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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91화 (91/155)

91화. 그들은 간절히 찾고 있었다 (2)

“…….”

“…….”

로제리엘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지독한 술 냄새와 알 수 없는 서늘함이었다.

그리고 그 서늘한 공기가 살기가 되어 찌릿찌릿 피부를 짓이기는 느낌이 들었다.

“왜, 왔습니까.”

잔뜩 갈라진 목소리 또한 섬뜩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행복으로 가득 차 수줍게 웃던 남자가 지금 이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지.

로제리엘은 살벌한 기세에 굳건한 자신도 당장 문 닫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이에 힘을 꽉 주었다.

이대로 도망칠 순 없지.

“축언 도둑에 대해 들었을 거예요. 지금 제국이 난리가 났으니까.”

힐데아가 제국을 떠나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일이라고 하면 분명 그것일 것이다.

축언 도둑.

하루아침에 축언을 도둑 맞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구 하나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으며, 그것은 강대한 축언이고 비천한 축언이고 구분하지 않고 일어났다.

혹자는 전염병이라고 추측했고, 혹자는 이것이 이능을 지닌 자의 행각이라고 추측했다.

아직도 무엇이 맞는지는 모른다. 축언 도둑이 살아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고 퍼져나가는 무서운 죽음의 병인지.

‘벌써 몇 명이 죽었는지.’

로제리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일은 분명 없었는데.’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 처음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눈앞의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중엔 지금 당장 언니가 이 제국에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현재 제국의 분위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축언을 지닌 자들은 대다수 높은 위치의 귀족들이다.

그런 귀족들이 지금 정체 모를 것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으니, 그들은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존경받던 제국의 두 유력 가문을 좋게 보지 않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 공작가는 제국의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저 사라진 힐데아 폰 힐링턴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했으니까.

더불어, 갑자기 힐링턴의 첫째가 사라지고 일어난 이 일들을 힐데아가 지닌 불길한 축언과 엮으려는 이들까지 있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네?”

그런데 가브리엘은, 제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제국의 검과 방패라고 불리었던 강직한 남자는 서늘한 조소를 내지었다.

“그래서, 그것을 왜 내게 말합니까.”

“가브리엘.”

“지금 내게, 그런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까?”

비틀린 어조였고 목소리였다.

로제리엘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두 달. 두 달 동안 눈앞의 남자는 여러 단계를 거쳐 절망했다.

처음에는 하염없는 슬픔에 빠졌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현실을 믿기 힘든 사람처럼 슬퍼했다. 사슬에 묶인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도 났다고 했다.

‘저러다가 큰일이 나실까 봐 걱정됩니다.’

어쩌다 보니 자주 말을 섞게 된 가브리엘의 보좌관, 디안과 우려 섞인 말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까맣게 죽은 얼굴로 제 주군의 곁을 떠나질 못했다.

로제리엘도 혀를 쓰게 찼으나, 그래도 설마 했다.

회복하겠지.

그 가브리엘인데.

지금은 힘들어도 정신을 차리고 언니를 찾으러 같이 손을 합치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주, 주군이 사라지셨습니다!’

가브리엘이 미친 사람처럼 사라졌다.

공작가의 가주이고 뭐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사람처럼, 홀연히 검만 들고 힐데아의 흔적을 찾아 떠났던 것이다.

덕분에 제국의 신문은 연신 이 사건을 다루며 떠들어댔다.

호외요, 호외! 힐링턴과 벨키우스 사이에 일어난 비극! 참담한 청혼 거절이 낳은 결과! 그렇다면 힐링턴 공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녀는 대체 누구와 사랑의 도피를?

이따위 저질스러운 내용의 신문이 줄줄이 발행되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브리엘이 돌아왔다. 무척이나 초췌해진 안색으로.

‘뒷골목 쪽을 돌았다고 했지.’

사람을 찾는 방법으로 뒷골목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도 그렇게 했으니까.

하지만 애석히도 누구도 힐데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찾을 수 없었다.

‘제국에 없는 것처럼.’

로제는 그때쯤 힐데아가 외국으로 떠났을 가능성을 고려 중이었다.

그래서 뒷골목에서도 힐데아의 흔적을 찾지 못한 가브리엘은 다음 단계로 절망했다.

거의 미친 사람처럼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헤매고 또 헤맸다.

자신이 한 말을. 흔적을.

힐데아와 나누었던 추억들이 모두 자신만의 착각이었다는 쓰라린 아픔에 몸살을 앓았다.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힐데아가 그 청혼을 그렇게 도망치며 거절해야 했을 만큼 자신을 경멸하고 혐오한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로제는 알았다.

언니는 당신을 좋아해.

그건 분명, 분명한 사실이었어.

그러나 그것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자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증거를 보여주고 싶어도 저 눈에 닿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됐습니다.’

