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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72화 (72/155)

72화. 오직 둘, 숲 속에서 (2)

내 벙찐 표정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뜸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힐데아.”

“?”

“길을 바로 찾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그래서 그런 게 아닌데.

오히려 당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입장인데.

짝사랑을 자각한 상대와 갑자기 하루 노숙하게 된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뿐인데?

“저, 가브리엘?”

“저와 있는 것이 불편하시겠지만.”

“…….”

“하루만 참아주세요, 힐.”

그 말은 가시처럼 나를 푹 찔렀다.

사실은 둘이 있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가브리엘이고, 나는 설레는 것을 참기 위해 괴로운 쪽에 가까울 것이다.

‘아, 그렇구나.’

터질 것 같은 심장 때문에 계속 도망치고 피했던 사람과 단둘이 이 숲에 있게 된 상황이다.

그렇게 자각하고 나니 갑자기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수줍어서? 아니, 전혀!

걱정이 해일처럼 몰아닥쳤다.

어떻게 견디지? 티 나면 어떡해? 또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그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손끝이 차가워졌다. 입술을 몇 번 짓씹은 것 같기도 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가, 가브리엘?”

그가 당혹스럽다는 듯 무릎을 꿇고 내게 손을 뻗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니까.

시선이 딱 마주쳤다. 그도 나도 호흡을 멈췄다.

그는 꼭 무의식으로 움직인 사람처럼 뻣뻣하게 굳히더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뒤로 확 물러났다.

다, 닿기도 싫구나.

“입, 술에 상처가 나셔서.”

아, 입술을 만지려고…….

그래, 닿으면 곤란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질색할 필요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의 감정을 정말 감정적으로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질색하진 말지. 난 당신이 날 좋아한다는 오해 따위는 안 한다고요…….’

정수리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서 그의 한숨 소리가 푸욱 들려왔다.

어깨가 움칠 떨렸다.

그도 지친 것일까?

하긴 아무리 남자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작중 가장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지칠 수 있다.

게다가 갑자기 전투를 해야 했고, 나까지 챙겨야 했으니까.

역시 고맙다는 말부터 하는 게 좋겠어. 사람이 염치가 있지.

“가브리엘, 오늘은 정말……. 고맙…….”

하지만 내 말은 또 이어질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제가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물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제 이능은 들짐승들을 가까이 오지 않게 하는 편이지만, 혹시라도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데 거리가 꽤 있는 편입니다. 하여.”

중간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나는 얼떨떨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 러니까 가브리엘의 말은.”

“네. 이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고. 힐은 지쳤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브리엘이 내 앞에서도 저렇게 말을 많이, 빨리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매번 과묵하게, 불편하게, 그리고 뭔가를 삼키는 듯 짧게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불편하시겠지만…….”

그가 가까이 다가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훅-하고 그때 맡았던 것과 비슷한 향수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아찔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 아래 그림자가 떨리고 있어, 그가 나처럼 긴장하고 떨리고 있다고 착각할 것 같았다.

“제가 당신을 안아서 움직여도 괜, 찮겠습니까?”

그 말에는 터지기 직전이었던 심장이 결국 과부하를 호소했다.

아, 정말.

짝사랑이 이렇게 해로운 것이었구나.

상대는 아무 의도 없는 말과 행동이었을 텐데도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설레어 하고,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그는 날 구하기 위해, 현재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난 도망치다 발에 생채기가 가득한 상태였고, 그는 내 치유 이능을 모르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가 다가왔고 곧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죽, 죽겠다. 숨이 멈출지도.

‘…….’

그의 넓고 단단한 품은 당장 도망치고 싶을 만큼 아찔했으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눈물이 날만큼 따뜻했다.

꼭 흔들리지도 않게 하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 태도가 너무 다정하게 느껴져서.

정말 한줄기 눈물이 흘렀던 것도 같다.

가브리엘.

하루가 지날수록 당신이 더 떠오르고, 좋아지는 것 같아.

이 감정을, 당신의 앞에서 삭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하나밖에 없잖아.

*

어떤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품 안에 있는 힐데아가 너무 작고 여리게 느껴져서 걷는 걸음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다.

닿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는 손길이 안쓰러웠고, 동시에 서글펐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움직여 그녀의 발을 살펴야 했다.

물소리가 나는 곳에 드디어 도착했을 때, 그는 절반 정도는 구원 받은 듯한 안도감을, 절반 정도는 그녀를 품에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에 끔찍한 아쉬움을 느꼈다.

