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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44화 (44/155)

44화. 당신의 파트너가 저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1)

“덕분에 우리 자식들의 등장은 빛바랜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걸 아시는 분이 이리 만드셨습니까?”

팽팽한 기세가 황제와 황후 사이를 오갔다.

결코 농으로라도 사이 좋다 할 수 없는 그들 부부는 손에 칼만 쥐지 않았을 뿐이지, 언제나 서로를 찌르기 위해 여념이 없는 자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었으니, 그 맥을 끊은 것은 황제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종에게 손짓했고, 곧 종소리와 함께 연회장에 모인 수많은 귀족들의 시선이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는 황제 부부를 향했다.

“오늘은.”

황제, 디트로이아는 느긋하게 미소하며 와인잔을 치켜올렸다.

“제국의 고통을 끊어낸 것을 축하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요. 짐은 그 영광을 오로지 한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고 생각하오. 오, 마침 그 주인공이 등장하였군그래.”

황제는 되바라진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가브리엘의 뜻을 읽었다.

부르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럴 수야 있나.

‘지나치게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은가.’

황제도 보았다.

힐데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선명한 붉은색과 그 안에서 숨기려 해도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강력한 축언의 기운을.

물론 저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자는 이곳에서 손에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수컷의 견제였다.

이 사람은 자신의 사람이니, 곁에 쉬이 다가오지 말라는.

황제의 입술이 사납게 비틀렸다.

그럴 수야 없지.

그는 저들 사이에 끼어들어, 저 못마땅한 혼담을 깨부술 생각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이 드디어 자리를 빛냈군. 이리 가까이 오게나, 가브리엘 폰 엘른 벨키우스 공작!”

*

시선만으로 숨 막혀 죽는다는 건 이런 때를 말하는 것인 모양이다.

터질 것 같은 심장,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여태까지 누구보다 이 순간을 치열하게 준비해왔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상황은 꽤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아마, 단단한 팔이 날 에스코트 하고 있지 않았다면 정말 뒤돌아 한걸음 물러났을지도 몰라.

“힐데아.”

황제의 우렁찬 부름에 모두가 환호하며 가브리엘이 움직이길 종용했다.

‘응?’

그런데 가브리엘은 곧바로 황제에게 향하지 않았다.

도리어 내 쪽을 바라봤다.

뚜렷한 시선이 딱 마주친다.

뭐, 뭐지?

황제의 부름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불충이었다.

주변의 귀족들이 웅성거리며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 내게도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선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밧줄에 묶인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힐데아.”

나직하고 조용한 그 음성이 친절하게 느껴지는 것도 착각일까.

오늘 내가 유독 이상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지만.’

역시 그의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턱관절에 힘이 들어가는 것, 무언가 불편한 듯 움찔하는 눈썹과 웃는 것 없이 무뚝뚝한 표정.

“다녀오겠습니다. 힐데아.”

“어, 네.”

그가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기 때문에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지금 당시 곁에 있는 것이 로제 영애의 부탁이라 생각하시더라도.”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날 대하는 그의 태도 중에 평상시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아.’

또렷하게 얽히는 시선은 질감마저 지닌 듯했다.

묵직한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다짐이라도 하듯 떨어졌다.

“당신의 데뷔탕트 동안의 파트너는 저라는 걸.”

그가 손을 내밀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 뒤의 행동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잊으시면 안 됩니다.”

“!”

나는 두 눈에 힘을 준 채, 그가 내 손등 위에 입맞춤하려는 듯 숙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안 돼.’

닿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손끝이 오므라들었다.

그것을 분명히 바라보고 있을 가브리엘의 얼굴이 한층 굳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찰나였기 때문에 정확히 보았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난 바짝 긴장했고, 그 순간 알 수 없는 공기가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구두 속에 숨겨진 발이 바짝 굳었다.

나는 다가온 그의 붉은 입술이 내 손등에 닿을 듯하면서 닿지 않고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 지금 뭐하는 거지?

왜 이런 행동을.

맞잡고 있는 손이 불타는 것 같았다. 등골이 섬뜩해졌다.

로제, 로제는 어디에 있지? 지금 이 모습을 봤을까?

난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지?

“이제, 가보시는 것이 좋겠어요. 가브리엘.”

평소라면 바로 손을 놓았을 텐데. 왜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일까.

그는 꽉 쥐고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힐데아. 부디 대답을.”

