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37화 (37/155)

37화. 선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맙시다, 제발 (1)

나는 시엔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입구가 아니라 오른 쪽으로 움직였다.

마법적인 무언가로 막아 두었던 것일까? 실제로는 벽이었는데 갑자기 공간이 움직여 문이 생겼다.

신기한 방식이었다.

똑똑하고 시엔이 문을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문을 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손님. 비밀 잡화점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밀 잡화점이라. 이름 한번 직관적이었다.

영 얼떨떨하여 시엔을 바라보자, 아까 언제 그렇게 차분한 모습을 했었냐는 듯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움찔거리고, 입술을 달싹이며,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다는 듯 발을 움직이는 모습.

‘잘못 봤나 봐.’

어쨌든 시엔을 믿고 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시야가 뒤바뀌었다.

깜짝 놀랄 새도 없이 화려한 풍경이 시야를 물들였다.

“이게 대체…… 다 뭐죠?”

“저희 비밀 잡화점이 자랑하는 신비한 물건들이지요, 고귀하신 분. 듣기로는 또래 남성분께 선물할 물건을 고르신다고 들었는데 맞으십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약 대답하기 1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다른 곳에 가볼게요, 하고.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안내인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박수를 쳤다.

짝!

그것이 단순한 박수가 아닌 줄 알았던 것은, 갑자기 물건들이 날개라도 달린 듯 내 앞에 날아와 안착했기 때문이다.

이게, 다, 뭐야.

“놀라실 필요 없으십니다. 높으신 분들께서 비싼 값을 주고 비밀리에 찾으시는 저희 비밀 잡화점의 명성에 걸맞은 물건들이지요. 아아, 물론 찾으시는 물건을 직접 제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곳이 있는 것도 의외지만, 시엔은 이곳을 정말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천문학적인 값을 지불하는 것이 가능한 고위 귀족만 상대하는 듯한데?

그리고 음…….

‘이 물건들, 어째서인지 좀.’

그럴 리 없을 텐데도 어쩐지 전생의 물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떤 물건 앞에 시선을 멈췄다.

내가 선물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한 답례로 정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했던 것이라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물건도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었는데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가브리엘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잘생긴 얼굴을 지니고 있어 안 어울리는 것이 드물었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건 얼마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안내인에게 그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오, 역시 안목이 높으시군요! 이 물건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랍니다. 받으실 분이 무척이나 감격하실 것이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마법이든 영구적으로 하나를 새기고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 마법이 아니라 축언도 가능합니다.”

잠깐만.

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안내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능수능란하게 말을 꺼냈던 자는 가증스럽게도 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

“축언이라고? 이능이 아니라 축언이라고 했나요?”

“네. 이능이 아니라 축언이랍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내가 원래 귀족들 사이에 오가는 선물이나, 이런 식의 은근한 방식을 알지 못하긴 했다.

내가 배운 것은 주로 보이는 그대로의 정석적인 것으로 후작 부인은 언제나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가 귀족예절의 표본 중의 표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숨겨진 방식은 잘 모른다는 뜻이다.

설마 축언을 떼내어 선물하는 방식이 있을 줄. 그리고 축언이 어떤 물건에 담을 수 있는 것인지도 지금 처음 알았다.

‘그건 너무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데?’

내가 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괸 채 바라보고 있자, 프로답게 손님의 속을 읽은 안내인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어떤 것을 우려하시는지는 몰라도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랍니다. 축언은 악용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무 물건에도 담을 수 없지요. 아주 특별한 물건에만 담을 수 있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요?”

무지를 자랑하는 것 같아 부끄럽긴 했지만 모르는 건 물어봐야 아는 법.

그는 놀라울 만한 말을 해줬다.

“축언은 상대를 간절히 생각하며 떼어낼 수 있는 것이라, 그 상대가 아니면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일종의 각인이랄까요?”

내 축언.

<정해진 운명은 없다>.

그것을 떼어내 물건에 담는다?

“축언을 담은 물건들은 그것을 받은 대상에게만 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긴 축언은 원래 주인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을 수 있으니까요.”

“마음을, 읽는다고요?”

“네.”

나는 그 말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 집으려던 그것을 놓았다.

날개 달린 듯 허공에 떠 있던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지만, 난 아무렇지 않게 고를 수가 없어졌다.

축언을 담는다.

그 축언을 담은 물건은, 주인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는다고.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만큼 뜻이 담긴 선물이 되기도 하지요. 특히 데뷔탕트를 치르기 전의 상대에게……”

그가 무어라 설명을 덧붙였으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내 생각은 오로지 한 가지에 몰두해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저것을 사서 저 물건에 내 축언을 담으면?

그럼 나도 이해 못할 내 마음을 정확히 알게 될까?

