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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79화 (79/155)

79화. 반지를 함께 골라주세요 (1)

“흐응.”

라피이아는 그것을 휙 쳐 바닥으로 내버리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가브리엘은 멋대로 착각하고 청혼할 것이고, 힐데아 영애는 제멋대로 상처받고 침몰하겠지.

두 가문의 사이도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고.

아바마마가 원하시는 대로.

‘고작 약혼 하나에 말이야.’

그 뒤로는 힐데아 폰 힐링턴의 그 되바라진 눈빛을 볼 순 없게 될 것이다.

모처럼 자신을 쏘아보던 유일한 눈빛이었는데 말이다.

평범하게, 침울하게, 여타 영애들이 가문의 정략혼에 시들시들하게 져버리듯이.

무척이나 즐거우리라 생각했는데.

‘흥, 재미가 없어.’

그것이 이상했다.

꼭 그것이 황녀가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

마음을 먹고 나니 오히려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심지어 가브리엘을 보는 것도.

마침 가브리엘이 로제리엘과 눈을 마주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찡그림도 장난을 주고받는 것에 가까웠다.

지켜보던 내 입술은 움찔거렸지만, 그래도 제법 평화롭게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까르륵 웃다가 정색하는 로제도.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고 있는 가브리엘도.

‘사이가 좋은 건 알겠어. 근데.’

근데 아까부터 대체 뭘 저렇게 주고받는 걸까?

그때였다.

옆에서 아빠가 말을 걸었다.

“흠흠. 힐데아. 왜 그렇게…… 잘 먹지 못하느냐. 식욕이 없다면 다른 음식을 내오라고 하면 되니 말하거라.”

“…….”

하지만 지금도 음식은 많은데.

그보다는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눈이 마주치면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빠의 옆모습 중의 어떤 곳이.

아빠는 여전히 주인공급으로 잘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옥에 티가 있었다.

대체…….

‘눈이 왜 저렇게 부으셨지?’

아빠는 내 옆쪽에 앉아 계셨는데, 어쩐지 두 눈이 엄청나게 부어있었다.

내가 깨었을 때, 로제가 날 걱정하며 달려들었을 때도 딱 저런 눈두덩이를 갖고 있었는데.

난 어설프게 웃었다.

‘설마 아빠도 꿈속에서처럼 울었을 리도 없고.’

그리고 만약의 만약에라도 정말 아빠가 그날 울었다고 해도 벌써 며칠이 지났는가.

저렇게 부으려면 매일 울어야 맞다. 하지만 아빠가 매일 울 일이 뭐가 있겠어?

난 깨작대는 내 모습이 아빠의 신경에 거슬렸나 싶어 열심히 포크를 움직였다.

섭섭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괜찮아요. 아버지, 더 잘 먹을게요.”

“……그런 게 아니라, 흠흠,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을.”

“지금도 충분해요.”

“그, 렇구나. 알았다…….”

나는 가족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이제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애틋했다.

로제와 가브리엘이 투닥거리며 눈싸움을 하는 것 같은 풍경은 가슴을 욱신거리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괜찮을 거야.’

다들 씩씩하게 잘 지낼 것이다.

가족들이 혹여 걱정한다면, 날 찾지 않도록 편지를 제대로 남길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뿌리를 뽑아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급한 충동이 아니라 차근차근 과정을 밟고 있었다.

‘사실 도망칠 준비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어도.’

축언, 없어도 될 운명, 가주 부인을 죽게 한 불행한 딸.

이런 이야기들에 흔들렸을 때 준비했었던 것들이었다.

조세페에게 부탁한 가짜 신분증은 마련이 되었고, 의탁할 용병단도 구해놓았다.

아주 먼 거리, 먼 거리로 날아가 미엘르 제국의 소식이 들리지 않을 만한 곳에 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완전히 안정되어 드디어 로제와 가브리엘의 모습을 보며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그런 때가 오겠지.

그러면 나도 그때는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랑을 시작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모태솔로로 살지 뭐. 내 계좌는 두둑했으니까.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그, 흠흠, 누가 보면 연어에 소중한 반, 흠흠, 반지라도 숨겨져 있는 줄 알겠어!”

연어에 반지를 왜 넣어.

먹다가 목에 걸리면 어떡하려고.

“뭐라고 했니, 로제리엘?”

“엉?”

세상에 그런 미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저 기름진 연어에 반지를 넣는 건 불쾌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짓을 할 사람도 없고. 목에 걸리면 어떻게 해? 바보가 아니고서야.”

“…….”

“……언니는 연어를 좋, 좋아하잖아?”

연어를 좋아하는 것과 연어에 반지가 무슨 상관이람.

“누구 손에 닿았을지 모를 반지를 넣은 연어는 먹고 싶지 않을 것 같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괜히 이상한 기분에 연어 접시를 로제 쪽으로 밀어주었다.

“먹고 싶으면 먹으렴. 이건 반지 들어간 연어가 아니잖아.”

“…….”

“…….”

로제와 가브리엘은 어째서인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입을 떡 벌리고 나를 잠시 쳐다봤다.

