무척이나 빠르고 건강하며, 총명하다고 했다.

그런 전해 받은 이야기들을 아내에게 해주면 아내는 걱정할 것 하나 없다는 얼굴로 어여쁘게도 웃었다.

그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내를 따라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이불 밖으로 나온 아이의 발을 손으로 덮었다.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닿기만 해도 가슴이 찌릿해지는 것이었다.

“너는 왜 이다지도 사랑스러워서…….”

아직 서로 만나지 못한 두 아이 모두.

너무 사랑스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었다.

상황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리라가 문을 열고 나가자 방에는 그와 아기만 남았다.

“아가.”

쌕쌕, 중독성이 있는 그 고요한 소리를 들으며 시어스는 뻐근한 눈을 꾹 눌렀다.

“아빠는 무섭구나.”

우습게도 눈물이 흘렀다. 흐느끼는 소리는 없었지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그의 손을. 그리고 가끔은 아이의 이불을 적셨다.

그는 한참을 아이의 곁을 지켰다.

*

“으오옹?”

눈을 번쩍 뜨자마자 입에 물려있는 쪽쪽이를 힘차게 빨았다.

아, 이제 익숙해진 감각. 얼른 이 쪽쪽이도 졸업해야 하는데 불안할 때면 자꾸 찾게 된다.

‘근데 개꿈을 꾼 거 같은데.’

굉장히 잘생겼는데 덩치만 큰 어린아이 같은 남자가 옆에서 계속 찡찡 울어대는 꿈을 꾼 것 같다.

무슨 꿈자리가 이렇게 사납담.

계속 울어대는데 손발은 움직이지 않아서 달래주지도 못하고, 얼굴 닦아주지도 못하고, 제발 좀 조용히 합시다, 라고 속삭이지도 못했다.

‘역시, 개꿈이야. 그래도 오늘은 조심해야겠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침대의 기둥을 잡고 부들부들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나자 마침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리라가 보였다.

그리고 또 바뀌어 있는 다른 두 시녀까지.

난 인사의 의미로 눈을 깜빡였다.

안녕, 리라.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가씨.”

사랑스러운 아기처럼 웃어주고 싶은데요, 제가 전생에 무뚝뚝한 사람이었어서 입꼬리가 돌덩이처럼 안 움직이네요.

미안, 언니들.

근데 언니들도 안 웃잖아.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답니다. 아가씨도 기분 좋으시지요?”

쏜살같이 다가와 커튼을 확 쳐버리는 리라의 손길이 유독 신속하고 정확한 것 같다.

‘으억!’

그래도 적응할 시간은 좀 주지. 확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리라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열심히 움직여보는 게 좋겠네요.”

네?

어찌나 움직임이 빠른지 눈 깜빡하는 동안 이곳저곳 건드리고 고친 리라는 나를 불쑥 안아 바닥에 내려 주기까지 했다.

“무럭무럭 자라셔서 저와 함께 산책하고 운동도 하고 건강해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실내 운동을 하지요. 다리 힘을 길러야겠어요.”

뭔 다리 힘.

“자, 이곳까지 걸어보시겠어요, 아가씨?”

“…….”

진지한 얼굴을 보니 열심히 따라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근데 이거 육아 맞아? 보통 아기를 이렇게 키워? 왜 PT를 받는 기분이지?

엄숙한 리라의 표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초조해져서 하나 둘 소리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네, 이번에는 이쪽으로. 한 번만 더 해봐요, 아가씨.”

환장하게 무거운 머리통 때문에 가끔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아가면서.

*

벽을 잡고 으쌰으쌰 움직이던 나는 이게 전생에 열심히 했던 코어 운동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조오금 아주 조오금 현타가 왔다.

“오늘도 잘하셨어요, 아가씨.”

이상하다.

흡족한 리라의 말에 왜 꼭 강아지 훈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한숨을 포옥 쉬며 어쩌다보니 앞까지 걸어간 거울에 손을 착 댔다.

단풍잎처럼 작은 손바닥과 그 손바닥이 찍어 거울에 난 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웬만해선 보지 않았던 거울 속의 내 모습까지.

‘이게 이제 내 얼굴.’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전생의 난 거울을 보지 않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 제법 복슬복슬하게 올라오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화가 난 어린 짐승처럼 잔뜩 찌푸려진 콧잔등도.

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거울 속의 내 머리카락을 매만져보았다.

‘근데 로제의 머리는 핑크색이지 않나. 왜 내 머리는 은색 같지? 혹시…… 나중에 변하나?’

바로 그때였다.

오늘 새로 본 다른 언니가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벨키우스 공작가 이야기 들었어요?”

응? 벨키우스?

귀가 쫑긋거렸다.

그건 남자주인공의 가문이다.

“아, 수도에선 그거 모르면 첩자야.”

“다 죽었다면서요.”

뭐라고요?

“벨키우스 가문의 사람들 말이에요.”

아.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내며 입을 오므리던 나는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날 바라보는 리라와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얼른 눈알을 굴리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계속 집요한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몰라요.

‘벨키우스 사변이구나.’

이건 원작에도 있는 내용이라 알고 있었다.

남자주인공 가브리엘. 즉, 로제가 된 나의 미래의 약혼자.

그가 왜 그렇게 냉정해져야 했는지, 또 왜 그렇게 절박하게 내몰려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과거의 사연 중 하나.