내가 요즘 왜 혼란스러운지.

왜, 가브리엘을 볼 때마다.

‘이렇게 가슴이 쿡쿡 쑤시는지.’

그리고 그러고 난 뒤에는 우리 로제를 똑바로 바라보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도.

‘그리고.’

굳이 그에게 선물로 주지 않고도 따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축언이 담긴 물건이 어떤 효과를 낼지 알 수 있을지도.

이것이 정말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지, 아니면 내 이능처럼 누군가를 치유하게 하는지.

거기까지 생각하다 화들짝 놀랐다.

‘내가 미쳤나 봐.’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고, 안내인은 꼭 악마가 속삭이는 것처럼 말했다.

“고르실 건가요, 고귀하신 분?”

아니. 안 사요.

그렇게 말하려 했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 말을 자르고 말한 안내인의 속살거림이 아니었다면.

“이것은 오로지 하나. 지금 선택하지 않으신다면 다음 방문 때는 고르지 못하실 수도 있답니다.”

“…….”

“그러니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추천합니다. 자아, 고귀하신 분. 이것을 고르실 건가요? 아니면 포기하시고 다른 상품을 고르실 건가요?”

훌륭한 상술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는데도 왜 손이 덥석 그것을 집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훌륭하신 선택입니다.”

안내인이 활짝 웃었고, 나는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으로 눈을 껌뻑였다.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화려한 남성용 커프스 버튼을.

예쁘기는 정말 예뻐서 그에게 찰떡같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 애물단지를.

“…….”

어쩐지 그 안에서 반짝이고 있는 꽤 알이 굵은 보라색의 보석이, 그의 눈 색을 꼭 닮은 보석이 날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힐데아. 네 마음은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아? 라고.

“제 명예를 걸고,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안내인의 노래하는 것 같은 음성을 마지막으로, 시엔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다.

모든 과정이 꼭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손에는 축언을 담는 방법이 담긴 설명서와 그 커프스 버튼이 들려 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어야 할 선물.

없어 보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가 사지 않겠다고 취소할까?

“저, 아, 아가씨.”

“어?”

“이제 돌아가실까요? 사람들이 지켜봐요…….”

“아.”

옆에서 말을 거는 시엔만 아니었다면 계속 멍하니 그곳에 서있었을 것이다.

깜짝 놀라 주변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제야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다.

‘이런.’

화려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몇몇의 눈이 흥미로운 듯 내게 닿았다는 사실까지도.

낭패였다.

가뜩이나 달갑지 않은 소문이 따라다니는 처지인데.

더 흥밋거리가 되기 전에 이 자리를 떠야 했다.

“응, 시엔. 어서 돌아가자.”

*

신전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갔다. 그만큼 많은 인파가 북적였고, 그것을 노린 사람도 있었다.

어떤 후드를 쓴 인영이 평범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곧 그 마차는 언제 그곳에 서 있었냐는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일련의 무리가 그곳에 찾아왔다.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서 찾아. 무엇이라도 좋다.”

“네, 알겠습니다.”

훈련 받은 듯한 사람들은 기민한 움직임으로 주변을 훑었다.

잠시 뒤, 그들 무리로 보이는 자가 가운데 서 있던 청년에게 다가왔다.

그는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송구하게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 아무것도?”

“네, 인파가 너무 많아.”

그 보고를 받는 청년의 얼굴에도 설핏 짜증이 스쳤다.

어떻게 마련한 기회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놓치다니.

짜증나도록 몰려 있는 인간들을 다 치워버리고 싶어졌다.

그는 이를 갈 듯이 속삭였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조력자를 꽁꽁 숨겨서 보여주지 않으니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었건만.”

“죄송합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 사나운 태도와 얼굴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야말로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청년은 창백할 정도의 하얀 피부에 비가 오면 붕 뜰 것 같은 심한 곱슬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는데 살짝 처진 눈매는 화를 내도 억울해 보일 것처럼 유순했다.

평범하디 평범해 보이는 연한 갈색 눈동자와 고동색 머리카락.

실제 연령보다 훨씬 앳되 보여 가끔은 어린 소년처럼 보이는 외모.

그러나 만약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허름한 후드를 걸치고 서 있는 이를 보며 경악했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주변을 더 찾아볼까요, 전하.”

“아니. 찾아봤자 나올 것이 있을 것 같진 않아.”

그는 바로 미엘르 제국의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후계자.

바로 황태자 벤자민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주변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인파가 북적북적한 건물 앞에 멈췄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벤자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손을 들어 어떤 한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북적북적한 인파의 주범.

어떤 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결벽스럽게 하얀 기둥의 입구.

“……저긴 무슨 건물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