‘뭐라고요?’

‘…….’

그는 포기의 단계에 이르렀다. 주변의 무슨 말도, 위로도 그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술과 함께 살았다.

‘힐, 그녀는 내가 싫어서 간 겁니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다는 지독한 얼굴을 한 주제에 그렇게 말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아아, 다 내 탓일까.’

로제리엘은 가슴이 쿡쿡 쑤셨다.

‘나는……. 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고 그들 사이의 감정도 분명했는데, 어쩐지 돕겠다고 행동한 자신이 일을 망친 것만 같았기 때문에.

이게 다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기억 때문이었다.

그 작은 행동, 그 차이가 둘을 어긋나게 했다니.

자책으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미치겠다, 정말.’

그러다가 그것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뭐라고?’

‘힐이라는 이름이 걸리는데, 한번 살펴보시겠어요?’

절대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암시장.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이.

로제리엘은 뒷골목 쪽에서도 알아주는 잡화상점 주인이었고, 덕분에 은밀한 정보 쪽에서도 가브리엘보다 더 접촉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힐이라고?’

‘네. 암시장의 주요 거래 고객이었다고 합니다. 암시장의 주인은 아직 잡지 못해서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순 없었지만.’

한 달 반을 미친 듯 찾아헤매 겨우 걸린 단서였다.

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암시장의 기적, 힐.

사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그 사람은 자신의 이능을 통해 암시장에 가끔 화분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그렇게 기적을 일으킨다고 했다.

들었을 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웃기는 소리. 우리 언니가 무슨 암시장에 가? 동명이인이겠지.

힐이라는 이름이 워낙 흔하기도 했고 로제리엘 자신도 아니고 설마 언니가 암시장에 거래를 맡겼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발걸음할 일 없었을 텐데.’

하지만 로제가 다시 그 힐이라는 자에게 집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게 힐이라는 자가 판매한 화분이라고?’

‘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상단주님.’

그래, 부하의 말대로 직접 눈으로 보게 되기 전까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그 화분을 보는 순간, 로제는 알아볼 수 있었다.

벼락 맞은 것 같은 깨달음.

언니다. 이건, 언니의 것이다.

언니가 그 치유사 힐이었다고.

‘당장, 암시장의 주인을 찾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네, 알겠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믿을 수 없었다. 언니가 치유 이능을 갖고 있다고?

암시장에 거래를 해왔다고?

아니 그보다.

‘언니가 어떻게…….’

그러면 힐데아의 도주는 하루 이틀 준비한 것이 정말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주 철저히, 체계적으로, 그것도 몇 년에 걸쳐서.

로제도 무서워졌다.

로제리엘도 이때쯤에는 허탈해졌다. 정말, 언니가 정말 이곳이 싫어서 가버린 것이라면 어쩌지?

가브리엘에 대한 감정도 모두 내 착각이었다면? 내 강요였다면?

하지만 분명 언니의 눈은 항상 가브리엘에게 향해 있었는데…….

로제는 뺨을 쳤다.

‘아니야. 어쨌든 찾아야지.’

절망한 아빠와 주변 사람들에게 잘난 척 충고했던 것처럼, 찾아야 했다.

그 이후는 이후의 일이다.

거부하고 거절하더라도 찾긴 해야 했다. 힐데아가 무사한지 확인이 필요했다.

축언 도둑이 제국 내에서만 번지고 있다지만, 정말 힐데아가 제국에 없는 것인지. 외국에 있다면 안전한지 눈으로 보고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로제의 집중은 갑자기 나타난 기이한 능력을 보이는 치유사를 찾는 것.

그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지.’

그리고 찾자마자 이곳으로 뛰어온 것이었다.

로제는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사나운 남자에게 말했다.

“이대로 다 포기할 거예요?”

“…….”

“만약 언니를 찾았다고 해도?”

잠시 사납게 퍼지던 기운이 멈칫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시선을 돌리고 있던 남자가 다시 천천히 로제를 향해 눈을 맞췄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말 그대로.”

뚫어질 것 같은 시선을 보며, 로제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어요. 언니의 흔적.”

*

-안녕하세요. 힐……. 계십니까?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얼른 문을 열자, 코끝이 빨갛게 된 순한 인상의 남자가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키가 무척 크고, 어깨가 넓으며, 좋게 말하면 순하고 나쁘게 말하면 졸려 보이는 사람.

바로 이 아라난 왕국의 엔데렌 백작 영지령의 주인, 사무엘 이라 엔데렌 백작이었다.

“어서 오세요, 영주님.”

나는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피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려 노력해보았다.

“루아를 데리러 오셨나요? 루아가 잠들었네요.”

“아. 이, 이런 실례를.”

수줍음이 많은 영주님은 평소처럼 얼굴을 발긋하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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