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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09화 (109/155)

109화. 그가 구애하는 방식 (1)

내가 무슨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간밤 내 꿈속에는 끊임없이 가브리엘이 등장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힐데아.

그 낮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가 새벽인 것을 확인하고 눈을 감고, 다시 그런 꿈을 꾸었다가 놀라 깨고…….

해가 뜨자마자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엘라와 루아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집 문도 열지 못했을 것이다.

“힐!”

“언니야아아!”

당차게 쳐들어온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동상처럼 굳었다.

“히, 힐?”

“어, 언니야! 얼굴이 왜 그래!”

나는 둘의 말에 거울을 보았고, 탄식했다.

얼굴 꼴이 왜 이러지. 아, 맞다. 나 어제 펑펑 울었지……? 그것도 가브리엘의 품에 안겨서.

“어머, 힐, 너 얼굴이 토마토야!”

나도 알아, 엘라.

정말 얼굴이 펑 하고 터지는 기분이었다.

엘라가 루아를 안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웃음이 음흉했다. 뭐, 뭐야.

“후후, 다 들었어. 과일주를 얻어갔다며?”

마을 사람들이 화목한 것은 좋지만 너무 사생활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당장 가브리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진전은, 응? 진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를 텐데, 같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루아가 부담스러웠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엘라한테 숨길 수는 없었으니까.

“그 사람이 청혼한 게 내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고 해…….”

엘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꺄아악! 뭐야, 뭐야. 고백 받은 거니? 어머 웬일이야, 하루 만에 무슨 진도가……. 그보다 동생이 아니라고? 어쩌다 그런 오해가 생긴 거야? 설명은 들었니?”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눈을 번뜩이는 엘라를 보니 새삼스럽게 어제의 일이 선명하게 자각되었다.

진짜야. 꿈이 아니라 진짜라고.

‘나와 가브리엘이…….’

삽시간에 열이 오르는 얼굴이 그대로 뻥 하고 터질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사람은 처음부터였대……. 그러니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를, 그렇게.”

“그러니까 둘 사이에 오해가 단단히 쌓였었다는 거야?”

“으응. 아직도 나만의 착각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것들이 있지만.”

“어떤 것들?”

“그 사람은 항상 내 동생과 있었거든. 나와는 대화를 잘 나누지 못했고……. 편지나 선물 같은 것도 차이가 나서 모두가 그렇게 말했어. 그가 마음에 둔 것은 내 동생이라고.”

엘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그럼 그쪽도 처신을 잘못한 거잖아. 한쪽만 오해하게 되는 상황이 어디 있니? 자책하지 마, 절대 네 탓 아니야, 힐!”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고서도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엘라의 존재는 여전히 신기하고, 기뻤다.

“응, 엘라. 이제부터 궁금한 것이 생기면, 혼자 자책하지 않고……. 가브리엘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지금 기분은 어때?”

엘라는 알까. 자신이 내게 준 것이 너무나 큰 선물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오늘 하루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좋은 것들을 주었다.

아마 엘라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이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가브리엘이 어제와 같이 똑같이 말했다 하더라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왜요?

로제를 두고 왜 날 좋아해?

그렇게.

“그냥, 좋아.”

“어머, 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난 기뻐, 엘라. 한번도, 한 번도 가정한 적 없던 일들이 일어나서 꿈을 꾸는 것 같지만.”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웃었다.

“꿈이 아니라는 듯 그 사람은 몇 번이나 말해줬어. ……나였다고.”

이제는 귓가가 마구 간지러웠다. 다정하게 속삭이던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라서.

‘당신께선 제게 설레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윽, 어떡하지.

이건 부끄러운 건가?

빙글 웃고 있는 엘라의 모습을 보니 그대로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사실 복잡한 것들은 많았다.

가브리엘이 나와 마음이 통했던 것이라면 내가 알고,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비틀렸다는 소리인데.

남겨진 가족들은 어땠을지.

로제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사라져 버린 나를 두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그것을 생각하면 겁도 났다.

가브리엘과 내 마음이 통했다고 해서 잔존하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 사이도 어떻게 되는 것일지.

나는 당장 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데…….

그를 이곳에 계속 묶어둘 순 없는 일이 아닌가.

상념은 뚝 끊겼다.

엘라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상냥한 얼굴을 하고 조용히 말했다.

“정말 잘 됐다, 힐.”

아. 어째서일까?

그 말에 다시금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흘러나온 것은.

“히, 힐?”

엘라가 당황했고, 그녀의 품에 안긴 루아 역시 놀라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어린 아이처럼 눈물이 터졌다.

난 손을 휘저었다.

“정말 좋아서, 좋아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괜찮, 흐으.”

지켜보던 루아의 입술이 병아리처럼 삐죽거리더니 곧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잉, 언니야, 울지 마아, 으아앙!”

어린아이들은 울면 따라 울기 마련이었으니까.

나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팔을 뻗어 루아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울지 마, 울지 마.”

꼭 어린 시절의 외로웠던 나를 안아주듯이.

