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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22화 (22/155)

22화.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에게로

“언니, 언니! 요즘 수도가 좀 뒤숭숭한 것 같아.”

“제국군이 승리한 채 돌아오고 있는데, 왜 뒤숭숭하다는 거야? 다들 축제 분위기인걸.”

“으응, 그거 말고!”

“그러면 뭘 말하는 거야?”

오늘도 사랑스러운 로제는 뺨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채, 입술을 휘었다.

어디에서 뭘 하다 왔는지 몰라도 뺨에 풀잎을 붙이고 있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떼어내 주었다.

휴, 들판이라도 구르다 왔니?

“리라가 말해줬는데, 어제도 또 죽었대. 대체 누가 심심풀이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걸까?”

“살인?”

“응!”

“로제, 넌 왜 그런 걸 관심 가지고 그래?”

나는 이런 흉흉한 이야기를 로제가 관심 갖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장난스럽게 콧등을 톡 튕기면서 엄하게 말했다.

“세상 어디에도 미친놈은 많아. 그러니 신경 끄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건 당장의 데뷔탕트란다.”

“쳇! 그런 거 너무 지루해, 언니.”

로제는 뺨을 부풀리며 입술을 붕어처럼 내밀었다. 대체 누가 이 아이를 올해 스무 살이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충격적이잖아. 난 제국 수도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살인사건이라니, 확실히 이 반짝반짝한 로맨스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긴 했다.

그래도 내가 읽었던 <영애는 달콤하다>에 모든 이야기가 적힐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독자가 읽지 못한 부분도 이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

‘연쇄살인마라도 있는 건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로제의 어깨를 꽉 잡으며 으름장을 놨다.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내 동생.

“그래. 말 잘했어, 로제. 그러니 너도 밤에 나가지 말고 조심히 다녀야 해. 알았지? 어제도 밤에 없었잖아.”

말은 참 잘하는 내 동생은 환히도 웃었다.

“응! 나 이제는 밤에 잘 안 나가, 언니. 아빠한테 걸려서 된통 혼났잖아, 헤헤.”

“하아, 널 어쩌면 좋아?”

어쩌면 애가 이렇게 자유롭게 컸는지 모르겠다.

나는 심란한 눈으로 창틀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산뜻하게 웃는 로제를 바라봤다.

연회장에서 드레스 답답하다고 찢어버리면 어떡하지? 그, 그러진 않겠지…….

“얼른 내려와. 드레스에는 관심도 없지?”

내 복잡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사같이 웃은 로제가 폴짝 뛰어내렸다.

“응! 그래도 언니가 알아서 골라줄 거잖아. 언니가 고른 건 다 예뻐. 이번에는 무슨 색이야?”

“로제리엘. 색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 동생은 이 세계의 여주인공답게 예쁘긴 정말 예뻤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분홍 머리카락이 자연스러워 보였고, 씩 웃는 치아는 가지런하고 고와서 생기가 넘쳤다.

그러나 우아하고 도도하게 속을 감추며, 위선을 떨쳐야 할 사교계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래 소설 속 로제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 모습도 예쁘지만.

“근데 언니, 이번에 가브리엘 돌아오는 거 알고 있지? 이게 몇 년 만이야!”

“아, 응. 그렇지.”

난 어설프게 입꼬리를 흔들었다.

가브리엘. 편히 부르는 그 호칭에 어쩐지 가슴 속이 따끔거렸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던 그 물음도 기억이 났고.

하지만 내가 왜 그 이름을 부르겠는가.

“언니, 왜 그래? 어디 아파?”

난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표정이라도 떠올랐을까 봐, 황급히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차가운 표정은 평소와 같았고, 오늘만큼은 그것에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 로제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며 괜히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재잘거리는 로제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들이닥친 로제의 훈련스승으로 인해 자리가 파하고 나서야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가브리엘.”

홀로 남은 난 조용히 그 낯선 이름을 입에 담아보았다. 그리고 일어나 조용히 봉인하듯 넣어두었던 서랍을 열었다.

밀랍을 뜯자, 유려한 필체가 보였다. 난 그린 듯 아름다운 필체를 훑어 내려갔다.

무뚝뚝하게 쏘아보던 소년이 이런 미사여구 가득한 문장을 써내려갈 수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대필을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 실없는 웃음이 솟구쳤다.

‘그러면 내가 관심 갖는 사람은 그 대필해준 사람이 되는 건가?’

나는 의미 없이 그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오늘은 특별한 말이 없었다.

자신이 겪는 전쟁의 고단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누가 보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간 사람이 쓴 것인 줄 알 것이다.

“힘들면, 징징거릴 법도 한데.”

말미에는 이 문장이 꼭 붙었다.

영애의 하루는 어땠습니까?

“어설퍼.”

사실 필체는 훌륭해도 미사여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딱딱했다. 의외로 어설펐다. 그런데 그 점이 내 눈길을 끌었다.

‘꼭 이 편지 속의 누군가가 긴장한 것처럼 느껴져서.’

차라리 다른 영식들이 보내곤 하는 값비싼 보석과 번지르르한 칭찬만 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의 언니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그랬겠지만, 수수했다.

어떤 지방의 꽃들이 예뻐 그것을 말려 보낸다든가, 혹은 그곳의 특별한 약초를 채집해 보낸다든가.