뭐지. 연어가 먹고 싶은 게 아니었나? 아니면 저 연어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왜 그래?”

“아, 아니야. 으응, 알고 있었지만, 그냥.”

“로제?”

나는 유심히 살폈지만, 그냥 구운 연어였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구운 것으로 보이는.

그때 아빠가 끼어들었다.

“흠흠, 역시 연어 따위는! 별로이지. 힐데아, 그럼 다른 음식으로. 이것이 어떠하느냐?”

어쩐지 의기양양한 목소리라 이상하게 바라봤다. 눈은 퉁퉁 부으셔서는 왜 저렇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셨지.

‘혹시 조울증이 생기신 건.’

난 합리적인 의심을 삼키며 아빠가 내민 접시를 바라봤다. 아빠가 내게 내민 건 부드러운 양고기였다.

문제는 오늘따라 고기가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는 거지.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빠 많이 드세요.

“아니요.”

“어, 어찌하여?”

“내키지 않아서요.”

조용히 고개를 저었는데 이번에는 아빠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혹시 이 아비가 준…….”

“네?”

“아,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는 다시 기분이 나빠지신 것 같았다. 양고기를 안 먹었다고 삐치신 것은 아닐 테고.

셋 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오묘해졌다.

뭐지. 혹시 나만 모르는 그림이 음식들에 그려져 있기라도 한 거야?

도통 알 수가 없어 그냥 여기까지 먹고 일어날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가브리엘이 나를 바라보고 말문을 열었다.

“힐데아!”

깜짝이야.

“그…….”

그는 버럭 소리쳐놓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찰싹, 하고 지금 뭔가 때리는 소리가 난 것도 같은데.

“히, 힐데아는 그럼 누군가에게…… 중요한 선물을 할 때, 어떤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선물이요?”

어쩐지 가브리엘과 로제의 두 눈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뭐지.

반지.

선물?

‘아.’

혹시 둘은 자매인 내게 약혼 반지에 관한 도움을 청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그걸 둘이 이야기를 해야지 왜 나한테?

어쨌든 그들에게 충분히 어울려주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온화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아까부터 로제가 가리켰던 연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적어도 연어에 반지를 박는 방식은 아닐 것 같은데요.”

설마 가브리엘이 시도한 것이 그건 아니겠지. 저건 그냥 지금 말해본 것일 것이다.

‘게다가 연어는 로제가 별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왕이면 근사하게 청혼을 하는 게 좋겠어요, 가브리엘. 우리 로제가 더욱 기뻐하도록.

그런 뜻을 담고 지그시 가브리엘을 응시했는데, 그 순간 그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어깨를 흠칫했다.

‘또 저러네.’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이다.

‘닿지 않는 평행선 같아.’

정작 나는 이제 더는 가브리엘을 피하지 않았는데, 그는 날 더 어려워하고 불편해하고, 더 나아가는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어, 언니 벌써 일어나게?”

“응. 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어. 어차피 오후에는 할 일도 없어서 편히 쉬려고 생각 중이야.”

가브리엘이 눈에 띄게 불편해하니 음식이 더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소리를 할 순 없었다.

나는 조용히 의자를 당겨 일어났다. 둘이 드디어 청혼에 쓸 반지를 함께 고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직접 고르기보다는 보통은 그 집안의 여자 어른에게 상의를 같이 하는 게 먼저일 텐데.

‘아.’

우리 집에는 귀부인이 없다.

그래서였구나.

로제의 반지를 내게 상의하고 싶었던 이유.

나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반지까지, 같이 골라줄 수 있을까?

*

도망치듯 나왔는데, 야속하게도 가브리엘이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힐데아!”

“…….”

꼭 그러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다급한 발걸음이었다.

다가온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힐. 오후에 일정이 없으십니까? 만약 일정이 없으시다면.”

뒤돌아보기 싫다.

“부탁을 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를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것은 가슴이 떨리는 일이었지만 그가 내뱉을 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뒤돌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피할 수가 없다면 결국 얽혀야지.

“네, 시간 있어요. 가브리엘. 무엇인가요?”

그러자 며칠 만에 처음으로 가브리엘이 환한 얼굴을 했다.

“……제가 오늘 아주 중요한 물건을 고를 예정인데.”

온 신경이 반지에 집중된 풋풋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제야 조용히 따라 입꼬리에 힘을 뺄 수 있었다.

“그것을 힐데아, 당신께서 같이 골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욱신.

반지가 연어에 박히는 것이 아니라, 내 심장에 박히는 것 같았다.

‘나도 참.’

우스운 헛소리를 떠올리지 않으면 눈가가 붉게 달아오를 것 같아 그런 농담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체념했다.

“좋아요. 가브리엘.”

로제를 위한 반지.

“내 의견이 필요하다면, 같이 고르도록 해요.”

그것으로 내 마지막 미련도 끊어질 것 같았다.

*

로제는 언니와 가브리엘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후아! 하고 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빠를 향해 볼멘소리로 외쳤다.

“아니이, 거기서 왜 연어를 치우시는 거예요, 아빠? 약속한 것과 틀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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