가브리엘은 훗날 고작 12살의 나이에 가문의 가주 작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 사건의 배경은 벨키우스가 어릴 때, 몰살당해버린 혈족들 때문이었다.

‘그게 벨키우스 사변.’

혈족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12살이 되기까지 남주는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로 인해 고난을 겪는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한다.

강력한 벨키우스 공작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던 사건의 배후는 소설의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밝혀지지 않다가, 복수의 칼을 빼든 가브리엘의 입에서 밝혀진다.

‘그리고 그 사건의 범인은.’

윽. 소름이 돋았다.

진범도 만나야 하는구나.

‘소설 속에 사는 거 생각보다 너무 무서운데…….’

<영애는 달콤하다>를 읽으면서 항상 로제에게 더 감정 이입을 하며 읽긴 했었으나, 그래도 남자주인공인 가브리엘의 인생이 무척이나 기구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는 축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축언을 타고난 인물들은 그에 맞는 이능을 갖게 된다.

로제와 가브리엘 둘 모두 축언을 받고 태어난 인물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로제는 <화려하게 꽃피리라>.

그리하여 누구든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인 호감의 이능을 갖고 태어난 로제 폰 힐링턴.

그리고 <그 어느 것도 뚫지 못하리라>라는 축언을 갖고 태어나 앞으로 이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사가 될 예정인 가브리엘.

그러나 그는 굳어버린 심장으로 자신의 가족, 그 누구에게도 사람들이 느끼는 보통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브리엘의 과거는 소설의 몇 줄의 설명이 다였지만, 직접 듣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만약 내 가족이 하루아침에 모두 살해당한다면…….’

가브리엘은 어땠을까.

홀로 남은 어린 소년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나이였기 때문에 호시탐탐 가문의 작위와 재산을 노리는 이들에게 고난을 겪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모두 잃은 소년이 12살이 되어, 자신이 지닌 축언의 힘을 잔인할 정도로 확실하게 깨닫고 사용하게 되기까지.

‘<영애는 달콤하다>는 죽어가는 내 삶의 유일한 원동력이었지만, 그래도 가브리엘에게는 잔인한 건 사실이야.’

그가 겪은 어릴 적 굴욕의 삶이 어떤 것인지는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았지만, 고작 열두 살의 나이에 가주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이 다른 모든 혈족을 죽이는 일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거구나. 부모도, 친했던 이들도, 모조리 잃어버린 검 하나 들 줄 모르는 어린 소년이.’

괜스레 죄책감마저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나는 내가 로제가 되어서 전생과는 다른,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리라는 것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설레어하고 있었는데 가브리엘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지옥일 테니까.

“아가씨.”

“히유?”

리라?

“거기 그렇게 덩그러니 있지 마시고, 안아드릴게요.”

불쑥, 하고 언제 다가왔는지 가까이에서 날 안은 리라가 아니었다면 더 깊은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두 발이 허공에 대롱대롱 흔들리다가 리라의 따뜻한 품에 포근히 안겼다.

무슨 종이짝 들듯이 가볍게 들지 않았었나, 지금?

리라, 그렇게 안 봤는데 팔 힘이 무척이나 좋은 것 같다.

‘아기는 제법 무거운데.’

리라가 나가라고 매섭게 말하자 투덜거리며 두 시녀가 문밖으로 나갔다.

미련 한 점 보이지 않는 그 태도를 보아하니 정말 시녀들 중 누구도 날 달갑게 돌보는 건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히유.”

나도 모르게 리라의 옷자락을 꽈악 쥐고 말았는데, 눈이 마주친 리라의 눈동자가 살짝 웃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깜빡이며 바라본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지독한 무표정이다.

“아가씨.”

“아우.”

“공작님이 자주 보러 오지 않는데도 아가씨가 무척 씩씩하셔서 기특하게 생각하시고, 또 더욱 사랑하고 있답니다.”

에이,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저도 아가씨가, 기특한 아기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좋아지네요.”

그건 고맙고요.

시녀가 되기 전, 리라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이 지긋지긋한 옹알이가 끝나면 리라를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그렇게 표정이 없는지, 나를 혹시 싫어하는지, 근데 왜 이렇게 당신이 건네는 말들은 다정한지.

“보세요, 평화롭고 조용하고. 얼마나 좋은 시간이에요.”

그건 그래.

“아기님은 아기님만의 특권을 누리셔야 해요. 저택의 모든 사람이 아가씨를 아끼고 사랑할 거예요.”

정말?

“우아으.”

“네에. 그렇게 소리 내세요.”

나중에 언제나 옆에 있어줄 것인지 물어봐야지.

당신은 날 싫어할지 모르지만, 난 퍽 당신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먹고 자는 그 모든 것이 그저 행복하고 즐거우면 되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아우아우!”

내가 무슨 얼굴을 했다고?

“꼭 대답하시는 것 같네. 정말 신기한 아기님이라니까요.”

“부우!”

리라는 바보야.

괜히 입술을 비죽거렸다.

“이제 낮잠을 자볼까요? 오늘도 건강하게 살찌우고, 내일은 운동하죠.”

내 등을 토닥이며 그렇게 말하는 리라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어쩐지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응, 리라. 나는 로제니까.

그러니까 행복할 거야. 그렇지?

지금은 얼굴도 비추지 않는 아빠라는 사람도, 그리고 나중에 만날 가브리엘도 진짜 로제처럼 그들을 꿀처럼 행복하게 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만나면 서로 웃으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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