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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70화 (70/155)

70화. 설마가 사람 잡는 법 (2)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볼까요?”

정말 사냥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웅성거리는 이들도 보였다.

“태양빛이 이렇게 뜨거운데, 정말 저 숲 안쪽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아아, 움직이기 싫은데…….”

사실 웃긴 반응이었다. 사냥대회에 와놓고 왜 사냥하러 간다고 하니까 저런 반응일까.

나는 운동할 때처럼 승마복이나 운동복을 입고 오면 좋았을 테지만, 힐링턴 저택 부지 내부도 아니고 혼자 너무 튈 것 같아 최대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드레스를 고른 참이었다.

‘구두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근데 대체 언제까지 쳐다볼 셈이지.

난 아까부터 내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여자, 황녀 라피이아를 마지못해 바라보았다.

‘하아.’

저 여자는 혹시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 아닐까?

순수하게 그 의도만으로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럴 수 없지.’

그녀는 의도적으로 가브리엘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무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황녀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웃어 보이든, 손을 뻗어 팔을 잡든…….

어쩐지 그 모든 행위들이 나에게 타격이 된다는 걸 황녀가 알고 있는 것 같아 더 기분이 나빴다.

나 혼자 삼키고자 한 연정을, 짝사랑을, 꼭 라피이아가 알고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와 가장 가까운 로제도 아직 알아채지 못한 마음인데. 저 여자가 어찌 알겠어?

그렇게 위안을 하면서도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더더욱 가브리엘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결국 모두가 마련해 놓은 천막을 벗어나 이동을 시작했다.

“걱정할 거 없어요, 힐데아 영애. 사냥이라고 해봤자 산책하는 것에 가까우니까.”

황태자는 순하게 웃어 보이며 자신의 화살을 한손으로 들어 올려 흔들어보였다.

확실히 저 정도의 화살로는 토끼나 잡을 수 있을까 말까.

차라리 우리 로제가 저들보다는 더 사냥을 잘할 것 같았다. 실제로 로제는 제 선생님과 훈련을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멧돼지를 발로 후려쳐서 잡기까지 했지.

‘로제, 맙소사! 멧돼지라니!’

‘흐흐, 괜찮아, 언니. 나는 강해. 아주 강해!’

다쳤을까 봐 경악했지만 로제는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하던지.

그날 저녁은 주방장 특선 허브 멧돼지 구이였다.

‘맛있었는데.’

그렇게 걷다가 시냇가가 나왔다.

영애들은 얼굴을 붉히며 같이 오거나 어울린 영식들의 손을 잡고 드레스 치맛단을 한 손을 잡은 채 아슬아슬하게 시냇물을 건넜다.

역시 사람은 운동 부족이면 안 돼.

“힐데아 영애, 내 손을…….”

나는 그 모습을 혀를 차며 바라보다가, 내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다 굳어버린 황태자를 보았다.

왜?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힐데아 영애는…… 체력이 무척 좋은 것 같네요.”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마침 황태자가 생각보다 체력이 빈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조금 걸었는데 벌써 헉헉거리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고, 황태자의 안색도 아까보다는 지쳐 보이는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아주 멀쩡했다.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에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달리기를 하는 내게는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구두는 불편해서 다리가 당기기는 했지만.

멀뚱히 바라보니 벤자민은 꼭 속상하다는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부축해드릴까요, 전하? 지치신 것 같은데.”

“아니, 아니에요. 거기까지 하면 난 침몰할 거예요, 힐데아 영애…….”

“예? 무슨 말씀이신지.”

눈에 띄게 침울해진 벤자민은 처음과는 퍽 다르게 말수가 부쩍 줄어버렸다.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손을 거두며 관심을 끈 뒤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역시 숲 깊은 곳이라 공기가 좋았다. 바람도 시원하고. 로제도 같이 왔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오늘 야외 훈련 일정이 있어서…….

‘어.’

파김치처럼 시들시들한 귀족들을 보다보니, 그 와중에 우뚝 선 사람이 유독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아직 멀쩡했고, 전쟁터에서 다년간 구른 기사인 그 역시 당연히 멀쩡했고.

심드렁한 태도로 주변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냉소적인 얼굴이 마침 내게로 향했다.

우리 둘의 시선이 부딪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

“…….”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가 날 인지하자,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천천히 변화했다.

입꼬리가 살짝 흔들리고 눈가가 조금 접힌다. 눈빛이 누그러지고 인상이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벙긋거리는 입술이 움직였다.

꼭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힐, 그렇게.

그 모든 것이 붓이 캔버스를 간지럽히듯 명확하게 내 심장에 아름답게 담겼다.

나는 이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디에 있든, 지금 이 순간.

저 냉정한 남자가 보여준 한순간의 미소를 절대 잊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시 한번 그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힐.

이번에는 명확히 듣게 하겠다는 것처럼.

‘아.’

그 순간, 나는 꼭 누군가가 숨결을 불어넣은 것처럼 귀가 간지러워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저렇게 멀리 있는데.’

분명 그의 목소리는 내게 닿지 않았는데.

‘왜, 대체 왜 저렇게 웃어? 내가 당신을 봐서 너무 기쁘다는 것처럼. 저렇게 웃으니까…… 황녀 같은 사람도 당신 곁에 달라붙는 거잖아. 그리고 나도.’

