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마차 안에서 단둘이
그래, 그놈의 빌어먹을 목걸이.
시어스는 화려한 세공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를 떠올렸다.
가브리엘 그 미친 것이 제 딸들에게 선물해주었다는 것을.
문제는 비슷한 모양새의 악세서리를 두 딸 모두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꼭 양쪽에 다리를 걸치려는 것처럼!
“이 아빠도 내내 그게 궁금했다. 대체 그 목걸이는 어떻게 된 것이지? 왜 모양이 그렇게 비슷한 것이냐. 혹시라도 그놈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가브리엘이 전쟁 영웅이고 나발이고 그대로 뒤뜰에 끌고 가 땅 속 깊숙이 파묻어버릴 각오가 충분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면?”
살벌해지는 시어스의 눈빛을 보며, 로제는 진정하라는 듯이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빠아, 보셨잖아요. 보석 색깔이 다르다는 거.”
“……그놈이 힐데아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소름 돋게 수줍어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그래도 너와 더 친근하지 않았더냐?”
“으악, 소름. 친하다고 결혼하진 않잖아요!”
깔깔 웃은 로제가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장난스럽게 쿡쿡 찔렀다.
언니, 힐데아의 목걸이의 정중앙의 보석 색은 선명한 붉은색. 바로 힐데아의 눈동자를 꼭 닮은 색이다.
반면 로제의 목걸이의 보석은 푸른색. 제 언니와 똑같은 붉은 눈동자인 로제리엘과 전혀 연관이 없는 색이었다.
사교계의 은밀한 관습을 잘 알고 있는 시어스는 그것이 못마땅해 힐데아의 목걸이를 착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벨키우스 공작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았다만.”
“으웩.”
로제리엘은 헛구역질을 했다. 그 호쾌한 태도에 시어스의 얼굴이 가엾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제리엘은 오만상을 구기며 말했다.
“가브리엘도 이 말을 들으면 아빠와 대련하자고 달려들었을걸요.”
저 말투는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친근해 보이는데.
시어스의 의심스러운 표정을 마주한 로제는 씩 웃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튼 가브리엘이 보고 있는 건 저 아니에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느냐?”
시어스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몇 번이나 가브리엘이 힐데아 앞에서 바짝 굳어 눈알을 굴리는 모습은 소름이 돋았다.
가브리엘 그 망할 놈이 눈앞에 힐데아가 없으면 얼마나 순식간에 싹수없이 돌변하는지 잘 알고 있으므로 더더욱!
“그런데 네 언니는 그놈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것 같던데.”
잠시 입을 딱 다물었던 로제리엘이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빠. 언니가 진짜 싫었으면요, 가브리엘이 다가올 때마다 무참히 말로 썰어버렸을 거예요.”
아.
힐링턴 가문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힐데아가 가브리엘을 꺼려하고 있다, 쪽이었는데.
‘확실히 그렇군.’
여태까지 힐데아가 쓸데없이 달라붙으려 하는 가문의 영식들을 어떻게 쳐왔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랬다.
로제가 툭 내뱉었다.
“아빠도 좀 눈치가 없으시네요!”
“여기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냐.”
“으휴, 엄마랑 연애 어떻게 하셨어요? 엄마가 먼저 고백하고 먼저 청혼한 거 아니에요?”
“…….”
가만히 정색하던 시어스가 넌지시 물은 것은 잠시 뒤였다.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로제?”
로제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아, 진짜 이 둔치들!
*
나는 마차 안에 의미 없는 시선을 던지다가 어느 한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았다.
그건 바로 가브리엘의 옷소매 끝부분.
‘아. 저걸, 하고 왔구나.’
거기에 달려 있는 우아한 모양의 커프스 버튼이 선명하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동자와 똑같은 색의 커프스 버튼을 보자 어쩐지 손끝이 달아올랐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얼굴이 뜨겁고 당장 도망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와 주고 받은 것들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차라리 내가 이 목걸이를 하고 오지 말걸.’
로제와 주변 시녀들의 적극 주장에 의해 얼결에 차게 되었지만, 적어도 목걸이 하나만이라도 다른 것으로 끼고 올 것을 그랬다.
‘그러고 보니 이상해. 목걸이 차게 할 때 로제가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것 같지……?’
난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로제가 누구랑 내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로제를 너무 잘 알아 절로 일어나는 걱정을 삼키며 나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마차의 공기에 입안의 살을 씹었다.
‘근데 나야 긴장했다 치더라도, 가브리엘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나도 나지만, 가브리엘 쪽에서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꼭 숨소리조차 조심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착각이겠지만.
