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40화 (40/155)

40화. 힐데아님이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뭐.”

“내가 본 게 있는데 말이에요.”

저 표정을 했을 때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저번엔 광산을 털어갔었지……. 미래를 위한 투자라나 뭐라나?

“그거 진짜예요?”

가브리엘은 질색을 했다.

“또 뭘 말입니까. 근데 로제리엘, 당신 대체 언제 돌아갈 생각…….”

“아 진짜, 풋, 진짜 영식들 팔다리 부러뜨렸어요?”

가브리엘은 동상처럼 굳었다. 숨 쉬는 것도 잊었다.

그걸 어떻게?

“진짜로?”

어디에도 증거를 남기지 않았는데 저 여자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냥 떠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일단 발뺌하기로 했다.

“왜 나라고 생각을? 그런 적 없습니다. 억울하군요.”

하지만 그녀는 속지 않았다.

“영식들 팔다리 부러뜨렸다는 이야기에 왜 내가 아니라는 말이 나와요. 그게 어디서 나온 소리냐고 물어봤어야지.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요?”

“…….”

“범인, 맞네.”

그를 관찰하던 로제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을 가렸다.

“가브리엘, 질투가 너무 폭발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래요. 이거 까닥하다간 그냥 집착남으로 가는 거…….”

뒤에 웅얼거리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일단 부정하고 봤다.

“아닙니다. 아무튼 아닙니다.”

로제리엘은 발을 장난스럽게 흔들며 코웃음을 쳤다. 헹!

“아니긴. 거짓말은 됐어요. 아니, 진짜 왜 그런 거예요? 한둘도 아니더만. 그 사람들이 우리 언니한테 파트너 하겠다고 허락한 것도 아니잖아요. 진짜 질투?”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요?”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질투로 시작한 것이 맞았다. 감히 어떤 놈이.

하지만 곧 시무룩해졌다.

힐데아가 선택한다면 그가 어찌하겠는가.

대신 다른 것을 알아봤다.

그 놈들이 제대로 된 인간성을 지녔는지, 힐데아에게 접근하려던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닌지.

물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빌미로 어떻게든 방해하겠다는 합리화가 아래에 깔려 있었지만.

‘진짜 그런 줄은 몰랐지.’

뒷조사를 마치고 드러난 진실을 보았을 때, 가브리엘은 눈이 뒤집혔다.

역겹게도 초대장을 보냈던 이들은 같은 살롱 클럽의 인간들이었다.

문제는 그것들이 힐데아를 두고 내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감히, 힐데아를 두고.

차갑고 냉정한 힐데아 폰 힐링턴을 함락하는 자, 그녀의 첫 춤을 가져가는 자가 승리한다는 저열한 내기판을.

‘개새끼들.’

원래도 힐데아 한정으로 조신하게 굴었던 그는 참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저 사실이 그녀의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을 용서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처리했다.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아아악! 아악! 대, 대체 왜! 아악!’

‘그러니 입 간수를 잘했어야지.’

‘당신 대체 누구, 아아아악!’

항상 죽이는 일을 해왔던 전쟁 영웅에게 있어서 귀찮은 날파리들의 팔다리를 똑깍 부러뜨리는 일쯤이야 어린아이 장난이었다.

지금도 그 행동이 잘못됐다기보다는 이것이 로제의 입을 통해 힐데아에게 들어갈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말, 할 겁니까?”

“뭘요?”

“……힐에게.”

“흐응, 어떻게 할까요?”

가브리엘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더 따지고 들고 입막음용으로 뭔가를 요구할 줄 알았던 로제리엘은 뜬금없는 말을 했다.

“뭐, 됐어요.”

“?”

“어쨌든 결론은 가브리엘은 음험하다는 거네요. 음음, 역시 그랬어.”

순간 깊은 분노에 로제리엘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돌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반박했다.

“헛소리.”

“뭐가 헛소리?”

“그건 로제리엘 영애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서. 양심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엥? 그거 나한테 한 소리?”

“그럼 여기 또 누가 있습니까.”

“와아아!”

로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머, 가브리엘!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들 나한테 얼마나 명랑하다고 하는데요? 소문도 못 들어봤나 봐!”

“흥. 다들 눈이 뒤집혔던가, 그쪽이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하던가. 둘 중 하나 아닙니까? 당신이 힐데아의 여동생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 닌, 데, 요! 우리 완전 똑닮았어요!”

파박! 둘 사이에 날카로운 불꽃이 튀겼다.

이 빌어먹을 망아지가.

서로가 서로를 보는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로제리엘은 평소의 산뜻함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흥,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우리 언니한테 가브리엘이 나 괴롭혔다고 말해버릴 거야.”

가브리엘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지. 그쪽이 수년간 뜯어간 보석과 귀중품, 그리고 광산까지 이야기하는 수밖에.”

“오, 이렇게 치졸한 인간을 봤나. 줬다가 뺐으려고요? 그런데 어쩌나 이미 벌인 사업이 많아서 뺏으려고 해도 못 뺏을 텐데. 증거 있어요?”

“가능하지.”

“웃기시네.”

그야말로 어린아이들의 싸움이었으나, 실상은 공작가의 영애와 전쟁 영웅인 공작이었다.

씨익 씩 거친 숨을 내쉬던 둘은 결국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싸움의 막을 내렸다.

“아, 됐어. 유치하게.”

“…….”

“어쨌든 계획은 이래요. 최대한 뻔뻔하게 나가는 것.”

삐친 아이처럼 입을 댓발 내민 로제리엘이 무언가를 설명했고, 가만히 듣고 있던 가브리엘은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했다.