그러나 현실은 아는 사람을 반가워하는 정도이겠지만, 아까의 그 냉랭한 표정에 비해서는 봄바람에 가까웠다.

‘나도…….’

심장이 뚝, 하고 굳은 것은 며칠 동안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피하면서 면역력을 잃어버린 내 짝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가브리엘의 모든 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휩쓸리듯이 정신없이 바라봤다.

높다란 콧대, 붉디 붉은 입술, 희고 고운 피부, 화려한 이목구비.

길쭉한 목덜미와 가지런한 눈썹, 아름다운 눈동자.

‘그래, 어쩜 눈이 저렇게 예쁘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쿵, 쿵, 쿵.

‘머리카락 색도 예쁘고.’

손끝에 심장이라도 얹힌 것처럼 요란하게도 뛰었다.

‘얼굴도 조각 같아.’

사랑이 참 우스웠다.

사랑이라 인지하지 못했을 때는 그의 잘난 외모도 내게는 그냥 아, 하고 감탄 한번 하고 지나갈 것이었는데.

홧홧해지는 얼굴 때문에 이가 갈렸다. 솔직하기만 한 내 몸뚱이가 야속했다.

‘더 보면 위험할 것 같…….’

손가락이 움찔 뛰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꺄, 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울렸다.

동시에 산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숲 전체로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힐, 힐데아!”

기사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귀족 자제들을 지키려 경계했고, 황태자가 혼비백산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을.

왜 나를?

‘어?’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지금, 무언가에 잡혀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들이 멀어져간다.

손을 뻗은 가브리엘의 멍한 얼굴도 역시.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가브리엘…….’

동시에 공간이 뒤틀렸다.

훅, 하고 시야가 꺼졌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상황이었다.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처지가 된 빌어먹을 처지.

그리고 내게 날아온 화살 한 대.

아. 끝이다.

그렇게 절망하는 순간이었다.

“!”

단단한 무언가가 나를 강하게 잡아채 화살의 범위에서 벗어나게 했다.

사정없이 구르는 동안에도 아픔은 거의 없었다. 꼭 누군가가 나를 품에 꼭 안아 다치지 않게 보호한 것처럼.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너른-품이었다.

“괜, 후, 괜찮습니까, 힐데아.”

나를 품에 꽉 껴안은 채, 주변을 타오르는 것 같은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는 남자.

정말 가브리엘?

“힐데아. 힐.”

“……바, 방금.”

나 죽을 뻔 했는데.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나타났어.

이건, 이건 다 꿈인가?

“힐데아. 괜찮습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선명한 백금발이었다.

그래, 가브리엘. 가브리엘이다.

“제가 구하러 왔습니다.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까?”

“어, 없어요.”

정말 나를 구하러 온 거야?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냉정하게 굴었는데. 내 마음 하나 갈무리를 못 해서.

“안심하도록 시간을 주고 싶지만.”

아. 순간 몸을 일으킨 그가 다시 나를 품에 안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화살이 한 대 더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콱! 하고 나무에 처박히는 모습이 섬뜩했다.

하지만 헐떡이는 나와는 달리 그는 침착했다. 그는 허리에서 꺼낸 작은 단검을 어딘가로 던졌고, 아악 하는 비명이 저 멀리서 들렸다.

누군가 죽은 걸까.

어깨가 차가워졌다.

나도 모르게 그의 옷소매를 염치없이 꽉 붙잡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힐.”

그가 테라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차가워진 내 손을 잡으려 했다. 커다란 손은 분명 따뜻하겠지.

하지만 나도, 가브리엘도 동시에 멈추었다. 아마도 그는 내 냉담했던 태도가 떠올라서, 그리고 나는.

‘저 손을 잡으면 내 마음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당신을 좋아해.

너무 좋아해요, 가브리엘.

그래서 미칠 것 같아.

그러면 안 되는데 욕심내게 될 것 같아. 그래서 무서워.

“괜찮습니다, 힐.”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무섭다는 달싹임을 들은 것 같았다. 그것만 흘러가서 다행이었다.

그는 철책처럼 단단한 팔로 내 등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활을 피하고, 단검을 집어던졌다.

그 뒤로는 단검이 떨어진 것인지, 나무에 박혔던 활을 한 손으로 빼내어 어떤 방향으로 쉭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된 상황 속에서 드디어 고요해졌다.

‘공격이, 끝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턱 끝이 덜덜 떨렸다.

교통사고가 난 뒤 저도 모르게 신체가 덜덜 떨리며 경련하는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이러면 가브리엘한테 도움이 안 될 텐데.

집요하게 어딘가를 노려보며 살피던 가브리엘이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은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듯이 구석구석 훑었다.

그 모습이 꼭.

꼭 내가 사라졌을 때, 복도를 미친 듯이 달려와 끌어안았던 아빠를 떠올리게 했다.

그 눈에 선명하게 담겨 있었던 걱정과 애정에 안도하던 그날의 나처럼.

“괜찮습니다, 힐.”

내 심장 또한 격렬하게 뛰었다.

“제가 있는 한 누구도 당신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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