그가 나와 함께 있다고 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리는 없으니까.
‘뭐라도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쭉 침묵한 채 가는 게 나을까.
‘어쩌면 가브리엘은 나랑 말을 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고.’
눈이라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리려 노력하는데, 꼭 고민하고 있던 내 속을 읽은 것처럼 그가 말을 꺼냈다.
“보내주신 답례 선물, 무척 마음에, 듭니다.”
“콜록!”
깜짝 놀라 기침이 터졌지만.
“……괜찮으십니까?”
느릿하고 진중한 목소리.
더불어 긴장한 사람처럼 경직된 목소리이기도 했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본 것은 어쩐지 핏대가 선 것 같이 보이는 가브리엘의 목덜미였다.
그는 나한테 말을 시켜놓고 필사적으로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어 의아하게 만들었다.
‘지금 창문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러다 깨달았다.
‘……!’
창문에 내 얼굴이 비치고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꼭 뜨거운 공기가 등골을 스치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창을 통해 그와 시선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아, 아니야.’
난 바로 부정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그가 보고 있을 리 없잖아. 얼굴을 쳐다보려면 얼마든지 쳐다볼 수 있는 거리인데.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으으.’
내 착각인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얼굴이 뜨거운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심장은 왜 이렇게 격렬하게 뛰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꼭 그가 그런 것이길 바라는 것처럼.’
이러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지 않을까 걱정되어 입술을 습관처럼 잘근 무는데, 그의 손가락이 망설이는 것처럼 흠칫 튀었다.
퍼뜩 다시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정확히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스스로의 입술에 손가락을 살며시 대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의 손가락이 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입술을.”
“아, 네, 네?”
“입술을 깨물고 계셔서.”
“그…….”
무슨 말을 한담.
당신이랑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긴장되어서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잖아.
나는 꿀 먹은 곰처럼 입을 딱 다물었고, 얼굴은 경직되었다.
그 표정을 보며 같이 어두워지는 상대방의 얼굴 변화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힐데아. ……혹시 제가 커프스 버튼을 하고 온 것이 혹 거슬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난 당황했다.
‘그런 게 아닌데.’
사실 지금 이 상황에서 로제로 인해 사과의 말을 먼저 건네야 할 것은 나였는데, 더 어색하게 만드는 것 같지 않은가.
얼른 손을 휘저으며 말을 건네려고 했을 때였다.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브리엘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착용하고 싶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
“……제가, 드린 커프스 버튼을요?”
“예.”
도대체, 왜?
“추, 축언도 담기지 않은 것인데.”
하지만 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망할 입이 헛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그대로 마차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으니까.
축언이 왜 나와!
“축언 말입니까.”
“……축언을 담는 물건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알았는데, 우연히 그 물건이 축언을 담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해요.”
“그렇군요.”
“만약 원하신다면, 나중에 말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중에 로제와 연인이 되면.
“그럼 영애께선.”
“네?”
“영애께서도 축언이 담긴 물건을, 원하십니까?”
어쩐지 가브리엘의 시선이 힐끗 내가 걸고 있는 목걸이로 향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목걸이의 보석을 의미 없이 매만지고 있었다.
“저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십니까?”
그러다 가시에 찔린 것처럼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우리가 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
평소 가브리엘 답지 않았다.
의심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혹시…….
“가브리엘, 혹시 저 때문에 로제에게 무슨 부탁을 받으신 건가요?”
“예?”
이를테면 언니를 잘 챙겨달라는 그런 부탁 같은.
그래, 그게 맞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열기로 빨라지던 심장 박동도 제 속도를 되찾았다.
‘그랬구나.’
순간, 가브리엘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가슴 속이 한순간 싸해졌다.
역시 그랬구나.
나는 내가 듣기에도 퍽 냉소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이상하게 속이 쓰렸다.
“혹시 첫 춤까지 부탁받으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힐데아, 저는.”
“공작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혹시 그러시려 했다면 그런 종류의 배려는 정중히 거절할게요.”
“어째서입니까?”
“로제는 웬만하면 추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듣기에도 제법 차가운 목소리에 가브리엘은 더 내뱉으려던 말을 멈추었다.
나는 정말 첫 춤을 출 생각이 없었다.
로제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애가 정말 춤을 추지 않을 가능성이 컸고 그렇다면 더더욱 나도 그러할 예정이었다.
나만 추고 로제는 추지 않는다면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브리엘을 바라봤는데, 순간 내가 본 것이 맞는지 눈을 깜빡였다.
‘응? 지금.’
어쩐지.
어쩐지 지금 엄청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을 한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