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3)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두? 아니, 이게 구두가 맞나? 이걸 왜?’
꼭 전생에 쉽게 볼 수 있는 운동화처럼 생긴…….
양쪽에 귀여운 날개가 달린 독특한 형태의 신발이었다.
그때 아빠가 말했다.
“너무 투박, 아니, 혹 마음에 들지 않느냐? 역시 더 반짝거리는 것을 샀어야…….”
“아니요. 너무.”
“너, 무?”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는 시선을 스윽 돌린다. 나도 시선을 돌린 채 차분히 말했다.
“너무 좋네요. 발이 아주 편할 것 같아요.”
잠시 입술에 긴장이 풀렸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었다. 특히 이것을 고르고 고민했을 아빠를 생각하면.
그 순간에는 날 생각했을 것 같아서.
그때 어디선가 윽,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뭐지?’
깜짝 놀라 바라봤지만, 아빠는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다.
그 행동은 여전히 가슴이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밤에 자주 운동을 하는 내게는 좋은 선물이라 꼭 그것을 알고 배려해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고심하여 딱 맞는 것을 준 것 같아서.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가슴이 콩닥거리며 들떴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감사해요, 아빠.”
그리고 더 상냥하게 말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전생의 부모처럼 네 차가운 표정 지긋지긋하다고도 안 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구나, 힐.”
다시 한번 말하며 나는 그 신발을 품에 꼭 안았다.
품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
띠링.
-나는야 관찰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소식, 왔다!”
“으아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시녀들이 그 알림음과 함께 쏜살같이 테이블 위로 달려갔다.
활짝 펼쳐져 있는 노트 위에는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적는 글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뭐야. 뭐라고 하셔? 얼른 말해 봐.”
“기다려봐. 아직 쓰고 계시잖아!”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시녀들의 눈은 퍽 기괴하게까지 느껴졌다.
집요한 시선 아래 글자들이 빠르게 적히며 위로 올라갔다.
-대박 사건. 대박 사건. 힐데아님의 미소가 지붕을 꿰뚫었음.
-힐데아님은 오늘도 반짝반짝 빛이 남! 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음.
-신발을 꼭 안고 웃는 모습에 격침. 희귀 미소 본 내가 승리자. 매우 귀여웠음.
-곧 힐데아님의 눈부신 미소를 그림으로 제작할 예정. 제목은 생일의 미소로 하겠음. 사실 분 계심?
꺄아악 하고 시녀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웃으셨대!”
“하아, 다행이다!”
“힐 아가씨는 너무 표정이 없으셔서.”
“근데 그러다 한번 살포시 웃으면, 정말, 그야말로. 흐윽.”
비록 그렇게 외치면서도 표정이 없는 그들의 모습이 퍽 기괴했지만, 반짝거리는 눈과 홍조가 그 흥분까지 감추진 못했다.
“아가씨 좋아하셨다잖아, 역시 개고생한 보람이 있었네!”
“그래, 시엔. 이번에는 네가 정말 고생했지. 기특한 것, 그게 어디 보통 물건이야? 난 솔직히 그걸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리라도 인정할걸, 그건? 상상만으로 만든 물건이라 애가 아주 열흘은 꼴딱 밤을 새웠다니까. 보고 있을 때 얼마나 불안했는데.”
시녀들은 입을 모아 가운데 멍한 눈으로 서 있는 시녀, 시엔을 추켜세웠다.
그들 중 누가 이런 미래를 상상이나 했을까.
손에 피를 묻히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인 그녀들이 자진해서, 겨우 온실 속 수풀처럼 자란 귀족 아가씨 한 명 웃는 거 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을.
그러나 그녀들은 행복했다.
“그래도 둘째 아가씨가 제일 고생하셨을걸? 처음에 얼마나 놀랐어. 이런 걸 만든다는 것에. 그리고 공작 각하도 때려 박은 돈과 마법을 생각하면…….”
그때 발작하듯이 부르르 떤 시녀 시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번뜩이는 눈이 미친 자의 것에 가까웠다.
“아아, 시끄러워. 다 필요 없어! 누가 고생하는 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힐 아가씨가 웃으셨는데! 내가 만든 물건으로 웃으셨다잖아! 그게 중요한 거야. 그래!”