“…….”

대답해주기 전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파트너가, 가브리엘이라는 건 이곳에 있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거예요.”

그제야 손을 놓을 수 있었다. 닿았던 피부가 차가운 공기에 닿아 소름을 끼치게 했다.

언제 망설였냐는 듯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린 가브리엘은 성큼성큼 빠르게도 걸어갔다.

훤칠한 뒷모습은 곧 그의 곁에 다가온 사람들로 인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아쉽다.

‘……?’

그리고 굳었다.

‘내가 지금, 뭐라고?’

입안의 혀가 천장에 딱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내가 떠올린 생각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가 아쉬운데. 대체 뭐가?

‘동생 부탁으로 잠깐 파트너를 해주고 있는 사람한테 난 지금 뭘…….’

바로 그때였다.

“언니!”

발랄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든 생각들이 끊어진 연처럼 툭 떨어졌다.

“너어, 로제!”

온갖 설움이 폭발하려 했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것이 환하게도 웃고 있는 로제리엘의 얼굴을 보니 치솟던 화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었다.

“언니, 언니. 내가 갑자기 그렇게 행동해서 화 많이 났지이?”

제 뺨을 찌르며 찡긋거리는 모습조차 깜찍하게 사랑스러웠다.

아무리 여주인공이라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분노조차 완전히 싹 사라져버린 스스로의 상태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도 이대로 넘어갈 순 없지.

로제의 반질한 이마에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어, 언니.”

“그걸 아는 애가 그렇게 해?”

“나, 나느은.”

“말 늘어뜨려도 소용없어. 로제, 네가 가브리엘과 친한 것은…… 알고 있지만, 약속은 소중한 거야.”

찔끔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제를 엄한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서 있는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아빠.

“아버지.”

“!”

방금 내 부름에 아빠의 어깨가 흠칫하고 튀어 올랐던 것 같았지만, 단호한 옆모습은 변화가 없었다.

솔직히 아빠한테 무언가 말하는 것이 어렵긴 해도 어쨌든 아빠는 이번 일의 공범이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로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버지까지 어떻게…….”

하지만 투정과도 같은 말은 목구멍에서 탁 걸린 듯이 멈추었다.

아빠는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고, 눈이 마주치더라도 변명의 말도 내뱉지 않았다.

“흐, 흠흠.”

방금까지 로제와는 팔짱을 끼고 편하게 웃고 계셨으면서, 나는 그렇게 불편하신 것일까.

그래도 그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나만의 착각인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

가만히 바라보는데 아빠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려졌다. 그리고 다시 휙-가브리엘이 걸어간 황족들이 있는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뭐야. 화 한 번 냈다고 이제 눈도 마주치기 싫으시다는 건가?

미간을 일그러뜨리는 순간이었다.

딸꾹!

‘응?’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 이곳에는 아빠와 로제, 그리고 나밖에 없었다.

우리가 힐링턴 공작가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말을 걸까 말까 살피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허락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 소리는 아빠?’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근엄한 표정…….

딸꾹!

……으로 딸꾹질을 하고 계셨다.

나는 방금까지 치고 올라왔던 서러움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나가는 시종의 쟁반 위에서 가벼운 주스를 받아 아빠 쪽으로 건넸다.

“……아버지, 마시세요.”

“흠, 흠흠. 고맙구나.”

아빠는 끝까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잔을 건네받았다.

의혹 한줄기가 뇌리를 뚫은 것은 그때였다.

‘혹시 아빠는 지금.’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혹시 마주치지 못하는 것일까.

‘내게 미안해하시는 건가?’

*

황제의 곁에 다가간 가브리엘은 바로 멀리 보이는 힐데아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머리 같은 것들이 붙기 전에 로제리엘이 옆에 붙었군.’

저 먼 거리에서도 단박에 시선을 마주친 분홍 머리카락의 소녀는 끔찍하게도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윽.’

가브리엘은 못 볼 꼴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렸고, 우연히 황후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황후는 처음부터 노려보듯 가브리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이 마주친 것이었다.

가브리엘은 황제의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모르는 이들도 있었고, 낯익은 이들도 있었다.

크게 황제파와 황후파로 갈린 제국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모습에 속으로 비웃음이 솟았지만 티 내진 않았다.

“제국의 큰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반면 황후 데자이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술을 한쪽으로 끌어 올렸고, 가브리엘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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