그래, 앞으로의 일들로 또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이 행복감에 집중하고 싶었다.

*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체면치레는 좀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힐, 눈이…….”

네, 부었죠. 퉁퉁.

난 민망함에 괜히 얼굴을 가리며 꽃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오는 기척을 선명히 느끼면서도 차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아, 창피해.

출근하면 바로 가브리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기억했다면, 차가운 수건으로 붓기를 가라앉히고 왔을 텐데.

그러나 나는 꽃집주인이었고, 주문은 밀려 있었으며, 할 일이 많았다. 생각은 그러했다는 것이다.

슥, 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눈가에 닿았기 때문에 나는 망가진 태엽인형처럼 제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가, 가브리엘?”

어깨를 잡고 살짝 돌리는 손길에 몸이 돌아갔다.

시선이 마주쳤다.

내 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선명한 가브리엘이 있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눈가를 훔쳤다.

묻어나오는 눈물도 없건만, 그는 제 손가락을 힐끗 바라봤다.

고작 하루가 지났는데 이런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진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힐데아, 저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신 후에.”

나는 멍하니 그의 손가락을 바라봤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우셨습니까?”

어쩐지 그의 눈빛이 더욱 짙어진 것 같다.

가브리엘,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묻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셨던 것이라면.”

“아, 아니에요!”

나는 황급히 그의 말을 잘랐다.

또다시 오해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싫었다.

이제 겨우, 이렇게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가브리엘. 그냥……. 눈물샘이 이상해졌나 봐요. 자꾸만 눈물이 흘러서.”

“그러니까, 힐데아.”

응? 나는 눈을 깜빡였다.

가브리엘이 내 손을 잡아 왔기 때문이다.

“당신 눈물의 이유가 불편함도, 괴로움도 아니셨다면.”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스치듯 잡아 기사가 귀부인에게 입맞춤하듯이 손등에 그의 입술 표면이 스쳐 지나갔다.

슬며시 입술을 스친 뒤, 눈만 굴려 마주치는 시선이 뜨겁고 따가웠다.

당장 도망가고 싶어질 정도로.

“저로 인해 우셨습니까?”

촉촉하고 따뜻했고, 내 얼굴은 다시금 불덩이가 되었다.

아까는 걱정하는 말투였다면, 지금은 만족스럽고 배부른 듯한 어조였기 때문에.

“저 때문에.”

어, 음. 어쩐지 만족스러워 보이는데?

슬며시 웃는 그를 보며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브리엘, 성격 나쁜 편이었구나.

아니, 원작을 읽었으니 내 여주인공에게만 상냥하지, 라는 성격인 거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 이제 업무를 시작해볼까요, 힐데아. 주문이 많이 밀렸더군요.”

꽃집 주인은 나였는데도 나는 멍하니 그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네, 일해야죠. 일…….

콧노래를 부르며 움직이는 남자의 뒷모습만 눈에 담다가,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나 흐른 뒤였다.

*

“전하. 그 치료사의 흔적이 끊긴 것이 이곳입니다. 이제부터 수색 방향을 정해주셔야 합니다.”

“양쪽 모두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황태자 벤자민은 황량하기만 한 산맥을 바라보며 눈을 구겼다.

치료사든 누구든 아무나 데리고 가서 어마마마가 찾는 사람이라 들이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두 달간 그의 정신을 가득 채운 상대는 오로지 힐데아 폰 힐링턴이었으니까.

‘단서가 코앞에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 신관 그 작자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돌아갈 때가 있는 법이지.’

어머니의 협조는 반드시 필요했다. 이상하게 불안한 느낌을 무시하며, 황태자 벤자민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부터 수색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전하.”

그녀를 생각하면 치솟는 조급한 마음을 꾹 억누른 채 벤자민은 생각했다.

기다려줘요, 힐데아. 그 치료사만 찾으면 당신을 반드시 찾을 테니.

그리고……. 당신이 눈 돌린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내가 당신의 손을 그 남자보다 먼저 잡고 행복하게 해줄 테니.

*

“으윽, 드디어 끝났다…….”

나는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엄청나게 바쁜 하루였기 때문이다.

아, 그냥 침대에 쓰러져 눕고 싶다.

“힐데아.”

“네에…….”

그때만큼은 옆에 있는 사람이 가브리엘이라는 것을, 그로 인해 심장이 뛰고 설레는 느낌조차 잊어버렸다.

“매번 이렇게 일을 하셨습니까?”

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못마땅하다는 듯 정색하고 있는 가브리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기 때문에 입술을 가리면서 말이다.

“그건 아니에요. 그간 지켜봐서 알잖아요.”

“이렇게 주문을 받는 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찾는 이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단골손님들이 많긴 해요.”

가브리엘은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이제 더 이상 힐의 꽃집에는 새로운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고민 끝에 주문 창구를 닫았다.

아직 남은 주문들이 있어 얼마간은 계속 바쁘겠지만, 그 주문들이 모두 마무리되고 난 후에는.

‘어떻게든 결정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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