흥분으로 손을 떤 그녀는 즉시 품에서 소중하게 꺼낸 독특한 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글자가 채워지고 있는 노트 위에 올리자, 신기하게도 띠링!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은발이 최고야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시엔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힐데아님 좋아하신 강도 1-10 몇? 그림은 저 다 사겠음.
-10. 분명히 10임. 그림은 10장 제작 예정. 한정수량으로 선착순 판매하겠음. 비밀 엄수 필수.
그 아래로 연신 띠링띠링 소리가 울렸다. 시엔은 비장하게 말했다.
“내가 다 산다. 열 장.”
돌연 꺄하하하, 광기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는 시엔을 보며 시녀들이 옆으로 멀어졌다.
어이가 없지만, 그것은 이제 너무 익숙해진 그들의 일상이었다.
*
화려한 장식의 예복이 소년의 몸에는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당당하게 펴진 어깨와 냉소적인 표정은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위엄이 넘치는 것이었다.
그 누가 이제 겨우 열두 살 어린아이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저 작은 체구에 검이 들린다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소년이 타고난 축언은 숨만 쉬어도, 살아가기만 해도, 시간만 지나도 점점 강해지는 것이었다.
그 무엇도 꿰뚫을 수 없는 것.
황제파의 귀족들은 든든한 얼굴이, 황후파의 귀족들은 죽상이 된 이유가 그것이리라.
지긋지긋하게 살아남은 소년으로 인해.
“미엘르 제국의 가장 굳건한 검이 되어 안팎의 적을 그대의 검으로 찌르리라. 그리하여 그대 가문의 이름에 걸맞은 이가 되리라. 그대의 발걸음과 행동이 그 모든 역사가 될 것이니 신중하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살아가라.”
“황공합니다, 폐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다. 이제부터 그대는 제국 하나밖에 없는 벨키우스 공작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귀족들의 시선에도 떨림 하나 없이 당당하다.
오히려 이 순간이 지루하다는 듯한 건조한 말투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황제, 디트로이아는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축복서를 내렸고 황후는 냉정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모든 이들의 축하와 함께 정식으로 작위를 인정받은 벨키우스 공작, 그는 겨우 12살이었다.
*
“주군. 잘하고 나오셨습니까?”
“보다시피. 별것 없었다.”
정 없는 그 말에도 푸근하게 웃은 부관이 마차로 내다버리다시피 하는 인장을 재빠르게 잡아내었다.
“아이고, 그걸 그리……. 아직 황궁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내린 인장을 쓰레기 버리듯이 버리시면 곤란하지요.”
“네가 잡았지 않나? 그럼 됐지.”
“응? 그런데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 아니십니까. 혹시 황후 측에서 시비를 걸었습니까? 시비 걸 만한 것은 모두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부관은 소년의 얼음 같은 보라색 눈동자가 평상시보다 더욱 서늘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년은 웬만해서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 짜증, 그런 것들조차도 감정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소년의 심장은 아주 오래전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방금 공작으로 임명되는 작위식을 거치고 나온 사람 같지 않은, 분노가 보였다.
부관은 조심스럽게 바라봤고, 그 집요한 시선에 어린 벨키우스 공작의 입이 열렸다.
“황후가 아니다. 이번엔 황제가 명령하던데.”
지긋지긋하다는 말투였다.
“아, 혹시…… 그것입니까?”
“그래, 혼담. 포기도 안 하더군.”
“어휴. 골치 아프군요.”
부관은 빠르게 마차에 오르는 가브리엘을 따라 올랐고, 어떤 파티도 다 거부한 벨키우스 공작가의 마차는 누가 붙잡을까 봐 귀찮다는 것처럼 황궁의 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귀찮아. 처리해야겠어.”
부관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여태 후계자가 정식 작위에 오르지 못했으니 미룬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더는 무리지요. 선황제가 쓸데없는 혼담을 주선해서는 여러 사람 골치 아프게 만드는군요.”
가브리엘의 그린 듯 섬세한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이 치켜올라갔다.
“죽은 자의 유언 따위 붙잡고 있는 황제가 한심할 뿐이다. 힐링턴에 대해 조사한 것은.”