꼭 누군가에게 보내는 보고서 같기도 했지만, 읽다 보면 풋 하고 웃게 될 때가 있었다.

첫사랑에 어쩔 줄 모르는 소년이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 끙끙대는 편지 같다고 해야 할까.

‘모두 내 착각이지만.’

조용히 편지를 접었다.

어쨌든, 그가 돌아온다. 이번 편지는 어떤 때보다 유독 짧았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에 적혀 있는 문장은 평소와 달랐다.

영애의 하루는 어땠습니까? 그것이 아니었다.

돌아가겠습니다.

“이 말을 왜 나한테 해…….”

바로 그것이었다.

*

그림자 경매 길드의 길드장, 조세페는 언제나 시궁창의 쥐새끼처럼 바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 뒷골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일 비싸게 팔리는 물건을 한눈에 알아보는 능력이었다.

우습게도 세상은 그에게 그런 능력을 주었다.

<길가의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가리라>

‘이런 축언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지!’

그는 놀랍게도 평민인데도 축언을 갖고 태어나, 이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능은 눈밖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주어진 이능은 결정적인 순간,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감이었다.

그게 여태까지 몇 번이나 조세페를 살렸다.

마침 딸랑, 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나며 후드를 깊게 쓴 인영이 들어왔다.

온몸을 가렸으나 작고 가냘픈 체구가 상대가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조세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축객령이 아닌,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몇 개나 준비해주셨습니까, 힐님?”

여인 역시 익숙하게 답했다.

“세 개. 충분한가요?”

조세페는 손을 싹싹 비볐다.

절로 비굴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 여인은 그의 아주 중요한 고객이었다.

“아무렴요. 물건 하나만 나와도 가격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는 거, 잘 아시잖습니까? 이번엔 세 개라니 암시장이 뒤집히겠습니다요.”

여인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후드 아래 보이는 건 말갛고 흰 턱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 거리의 사람에게서 보기 힘든 것으로 분명 고귀한 신분을 나타나는 증거였다.

‘고위 귀족이겠지.’

하지만 조세페에게 중요한 건 힐님이라 불리는 고객이 귀족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그녀가 그에게 맡기며 경매장에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는 물건이 중요했지.

“헤헤, 그럼 다음에도 비슷한 물량으로 기대해도 되겠습니까요?”

“갑자기 늘어나면 곤란해요. 이번에만.”

“아아, 그건 그렇지요!”

조세페가 눈앞의 여인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처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당장 내쫓아버리려 했다.

‘당신이 그림자 경매 길드의 조세페인가요?’

그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날 어떻게 아슈?’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드장이 되면서 누구에게도 본명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알 방법이 있어요.’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소름이 끼쳤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요?’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정확히는 날 대신할 자가 필요합니다.’

이상하게 작은 체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그는 이름만 들어본 황녀나 황자가 앞에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쉽게 믿기 힘들 거예요. 하지만 내가 가져오는 물건을 대리 판매해준다면 당신도 제법 많은 이득을 거머쥐게 될 거예요.’

‘그런 건 제가 아니어도……. 비, 비, 비천한 자를 왜 귀족 나으리께서 찾으십니까요?’

어느 순간에도 여인의 입매는 차갑기만 했지만, 이상하게 목소리가 잠시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난 그림자 경매장이 필요하니까.’

여인은 하얗고 고운 손 끝으로 조세페를 가리켰다. 그 순간, 화살로 찔린 기분이었다.

‘당신이 내 대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거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조세페는 떨리는 손으로 힐이라는 여자가 내민 화분을 받아들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식물이었으나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참으로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요.”

작고 손바닥만 한 화분엔 약초로 보이는 식물이 심어져 있었다.

이것이 경매에 나가면, 그 순간 참가자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만병통치약이라니.’

놀랍게도 이 약초 한 잎을 따서 입에 넣으면, 모든 병증이 완화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귀부인은 피부가 젊어지고 윤기가 흐르며 젊어졌다고 했고, 어떤 귀족 신사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부위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꼭 시간을 멈추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힐의 컬렉션.

그러니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황궁에서도 저 힐이 누구인지 찾고 있다고는 했지만, 조세페는 입을 싹 다물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필요는 없는 법.

그는 히죽 웃으며 손을 비볐다.

“그럼 다음에도 많이 이용해주시지요, 손님.”

*

후드를 푹 쓰고, 수수한 드레스를 걸치고 호위 하나 없이 걷고 있는 날 누구도 힐링턴의 영애라고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어두운 거리에서 빠져나와 밝은 거리로 나왔을 때,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오늘도 무사히 빠져나왔네.”

등골이 축축했다. 솔직히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갈 때마다 긴장되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도망칠 준비를 해놓는 걸지도.’

쓴물이 올라오는 기분이다.

누가 내 행동을 알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고, 슬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힐이라는 이름을 얻고 이능이 담긴 화분을 팔기 시작한 지 2년.

그동안 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쌓아왔다.

‘정말 떠날 생각은 없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니까.

난 아직도 가끔 원래 없던 인물이었던 내 위치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공작 저택의 방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으아악! 거기, 비켜요!”

히이잉, 날카로운 말의 울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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