“힐데아, 장작을 피우겠습니다.”

“……제가 도울 것은 없을까요?”

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얌전히. 이곳 주변의 돌들은 날카로운 편이라 상처가 덧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치료할 수가 없는데, 흉이라도 지면.”

“흉 같은 건, 괜찮아요.”

“……괜찮지 않습니다.”

당신의 상처들, 내가 괜찮지 않습니다.

그는 발긋한 상처들이 남은 힐데아의 작은 발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을 더 잔인하게 고통을 주며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다.

힐데아를 홀로 두고 갔다가 날짐승들이 다가올까 멀리 갈 순 없었다.

그 바람에 장작 거리를 모으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주로 마른 낙엽과 나뭇가지들이었다.

그것은 곧.

‘날 저렇게 보면.’

힐데아가 자신을 관찰한 시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뜻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그는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항상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던 이가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두고 그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았다.

체면도 잊고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아까부터 온 얼굴 근육에 힘을 주고 있는 상태였다.

참 철이 없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힐데아는 지금 괴롭고 힘들 텐데 자신은 이렇게 웃음을 참고 있기나 하다니.

그때 힐데아가 말했다.

“역시, 가브리엘. 제가 돕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낙엽 한 장이라도 같이-”

“아닙니다.”

“…….”

그렇게 말하면 어쩐지 그녀는 입을 다물고, 풀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다시 집요하게 관찰하고, 눈을 반짝 빛내며 그가 움직임을 멈춘다 싶으면 다시 말했다.

역시 제가 도울 것이-

그러면 그는 말한다. 아닙니다.

그 상황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가브리엘은 깨달았다.

‘착각인가 싶었는데.’

지금 힐데아는 미안해하고 있구나, 하는.

힐데아는 혹시 속마음을 티를 내는 것이 창피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런 처세술에 밝지 못한 모습 또한 귀여워서.

평소에도 힐데아는 큰 표정이 없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미묘한 움직임에 항상 집중하고자 했다.

한숨을 쉬는지. 손가락이 혹시 불안하게 움직이지는 않는지.

불편하고 괴로울 때 주로 입술을 깨무는 습관이 있으니 그러고 있지는 않는지.

‘물론 날 직접 쳐다볼 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그녀가 가장 초조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불행히도 자신과 함께 있을 때였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그가 어쩌다 그녀에게 닿았을 때.

에스코트할 때.

항상 힐데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퍽 우울하군.’

가브리엘은 서글픈 생각을 털어버리고 현재에 집중했다.

“힐데아.”

“네.”

그의 망토를 모포 대신 깔고 웅크린 채 앉아 눈만 깜빡이는 힐데아는 더 작고 작아 보여서, 꼭 추워 웅크린 아기 토끼 같아 보였다.

“추우십니까?”

하필 맨발이라서 더더욱.

바라보니 그녀가 발가락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가브리엘은 눈이 마주친 힐데아가 시선을 스윽 피하고, 입술을 깨무는 것을 목격했다.

‘아.’

역시 불편해하고 있다.

하긴 맨발을 보이고 있는데.

또, 저번처럼.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도 이랬었나.’

타이밍이 정말.

짝사랑하는 이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좋은 기억과 추억만 쌓고 싶은 것이 사람 심정이다.

‘그런데 매번 이렇군.’

어쩌면 힐데아는 그와 얽히면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생각할 것도 같았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십시오.”

“……네.”

그는 그녀가 편하도록 시선을 치웠다.

사실은 더 오래 보고, 상처도 살피고, 손은 괜찮은지 발은 괜찮은지 묻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오늘 밤,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창백할 정도로 무너지던 얼굴을 생각하면.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가브리엘도요. 가브리엘도,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만약 그녀를 구하기 위해 뒤따른 이가 자신이 아니라 황태자였다면 어땠을까?

벤자민 따위가 따라오지 못했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자괴감도 뒤따랐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더 어떻게 노력해야 힐데아는 자신을 편하게 여길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그녀가 자신을 좋게 볼 수 있을까.

가브리엘은 그런 것들을 곱씹었다.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다.

그렇게 힐데아가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한참 정리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혹시 호숫가에사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는지 살폈다.

아무래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숲 지척의 산딸기 등 열매를 따서 돌아왔을 때.

“……힐?”

그녀는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심해야 하는 시기에 자신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하고 옹송그리고 있는 두 손이 마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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