“그 힐링턴이지 않습니까. 그리 많진 않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수준이고, 또.”
“또?”
“뭐라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부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문질렀다.
“수도에 복귀한 몇 년 전부터 밤 중 저택의 경비가 무척이나 삼엄해졌습니다. 무슨 일인지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황제의 그림자 기사들이 침입해도 쉽게 뚫기 힘들 정도입니다. 특히 밤에 유별납니다.”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일정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가브리엘은 얼음 같은 목소리로 툭 던졌다.
“좋아. 그걸 이용하지.”
“그,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혼담이라면 빌미를 만들어 깨뜨리면 그만. 할아버지께서 보냈다는 혼담의 증표, 그곳에 있나?”
부관은 입을 떡 벌렸다.
“헉, 설마 주군?”
혼담의 증표로 나누어 가진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갑자기 사라져서 잃어버렸다?
그러면 잃어버린 쪽에서는 결코 혼담을 주장할 수 없다. 명분을 잃어버리니까.
그렇다면 나머지 다른 한쪽에서 혼담을 거부할 경우, 파혼될 것이다.
“직접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그럼 누가 힐링턴을 침입하지?”
부관은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힐링턴의 가주입니다. 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상황이 무척 복잡해질 겁니다. 더구나 힐링턴의 가문 비보를 직접 훔치신다는 것은 가문에도 큰 누가 됩니다.”
가브리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소년의 치기는 아니겠지만, 부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관은 절박했다. 지금은 얌전해졌다고는 하지만, 힐링턴의 가주는 그 시어스다.
예전에 괜히 미친개라고 불리며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구는 황후조차 조심했겠는가.
“내가 누군가. 들키지 않고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그는 맹수입니다. 방심하시면 큰코다치실 겁니다.”
“내게 감히 그리 말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일단 움직이지.”
“하지만…… 이상하게 감이 좋지 않습니다. 더 재고해주십시오.”
가브리엘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미소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확실한 것이 좋다. 내가 직접 간다.”
*
침대에서 비척거리면서 일어나자마자, 나는 곁에서 베개를 꼭 껴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 얘가 또.
역시나. 이불을 걷고 보니 가려졌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로제.”
리라가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로제는 꼭 내 침대에 파고들어 잠들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행동이 나도 싫지 않았다. 로제는 따끈따끈하거든.
“……짬……짜……으.”
웃음이 터졌다.
“무슨 꿈을 꾸는 거야. 뭐 먹고 있니? 뭔데?”
“우응, 응……치…….”
웃지 않을 수가.
뺨에 달라붙어 이불 위까지 흐트러진 풍성한 분홍색의 머리카락.
뭔가를 맛있게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연신 오물거리고 있는 입술.
미워할 수 없는 뽀송한 어린 소녀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쌕쌕 숨을 내쉬고 있다.
“로제. 내 동생.”
내 여동생이다.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가기 부담스럽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로제리엘.
그러나 그런 우리 둘 사이에 먼저 움직인 것은 로제리엘이었다.
부드러운 장미향이 날 것만 같은 이 아이는 내가 무섭지도 않은 것인지 연신 살갑게 굴며 말을 걸었다.
언니. 언니! 언니야.
같은 날 태어나긴 했지만, 터울 많은 아기 동생처럼 마냥 귀여웠다.
“언니가 네 덕에 웃어.”
눈을 뜨면 졸졸 따라다니는 분홍색 소녀를 어찌 미워할 수가.
뽀얀 뺨을 살짝 꼬집었다가 놓으니 귀찮았는지 고개를 마구 저으며 이불까지 물어뜯는 것이 보였다.
고기라도 뜯니?
그때였다.
“언니……? 으응.”
자꾸 귀찮게 하는 통에 깨었는지 찌푸린 눈이 한쪽만 떠 있다.
“괜찮아, 더 자.”
“우응……. 언니두우.”
그래.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 애의 부러운 점에 하나는 바로 솔직함이었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쉽게 다가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 수 있는 자신감.
저택의 고용인들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함.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웃음으로 화답해주리라는 믿음.
바로 그때였다.
‘응? 누구지?’
밖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