“알면 힐데아가 화를 낼 것 같습니다만.”

“헹, 언니는 나한테 화 안 내요. 부럽죠?”

“……당신 진짜 짜증납니다.”

“내가 할 말이네요.”

다시금 씰룩거리며 움직이는 입술이 2차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지만, 가브리엘은 한숨을 내쉰 뒤 진정했다.

“로제리엘.”

“왜요.”

“정말 보석 때문에 날 도와주는 겁니까. 당신의 언니가 날 달갑게 여기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 없다는 식으로?”

이번에도 또 말을 돌리리라 생각했건만, 로제리엘은 이번에는 꽤 진지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긴장한 그 모습을 보면서, 픽 웃는다.

“이래서예요.”

누가 귀신 공작이 미래의 처제 한마디에 울고 웃는지 상상이나 하겠어요?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래서라고요. 어쩌면 똑 닮았다니까. 이 답답이들.”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자신과 힐데아가 같다고?

대체 어디가?

아마 똑똑 두드리며 고개를 들이민 디안이 아니었다면 대화는 그렇게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노크 소리가 들려 대화의 흐름이 끊겼다. 그리고 대뜸 문이 삐걱 열렸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묻는 방문자는 디안이었다.

“주군!”

가브리엘은 다시 앞을 보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 로제리엘의 빈자리를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귀신이 따로 없다.

대체 공작은 어떤 방식으로 제 딸을 훈련시켰단 말인가.

저게 어떻게 평범한 영애란 말이야.

어쩐지 섬뜩하기까지 했다.

“주군! 저기, 놀랄 만한 소식이 있습, 아니, 당장 들어가도 될까요?”

숨 넘어갈 것 같은 기색에 이상했다. 디안은 적군 앞에 떨어져도 웃으며 상대의 귀를 물어뜯을 성격이다.

“이미 반쯤 들어와 놓고 뭘 묻지? 무슨 일이야.”

하지만 이후, 디안이 들어와 한 말에 가브리엘은 하고 있던 생각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무덤덤하실 때가 아니라고요. 힐데아 영애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뭐, 라고?

*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답례로 온 헤어핀을 보며 골이 아파왔다.

“하아.”

커프스 버튼이 무사히 전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고, 딱히 다른 말이 없었기에 괜찮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 이후 정말 데뷔탕트가 발등의 코앞에 떨어졌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궁의 연회장에서 승전 연회와 함께 열리는 것이라 단지 이번에 사교계 데뷔하는 영애와 영식들만 그 자리를 빛내는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대연회였고, 온갖 귀족들이 다 모이는 자리였다.

게다가 축언의 축복과 함께 자랑하며 뽐내는 귀족 자제들로 인해 신전에서는 축복할 신관들도 파견한다고 했고, 다른 왕국의 대사들도 방문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게다가 연회는 이틀이나 연이어 이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비용 드레스는 몇 벌이나 있어야 했다.

파트너와 색감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몸에 부착하는 장식물의 색상도.

이를테면…….

“언니, 이 헤어핀, 언니가 첫날 입고 들어갈 드레스 색상과 딱이겠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추어 준비했을까. 와아, 완전 신기하다!”

“로제, 너 왜 그러니?”

“으응, 언니, 내가 왜?”

로제가 영 이상했다.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어색하게 국어책 읽기를 했기 때문이다.

망가진 기계도 아니고, 왜 팔다리도 같이 나가는 건데?

“리라. 리라는 어떻게 생각해?”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이번에는 리라가 합류했다.

“정말 잘 어울리시는데요.”

“그렇지?”

“저기, 둘 지금 뭐하는 거야?”

리라 역시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담기지 않은 영혼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이 여자들이 대체 왜 이러는가 고민하며 헤어핀을 물리며 단호히 말했다.

“됐어. 난 선물 주고받자고 시작한 게 아니야. 그러니 이건 연회장에 하고 가지 않을 거야. 아니면 되돌려 보내도 좋고.”

“어머나, 그래도 받은 것을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것은 큰 무례랍니다, 아가씨.”

그걸 내가 모를까.

하지만 이미 좋지 않은 사이인데 이 정도 무례로 그가 새삼스럽게 날 더 싫어할 것 같진 않았다.

‘또 답례를 보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아니지.’

하도 답답해서 가브리엘이 앞에 있으면 그대로 옷자락을 잡고 탈탈 흔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라고.

‘예쁘긴, 예쁘지만.’

내가 입을 드레스는 반짝이는 금색에 가까운 진한 노란색의 드레스였고, 이 환한 백금에 가까운 헤어핀은 분명 찰떡같이 잘 어울릴 것은 분명했다.

‘잠깐만.’

그런데 어떻게 딱 이 색으로 보냈을까.

난 로제를 응시했다. 설마 로제가 말한 걸까? 그렇다면 대체 왜?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로제는 불쾌하지도 않은 걸까?

“로제, 너.”

“언니, 나도 받았어!”

“……너도?”

“응!”

꼭 그런 물음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바로 나오는 답이 영 이상하긴 했지만.

‘그러면 이번에도 덤인 건가?’

목걸이를 주었을 때처럼, 양쪽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 정말 이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다시 이 헤어핀과 함께 어떤 구두를 정할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하는 로제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여기서 더 가브리엘과 얽힐 일은 없겠지.

*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내가 예전부터 얼마나 가브리엘과 악역으로 엮었었는지를 알았다면 조금 더 대비해야 했다.

바로 이렇게.

“안, 녕하세요. 가브리엘.”

이렇게, 그와 함께 마차에 남겨지게 되기 전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